당신 눈망울에 머문
푸른 빛이 그리웠다
/梅谷堂 김 경숙
*일시: 9/04, 07시 40분 신갈 출발
*날씨: 맑음
(10:35) 이화령(529m) 도착
(10:45) 체조및 기념촬영후 산행시작
(11;04) 첫헬기장
(11;32) 691.3m봉
(11;38) 조봉(680m)
(11;42) 헬기장(740m, 772봉을 넘어)
(11;50) 안부 갈림길
(11;52) 인공습지(연못)
(12;16) 860m봉
(12;21) 이정표(이화령, 백화산 80분)/점심식사
(12;55) 황학산
(13;18) 백화산 이정표(거리표시 없음)
(13;22) 헬기장(주흘산 영봉 조망)
(13;28) 조망바위(993m, 백화산이 코앞에)/직벽 로프구간 하강
(13;52) 오름길에 황학산방향 이정표(거리표시 없음, 글자 벗겨짐)
(13;55) 헬기장
(13;55) 백화산(1,063.9m)/안내문, 동쪽방향 조망 좋음)
(14;05) 전망좋은 너럭바위(백화산에서 오른쪽으로 급회전 되는 곳에)
/10여분간 바위지대 이어짐
(14;20) 1,012m봉(잡목 사이로 백화산을 올려다보며..)
(14;33) 무명봉(풀밭 좋은 곳, 잠시 누워)
(14;38) 좌측으로 조망 열림(좌측 골짜기 마을 내려다보임/삼밭골)
(14;39) 좌측으로 뇌정산 조망
(14;41) 바위능선
(14;48) 평전치(903m)/분지안말60분, 백화산50분, 이만봉 희양산
(15;01) 981m봉(뇌정산 갈림길)
(15;11) 973m봉
(15;23) 사다리재 전 마지막봉
(15;50) 사다리재(843m)/10분간 휴식, 무릎보호대 착용
(16;00) 하산
(16;21) 119신고안내 이만봉 제1지점
(16;25) 묘1기 통과
(16;54) 안말
(17;02) 분지리(375m) 도착
(17;20) 분지리 출발
이화령에 핀 고광나무꽃을 찾아 길을 나섰던 때가 있었다. 굽이쳐 돌아내린 그 길
에서 향기로운 꽃향기를 날리며 나비가 찾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을 그 길이 몹시도
궁금하고 그리웠기에, 난 그 꽃을 찾아 그 날은 나비가 되어 이화령을 찾았었다. 그
때는 내가 감히 백두대간길을 종주할 것이라는 꿈조차도 꿀 수가 없었다. 띄엄띄엄
찾아가던 백두대간길에서 지나간 일을 추억하는 빛바랜 사진 몇장만을 남기웠을
뿐, 산자락을 휘감던 고광나무 꽃향기만이 가슴에 작은 그리움의 씨앗 한알을 묻어
두고 아스라이 세월속으로 멀어져 갔었다.(2008.06,13 고광나무꽃/山梅花)
고광나무꽃(山梅花)이여!
천사의 마음이나 저 빛을 닮았을라나
어찌도 그 빛이 청정해 보이던지
그 자리 그대로 허물벗고 눌러앉아
山梅花로 피어나고 싶었던
이화령 골짜기에서
고요가 넘쳐 적막으로 덮쳐오던
산골짝 밤하늘로부터
거칠 것 없이 쏟아져내리던 어젯밤 별빛이
고광나무 덩굴 위에 앉아
눈이 시린 빛을 가슴 안으로
마구 부어대고 있었기에
단 하룻만의 깊이를 잴 수 없는
은밀한 언어들을 시상의 줄에 꿰어
열락(悅樂)의 무아경(無我境)을 넘나드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시 한 수 낚고 싶었다.
내 어찌 그 꽃이 될 수 있으랴마는
淸明한 빛이라도 마음에 담아볼까 하였기에
산매화 향기 그윽한 여인이고 싶었다
그 빛 닮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이토록이나 모질게도 내 마음 흔들어놓는
고광나무꽃이여!
(08.06,13)
어느날 부턴가 가슴에 묻어두었던 씨앗이 발아를 하고 그 싹이 대간길에 꿈을 키
우기 시작하였다. 마치 노란 꽃잎을 벌려 씨앗을 여물리기 위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을 가고 있는 태양을 쫓아 긴 날을 오로지 태양빛에 희망을 거는 해바라기꽃처럼,
난 대간길에 묻은 꿈을 키우기 위해 토요일이면 주중에 해바라기 하던 그 길을 찾아
만사 제쳐두고 해바라기 꽃이 되어 산을 찾곤 하였다.(사진;2010.8/31, 용인)
(사진;2010.8/31, 용인)
지나간 능선에서의 일은 이미 빛바랜 추억이 되어가지만, 앞으로 가야할 길들이
아직도 내 꿈속에 들고 있다. 일곱빛깔의 찬란한 무지개빛을 날개에 담고 있는 칠
색조가 나의 꿈속을 들락이듯, 백두대간길은 지금도 내 삶의 나침반이 되어 인생
길 방향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사진;2010.8/31, 용인)
해바라기 씨앗을 여물리는 태양빛이 시들지 않는 한, 한반도를 가르는 백두대간
이 허리가 끊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내 꿈 또한 내가 살아 있는 한은 그 길을 따라
남은 인생길에 해바라기가 되어, 이화령을 떠돌던 고광나무 꽃향기처럼 아름다운
향기 날리우는 한송이 꽃이 되어 보리라. 대간길에서의 건강한 삶을 기원하며..
