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포에서
지난 사랑의 노래에 취해 늘어지게 한 잠 잘 잤다 일어나니 비가 내리고 내일 모래면 추석 오일장이 서려는지 창 밖이 시끄럽다 새 노래를 따라 부르기엔 내 목은 잠겨 있고 낡은 발걸음은 비에 젖어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멀리 물 위를 나는 갈매기의 날개짓이 아슬한데 묻지 마라, 삶은 언제나 대목이다
빗속을 뚫고 과일전이며 어물전이며 목을 돋구고 있다 (2003년 9월 8일 )
9얼 10일 포항죽도시장,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추석대목장이 한창이다. 고향에서 무위도식하던 2003년, 그 무렵 추석부근의 후포오일장장에도 구질구질 비가 내렸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건만 내 목은 그때보다 더 잠겨있고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삶이 언제나 대목'인것도 여전히 마찬가지이거늘.....
귀향일기.1 -어머님 전 -
시대에 멀리 뒤떨어진 아들이 되어 다시 찾는 올해는 너무나도 먼 귀향이었습니다 피눈물로도 육십 고개 보란 듯이 넘겨온 어머니 어머니의 투명한 눈물 속 깊이 노동의 연륜으로 살아 뛰는 분노를 봅니다 이 저녁 어머니의 긴 침묵 속으로 내년엔 중고 자가용이라도 몰고 와서 언제나 썩혀야 하는 배추 무우 한가득 싣고 갈 거며 내자식도 집장만했다는 자랑삼으시게 입택 한번 살뜰히 해볼 거라는 비극적인 코메디 한토막 연출도 해 봤지만 방안 가득 웃음소리 타오르지 않음은 무엇 때문일까요 저도 압니다 삶의 치장은 우리 것이 아니어도 좋다는 노동 속의 인생만이 노동을 부여잡고 울고 웃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가슴에 와서 우는데 생산의 작업복이 죄수 마냥 움츠려지는 식민의 아들로 오늘은 내 몸 누일 어머니 품속까지 찌든 생활의 모습 감추며 유행 지난 양복 걸치며 돌아왔지만 고통의 깊이만큼 투쟁의 삶을 채워오신 어머니 싸워 승리할 겁니다 끝내 건설할 겁니다 빛나는 작업복 금의환향의 그날까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천년의 무게로 천둥 번개 비바람을 추스리는 갈대숲 허연 백발로 지키고서 어머니 손발 부여안고 (1991, 아마 구정무렵)
고향가는 시내버스에서 만난 예취기, 벌초와 성묘와 부모와 그리고 추억이라는 이름이 넘실대는 추석부근임을 이 예취기가 대신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봉분위를 덮은 잡초만이 아닌 내 안에 웃자란 모든 상념들도 잘라내었으면 좋겠구만....
서울로 돌아오는 길의 구주령엔 안개가 다 걷히지 않았다. 인생은 고개길의 연속, 아홉개의 구슬을 꿰어놓은 것 같다는 이 높고 험한 재를 또 얼마나 넘어야 내딛는 발걸음이 가벼워질까?
귀향일기.2
빛바랜 덕담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차례상 끝나기 무섭게 고개 돌리며 복주 한잔 받아넘기고 묵묵히 자리만을 지키고 있었을 뿐 한웅큼씩의 침묵을 안주로 씹으며 근거없는 희망과 근심어린 위로의 말 한마디 들려줄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나아진 것이라곤 선물 꾸러미의 호사한 치장과 반짝거리는 옷차림새뿐 진실은 함부로 뱉아 낼 수 없다는 것일까 돌아온 아들딸들이 터뜨리는 맥빠진 웃음을 예감한 듯 "삼시 새끼 이밥에 호강 겨워 하는 짓들이여" 고개 돌리는 어머니의 눈빛 속으로 끝내 묻지 못하는 눈물을 나는 보고 있었다 깊은 품에 안겨 투정부리고 싶은 고향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아들딸을 다독거리시는 어머니 하루하루를 분노로 살아가는 이 아들은 한조각 빛을 타고 흘러가는 어머니의 눈물을 언제쯤 가슴 속에 새길 수 있을까요 고속질주의 그늘 속으로 늘어난 귀경의 시간들이 답답증 섞인 짜증으로 늘어만 가는데 터미널까지 따라 나오시는 어머니 주름살 너머 "나이 한 살 그저 먹는줄 아느냐 세상살이 쉬운게 아니다" 생의 울분으로 손짓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해지고 있었다 (1991년 아마 추석무렵)
