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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96회>
<태조 왕건 96회>
씬 부감 황궁 외경(낮)
궁예 (E) 경들은 들으라!
신료들 (E) 예.......
씬 동 황궁 조당
조회가 열리고 있다. 문무신료들이 모두 참석했다. 유천궁, 종간, 은부, 최응, 아지태, 임춘길, 능달, 기전, 입전, 신방과 함께 왕건, 태평, 능산, 왕신, 복지겸, 박지윤 부자, 환선길, 이흔암, 강장자, 장자1,2 , 천부장 들이 보인다.
궁예 짐은 오늘 이 나라의 이름이 태봉이라는 것과 그 연호를 수덕만세라 하여 그 옛날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원 대륙을 평정하기 위하여 염원을 한 것처럼 나 또한 그리 하였노라. 지금 우리 태봉국은 삼한 중 가장 크고 넓은 땅이 되었도다. 이 모든 것은 하늘이 대 미륵인 짐과 함께 하고 있음이며 더불어 경들의 힘 또한 컸음을 말해주는 것이니라.
신료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삼한 통일은 누구나가 염원하는 시대의 소명이다. 위치적으로 보아 백제나 신라는 우리 아래에 놓여 있으며 결국은 우리의 땅이 될 것이다. 저들은 뻗어 나갈 곳이 없지만 우리는 갈 곳이 많아. 우리의 형제들이 세운 저 넓고 큰 발해, 그곳도 곧 태봉의 땅이 될 것이고 그 너머에 있는 옛 당나라 제국도 그리 될 것이다.
모두들 ........(면면이 지나친다)
궁예 그런데 그것을 의심하는 자들이 많아. 이 미륵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어. 제국의 봉토를 넓히자고 기치를 세운 지가 언제인데 도무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어. 저들의 사정을 알기 위해 첩자를 보내고 저들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모았지만 모두가 지지부진이야. 이것은 신료들이 단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야. 그래서 다시금 마음을 곧추 세우자고 오늘 여기들 모인 것이야. 알겠는가?
신료들 황공하옵니다, 폐하.
궁예는 외눈을 번쩍이며 신료들을 돌아본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서릿발같은 위엄이 서있다. 내군들이 철퇴를 들고 신료들 앞자리에 그렇게 위압적으로 서있다.
궁예 마음들을 다시 다 잡자는 것이야. 다시 말이야.
씬 황후전
연화가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다.
연화 조회가 열리고 있다고?
슬이 예, 황후마마.
연화 나라 이름도 바꾸고 조정의 인사들도 다 바꾼단 말이지?
슬이 그렇다고 하옵니다. 아마도 내봉성의 아학사 체제가 되었다 들었사옵니다.
연화 세상에.... 일이 드디어 그렇게 되어 가는 구나? 그렇다면 왕장군은 어찌되는 것이냐? 그 분은 시중이 된다는 소문이 있지 않았느냐?
슬이 소문은 그랬사오나 이번에는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옵니다. 조회가 끝나는 대로 다시 전선으로 가신다 들었사옵니다.
연화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구나. 이번만은 꼭 도움을 받고 싶었는데..... 또 어렵게 되는 모양이로구나.
씬 다시 조당
여전히 궁예가 신료들 하나하나를 돌아보며 말하고 있다. 조당은 숨 소리 하나 없다.
궁예 나는 분명히 말하였어. 이제 이 미륵에게서 자비는 없다고 말이야. 강한 나라를 위해서는 강한 주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짐은 알았어. 자비나 용서보다는 강한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단 말이야.
모두들 .........
궁예 이제 새로 시작하는 것이야. 내봉성령 아학사가 앞장을 서게 될 것이야. 자, 최응아.
최응 예, 폐하.
궁예 짐의 교지를 전하라.
최응 예, 폐하. (두루마리를 들고 앞으로 나선다) 폐하의 조칙을 전하겠사옵니다. 먼저 이 조정을 개편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앞으로 시중으로 불리울 전 광치나의 자리에는 장자 박질을 임명하노라.
장자1 폐하, 망극하옵니다.
아지태,강장자 ...........(각자 묘한 그들의 표정, 강장자는 불만)
최응 (계속) 마군 장군 왕건을 시중에 준하는 나주 대 도독 겸 해군대장군에 봉해 계속 나주를 주관토록 할 것이니라.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최응 (계속) 조정의 두 번째 서열로써는 신료들을 관장하는 내봉성이 그 자리를 담당케 될 것이며 아지태를 유임시키노라.
아지태 망극하옵니다, 폐하.
종간,왕건 ........(그 면면)
최응 (계속) 조정의 세 번째 서열로써 삼한 통일의 대업과 북벌을 함께 준비할 새롭고 강력한 군을 육성키 위하여 순군부를 두어 그 낭중에 임춘길을 봉하며 능달, 기전을 그곳 장군에 제수하노라.
임춘길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 표정이다. 환선길의 표정이 떨떠름하다.
최응 (계속) 병부령의 복지겸을 패하고 그 자리에 장자 김후원을 봉하노라.
장자2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복지겸 .........(담담하다)
최응 (계속) 법을 다루는 의형대령에 입전을 봉하고 그 경에 신방을 봉하노라. 환선길, 이흔암을 마군 장군에 복지겸, 홍유, 배현경, 김락을 역시 마군 장군에 봉하며 태평, 능산, 유금필, 박술희, 김언 들을 각각 장군과 현지 도독에 봉하노라.