(사진;2010.8/31, 용인)
* 산행코스 ; 이화령~<1.53Km>~조봉~<3.9Km>~황학산~<1.85>~백화산~
<1.45Km>~평전치~<2.46Km>~사다리재~<2.8Km>~분지리
* 산행거리 : 대간거리 11.19km/접속거리 2.8km = 13.99Km
/실거리 18.0Km(6시간)
오래간만에 이화령에 발을 디뎠다. 처음처럼 설레임은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서의
아름다운 추억 한자락 깔고 가던 그 날 그 기억은 어제의 일처럼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그 때 이화령엔 야생화가 한창이었다. 꽃과 함께 산길을 오르던 그 시절을 되
새김질 하며, 난 오늘도 이곳에 훗날 꺼내어 미소지을 수 있을 아름다운 추억 한자
락 다시 깔고 가게 될 것이다.
해발 528m의 이화령에 도착한 시간 10;35이다.
이은학 대장님의 리딩은 이래서 좋다. 여유로운 시작, 서둘러봐야 5분 10분에 불과
한 시간 아끼자고 하차 하자마자 산으로 내빼는 그런 산행팀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간단한 준비체조와 기념촬영 등으로 10여분간 갖게되는 여유로움은, 길고 지루한 대
간길에서의 웃음과 안전을 선사하는 청량제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건강한 대간길에서의 하루를 위하여, 화이팅!
이화령 고개에서 바라본 연풍방향이다. 이화령은 배꽃고개라는 뜻으로 그 이름이 아
주 예쁘지만, 일본인들이 험준한 조령을 넘는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리고 동시
에 우리 나라 전통적 고갯길이었던 조령 즉 문경새재를 말살하기 위해 1925년 신작로
를 이곳에 내며 이화령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 3번 국도가 지나는 이화령은 추
풍령과 죽령 사이의 큰 고개로 옛날에는 이우리고개라고 하였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문경새재가 여기인 줄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으며, 이 고개는 백두대간 종주의 중요한
기점이기도 한 곳이다.
휴게소를 떠나 왼쪽으로 조령산 방향의 산능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돌다 모퉁이에
경상북도 표지석 앞에서 다시 기념촬영을 하고서...
"다음 구간(조령산방향)은 이쪽입니다." 살아있는 이정표가 되어서...ㅎㅎ
이화령 동쪽으로 각서리 마을과 풍덕골이 있다. 각서리는 1590년경 황씨라는 선비
가 마을을 개척하여 살았는데 백화산 모습이 마치 뿔과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
다. 풍덕골은 괴산군 연풍사람 김만덕(金萬德)이 연풍의 풍자와 자신의 이름 덕자를
따서 풍덕골이 되었으며,
동쪽은 조령천, 서쪽은 연풍천의 분수령이며 조령산과 갈미봉 사이의 이화령을 지역
주민들은 예부터 이우릿재로 불러왔다. 대동여지도에는 이화현(伊火峴)으로 기록되
어 있고, 문경시 문경읍 각서리와 괴산군 연풍면을 잇는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1925년
왜정시절 길이 넓어지며 이화령(梨花嶺)으로 왜곡되었다.
산림청이 2005년 10월 일제때 바뀐 산이름을 원래대로 바로 잡기 위해 지자체에 39건
을 넘겼는데 그 예를 보면 북한산이 삼각산, 백운대가 백운봉, 속리산과 계룡산의 천
황봉이 천왕봉, 강화 마니산이 마리산으로..
그외에 정선의 가리왕산이 갈왕산, 대전의 계족산이 봉황산, 영동의 민주지산이 백운
산, 구미의 금오산이 대본산으로 춘천의 우두산이 소솔뫼, 양평의 유명산이 마유산,
제천의 작성산이 까치성산으로, 이화령은 이우릿재 또는 이화현(伊火峴) 등으로 검토
하고 있다. 현재 시정이 된 산이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산이름도 있다. 앞으로는 나 자
신 부터도 그 부분에 대하여 좀 더 신경을 써서 우리 이름으로 불러야겠단 생각을 해본
다.
1998년 이화령 터널에 이어 2006년 중부내륙고속도로 터널도 개통하여 이화령 고개는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며, 예전에 호황을 누렸던 휴게소는 백두대간 종주자들만
이 이용을 할 뿐 한산하기 이를데 없다.
