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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2005년 신춘문예 긴급진단 1 | |||
출처블로그 : 꽃잎물고기 | |||
‘밥이 부끄럽지 않은 심사위원들을 위해’
새해 벽두면 문학인들과 문학청년들은 신춘문예 당선작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다. 특히 신춘문예에 응모를 한 문학청년들이라면 그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훌륭한 신인들의 작품세계를 보며 경이를 표하기도 하며 또 가끔은 어처구니없는 작품 앞에 실망을 하기도 한다.
여기서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표절시비다. 표절시비는 당연히 심사위원들의 자질문제와 관련돼 문학청년들을 실망이 아니라 절망으로 내몰기도 하는 현실이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왜냐하면 일부 능력 있고 재능 있는 문학청년들에게 문학에 대한 회의감을 줄 가능성이 높으며 나아가 한국문단의 퇴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 2005년 신춘문예 당선(시부문)된 일부 작품의 경우도 이 같은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지난해 ㅈ일보와 모 중앙지의 표절시비와 마찬가지로 올핸 부산일보에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부산일보 당선작 ‘항해’와 지난해 한국문단에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중의 하나인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과 2003년 신춘문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던 마경덕 시인의 ‘신발論’을 비교해보자.
올해 부산일보 당선작 ‘항해’의 1연 ‘비린내 그윽한 다대포 바닷가/꼼장어 구이집 방문 앞에/각양각색의 신발들이 뒤엉켜 있다.’는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작품 첫 행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에서 모티브를 빌려 ‘喪家’를 ‘꼼장어 구이집’으로 치환, 풀어썼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다. 이 같은 혐의는 2연으로 이어진다.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에라 모르겠다 벌러덩 드러누운 놈 /물끄러미 정문만 바라보는 놈 /날씬한 뾰족구두에 치근대는 놈 /신발 코끝 시선들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의 2연은 유홍준 시인의 작품 3행‘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에다 7-8행‘정리가 되지 않는 상가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의 화법을 변조, 풀어쓴 것이다. 여기에다‘에라 모르겠다’는 유홍준 시인의 4행 ‘젠장,’이란 화법과 대비, 詩作의 어법마저 흉내를 내고 있다는 느낌을 확연하게 주고 있다.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13-17행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를 변조한 인상이 짙다. ‘항해’4연 중 마지막 두 행‘잠시 정박했던 배들이 /저 푸른 바다로 떠난 것이었다.’란 구절은 ‘신발論’의 마지막 구절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란 이미지를 그대로 도용한 것으로 읽힌다. 덧붙이자면 ‘신발論’2연의 마지막 부분‘한 척의 배 과적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인 나는 짐이었으므로,’에서 발아된 착상으로 ‘잠시 정박했던 배들이’이란 표현이 만들어졌다는 혐의 또한 지울 수가 없다.
결론적으로 유홍준 시인의 ‘喪家에 모인 구두들’과 2003년 신춘문예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찬사를 받았던 마경덕 시인의 ‘신발論’을 훌륭하게 짜깁기한 모작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당선작품이 모티브와 이미지를 모작했다는 혐의가 있음에도 불구, 모델로 삼은 유홍준 시인과 마경덕 시인의 작품보다 그 완성도나 작품 수준이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이다. 신인으로서의 패기와 참신성은 물론 어법 문제 등에 있어서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2005 부산일보 당선작 ‘항해’를 쓴 시인을 폄하하기 위한 글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시공부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모티브나 이미지를 모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1년에 한번 문학청년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는 신춘문예란 점을 감안, 심사위원들의 성의 없는 심사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기성시인의 이미지 원형을 지적하면서도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차선으로 떨어진 문학청년들의 심정은 어떨까. 수천 편 가운데 오직 한편만 당선이 되는 신춘문예 공모전 심사를 맡은 시인들에게 좀더 공부를 하고 성의 있게 심사를 해달라는 이 나라 문학청년들의 뜨거운 가슴을 대신 전하고 싶을 뿐이다. ―시를 사랑하는 문학청년 닥터 K
항해 / 손병걸
다른 구두에 밟힌 채 일그러진 놈
어느새 젓가락 장단 끝이 나고
연방 뭐라고 중얼거리는 꼼장어 안주 삼아
그 순간, 꼼장어 구이집 안으로
喪家에 모인 구두들 / 유홍준
저녁 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
2002년 8월 10일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심사평:정진 가능성에 높은 점수
응모된 시들 중에서 1차로 20여편을 건져올리면서,우리 시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예비 시인들의 관심이 서정시에 가 있다는 점,소재는 일상적 체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발랄하고 참신한 이미지는 내보이나 내면의 깊이가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 응모 시의 전반에서 실험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것은 힘들었다. 이는 패기 있는 개성적인 시를 쉽게 만날 수 없었다는 말이다. 그 대신 잘 꾸며진 소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