최응이 계속 읽어 내려가고 있다. 그 어느 쯤에서 해설.
해설 태봉국의 일대 개혁, 궁예의 몸부림은 이곳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진다. 그는 장자 호족들이 모임인 광평성을 비록 제 일 서열에 두었지만 신료들의 벼슬을 담당하며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내봉성을 그 두 번째로 하여 황제가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병부를 격하시키고 순군부를 창설하여 서열 삼위에 둔 것은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최응이 읽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궁예가 다시 돌아보다가 말한다.
궁예 이제부터 군의 모든 것은 순군부가 그 주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순군부는 군의 이동상황을 내군에 먼저 보고토록 하라. 짐이 친히 알고자 함이니라.
임춘길 예, 폐하.
궁예 의형대는 들으라.
입전,신방 예, 폐하.
궁예 짐은 법을 강화한다고 하였다. 신료들이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눈가림하여 속이려 하는 자들이 있거든 엄히 법을 집행하라. 그래도 하지 못한다면 짐이 관심법으로써 다스리리라.
입전,신방 예, 폐하.
궁예 짐이 계속 독려하며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가차없이 관심법을 적용하여 누구든지 태만 하는 자 있거든 그 벌을 내릴 것이다. 신료들은 삼가 조심하고 경계하라. 짐의 이 충고를 주야로 잊지 말지어다.
신료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다시 한 번 이르노라. 내가 관심법을 쓰지 않도록 하라. 이것은 불행한 것이다. 부디 그 불행을 다하지 않도록.....(아프다)... 관심법은 곧 죽음인 것을..... 기억하라 이 말이다.
빠르고 격하게 말을 이어가는 궁예에게 다시 고통이 도진다. 종간이 보았다. 재빨리 내군들에게 고개를 끄떡인다. 금대와 장일들이 내군들과 함께 달려가 앞을 가로막는다. 종간이 나선다.
종간 조회가 끝이 났소이다. 모두들 돌아가시오. 조회가 끝이 났소이다. 내군들은 폐하를 뫼시어라.
은부 폐하를 뫼시어라.
이미 궁예는 내군들에 둘러 싸여 잘 보이지 않는다. 신료들이 당황하고 있다. 왕건은 다 알고 있다.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눈을 감는다. 그 표정에서.........
씬 황궁 회랑
내군들이 궁예를 호위해 가고 있다. 궁예는 연(황제가 타는 가마)을 타고 있다. 그는 고통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태연을 가장한다. 은부가 최응, 금대, 장일과 함께 호위해 가고 있다.
궁예 왜들 이리 서두르느냐? 천천히들 가거라. 서두르지 마라.
은부 서두르지 말랍신다. 천천히 가거라. 조심 조심 가거라.
궁예 허허, 이렇게 들 원.....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지나쳐 간다.
씬 황궁 어느 일각
환선길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흔암은 입을 다물고 유천궁, 박지윤 부자가 함께 해 있다.
환선길 아니, 이럴 수가 있소이까? 이름도 없이 묻혀 있던 장자들이 시중이 되고 순군부의 우두머리가 되요?
이흔암 어디 그 뿐이옵니까? 아지태가 이 나라에 세운 공이 뭐가 있사옵니까? 그 자가 이 나라 신료 중 서열 두 번째 벼슬이라고 합니다. 하, 이거야 나 원......
박지윤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올시다. 그나마 우리는 예전 벼슬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올시다.
두아들 ...........
이흔암 헌데, 이건 온통 어떻게 된 것이 아지태의 판이올시다. 안그렇습니까?
박수경 왕장군이 아무런 벼슬의 이동도 없이 그대로 전선으로 돌아간다 하옵니다. 그 또한 잘 이해가 안가옵니다.
박지윤 나도 그렇단다. 도무지 요즘에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정치가 어찌 돌아가는지.......
환선길 아무튼 이번 인사는 참으로 잘 못 된 것 같소이다. 이건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아요. 허, 이거 원...... 지금까지 이 나라를 위해 피 흘리며 싸웠는데...... 재주 부리는 놈 따로 있고, 벼슬 챙기는 놈 따로 있고, 허, 이거야 원......
그렇게 분개하는 환선길의 표정에서.........
씬 또 다른 길(저자 거리)
왕건과 태평, 능산, 왕신, 복지겸, 유천궁들이 오고 있다. 장수장과 수하들이 길을 인도하고 있다.
복지겸 그나저나 어르신께서 광치나 자리를 물러나시어 섭섭하시겠사옵니다?
유천궁 무슨 말씀을.... 복장군도 이제 내직에서 벗어나서 시원하게 되셨겠구먼.
복지겸 하하하, 그렇사옵니다. 다시 마군 장군을 제수 받았으니 곧 어느 전선이든 가라는 영을 받지 않겠사옵니까?
능산 복장군께서는 사실 그 병부령 자리를 답답해하지 않으셨소이까? 우리와 똑같은 마군장군으로 돌아오셨으니 오히려 감축할 일이올시다. 하하하....
복지겸 그러게 말이올시다. 하하하......
유천궁 그래, 곧 나주로 다시 간다고 하였는가?
왕건 예, 장인어른. 바로 떠나야할 것 같사옵니다.