들머리를 향해가며..
시멘트로 만들어진 계단길을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제작공법으로 봐서
아마도 군부대에서 만들어놓은 계단이 아닌가 해진다.
예전에는 이화령에서 황학산 못미쳐 헬기장이 있는 곳까지 군통제 구역이어서, 백두
대간길을 버리고 이화령 동쪽 문경읍쪽으로 내려가 있는 농산물집하장(개인가게)에서
고냉지 채소밭을 지나 오르고 내려야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계단길을 급하게 오르게 되지만, 조금 오르다보면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길을 편안하게 오르게 된다.
오르막을 오르며 때가 아닌데도 혹시나 하여 수풀속을 두리번거려 보았다. 고광나무
꽃의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하여..... 이젠 그 꽃의 향기가 가슴속에만 있는 꽃
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몇년전 태백산 기슭에서도 보았기에 기회가 되면 태백산으로
의 6월산행을 한번 다녀와야겠단 생각이 절실하여지면서..
들머리에서 20여분 완만한 능선길을 오르면 산봉우리 하나를 넘어 첫번째의 헬기장
(조그만)이 나온다. 첫봉우리를 배경으로..
그 후 24분후 691.3m봉을 지나게 되고(11;32)
이어 6분후엔 조봉을 오르게 된다.(11;38) 조봉 주위에는 군부대에서 파놓은 듯한 참
호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로부터 4분후면 772m봉을 넘어 두번째의 헬기장에 이르게 된다.(11;42)
두번째의 헬기장을 지나 좌측으로 담장이 넝쿨이 낙엽송을 타고 오르며 멋진 모습
을 연출해 내는 낙엽송군락지를 빠져나가노라면 완만한 내림길에 내려서게 된다. 안
부갈림길이다. 좌측으로 내리는 길이 흐릿하게 나있다.(11;50)
이어서 낙엽송군락지를 다시 지나 2분후엔 인공습지를 지나게 된다. 지난해 4월 이
곳을 지날 때만도 금방 파놓고 물이 한번도 고여보지 않은 뽀송뽀송한 웅덩이에 불과
하였었는데, 올여름 비가 자주 와 물이 흔하다보니 하나의 작은 연못을 이루고 있다.
한결 보기가 좋다. 나무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어 영 보기가 안좋았는데 아무튼
흐뭇한 모습이다. 연못 가운데 자라고 있는 나무들은 그 자리를 둥글려 파고 남아있
던 것으로 보았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다른 곳에서 파 옮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웅
덩이를 판 다음 가운데 나무를 옮겨놓은 것임.) 앞으로 이 습지가 황학산 생태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를 해본다. 연못 주위에는 짐승들이 물을 먹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지 발자국이 즐비하게 나있다.(아래 사진은2009.4/4일에 본인이 촬영
한 것임.) (11;52)
속리산 구간 비재와 갈령 삼거리의 가운데 위치한 못재에 이어 두번째 만나는 마루
금상의 습지(연못)이다. 천연적으로 생긴 못은 아니다. 인공연못이다. 생태계 보존을
위하여 누군가 인위적으로 파놓은 못으로 이 못이 생긴 것은 불과 1~2년 밖에 안되었
다. 2009년 4월 이곳을 지날 때만도 금방 파놓은 듯 보였으니.....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환경운동가가 공단과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야산에 작
은 웅덩이(직경 69cm, 깊이 25cm)를 파놓고 기다린 결과 모두 56종의 새들이 시시각
각 모여드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중에는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 황조롱이 등과
같은 희귀종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자연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품어들기
때문에 생태계는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주
고 있다.
소설가 박완서의「내가 잃은 동산」에서 보면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논에는 군우물이라는 것을 두고 있었다. 군우물은 논 한쪽 귀퉁이에 파놓은 우물보
다는 크고 연못보다는 작은 웅덩이였는데 어린이에게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충충한 것
이었다. --(중략)-- 군우물은 지저분하고 온갖 물풀과 물벌레가 살았다. 올챙이가 알
에서 깨어 나오는 것도 군우물에서였고 여름의 모기가 들끓는 것도 군우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물방개, 소금쟁이, 물장군, 장구애비, 물땡땡이 등이 푸르고 느글느
글한 물풀 사이를 떠다녔다”
군우물은 지역에 따라 둠벙이, 둠쟁이, 둠뱅이 등 서로 다르게 불려졌다. 이러한 군우
물은 가문 볏논에 물을 대는데 이용되는 것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아파트 뒷동산 웅덩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보호 및 생태계 보호를 통해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기여하
고 있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오늘 이곳에서 만난 인공습지가 반가운 이유가 여
기에 있다.
