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下將士
황우달은 단오 두달 전부터 가마솥에 산삼·우황을 넣고 보신탕을 설설 끓였다.
속에 든 고기는 뜯어 먹고 국물은 오며 가며 퍼마셨다.
집 뒤뜰에 천하장사를 했던 전설적인 최 장사가 사범이 돼 황우달의 씨름 연습을 지도했다.
우달은 덩치부터 연습 상대들을 압도했다.
팔척장신에 허벅지는 아름드리요, 종아리는 절구통만 하고 어깨는 떡 벌어져 떡판 같고
두 팔은 통나무처럼 우람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얼굴까지 잘생겼다.
우달은 연습 상대를 연달아 꽂아 메쳤다.
뒷집 담 너머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발판에 올라 자라목을 빼서 그 광경을 훔쳐봤다.
“어머머.”
구경꾼들이 끊임없이 탄성을 질렀다.
“하루를 살아도 저런 남자 품에 안겨봤으면.”
“어느 복덩어리가 우달이 색시가 될까.”
“빨래하다가 멱 감는 걸 얼핏 봤는데 물건이 수말의 그것이야.”
동네 여편네들이 입방아를 찧어댔다. 단옷날이 밝았다.
열아홉살 우달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가마솥에서 보신탕을 한그릇 퍼먹고 크게 기합을 넣은 후
집을 나서 강변으로 향했다. 사범과 동네 젊은이들이 호위 무사처럼 그를 따랐다.
버드나무에 매어놓은 그네가 아낙들을 싣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빨간 치마, 노란 치마, 분홍 치마가 나비처럼 훨훨 날았다.
사또와 고을 유림이 강변 초입에 차양을 치고 죽치고 앉아 일찍부터 술판을 벌였다.
백사장 씨름판에선 구경꾼들 함성이 벼락 소리처럼 하늘을 찢었다.
해가 기울어질 무렵 단오 잔치가 끝났다.
천하장사 붉은 띠를 허리에 휘두르고 황소에 올라탄 사람은 우달이다.
우달은 황소를 몰아 저잣거리로 향하고 친구들이 구름 떼처럼 뒤따랐다.
기생집 마당에 묶어둔 황소는 선불 술값이 됐다.
술자리를 파하고 기생집 뒷방에서 우달이는 수(首)기생한테 시달리느라 한숨도 못 잤다.
몇날 며칠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 살고 나니 황소가 기생집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런데 수기생이 우달이 대문 밖으로 나갈 때 솥뚜껑 같은 그의 손에 황소 고삐를 살며시 쥐여줬다.
집 외양간에 황소를 매어두고 가마솥에서 보신탕을 계속 퍼마시며 수기생에게 뺏겼던 기력을 보충하던
어느 날, 낯선 아이 하나가 찾아와 꼭꼭 접은 종이를 우달이에게 전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우달이 쪽지를 들고 찾아간 집은 신 진사네 과붓집이다.
우달이는 밤새도록 과부에게 시달리고 나서 새벽닭이 울 때 누가 볼세라 야음을 틈타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그 집을 나와 담 밑으로 붙어서 집에 왔다.
호주머니에서 금비녀와 금반지가 나왔다.
우달이가 어느 날 아버지 황 초시의 부름을 받고 사랑방으로 갔다.
제 어미가 우달이를 낳다가 산후 독으로 죽어 어미 정을 모르고 자랐다며
황 초시는 우달에게 꾸지람 한번 안했는데, 그날은 회초리를 들고 피가 방바닥에 흐르도록 매타작을 했다.
“얼굴을 들고 다니지를 못하겠다, 이놈아. 별의별 흉측한 소문이 떠돌더구나.”
사실 우달이는 창남(娼男)이 돼 있었다. 과부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이 병석에 누워 있는 부잣집 안방마님도 패물을 찔러주고 우달이 품에 안겨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추석장사씨름대회가 다가오는데도 우달이는 주색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날 밤도 술에 취한 채 어느 여인 초청을 받고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사동을 따라 고개 너머 여인 집에 갔다.
이제는 사전에 얼마를 줄 건지 흥정까지 했다.
“마님, 천하장사를 모시고 왔습니다. 오십냥 선불을 원하십니다요.”
사동이 처마 밑에서 모깃소리만 하게 아뢰더니 우달에게 “들어가시지요”라고 전했다.
등 하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라 엉금엉금 기어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로 그때 마루, 처마 밑, 마당까지 불이 켜지며 안방마님이 “여봐라 이놈을 포박하라”고 외쳤다.
하인들이 몰려나와 우달이를 꽁꽁 묶었다.
그를 형틀에 묶어 엉덩이를 깐 후 마님이 손수 죽어라 곤장을 쳤다. 안마당에 유혈이 낭자해졌다.
곤장을 던진 마님이 우달이 등에 엎어져 대성통곡을 했다.
기절했던 우달이 찬물을 맞고 정신을 차리더니 꿇어앉아 안방마님을 부둥켜안고
“어머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흐느꼈다.
마님과 우달이는 서로 안고 눈물만 쏟았다. 마님은 우달이 유모였다.
생모를 본 적이 없어 우달이는 열두살이 될 때까지 유모를 생모로 생각했다.
착하고 인물 좋고 근본이 바른 유모는 우달의 당숙과 결혼한 그의 당숙모였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