1991년, 저 즈음, 루카치던가, 아니 지금은 이름도 까먹어버린 일본인지 중국인지의 경향파미학자가 쓴 '형상과 전형'이란 미학입문서를 읽고 열심히 토론하던 시절, 그즈음 문학운동판엔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만한 '민족문학주체논쟁'인가가 파도처럼 밀려오던 때, 문학작품의 주체가 노동자.농민이냐? 브띠부르조아 양심적 지식인'이냐?는 논쟁은 쉬이 맥이 풀리듯 자동적으로 전자로 귀결되고.....노동자.농민이 주체라면?... 선진노동자를 전형(쉽게 주인공이라고 치자?)으로 세울 것인가? 아니면 흔들리는 중간노동자를 전형으로 세울 것인가?에 대해 어리둥절해하던 시절.... 지금생각해보니 시절도, 가슴도 하 수상하던 시절에 썼던 시인것 같다. 노동자,농민,어머니란 소재가 들어가지 않으면 문학이 아니라고 우기던 그럭저럭 나가다 뒤로가면서 도식적인 구호남발로 삼천포로 향해가던...... '노동,생산,투쟁' 등으로 이어지던 단어는 그렇다치더라도 '작업복'이라는 단어에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건 왜인지? 신경향파같은 신열에 들뜬 철부지 소년의 시절, 그 부끄러움과 천진함의 기억속에서 '진정성'의 설자리는 과연 어디쯤에 있었던가? 아니 있기는 있었던가?
청량산을 향해가다가 만난 봉화군 재산면소재지, 처음 밟아보는 길, 구불구불 산길을 좀 돌긴 했지만 요즘 보기드문 수수랑 조, 메밀꽃이 핀 소금을 뿌린듯한 메밀밭을 보는 호사를 누렸다.
재산면삼거리에서 명호쪽으로 갔어야 했는데 '청량산->'이라는 이정표에 속아 예안쪽을 택하니... 청량산의 뒷자락만 스치고 안동댐을 거쳐 기어이 안동까지 가고 말았다. 명호라는 팻말에 언뜻 몸이 말을 걸었었는데.... 문자가 만들어내는 이정표의 권위앞에 내 '육감'은 쉬이 꼬리를 내렸다. 안동까지 내려갔으니 다시 길을 거슬러 오르고....
집 앞 베란다에 벌들이 보금자리를 마련한지 어언 몇달째, 자연친화적인 삶이라고 좋아라 그냥 두었었는데 식구중 하나가 벌에 쏘였다. 고향에서 올라온 어제, 눈 찔끈감고 벌집을 없애버렸다. 벌들도 혼비백산 뿔뿔히 흩어졌었는데 오늘 아침, 나가보니 이놈들이 다시 돌아와있다. 집이 사라진 곳에 다시 모인 이놈들을 보니.... 집이 무언지? 고향이 무언지? 안스럽다. 그렇게 추석부근이다.
우리들의 이십대,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명절휴가가 끝나고도 도시로 나가지 않던 친구들이 있었다. 한달이고 두달이고 고향에 눌러있다고 지겨워지면 도시로 다시 직장을 찾아 떠났던 그즈음의 농촌아이들.....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친구들의 이름이 풍문으로 들리고...... 아마 저 벌들도 당분간 저곳을 배회하겠지.....
서울로 올라와서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하필이면 김원일의 '오마니별'
'전쟁의 비극과 이산의 아픔'을 노래하는 김원일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산의 아픔을 아로새긴 작품이다. 1.4후퇴때 미군의 폭격에 어머니를 잃고 헤어진 두 전쟁고아가 겪은 세월의 신산이 묻어나는 이야기.... 추석즈음에 읽어서 그런지... 하마터면 울뻔했다.
관악산 오름길에 누군가가 소주와 과일. 그리고 명태포를 놓고 갔기에 자세히보니... 누군가 제사를 지내고 갔다, 집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은 축대곁으로 이른봄이면 개나리가 피어나 사람이 살았던 곳임을 일찍이 알았었는데 오늘보니 이 빈집터의 오래된 기억을 아직도 부여잡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듯 하다. 그는 오래된 이 집터에서 누구를 그리며 잔을 올렸을까?
여름은 가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어떤 기억은 가물가물 저물어 갈 것이며 또 어떤 기억은 시퍼렇게 살아 가을의 꿈자리를 어지럽히겠지?
반바지차림의 산행도 올해엔 오늘이 마지막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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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빛의 염탐꾼 원문보기 글쓴이: 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