인공습지를 지나면 전형적인 육산의 산행로로 이어진다. 아주 순하고 부드러운 길을
따르다보면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9부능선(완만한 풀밭길)이요 좌측길은 넓은
길로 능선을 향해 오르게 된다.
좌측으로 들어서서 조금 걷다보니 작은 물길이 앞을 막아선다. 대간길에 왠 물이 흐
르는가 하여 잠시 주춤거린다. 예전엔 우측 9부 능선길로 올랐던 생각이 나서이다.
그쪽 길이 희미해진 것으로 보아 오르지 못하게 막아놓은 것으로 보인다. 군에서 통제
를 하든가 아니면 인근 주민들이 임산물 채취를 위하여 막아놓은 것이 아닌가 해진다.
지나오며 보니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듯.....
대간길에 왠 물길인가 하여 궁금해 하며(비가 자주 내리다보니 평원같은 넓은 숲에
작은 도랑이 패여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들고..) 맑은 물에 손이라도 씻고
지날까 하다 그대로 지나쳐 오른다.
임도같이 넓은 숲길이 일부 산꾼들은 방화선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그것은 아닌듯 하
다. 그 정도의 간격으로 불길이 옮기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를 않는다. 우뚝우뚝 잘
자라 하늘을 가린 아름드리 나무들이 길 위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좌측으로는 연록의 양탄자 같은 풀밭이 펼쳐져 더욱 안락한 느낌을 받으면서 능선을
오르다 보면 777m봉 부근에 산행로 좌측으로 전망좋은 바위가 있다. 바위전망대에서
는 중부내륙고속도로(고속국도 제45호선)와 신국도 3호선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그
리고 부봉(916.2m 1봉~6봉), 영봉(1,106m), 주봉(1,075), 관봉(고깔봉)이 조망된다.
이어서 860m봉에 오르게 되고,(12;16)
5분후에 문경시 각서리와 괴산군의 분지리 경계인 황학산 안부에 닿게 된다. 그곳
에서 일행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12;21)
박꽃향기가 예전에 어느 백두대간팀과 이곳을 지나다가 시원한 막걸리 한잔씩 나누
고 지나쳤던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어보았다. '이 자리와는 인연이 깊은 자리인가 보
다.'하고....(이정표, 이화령/백화산 80분)
점심보따리를 푼 후 국수를 비벼 조금씩 나누었다. 예전 같으면 충분할 양인데 오늘
은 사람이 많다보니 나누고서도 미안한 마음만...미안한 마음을 무엇으로 때우나??^^
(사진;은비님)
(사진;은비님)
함께 한다는 건 그런 것 같습니다.
있을 땐 서로 나누고
힘들 땐 서로의 등 두드려주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건넬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어 간다는 것
우리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엔 독불장군이 없듯
나 혼자 잘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위안을 받고 위로 받기보다
내가 먼저 앞장서서 다른 사람을 이해 하고
작은 사랑이라도 베풀 수 있다면
함께 가는 이 길이
좀 더 보람되고 즐거운 길이 되지 않을까요?
점심을 먹기 위해 25분간 소요하고 긴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보니 황학산 정상
이다.(12;55)
황학산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
로 백두대간의 중추를 이루고 3번 국도인 이화령 남쪽 6Km 거리에 솟아 있다. 바
로 옆에 규모가 큰 백화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호젓한 산길과 억새
밭, 참나무 숲길은 비할데 없이 아름답다. 황학산에서는 남쪽방향으로 조망이 트
여있고 바로 앞에 백화산 정상이 가까이 올려다 보인다.
황학산 정상에서 능선은 갈라져서 백두대간길은 우측(남쪽)으로 휘어진다.
황학산 정상을 내려와 백화산 가는 길에 뒤돌아본 황학산의 모습이다. 산행로 좌
측 나뭇가지 사이로 문경시 문경읍이 내려다 보이고, 좌측 뒤를 올려다 보면 황학산
동쪽 기슭 위로 주흘산, 영봉, 주봉, 관봉이 또렷하게 조망된다.
잡목숲 사이로 방금 내려온 황학산 정상을 흘끔 올려다보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 오
르면 산행로 좌측에 낡은 이정판이 서있는 904m봉에 당도한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헬기장이다.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주흘산, 영봉, 주봉, 관봉이 조망되며 우측으로는
월악산 방향의 앞 산군들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904m봉(헬기장)을 내려오다, 숲이 워낙 습하다보니 살아있는 나무들에 이끼가 왕
성하다. 햇살 받아 반짝이는 녹색이 얼마나 예쁘던지.....
이끼 사이사이로 버섯종균들이 자라고 있다.