유천궁 그래, 이렇게 혼란할 때는 외지에 나가 있는 것이 낫네 그려. 또한 그곳은 자네를 필요로 하는 곳이 아닌가? 잘 다녀오게나.
왕건 예, 장인어른.
유천궁 이제 한동안 아지태가 이 나라를 쥐고 흔들게 생겼네 그려. 볼만하겠구먼.. 그렇다고 내원은 가만있지 않을 것이고.... 한동안 시끄럽겠어.
태평 .......(미소)
씬 황궁 대전
궁예가 독주를 계속 들이키고 있다. 속이 좀 풀리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런 궁예를 종간이 보고 있다. 잠시 침묵이 오고 간다.
궁예 (잔을 놓으며) 취하지 않는 소주가 있었으면 좋겠소, 내원.
종간 ..........
궁예 이 정신을 흐리게 하지 않는 소주 말이야..... 안 그렇소이까, 내원?
종간 (웃음) 허허허, 그렇다면 곡차의 의미가 없지를 않사옵니까?
궁예 이것만 마시면 답답한 것들이 없어져. 긴장도 풀어지고..... 허지만 혼백을 뺏기는 것이 문제란 말이야...... 그게
문제야.......
종간 (눈치 보다가) 이번 인사는 온통 청주인들이었사옵니다. 신료들이..... 아마도 궁금해하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사옵니다.
궁예 누가 불만을 해? 누가....?
종간 ....... 폐하, 아지태라는 자를 그토록 신임하시옵니까?
궁예 신임.......?
종간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토록 편중된 인사를 내리실 수가 있사옵니까? 신은 걱정이 되어 말씀을 올리는 것이옵니다.
궁예 (잠시 생각) 걱정할 것 없소이다. 내게는 사형이 있지 않소이까?
종간 예......(감동)? 신이 말씀이옵니까?
궁예 (끄떡인다) 왕건아우가 있고 사형이 있소이다. 두 사람이 버티는데 무엇이 두렵소이까? 나도 압니다. 알아요.
종간 예.....?
궁예 아지태에게 아주 듬뿍 퍼주었소이다. 다 주었어요. 원하는 대로 말이오. 아니 그보다 더 주었지. 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소이까?
종간 ...........?
궁예 더 이상 줄 것이 없게 되면 어찌 되냐고 물었소이다. (사이) 처음 저 자가 대 동방국과 북벌을 내게 알려주었소이다. 그래서 지금껏 추진을 했고..... 헌데 내가 조회에서 말했듯이 아무것도 된 것이 없소이다. 그래서 더욱 강하게 해보라고 저 자를 위로 올렸소이다.
종간 하오면.....
궁예 하하하하, (더욱 크게 웃다가 정색한다) 사형, 이제 아학사에게 무엇이 남았겠소이까? 달라는 걸 다 주었어. 그런데도 북벌이나 삼한 통일 대업 준비가 제대로 안된다면 무엇이 남느냐 이 말이오. 그건 아지태만이 압니다. 그 자는 영리한 사람이예요.
종간 그렇사옵니까? 신은 아직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사옵니다.
궁예 곧 알게 될 것이오. 이런 원..... 여기 최응이가 알 수 있는 일을 사형이 모르고 있다니 그거 참 답답한 일이구료.
종간 .........?
씬 아지태 집 외경(밤)
씬 동 집 사랑
임춘길, 입전, 신방, 능달, 기전 들이 아지태를 보고 있다. 아지태는 묘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임춘길 아학사어른, 참으로 소인들이 오늘 놀라고 또 놀랐사옵니다. 일찍부터 예측은 했사오나 나으리의 뜻이 이토록 큰 폭으로 반영이 될 줄은 정말 몰랐사옵니다.
아지태 ......... (그러나 불편한 표정이다)
입전 놀라운 일이옵니다. 내봉성이 서열 이위가 되었고 순군부가 그 다음 자리이옵니다. 말하자면 벼슬을 다루는 행정권과 국방을 다루는 군부의 힘이 모두 나으리께 왔사옵니다.
아지태 ........ (도리질한다)
신방 어디가....불편하시옵니까, 나으리?
아지태 폐하께서 모험을 시작하셨네. 저 미치광이 황제가 나에게 내기를 걸어 왔어.
기전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아지태 나는 언젠가 폐하를 시험하기 위하여 보검을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 나는 그때 보았지. 지금의 황제는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다. 혼백이 꺼져 가고 있으면서도 그 사이 사이 아직도 번뜩이는 총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어. 이번 일도 그래.
능달 무엇이 말이옵니까?
아지태 자, 해보아라. 그리고, 내 놓아라.
모두들 ........?
아지태 자네들도 알 것이야. 지금 이 나라 이 형편에 무엇을 내놓는단 말인가? 무엇이 있어야 내 놓을 것이 아닌가? 이렇게되면 황제가 나에게 다시 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자네들은 모르겠는가? 이 다음에 내가 내어 줄 것은 이 목숨이야.
모두들 ..........(벙찐 표정이다)
아지태 황제가 서두른다면 우리도 함께 서둘러야해. 틀림없이 다음은 책임을 물어 올 것이야. 관심법을 쓰겠지.
입전,신방 (동시에 두려운 듯) 관심법.....?
