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롤라베 (Astrolabe)

이 기계의 오랜 형은 고대 그리스시대에 만들어졌는데 눈금을 매긴 금속고리와 조준기가 달린 지방규(指方規:방위를 가리키는 자)로 되어 있었다. 금세기에 들어와 개량된 것은 수은반(水銀盤)에 의하여 반사시킨 별빛과 천체로부터의 직접광을 60 °의 프리즘을 통하여 망원경에 받아들여 양쪽 별의 상(像)을 합치시키는 원리로 되어 있어 관측의 정밀도가 대단히 높다. 취급이 간편하고 정밀관측을 필요로 하는 목적을 위하여 특히 정밀하게 만들어진 것도 있다.
바빌로니아력 (Babylonian calendar)

바빌로나아 인들이 생각한 우주
바빌로니아에서 기원전 3000년 후반부터 사용한 태음태양력이다. 평년 12개월, 윤년 13개월로 하였는데, 8년 3윤법에서 27년 10윤법으로 바뀌었다가 기원전 383년부터 19년 7윤법이 되었다. 그 후, 헤브루력으로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태음태양력을 채택하였으며, 이집트 ·중국과 더불어 인류문화의 개조(開祖)라 불리는 바빌로니아에서 기원전 3000년 후반부터 사용되었다. 연(年)은 춘분경의 신월(新月)을 기점으로 하는 1월(니산누:Nisannu)에 시작되며, 평년(平年)을 12개월, 윤년(閏年)을 13개월로 하였다. 윤년의 경우에는 보통 12월(아다루:Addaru)을 두 번 겹치게 하는데, 뒤의 12월을 제2의 아다루라고 불렀다. 그러나 때로는 6월(울룰루:Ululu)을 두 번 겹치게 하거나 다른 달을 겹치게 하는 등, 그 치윤법(置閏法)이 일정하지 않았다.
기원전 529년부터 8년 3윤법이 채택되었다가, 기원전 504년 이후에는 27년 10윤법이 되었고, 기원전 383년부터 19년 7윤법이 되었다. 이 마지막 역법은 헤브루(유대)력에 전승되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 밖에도 바빌로니아인이 고안한 황도 12궁과 여러 별자리가 오늘날의 천문학에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일월행성(日月行星) 숭배에서 발단된 7일주(七日週)나 시간의 12진법 ·60진법 등이 현대에도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새겨진 바빌로니아 달력(BC500)
유대력 (Jewish cal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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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력 |
민간력 |
양력 |
바벨론식 명칭 |
가나안식 명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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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월
제2월
제3월
제4월
제5월
제6월
제7월
제8월
제9월
제10월
제11월
제12월 |
제7월
제8월
제9월
제10월
제11월
제12월
제1월
제2월
제3월
제4월
제5월
제6월 |
3∼4월
4∼5월
5∼6월
6∼7월
7∼8월
8∼9월
9∼10월
10∼11월
11∼12월
12∼1월
1∼2월
2∼3월 |
니 산 월
이야르월
시 완 월
담무스월
압 월
엘 룰 월
티쉬리월
헤스완월
기술르월
데 벳 월
스 밧 월
아 달 월 |
아 빕 월
시 브 월
에다님월
불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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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력과 양력을 비교하는 도표
유대민족 사용하는 역(曆)이다. 순태음력, 약간 변형한 이집트력, 태음태양력을 차례로 사용하다가, 4세기경 성립된 것을 현대에도 사용하고 있다. 19년간 7윤월을 두고, 날의 시작은 저녁에 3개의 별이 보일 때이고, 해의 시작은 춘분 후의 월초이다. 1년은 353,354,355일 3종류이다.
처음에는 순태음력(純太陰曆), 이집트 유랑시대에는 그 지방의 순태양력(純太陽曆), 이집트 탈출 후는 모세가 이집트력을 조금 변경한 것, 바빌로니아 유폐시대에는 태음태양력을 사용하였다. 현대에도 아직 민족간에 쓰이고 있는 유대력은 최후의 형식을 계승한 것으로, 4세기경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 19년간에 7윤월(閏月)을 두는 역법인데, 날의 시작은 저녁에 3개의 별이 보이기 시작할 때, 해의 시작은 추분(秋分) 후의 월초로 한다.
1, 5, 7, 9, 11월은 30일(큰 달), 4, 6, 8, 10, 12월은 29일(작은 달)이고, 2, 3월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므로, 1년은 353일, 354일, 355일의 3종류가 되고, 윤년은 이것에 큰 달이 더해진다. 3종류 중 어느 것이 되느냐 하는 것은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과월절(過越節:Passover)의 첫째날, 8월 15일이 월·수·금요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복잡한 법칙에 의해 정해진다.