헬기장에서 잡목숲을 헤치고 어렵게 진행하면 잡목숲을 지나 짧게 오르고 난
후 바위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바위전망대(993m)에서 조망된 앞으로 가야할 능선, 백화산~1012m봉~ 981m봉
~곰틀봉~이만봉~희양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길, 그리고 괴산군 연풍면 분지
리, 분지저수지 등이 조망됨
또한 전망바위에서는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전진하는 형상"을
하고 있는 희양산을 바라보며, 우측 동네에는 사다리골, 이만이골이 있고 분지골
에는 분지저수지가 위치해 있다.(사진;산샤2님)
봉암사를 창건한 신라 헌강왕 때의 고승 지증국사가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
쳐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하다"고 감탄한 희양산(998m)을
바라보며..
전망바위에서 내려오는 길..
멋진 풍광에 젖어 잠시 기분은 좋았는데, 내리는 길이 장난이 아니로구나??
"누구 없소? 도와주시오~~!"
"어, 알았어!"
"그런데 왜 아무도 안오시는거야?"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 흘끔 뒤돌아보니, 아 글쎄 상야님께서는 특종 잡았다고
좋아라 하시며 사진을 찍고 계셨다? 박꽃향기 보다는 사진이 급하셨던 듯.....ㅋㅋ
용기를 내어 줄에 매달리기는 하였는데, 몇년전 주작산 바위직벽을 내려오다 5m
높이에서 떨어졌던 기억이 이 순간 왜 떠올랐는지....?
바위전망대 밑을 우회하여
요렇게 바위 틈 사이로 올라
좌측 문경쪽 풍광을 건너다 보고..
백화산을 오르다 말고,
"이것이 무엇이더냐?"
"아니 일엽초가 아니옵니까?"
"그래 맞다. 일엽초 속에서도 '산일엽초'에 속하느니라."
"그렇다면 일엽초가 이것 말고 또 있사옵니까?"
"자세한 내용은 다음 칸에 있느니라."ㅎㅎ..
[一葉草, Lepisorus thunbergianus]
고사리과(─科 Polypodiaceae)에 속하는 상록 다년생초.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며 자라고,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잎이 나오는데, 잎은 길
이가 10~30㎝, 너비가 0.5~1㎝ 정도이다. 잎가장자리는 밋밋하고 잎끝은 뾰족하다.
약간 타원형인 포자낭은 잎 뒷면에 2줄로 나란히 달리며, 포막(苞膜)은 없다. 남쪽
지방의 축축하고 그늘진 바위나 오래된 나무 표면에 붙어 자란다. 식물전체를 말려
한방에서 이뇨제나 지혈제로 쓰며 임질 치료에 사용하기도 한다. 식물 전체가 1장의
잎으로 이루어진 고사리 무리를 흔히 일엽초 또는 일엽이라 한다. 일엽초속(一葉草
屬 Lepisorus)의 산일엽초(L. ussuriensis), 다시마일엽초(L. annuifrons), 애기일
엽초(L. onoei), 고사리잎 전체에 황갈색 털이 밀생하는 우단일엽(Pyrrosia lineari-
-folia), 제주도의 그늘진 바위 틈에서 자라는 밤일엽(Neocheiropteris ensata), 잎의
길이가 50㎝에 달하지만 너비는 1㎝도 안 되는 일엽아재비(Vittaria flexuosa), 한라
산 계곡의 바위나 큰 나무 표면에 자라는 버들일엽속(Loxogramme)의 숟갈일엽(L.
saziran), 버들일엽(L. salicifolia), 주걱일엽(L. grammitoides) 등을 모두 일엽초라
일컫기도 한다. - 다음 백과사전 -
우리가 만난 일엽초는 산일엽초이다. 사철 푸른 잎을 가진 여러해살이풀로서 반음
지의 습도가 높은 바위나 고목에 붙어 자생하며, 항상 이끼와 공생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효능은 위암과 자궁암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성질은 평하고 맛은 쓰고
달며 독이 없다. 간경.신경에 작용하여 열을 내리고 독을 풀며 혈행을 좋게하고 염증
을 삭이며 오줌을 잘 나오게 하고 출혈을 멎게하는 등의 효과가 있다. 요도염이나 신
장염, 방광결석, 신장결석, 부종, 임질, 대장염, 이질등에 쓴다. 위암, 유방암, 자궁암
등에 하루 10∼15그램을 달여 세번에 나누어 먹으면 효과가 있다.
[山-一葉草]
고란초과의 여러해살이풀. 뿌리줄기는 옆으로 뻗고 수염뿌리가 있다. 길고 좁은 잎
이 드문드문 나며 위쪽에 두 줄의 누르스름한 홀씨주머니가 줄지어 있다. 깊은 산의
바위나 나무에 붙어사는데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대간길엔 아는 것이 병인지라, 모르면 그냥 지나질 터인데
안면이 있다보니 자꾸 눈에 밟혀 보고도 못본척 지나칠 수가 없어.....?
"에라 모르겠다. 이젠 눈 딱 감고 백화산이나 올라보자!"
그러나 3분도 채 안되어서..
"그런데 저것은 또 무엇이옵니까?"
"정말 못말리는 친구로구만. 눈감고 오르기로 해놓고서리 이번엔 또 뭐꼬?"