임춘길 그렇게 되면은 어찌 되는 것이옵니까?
아지태 허허허, 그대들의 운명도 마찬가지가 되겠지. 자네들도 수하들을 단단히 단속하게. 머지 않은 시일에 기회가 올 것이야.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아서 다시 시작해야해. 새로운 제국을 여는 것이야.
임춘길 강장자와 말이옵니까?
아지태 (의미 있는 미소) 강장자는 아니야. 그 기회라는 것이 오면은 황제를 하야시키고 태자를 올리면서 강장자의 목숨을 거두어야겠지. 왕건과 내원도 마찬가지이고.... 문제는 기회야. 그것이 언제 오는가 그걸 놓쳐서는 안돼. 결코 길지 않을 것이야.
씬 동 집 사랑
강장자와 백씨, 그리고 양자가 함께 해 있다. 강장가가 불쾌한 듯 혀를 차고 있다.
강장자 말도 아니되는 소리야. 거 아지태라는 사람이 일을 왜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꼬?
백씨 무엇이 말이옵니까, 나으리?
강장자 세상에 원..... 아니 어차피 아지태 그 사람 의도대로 정국을 바꾸었지 않았는가 말이야. 그렇다면 응당 시중 자리는 내가 앉아 야지. 어떻게 그 이름도 없는 박장자를 시중에 앉히는가 말이야.
백씨 그게 어디 폐하께서 그리 하신 것이지 아학사가 한 것이옵니까?
강장자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가 다 약속해 놓은 것이 있는데.... 이건 좀 섭섭하지 않은가 말이야? 하긴, 그리 뭐 긴 세월은 아닐 것이야.
백씨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강장자 모든 것이 아지태 그 사람에게로 돌아가고 있어요. 곧 때가 오면 태자들이 보위를 이어 받을 것이야. 그리고 나에게 시중자리를 주겠지.
백씨 하시는 말씀마다 무서운 것들뿐이옵니다. 도대체 우리 태자마마들이 언제 보위에 오른다고 하시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아, 부인, 보면 모르오이까? 황제는 눈이 멀었어요. 이미 제 정신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아지태에게 꼼짝없이 쥐어서는 다 내어 주고 있지를 않소이까?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태자들이 보위에 오르면 허허허... 그때는 내 세상이 되는 것이올시다. 아니 그렇소이까?
백씨 (겁이 나고) 나으리... 누가 들을까봐 겁이 나옵니다.
강장자 겁날 것 없소이다. 이미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 않소이까? 왕건이가 시중이 된다고 하더니 그도 역시 전선으로 다시 쫓겨났어요. 무엇이 두려울 게 있소이까? 암, 우리 세상이 오고 있는 게요. 암, 그렇고 말고...
씬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두 유씨 부인과 왕건, 태평, 능산, 왕신이 함께 해 있다.
유씨 또 나주로 가신다 하셨사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그것은 이미 그리 하기로 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수인 허면, 언제 또 돌아오시는 것이옵니까?
왕건 그건 확실하게 말을 할 수가 없소이다. 나주전선이 안정이 되어야 오게 될 것이외다.
능산 두 분 형수님께서 다시 주군과 이별을 하시게 되어 많이 서운하시겠사옵니다.
유씨 나라의 명을 받고 가시는 것이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수인 아무래도 이번에는 꽤 오래 계실 요량이신 것 같사옵니다.
태평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쉽게 끝날 전쟁이 아니니까 말이옵니다.
수인 몸조심 하시오소서.
왕건 고맙소이다. 모쪼록 어지럽고 힘든 세상이니 두 분도 집안을 잘 이끌어 주길 바랍니다. 물론 신이 아우가 잘하겠지만, 그래도 집안을 다스리는 것은 부인들의 몫입니다.
두여인 명심하겠사옵니다.
왕건 특히나 (유씨에게) 장인께서 벼슬을 놓으셨소이다. 자주 찾아 뵙고 문안을 드리도록 하세요.
유씨 예, 서방님.
왕건 사람들은 모두 이번에 나라 이름이 바뀐 것과 신료들의 벼슬이 바뀐 것에 대해서 걱정들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나라에 어려운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마시고 잘들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수인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사옵니까?
왕건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요. 그럴 때일수록 신이 아우와 잘 의논하시구료.
왕신 형님, 염려 놓으시오소서. 소제가 잘 할 것이옵니다.
왕건 (한숨) 나는 군인이오, 지금은 물론이려니와 앞으로도 집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오. 부인들께서는 그 점을 이해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두여인 예, 서방님.
능산 하하하, 두분 형수님 소인이 주군을 잘 뫼시고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사옵니다. 너무 걱정들 마시오소서. 그래도 어려운 전장터마다 주군께서 가시어 해결을 하고 오시는 것이 얼마나 믿음직하옵니까? 이 나라의 백성들은 주군의 존함만 들어도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사옵니다.
유씨 누가 뭐라고 했사옵니까? 능산장군께서는 저희보다 신경을 더 쓰시는 것 같사옵니다. 호호호.....
왕건 그래요, 두 분 부인께서 이렇게 담담하게 우리를 보내주니 나 또한 마음이 가볍소이다. 고맙소이다. 하하하....
씬 황궁의 내원 외경
씬 동 내원 안
은부와 금대, 장일들이 종간과 마주해 있다.