그리스력 (Greek calendar)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시마다 독특한 역이 있었고, 시대마다 다른 역이 쓰였는데 모두 태음태양력이었다. 치윤법도 8년 3윤법, 또는 19년 7윤법 등 구구하였다. BC 460년에 천문학자 오이노피데스는 730태음월과 59태양년이 같다고 둠으로써 1년을 365.373일로 두었으나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BC 400년경에 채용된 19년 7윤법은 1태양년으로 365.2632일, 1삭망월로 29.53192일이었다. 윤달의 위치는 6월 다음이 되고, 월초는 초승달이 처음으로 나타난 날로 하였다. 그리스에서는 19년법 이외에 8년법도 쓰였다. 8년법은 8력년을 99력월로 하고, 그 동안의 일수를 2922일로 정하여 1년을 365.2500일, 1력월을 29.51515일로 하는 방법이었다. 이미 말한 19년법도 실제와 상당히 다르다고 하여 76년법이 대두된 일이 있었다. 76년법은 76태양년에 28윤월을 두는 방법인데 BC 334년경에 칼리푸스에 의해 고안되었다. 그 총일수를 27759(=6,940×4-1)일로 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1력년과 1력월은 각각 365.2500일이고 29.53085이다.
이 역은 BC 330년부터 천문학자 간에서 실시되었다고 한다. 그 후 BC 125년경 히파르코스에 의하여 304년법이 고안되었다. 이것은 76년(=19×4)의 일수를 111035(=27759×4-1)일로 하였는데, 이것에 의하면 1력년은 365.24671일, 1력월은 29.530585일로 되어, 실지에 많이 접근된 값을 얻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실용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인도력
BC 6세기경까지는 역일제도가 구구하였는데 27일의 항성월(恒星月) 12월(324일)을 1년으로 하는 평년과 13월(351일)을 1년으로 하는 윤년이 쓰이기도 하였고, 30일의 큰 달 6개, 29일의 작은달 6개를 합쳐서 12삭망월(354일)의 1년을 쓰기도 하였고, 30일씩 12월을 1년으로 쓰기도 하였다. BC 6세기∼AD 2세기의 기간에는 1성수년(星宿年:12恒星月) 32751/67일, 1태음년 35412/62일, 1세간년 360일, 1태양년 366일로 보았으므로 5태양년=60태양월=61세간월=62삭망월 =67성수월 의 관계가 있다.
이 일수는 모두 1830일이다. 인도력의 성격은 3∼12세기 동안에 8세기 상반기인 당(唐) 현종(玄宗)때에 구담실달(瞿曇悉達)에 의하여 중국문자로 번역된 구집력(九執曆)에 의하여 대략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서 구집(九執)이란 일월과 오성 및 두 은성(隱星)을 가리켜 말하는데, 두 은성은 라후(raku:羅喉)와 케도(ketu:計都)이다. 라후와 케도는 중국식 역에서는 없는 말이고, 범어(梵語)에서 온 말인데 황도(黃道) ·백도(白道)의 승교점(昇交點)과 강교점(降交點)을 가리킨다. 구집력에서는 657년 2월 춘분삭을 역원으로 하고, 이 해 춘분을 세수(歲首)로 하였다.
여기에서 상원부터의 적월(積月) M은 적년을 y, 연초 이후 경과한 월수를 m이라고 하면 M = 12 y + m + [( 12 y + m )× 7/228] 로 주어진다. 분수7/228 은 228개월의 삭망월(윤달이 아닌 것)마다 7개월의 윤달을 넣어야 한다는 뜻인데, 이 식의 이면에는 19년 7윤법이 뒷받침하고 있다. 인도의 고대 역법은 인도 천문학에서 나온 것인데, 그 중의 하나인 구집력이 중국에 들어와서 대단히 미약하기는 하였지만, 중국에 인도문화가 전해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위식에서 [ ]는 228로 나눴을 때, 몫의 정수(整數)만을 취한다는 뜻인데 이 몫은 역원부터 필요한 날까지에 끼워넣어야 할 윤달의 수이다. 구집력의 우월한 점은 오늘날의 구면천문학(球面天文學)과 일맥 상통하고, 또 매우 이론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주목할 것은 인도숫자의 소개와 사인표의 기재이다. 그러나 당대의 여러 역을 살펴볼 때 구집력에 의하여 받은 영향은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구집력은 단순히 인도역가(印度曆家)의 독점물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대의 학자는 과거의 관념에 집착하고 구태여 새로운 방법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주전원(周轉圓)의 이론이 이미 인도에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이후 1000년이나 지난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 서양과학이 들어와 비로소 주전원의 이론을 알게 되고, 삼각함수(三角函數)의 이론에 놀랐다고 한다.
마야력 (Mayan calendar)