"은비님 붙잡고 섰는 저 나무 기둥에 노란 것 말이옵니다."
"그게 뭐꼬? 나는 몰러, 그냥 가면 안되겠노?"
"죽은 황철나무에서 발견된다는 황철상황인 것 같은뎁쇼. 귀물이옵니다. 항암에
도움이 된다는....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도 없는데 어찌해야 합니까?"
"사진도 없으니께니 그냥 가고 다음에 소개하면 안될꺼나?"
"알겠습니다. 산신령님 명령이시니 그리하겠습니다."
"아무튼 못말리는 친구로구만.."ㅎㅎ.....
그리하여 황철상황버섯은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 다음 기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부지런히 오르는 줄 알았더니만,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문경쪽 풍광을 곁눈질
하여 보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고속국도 제45호선)와 신국도3호선도로가 흰 줄을
그으며 쌩하고 지나고 있다.
13;52, 백화산 오르는 길에 이정표(흰듸뫼,마원리/옥녀봉/백화산 정상)가 세워져 있
다. 세워진지 오래된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 벗겨낸 것인지 글씨는 모두 벗겨지고 ㅎ자
하나만 덩그마니 남아있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이 구간의 이정표를 군부대에서 세운 듯
보인다. 거리표시도 없고 철판으로 방향표시만 되어 있는 걸 보면....
흑장미님 건네주는 사과 반쪽씩 입에 베어물고 오르다보니 2분만에 헬기장에 도착하
게 되고,(13;55)
이내 백화산 정상(1,063.5m)이다.(13;55)
백화산은 이화령에서 잠시 숨을 죽인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향해 치달리기 전에 솟구
친 산이다. 백두대간이 문경쪽으로 한참 밀고 들어갔다가 빠지는 말굽새 모양을 하고
있고, 백화산은 그 정점에 위치해 있어 흔히들 봉황이 나는 형국에 비교하곤 한다. 특
히 문경쪽으로 바라보는 정상부는 암릉으로 되어있어 부리 구실을 하고, 정상은 새가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보듯이 천지간 산과 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조망의 명당처
이다.
우측에 봉암사를 두고 뒤로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새이다. "겨울
철 눈 덮인 산봉우리 모습이 마치 하얀천을 덮어씌운 듯하다"하여 백화산이라 이름 붙
여졌다고 하며, 괴산군 내에서는 최고봉을 자랑하고 있는 산이다.
또한 백화산에는 이조 정조때 부터 박해 받았던 천주교인들의 은신처였으며 호랑이
가 살았다고 한다. 백화산 오르기 조금 못미쳐 옥녀봉(638m) 갈림길이 있다. 옥녀봉
아래에는 백화산을 딴 화산마을이 있는데, 백화산이 있는 곳을 문경시 마성면 화산리
라고 불렀으나 화(火)자 때문에 불이 자주난다 하여 화산리를 남호리(南湖里)라 개명
하고 호자도 호수호(湖)로 썼다 한다. (사진은 북동쪽 방향의 조망이다.)
백화산에서의 동남쪽 방향은 조망이 가능하나 북쪽의 방향은 잡목숲에 가려 여름철
엔 조망이 어렵다. 문경읍, 952m봉과 옥녀봉 능선, 성주산, 질마재, 능곡산, 마성면 상
내2리 한실마을이 조망된다.(사진은 동쪽방향의 조망이다.)
정상에는 문경시 대구과학대학에서 세워놓은 '백화산 기준점명'에 관한 글이 안내판
에 씌여있고, 옛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에서 세워놓은 지적삼각점(문경21)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사진은 동남쪽 방향의 조망이다.)
白華山 정상을 뒤로하고 능선은 잠시 아래로 숙이는 듯 하다가 다시 머리를 약간
들어올렸다 바위지대를 만들며 급하게 떨어진다.
백화산에서 잔돌이 깔려있어 미끄러운 내리막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다 보면, 산
행로 좌측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전망대를 지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뇌정산과 문경
마성면 상내2리 한실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가야할 능선과 봉우리(1,012m봉, 981m봉,
뇌정산 991m봉), 곰틀봉(960m)~이만봉(990m)~희양산(998m)으로 연결되는 백두대
간길이 펼쳐져 있다.(14;05)<사진; 산샤2님>
바위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지나온 능선과 조봉. 갈미봉. 862m봉. 황학산. 904m봉.
백화산이 보이고, 그 뒤로 조령산. 부봉. 주흘산. 영봉. 주봉. 관봉이 조망된다. 그리
고 멀리 충주시, 제천시와 경상북도 문경시에 걸쳐있는 월악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능곡산. 마성면 상내2리 한실마을, 한실마을에서 뇌정산쪽으로 올라오
는 길, 뇌정산 그리고 1,012m봉과 981m봉에 이어 가야할 능선이 조망된다.
