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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가 개최한 세미나에서 해인사 문헌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이연숙 전 고려대장경연구소 연구원. |
이연숙 전 고려대장경연구소 연구원이 10월 22일 오후 2시 30분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향년 53세. 지난해 7월초부터 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오던 그는 10월 21일 돌연 병세가 깊어져 다음날 오후 타계했다. 시신은 화장 후 부산 추모공원에 안치됐다.
이 전 연구원은 최근까지도 2005년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부처님 복장(腹藏)에서 발견된 고문서 판독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름에도 고문서 판독을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해인사를 방문했었다고 지인들은 설명했다. 동생 이윤숙 씨는 “몸이 건강해야 공부도 의미가 있지 그 몸으로 무슨 연구냐며 거듭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마치 그것이 필생의 과제인 것처럼 암이 간으로 전이된 상태에서도 한 글자라도 더 해독하겠다는 듯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초 유방암 3기 상태에서 병을 발견한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도 고문서 판독 연구를 강행했다. 심지어 암투병 중에도 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가 2월 22~23일 서울 관문사에서 개최한 학술세미나에서 그동안 판독해왔던 해인사 고문서에 대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 전 연구원은 당시 발표에서 새로운 많은 사실들을 밝혀냈다. 그동안 『무량수경』으로 알려졌던 그 고문서가 사실은 『아미타경소』였으며, 규기 스님이 그 책의 저자라는 통념과는 달리 7세기 당나라 행진(行眞) 스님이 저자임을 규명함으로써 참가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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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세미나가 끝난 뒤 촬영한 단체사진. 아래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연숙 전 연구원. |
이 전 연구원은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 불교공부를 시작한 만학도였다.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10여 년간 영양사로 활동했던 그는 1992년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각오로 도쿄 대정대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석사과정에서 화엄학을 전공했던 그는 2000년 국제불교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해 문헌학 권위자인 오치아이 토시노리 교수를 지도교수로 불교학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가 바닥남에 따라 박사학위를 마무리 못한 채 국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고려대장경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지도교수의 권유로 해인사 복장 전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었다.
불과 8개월 전, 금강대 학술세미나에서 발표를 마치고 “내년까지는 이 고문서의 전반부까지 해독하고 연구해 단행본으로 출판하겠다”는 그의 마지막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070호 [2010년 10월 29일 21:14]
첫댓글 만학도의 끝없는 불교사랑에 존경의 마음, 안타까운 마음 금할길 없습니다. 극락왕생하소서!((^^)!
훌륭한 인재가 세연을 너무 '빨리 끝내게 되어 안탑깝습니다.
아..아타깝습니다.인재가 먼저 세상을 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