현대 과학으로도 예측하기 힘든 태양계의 운행을 정확히 계산한 마야의 일력
이 역법은 365일의 상용년(haab)과 동시에 진행하는 260개의 명칭이 붙은 날로 구성된 제례주기(祭禮週期 tzolkin)를 바탕으로 했다. 마야인들은 제례주기를 20일씩 13주기로 나누고, 상용년은 20일씩 18개월(uinals)로 나눈 다음 나머지 5일을 '이름이 없는' 날로 하여 1개월을 구성했다. 이름이 없는 날은 매우 불길한 날로 간주되었으며, 마야인들은 이날이 되면 금식을 하고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행했다(→ 촐킨).
각각의 평일의 이름은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260일 주기에 따른 매일마다의 명칭과 그 숫자, 그리고 상용년의 해당 달에 따른 그 달의 명칭과 숫자로 표시된다. 260일 주기와 365일 주기는 52년을 주기로 하여 그 시작과 끝이 일치한다. 근대 학자들은 반세기가 넘는 이 주기를 '역의 순환'(Calendar Round)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이루는 1만 8,980일은 달과 날의 명칭과 숫자의 조합이 각기 달랐다(예를 들면 12 Caban 15 Ceh). 마야인들은 각 통치자들의 집권기에 있었던 중요 사건이나 날짜 및 대표적인 인물들을 새긴 돌기둥을 세웠는데, 해당 날짜를 정확히 표기하기 위해 이들의 특정의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날짜를 계산해나가는 이른바 '장기계산법'(Long Count)을 시행했다. 마야인들은 그 기준이 되는 시점인 4아하우 8쿰쿠(4 Ahau 8 Cumku:BC 3113)를 마야 시대의 시발점으로 간주했다.
이집트력 (Egyptian calendar)