종간 (기분이 좋다) 역시 폐하이셨네. 그 분은 그렇게 호락호락 하신 분이 아니셨어.
은부 무엇이 말이옵니까?
종간 많은 대소신료들이 이번 인사에 대해서 우려의 눈빛을 하고 있네. 아지태가 다 쥐었으니 말일세.
은부 사실이 그렇지 않사옵니까?
금대 참으로 지나치신 인사인 것 같았사옵니다.
장일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종간 모르는 소리들이야. 책임은 무겁고 문책은 클 것이야. 폐하께서는 그걸 아시면서 행하신 일일세. 그리고 모두들 들었지 않는가? 비록 순군부가 군의 모든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결국은 우리 내군의 감시를 받게 되어 있어. 이 또한 폐하의 치밀하신 배려이실세.
은부 (끄떡인다) 생각해보니 그건 그렇사옵니다.
종간 허나, 그렇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일세. 밀정들을 계속 가동하고 첩보를 수집하게. 군의 이동상황은 물론이고 아지태와 특별한 선이 있는 자들을 모두 감시하거라.
그들 예, 내원어른.
종간 그리고.... (한숨) 그리고 말일세. 사람들을 풀어서 전국 방방곡곡에 폐하께 소용될 약을 구해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 세상에 병이 있다면 왜 약이 없단 말인가? 좀 서둘러들 보게.
은부 (답답하다) 마음은 급하오나 도무지 길이 없으니..안타깝사옵니다.
종간 폐하께서 저렇게는 결코 오래 못 가시네. 특별히 사람들을 뽑아 닦달해 보게나. 좀 더 서둘러서 알아들 봐.
그들 예, 내원어른.
종간 (생각하며) 이제 왕건이는 떠났고, 아지태가 우리의 전면에 나타났어. 칼을 들고 싸우는 것도 전쟁이지만 조정에서 우리가 하는 이 정치 또한 전쟁일세. 추호의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되네.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게.
그들 예, 내원어른.
씬 바다(낮)
왕건의 배가 가고 있다. 그 배에는 왕건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해군대장군(海軍大將軍), 백선장군(白船將軍)이라고 써있다. 망망대해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고, 배는 물살을 가르며 그렇게 가고 있다.
왕건 역시 바다는 좋은 곳이야. 나는 바다에만 오면 꼭 고향에 온 것 같으이.
능산 주군의 고향이 바다가 아니시옵니까? 맞는 말씀이시옵니다.
태평 허허, 사실 그렇사옵니다.
왕건 지금쯤 나주가 어찌 되었을까?
태평 아마도 전투가 한창일 것이옵니다. 아니면 이미 한바탕 파도가 휘몰아쳐 갔거나 말이옵니다.
왕건 (끄떡인다) 이보게, 천부장.
천부장 예, 장군.
왕건 우리가 간다는 것을 앞서 알렸다고 했던가?
천부장 그렇사옵니다. 전령을 앞서 보냈사옵니다.
왕건 잘들 되어야 할터인데.... 철원은 아지태 그 사람 때문에 안심이 안되고 나주는 견훤왕이 죽기를 마다하고 노리고 있고. 허허, 참......
씬 금성산성 성루
성루에서 배현경, 홍유, 염상, 김언 들이 먼 성 밖을 보고 있다. 아득히 견훤군의 진영이 보이고 있다.
배현경 벌써 며칠째 조용하오이다?
홍유 첨병의 말로는 군사를 정비중이라고 하지 않소이까? 곧 또 올 것이외다.
염상 그러니까 군사들을 쉬게 하고 정비하는 것이지요. 지난 전투에서는 우리 아군의 피해도 참으로 컸습니다. 계속 올 모양인데....
김언 저쪽에서도 죽기로 오고 있으니 우리도 죽기로 막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는 데까지 해보아야지요.
배현경 전령을 통해 들어보니, 상주전선에서 유금필 장군이 이리로 온다지요?
김언 이미 떠났다고 하더이다.
배현경 왕총사께서도 다시 오시고 유장군도 온다면 적지 않이 힘이 보태지게 되었소이다. 아니 그렇소이까?
홍유 암요, 그 두 분이 오신다면 군사들도 사기가 부쩍 날 것입니다. 허허허.
씬 그 견훤군 군영
이곳에서도 아득히 멀리 산성이 보이고 있다. 견훤이 우울한 표정으로 산성을 보고 있다. 그 옆으로 최승우, 신덕, 지훤, 능애, 김총, 애술이 보고 있다.
견훤 군사들이 이제 쉴만큼 쉬었어. 대오도 다 재정비하였고....
모두들 .......
견훤 공격준비를 하도록 하게.
최승우 폐하...
견훤 왜 그러는가, 또?
최승우 아군의 피해가 지난 전투에서 너무도 컸사옵니다. 좀 더 휴식을 취하게 하고 다시 날을 잡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견훤 휴식은 할만큼 하였어. 우리는 오래 쉴 형편이 못돼. 이보아, 김총이. 그리고, 애술 장군.
두사람 예, 폐하.
견훤 경들은 그 동안 후방에 있어서 기회를 갖지 못하였어. 이번에 앞을 서서 성을 넘도록 해봐.