바위전망대에서 이어지는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렸다가
7분정도 급하게 오르막을 치고오르면 1,012m봉이다. 백화산에서 20분 걸렸다.
(14;20)
1,012m봉에서 뒤돌아본 백화산의 모습이다.
1,012m봉에서 내려와 13분만에 첫번째 봉우리에 오르니, 누군가 날 위해 녹색의
융단을 깔아놓고 잠시 쉬웠다 가라 하신다. "감사합니다 산신령님, 이왕 긴 자리
펴고 누웠으니 시나 한 수 떠올리고 갈랍니다."^^(14;33)
당신 눈망울에 머문 푸른 빛이 그리웠다
가슴에 담기조차 어눌한
햇살같은 말 한마디 그리울 때가 있었다.
시린 당신 등줄기 밟고 지나던 날은
남들 이밥에 화관 쓰고
잦은 발걸음 북적이던 세월에도
높은 곳 우러르는 당신은
잔뜩 움츠려도 부족할 여력이더만
잔기침으로 굽어지는 허리 쭉 펴
당신 품에 안기는 이들마다
9부능선 심장 뛰는 소리 잠재우게 해주더니
이제야 겨우
늦잠에서 풀려난듯
당신 눈망울엔 푸른 빛 역력하구려.
잎진 당신 곁을 스치며
푸른 잎 자랑하던 모습 그리웠는데
막상
그늘진 당신 무릎 베고 누우니
아예 긴 자리 펴고 나 그 곁에
깊은 사랑하여 들고 싶으이다.
듬뿍 안겨드는 넉넉한 태양의 열기에도
깊게 패인 당신 주름에 깃들이는 그늘은
오로지 내가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해
애쓰고 그리워해야 할
피하지 못할 운명인가 보오.
내가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해야 할
이유인가 보오.
(10.09,04)
(* 시작노트 ; 2009년 4월의 그날을 떠올려 보았다. 산아래 동네에서는 꽃잔치
로 한창 북적이던 때, 이화령에서 조금 올라와 백두대간 능선엔 찬바람이 휭 하
였었다. 금방 파놓은 듯한 웅덩이엔 알 수 없는 의문점만 남기웠고, 능선길엔 아
직도 겨울잠에서 풀려나지 못한 무채색의 세계, 앙상한 나뭇가지들엔 새움 틀 기
미조차 보이질 않았으니까.
오늘 난 보았다. 앙상한 뿌리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웅덩이에 물이 가득 고일
날이 있고, 그것이 눈망울을 반짝이며 그 안에 푸른 빛을 담고 있는 모습을....
왜 그렇게 삭막하던 이 능선에 다시 서보고 싶었을까? 이제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이곳에 다시 와 배우고 간다. 백두대
간 능선에 습지가 생기고 온갖 생명체들이 찰랑이는 그 물을 마시고, 주위를 맴돌
며 노래하고 쉬어갈 수 있을 날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 남은 건 그 길에 향기만 더하면 될 일이다. 이 길을 찾는 백두대간 종주자들
이 이 연못에 꿈을 심고, 예전보다도 더 산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리고
아름다운 삶을 위해 맑고 푸른 향기 이 곳에 가득 퍼뜨려주길 바란다. 작은 눈망울
에 푸른 빛 가득하고 이화현에 또다시 산매화 향기 가득하길 간절히 바래보면서..)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렇게 비단같은 풀밭 위에 잠시 뒹굴어보니 앞으로 걸어
가야 할 길이 천리길 같아 보이면서 꽤가 나기 시작을 한다. 그 간에 걸어오며 뿌려
놓은 시상들도 주섬주섬 주워모았으니, 이젠 자리 박차고 일어나 또 다시 기운내어
걸어봐야겠다.
1,012m봉 지나 첫번째 봉우리를 내려오며 좌측 아래로 펼쳐지는 삼밭골을 조망하며
앞으로 갈 능선쪽을 바라보니, 능선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뇌정산 줄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뇌정산갈림길인 981m봉이 가까와진 듯..
그로부터 잠시 후 두번째 봉우리에 올랐다. 그 봉우리에서 내리는 길은 바위능선으
로 이어진다.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바위봉을 어찌할까 망설이다 지난번 이곳을 우회
하였던 생각이 나서 이번엔 바위능선길을 택하였다.
땀 흘린 댓가는 늘 받기 마련이다. 백화산으로부터 금방 지나온 능선과 앞으로 내려
야할 길을 한번 더 바라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으니....(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흰두뫼마을이 한눈에...)
바위능선 위에서 멀리 백화산과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며..