이집트인들이 생각한 우주의 구성
고대문명의 발상지였던 이집트에서는 매년 같은 시기에 일어나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래서 그 시기를 미리 알기 위해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기록하고 분석하는 일이 행해져, 과학으로서의 천문학이 싹텄다고 한다.
역은 나일강의 범람을 예상하여 파종시기·수확시기를 알기 위해 필요 불가결한 것이었다. 이집트력은 순태양력(純太陽曆)인데, BC 4200년 이전에 이미 1년을 12개월, 1월은 전부 30일, 따로 월에 속하지 않는 부가일(附加日) 5일을 연말에 두어, 합계 365일로 하였다. 한편, 태양의 운동을 관측하여 항성에 대한 1주주기(恒星年:오늘날의 측정값은 365.2563일), 지구에 대한 1주주기(太陽年:오늘날의 측정값은 365.242198일)의 구별을 알았다.
그러나 역만은 완강히 365일을 고집했다. 그래서 이 역은 계절과는 점점 어긋나서 대체로 1508년에 한 바퀴 돈다. 그들은 역을 고치지는 않고, 파종·수확·축제일 등의 행사를 달력의 날짜 위에 알맞게 적어 넣었다. BC 8년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4년에 1일의 윤일을 두는 법이 제정된 후, 이집트력도 그에 따라 4년마다 부가일을 6일로 하였다. 이 역은 현재에도 이집트·에티오피아 등 각 나라의 민간에서 쓰인다.
로마력 (Roman calendar)

대리석에 새겨진 고대 로마달력[태음태양력]
고대 로마력은 초기에는 1년을 10개월의 304일로 하고, 한겨울에는 역일(曆日)이 없는 기간을 두는 것이었으나, BC 700년경 누마왕에 의해 1년을 12개월의 365일로 하는 태음력(太陰曆)이 확립되었다. BC 300년경부터는 격년마다 2월의 23일과 24일 사이에 22~23일간의 윤달을 엇갈려 삽입하게 되었다. 즉 1년을 355일, 377일, 355일, 378일로 되풀이하는 식이다. 이 역은 BC 45년의 율리우스력으로의 개력(改曆) 때까지 계속되었다

로마 역법의 구성
율리우스력 (Julian calendar)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인 소시게네스의 조언에 따라 카이사르는 태음력이 아닌 새로운 태양력을 만들어 1태양년의 길이를 365.25일로 했다. 1년은 2월을 제외하고 모두 30일이나 31일씩 12개월로 나누었다. 2월은 평년(365일)에는 28일, 4년(366일의 윤년)마다 29일이었다(→ 로마). 이 달력은 의견의 불일치로 인해 8세기까지 순조롭게 운영되지 않았다. 소시게네스가 1년의 길이를 11분 14초 길게 계산했기 때문에 15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 이 오차가 축적되어 카이사르 시대에 비해 약 10일 정도 차이가 났다.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개정력(→ 그레고리력)을 선포하고, 10일을 조절하여 325년까지 복원시켰다. 1582년 이후 그레고리력이 사용되면서 율리우스력은 점차 사용되지 않았다.

율리우스력의 구성
그레고리력 (Gregorian calendar)
신력(新曆)이라고도 하며,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고쳐 시행을 선포한 것이다. 율리우스력으로 계산하면 1태양년은 365.25일이 된다. 이 달력은 4년마다 하루씩 '윤일'(閏日)을 넣어 달력과 계절이 일치하도록 했다. 측정할 때 생기는 약간의 오차로 인해(더 정확한 1태양년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임) 100년마다 하루씩 늦어진다.
이렇게 늦어지는 날짜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시대에 이르러 14일이나 되었으나, 교황은 그 당시에 3월 11일이었던 춘분을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 시대의 춘분날짜인 3월 21일로 개정했다. 이 개정으로 1582년 10월 4일을 기점으로 달력의 날짜가 열흘씩 앞당겨져 10월 4일 다음날은 10월 15일이 되었다.
그레고리력이 율리우스력과 다른 점은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年] 중에서도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가 아니면 윤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로 1600년, 2000년은 윤년이다. 또한 4,000으로 나누어지는 해는 윤년이 아니고 평년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어 2만 년 만에 하루 정도 오차가 생길 만큼 정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