두사람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그 뒤를 능애아우와 신덕 장군이 받치고 지훤은 짐과 함께 중군에서 다시 힘을 보탤 것이야. 잘들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각자의 지역으로 이동하라. 해가 지면 신호를 보낼 것이니 그때 일제히 공격해 들어갈 것이다. 오늘 밤 싸움을 위해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사기를 돋구어 주게. 그리고 오늘밤에 모두들 목숨을 버리라고 해. 기필코 저 성을 되찾아야해.
모두들 예, 폐하.......
씬 바닷가(석양)
자욱한 갈대숲에서 공직과 최필이 바다에 떠 있는 수많은 전함들을 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어둡다.
공직 이보시게, 최장군.
최필 예, 장군.
공직 폐하께서 금성산성을 공격하셨지만 수많은 피해를 내고 퇴각하셨다는 기별이 있었네.
최필 알고 있사옵니다.
공직 파진찬 그 사람은 누구보다도 전략에 밝은 사람이야.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수군이 전멸하면서부터 패색이 짙었네.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폐하께서 과용을 부리시는 것 같네. 우리는 사기를 잃었어.
최필 하지만 일이 그럴 수밖에 없지 않사옵니까? 우리는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었사옵니다.
공직 그렇다하더라도 전쟁이란 냉정해야 하는 것이야. 지금 저 마진의 수군이 저대로 움직이지 않기 망정이지 저들이 상륙을 해서 올라온다면 우리로써는 감당하기가 어렵네.
최필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공직 지금이라도 회군령을 내리시는 것이 마땅할터인데....
씬 그 바다
왕식렴과 김락이 갑판 위에서 해안을 보고 있다.
왕식렴 백제군의 노장 공직이 저 해안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마땅히 공격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락 지금 금성산성에서도 전투가 계속되고 있소이다. 전장을 확산시키지 말자는 것이 우리 군영의 뜻인 것 같소이다. 좀 더 지켜보십시다.
왕식렴 아무래도 적의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김락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지켜보십시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산성전투가 주 전장이 되는 모양입니다. 어찌들 되었을까....?
그들의 얼굴에 어둠이 내리면서...
씬 금성산성 밖(밤)
어둠 속에서 대병을 거느린 견훤의 옆으로 김총과 애술의 돌격대가 영을 기다리고 있다. 군사들의 비장한 모습이 끝없이 보인다.
견훤 준비되었는가?
두사람 예, 폐하.
견훤 가라! 공격하라. 반드시 저 성을 이 밤 안으로 넘어라!!
김총 예, 폐하. 전군 공격하라, 공격하라!
애술 공격하라, 공격하라!
김총과 애술이 검을 빼어 들고 앞서 소리치며 달려간다. 벌판을 덮은 백제군들이 그렇게 소리지르며 아우성치며 달려간다. 충차가 굴러가고 석포가 하늘로 돌을 날아 올린다.
씬 동 성 안
장수들이 소리치며 각자들의 영역을 지키고 있다. 돌이 망루를 부수고 큰 불화살들이 날아와 곳곳에 불길이 타오른다.
배현경 또 온다, 적이 또 온다. 불길을 잡아라. 불을 꺼라.
염상 적병이 기어오른다. 운제를 밀어내라. 화살을 퍼부어라.
아우성이다. 피아간에 교차되는 화살로 인해 성벽에서도 수많은 군사들이 떨어져 죽는다. 일부는 성벽을 넘어 왔으나 백병전에 의해 물리쳐진다.
김언 성문을 사수하라. 충차가 성문을 부수고 있다. 성문을 사수하라. 화살을 퍼부어라.
홍유 궁수부대는 무얼 하느냐? 저쪽으로 화살을 쏘아라. 쏘아라!!
씬 동 성 밖
지독한 피아간의 대접전이다. 죽고 부상하는 군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김총이 이끄는 선발부대가 성문을 부수고 있지만 군사들이 수없이 죽어 넘어지며 하는 일이다. 그 일각 좌우에서 능애와 신덕, 지훤들이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그들 뒤 중군에서 견훤과 최승우가 보고 있다. 암담하다. 성은 함락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그런 모습에서....
씬 나주관아
유금필이 윤신달, 전이갑과 함께 다가와 관아 앞에서 내린다. 수문장이 다가오자 말한다.
유금필 상주에서 왔느니라. 내가 유금필이니라.
수문장 모두들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안으로 드시오소서.
그들 모두 안으로 들어가면....
씬 동 관아 안
다련군 부녀와 유금필과 윤신달, 전이갑이 함께 해 있다.
다련군 오, 장군들이 오셨구료. 오신다기에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유금필 서둘러 왔사오나 좀 늦은 것 같사옵니다. 그 동안 태수님과 더불어 형수님께서도 안녕하셨사옵니까?
오씨 예, 장군.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시겠사옵니다. 박술희 장군은....?
유금필 상주전선도 중요한 곳인지라 전의갑 장군과 함께 그곳에 남아 있사옵니다.
오씨 아무튼 잘 오셨사옵니다. 서방님께서도 지금쯤 포구에 도착하고 계실 것이옵니다.
유금필 그렇다면 이 길로 전장으로 가보겠사옵니다. 전투가 한창이라 들었사옵니다.
다련군 암요, 말도 마시오. 견훤왕이 아주 찰거머리처럼 붙어서 뿌리를 뽑으려 하고 있소이다. 지독한 전장이예요.