바위능선 위에서 이어지는 암릉지대를 6분정도 오르니 평전치이다. 평전치의 옛
이름은 '평밭등'이라 하며 원래 연풍면 분지리와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를 이어주던
고개이다. 지금은 폐도가 되어있고 등산로로만 쓰인다고 한다. 남쪽에 있는 문경시
마성면 상내리의 한실마을은 백화산 주위에 선교를 하던 천주교의 성지로서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첩첩산중의 은신처로서 교인들이 피신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정표, 분지안말 60분/ 백화산50분/ 이만봉 희양산..(14;48)
사다리재로 향하는 길이 그리 만만하지 만은 않았다. 981m봉인가 하고 넘어보면
아니고, 또 다시 넘고 넘기를 평전치에서도 몇번이나 좌측으로 뇌정산 봉우리가
잡목숲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숨었다 하며 숨바꼭질을 하고서야 겨우 981m봉에 닿
았다. 박잎푸른님이 반복하여 대간길을 들락이시더니 이곳 산줄기를 훤히 꿰어차고
계신다. 박잎푸른님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 뇌정산 가는 길이 매직으로
안내되어 있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대간종주
자들이 남기고간 시그널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을 뿐.....
뇌정산갈림길(981m봉)에서 우측은 가야할 사다리재로 내리는 길이며, 좌측은 경북
문경 가은읍의 명산 희양산과 마주하고 있는 뇌정산(991m)이다. 뇌정산 역시 희양산
과 마찬가지로 산 아래 봉암사에서 출입을 경계하기 때문에 사람들 발길이 닿지않아
팻말이나 산길이 희미하기로 이름이 나있다.(15;11)
15;23, 마지막 봉우리를 넘으며..백화산을 중심으로 지나온 능선과 주흘산방향이
조망된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사다리재로 내리는 길은 너덜길인데다 가파르기도 하여서 생
각보다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18분정도 걸려서 사다리재에 도착하였다.(15;50)
사다리재는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분지리 사람들이 오가던
고개로, 사다리재란 이름의 연원은 잘 알 수 없다. 일대가 고사리밭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고사리밭등은 분지리 사람들이 이곳에 고사리가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미전치라 한다. 이 고개는 주로 이만봉쪽의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문경 가은쪽은 발길이 뜸하여 옛길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림으로
되돌아 간 상태이다.
사다리재에서 무릎보호대를 착용하고 잠시 쉬어서, 급경사를 내리고 너덜길을 내
려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내리막을 빠져나와
분지리에 도착한 시간이 17;00이다.
안말에서 산악회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오며 만난 제피나무이다. 사람들이 흔히 산초
나무와 제피나무를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기에 이곳에 그 차이점을 간단하
게 올려보기로 한다.
봄철 흔히들 산초나무의 어린잎을 채취하여 장아찌도 박고 김치에도 넣으며 추어탕
에 넣어 먹는다고 하는데, 이럴 때는 산초보다 제피(초피)를 많이 이용한다. 제피(경
상도)는 젠피(전라도), 조피(이북), 지피, 남추, 진초등으로 불리우며, 가시가 마주 달
리는 대생이다. 열매는 줄기의 중간에도 달리고 끝부분에도 달리며 땅을 향해 열린다.
건위, 온중, 제습, 정장, 해어, 제독, 구충, 진통, 마취 등에 효과가 있다.
(좌 ; 제피나무, 우 ; 산초나무)
산초는 주로 약용으로 쓰이며 잎은 떨떠름하다. 그러나 박꽃향기는 산초열매가 완전
히 여물기 전 여린 것을 채취하여 살짝 뜨거운 물에 데쳐 고춧잎 말린 것과 같이 간장
장아찌를 만들어 즐기기도 하고, 산초잎이나 풋열매를 튀김으로 애용하기도 한다. 산
초잎이나 산초열매는 사찰음식에서도 많이 애용된다.
산초나무는 가시가 어긋나며(호생), 작은잎에 잔톱니가 있고 투명한 유점이 있는 것
이 특징이다. 개화기는 늦여름과 가을사이에, 열매는 줄기의 끝에만 달리며 하늘을 향
한다. 기름을 짜서 위장병이나 기관지 천식에 복용하기도 하고 외부 종기(淙腫)의 치
료제로도 이용된다.
봉우리 하나 넘을 때마다 숨가쁘고 힘에 겨웠던 생각과, 구간구간 정보를 얻어내고
확인 하여 산행기 한편 완성할 때까지, 나는 왜 남들보다 몇배의 시간을 허비하여 가
며 긴 시간을 대간길에 쏟아붓고 있는가? 산행 당일날의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라
는 생각을 이 순간 해본다. 앉아서 머리 굴려 하는 글산행이 뭐 그리 힘들까 마는, 이
왕 써내는 글이니 좀 더 꼼꼼하고 정확하게 기록하여 이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끈질긴 추적 끝에 겨우 산행일기 한
편을 완성한다.
(10.09,04)
첫댓글 다시 산행할수 있을날이 언제가 될지... 건강하게 보여 좋습니다. 중년의 건강은 정신적인것도 있지만 육체적 건강도 필수!. 둘다 겸비하신 시인님! 정녕 아름다운 꽃 입니다.
고운 한 주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