전이갑 그래서 저희들이 왔사옵니다. 유장군, 어서 성으로 가십시다.
유금필 하오면 저희들은 가보겠사옵니다. 자, 윤장군 우리 일어나십시다.
윤신달 예, 장군.
씬 금성산성 들판(새벽)
날이 밝고 있다. 수많은 시체들과 꺾여진 깃발들, 무기들이 널려 있다. 그들 한참 뒤로 견훤이 피로 물든 갑옷차림의 장수들과 함께 서 있다. 아무도 말이 없다. 애술이 울먹이고 있다.
애술 송구하옵니다, 폐하. 죽기를 다해 싸웠으나 성과를 얻지 못하였사옵니다. 군률로 다스려주시오소서, 폐하.
김총 죽여주시오소서, 폐하.
장수들 .......(비감하다)
견훤 짐이 수없이 많은 전장을 경험했지만 이처럼 난공불락의 성은 처음 보았도다. 독한 자들이로다. 저들의 총사가 누구인가?
최승우 총사는 아직도 왕건이옵니다. 다만 왕건이가 자리를 비운 이후 수하장수들이 합심하여 이 전투를 감당하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견훤 군사들을 잠시 뒤로 물리라. 다시 정비해야 할 것이야.
최승우 예, 폐하... 신장군, 군사들을 물리시오. 십리 밖으로 물려 재정비토록 하시오.
신덕 예, 군사. (큰소리로) 전군 퇴각하라! 전군은 퇴각하라, 대오를 재정비하라!!
그 소란한 와중에서 우울하게 한숨 짓는 견훤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동 산성 안
홍유와 배현경이 고개를 젓고 있다. 성안 곳곳이 다 부서졌거나 폐허처럼 변해있고 시체들이 즐비하다. 김언과 염상이 다가온다.
염상 견훤왕이 잠시 물러간 것 같소이다.
김언 또 올 것이옵니다. 저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군사들을 재정비하십시다.
배현경 처음 보았어요. 이렇게 끈질기고 지독한 전투는 처음입니다.
씬 동 벌판(낮)
견훤의 군영이다. 야전에 휘장이 둘러져 있고 견훤을 비롯하여 장수들의 회의가 열리고 있다.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다.
견훤 계속되는 전투에서 우리는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어.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퇴각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야. 아니 그런가?
제장들 ..........
견훤 우리가 힘이 든 만큼 저 마진의 병사들도 힘이 드는 것이야. 본래 전쟁이란 끈질기게 최후까지 버티는 자가 이기게 되어 있어.
신덕 하오나, 폐하.
견훤 말해보아.
신덕 성이 워낙 견고하고 지키는 장수들이 필사적이옵니다. 전략을 바꾸시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견훤 전략을 바꿔? 어떻게....?
신덕 산성은 지리적으로 아군에 불리하게 되어 있사옵니다. 차라리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 군사를 돌려 강을 도강하고 적의 허를 찌른다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능애 일리 있는 말이옵니다, 폐하. 우리의 공격령을 바꾸시오소서.
견훤 (생각하다가) 파진찬의 생각은 어떠한가?
최승우 물론 산성을 공격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지금이라도 늦지가 않았사옵니다. 퇴각하여 훗날을 도모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그렇게는 할 수 없어.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죽은 수달아우가 지금 자네의 말을 듣고 있다면 대성통곡을 할 것일세. 어쩌다가 우리 백제가 이 지경이 되었냐고 말이야. 그럴 수는 없어.
최승우 폐하, 헤아려 살피시오소서. 이번 전장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희망이 적은 전장이었사옵니다. 다음을 기약하시오소서.
견훤 그럴 수 없다고 하였어. 자, 신덕장군이 제안한 그 전략을 연구해보도록 하세. 산성을 버리고 저 강 중류를 넘는 것 말이야.
제장들 예, 폐하.....
견훤 나는 안가. 저 금성을 되찾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아.
결심을 다지는 그 견훤의 표정에서......
씬 나주 포구
왕건의 배가 정박해 있다. 왕건이 태평, 능산, 천부장들과 함께 배에서 내리고 있다. 다련군과 오씨, 왕식렴 들이 군사들을 함께 맞는다.
오씨 어서오시오소서, 서방님.
다련군 어서 오시게, 왕총사.
왕식렴 어려울 때에 때 맞추어 오셨사옵니다. 해안은 아직 전투가 없사오나 금성산성에서는 연일 전투가 계속 되고 있사옵니다.
다련군 내 세상에 태어나서 이토록 엄청난 전장은 처음이야. 하여튼 가서 이야기하세. 이미 총사가 온 것을 산성의 장수들도 다 알고 있다네.
왕건 (태평에게) 이보게, 천부장.
천부장 예, 총사.
왕건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인 모양이니, 내가 그리로 가겠네. 먼저 가서 전하게. 곧 회의를 열 것이야.
천부장 예, 총사.
왕건 자, 들 가십시다.
천부장이 말을 타고 군사들과 앞서 달려가고 왕건 일행이 그 포구를 뜬다.
왕건 (가면서) 백제국의 견훤왕이 결코 조용히 물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지금 이곳 영토가 문제가 아니라 죽은 수달장군에 관한 생각뿐입니다.
다련군 그건 그래요. 충분히 그럴만해.
오씨 한편으로는 참으로 그 의리가 부럽사옵니다. 엄청난 희생을 치루면서도 그 끝을 보려고 저러하니 말이옵니다. 한 나라의 황제로써는 어려운 일 아니겠사옵니까?
능산 황제 이전에 사나이들의 의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옵니다. 그런 면에서 저 견훤왕은 존경할만한 사람입니다. 저런 왕 밑에서 죽기로 충성하지 않을 장수가 누가 있겠사옵니까?
왕식렴 허허허, 장군께서는 그렇게 적국의 왕을 칭찬해도 되는 것이옵니까?
태평 허나 인정할 것은 해야하겠지요. 아니 그렇사옵니까, 주군?
왕건 그건 그러하이. 서로의 목숨을 걸고 의를 중시하는 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일세. 그렇다하더라도 그 희생이나 댓가가 너무 큰 것 같지 않은가? 백성들이 불쌍하단 말일세.
그들 그렇게 가면...........
씬 금성산성 외경
씬 동 산성 회의장
왕건이 중앙에 앉아 있고. 태평, 능산, 유금필, 그리고 김언, 염상, 배현경, 홍유, 윤신달, 전이갑, 왕식렴, 천부장 들이 모여 있다. 왕건이 걸려 있는 대형지형도를 살펴보고 있다.
왕건 백제군이 멀리 퇴각하여 이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소이까?
김언 예, 총사.
왕건 무진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강 쪽으로 우회하고 있다구요?
배현경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주 공격로를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홍유 결과적으로 강을 넘으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염상 그렇게 보입니다.
윤신달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 따라서 전략을 바꾸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전이갑 그야 당연한 말씀이지요.
왕건 (다시 지형도를 보고 나서) 몇 번의 공격에도 별 소득이 없자 공격 방향을 바꾼 것이 분명하오. 성의 공략을 버리고 개활지로 나온 것은 마지막 선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전면전 말이지요. 첩자들은 계속 나가 있소이까?
김언 예, 총사. 쉼 없이 보고가 들어오고 있사옵니다.
왕건 강 중류는 지형적으로 넘기가 쉽고 그리 복잡하지가 않소이다. 아마도 마지막 전투를 생각한 것 같소이다. 이보게, 유장군.
유금필 예, 총사.
왕건 거듭되는 전투로 제장들이 많이들 지쳐 있네. 자네가 일선을 맡게. 능산아우와 윤장군도 뒤를 돕도록 하시오.
그들 예......
왕건 우리의 수군이 전투에 합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비효율적이오. 식렴아우는 김락 장군과 더불어 수군을 상륙시켜 강 중류에 매복하도록 하게.
왕식렴 예, 총사.
왕건 그 동안 다른 장군들은 수고가 많았어요. 예비부대를 이끌고 대기토록 하시오. 적진의 상황을 살펴본 후에 최후의 영을 하달하겠소이다.
모두들 예, 총사.
씬 그 강변(밤)
끝없이 긴 강뚝길로 견훤의 군대가 오고 있다. 그들은 어느 쯤에서 멈추어 선다. 견훤이 달빛 속에 잠긴 강 건너를 보고 있다. 바람소리가 무수한 갈대 숲을 스쳐가고 있다. 그 강 건너로 끝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숱한 불야성들이 하나 둘 살아 오르기 시작하여 마치 바다처럼 꽃불이 수놓아진다.
최승우 폐하, 적군이 이미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린 것 같사옵니다. 강 건너에 많은 적병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견훤 그런 것 같구료. 참으로 우습게 되었어. 이 금성이 바로 내가 터를 일으키고 기업을 세운 곳이야.
최승우 알고 있사옵니다.
견훤 이곳에서 수달을 얻고 나서 제국의 기초를 단단히 닦았지. 그런데 지금은 여기를 내어주고 이 곤욕을 치르고 있어. 그래서 군주란 촌각도 소홀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야. 내가 소홀했기 때문에 이곳을 잃었고 이 어려움을 자초하였어. 왕건이가 왔다고 하였는가?
신덕 예, 폐하. 첨병들이 그렇게 보고해 왔사옵니다. 장수들도 몇이 더 보강되었다고 하옵니다.
견훤 궁예왕은 복이 참 많아. 왕건 같은 장수를 두고 있으니 말일세. 그 자를 한 번 보고 싶네 그려. 왕건이라는 자 말이야. 얼마나 영리하면 내 아버님까지도 나를 버리고 저 자를 좋아하겠는가 말이야?
최승우 그 일은 잊으시오소서.
견훤 그래야겠지. 오늘 이 전투가 이번 금성에서 최후의 전투가 될 것이야. 이번에도 지면 퇴각하세.
능애 지다니요, 폐하? 강을 넘고 금성을 점령하고 왕건이를 사로잡을 것이옵니다. 꼭 그리 할 것이옵니다.
견훤 암, 그리해야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말고.... 마지막이야....! 어쩌면 오늘이 생에 마지막이 될 지도 몰라. 내 일생에 이처럼 망신을 당한 적은 일찍이 없었네. 이 밤으로 그 부끄러움을 벗고 싶어. 알겠는가? 모두들 목숨을 걸고 내 부끄러움을 걷게 해주게. 이 견훤이 일생일대의 부끄러움을 말이야.
입을 앙 다무는 견훤의 표정에서......
< 96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