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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과 기도
보릿길(박 정 애)
서부 유럽 여행을 가서 여행 도중 너무 피곤해 여행 온 것을 후회하면서 13일을 겨우 보내고 귀국 후 바로 정기 건강검진을 했다.
검진 후 결과를 보러 가니 분변검사 결과에 혈흔이 보인다면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집 근처에 항문외과가 있으세요. 아니 내가 추천해 줄까요? 하기에 그러라고 하니 이미 준비해 두었는지 서랍에서 약을 꺼내면서 약 복용 방법을 의사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시며 먹은 후 정해진 시간에 가서 내시경 검사를 하라고 했다. 아~ 그리고 갈 때는 꼭 보호자와 함께 가십시오. 웬지 의사 선생님께서 다짐하는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2 년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고 싶다니 분변에 이상이 없는데 힘든 검사를 왜 하려고 합니까? 라고 하던 건강검진센터 의사 선생님 말씀이었다. 그때는 왜 말렸나요? 원망스러운 감정으로 말했다. 지나간 일은 잊고 어쨌던 잘 받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차를 몰고 의사가 가르쳐준 연세 항문외과로 갔다. 바로 검사를 하는데 영상에 비치는 용종 제거 작업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용종 덩어리를 핀 셑으로 떼어 내었다. 그전에 남편이 검사할 때 내가 보았던 용종보다 덩어리가 크 보였다.
검사 후 바로 의사 선생님이 남편과 나를 불렀다. 조직검사는 일주일 후 확실한 진단이 나오지만 지금 검진으로 99.9% 대장암입니다. 남편이 의자에 털석 주저 앉는다. 내가 도로 남편을 달랬다. 확실한 건 일주일 후 잖아요 오진으로 믿읍시다. 문제는 차를 몰고 집에 가지를 못하겠다면서 근무 중인 아들을 부르려고 한다. 내가 말렸다. 아들은 놀라지 않나요? 우리 점심 먹고 천천히 몰고 가자고 달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렇게 당황하질 않았다. 너무 많이 울어버린 지난 일 기억 때문이다. 꼭 15년 전 자궁근종 때문에 수술 날짜를 받아 놓고 수술실에서 갑자기 수술을 못하게 되었다면서 근종 수술은 미루어도 되니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서 간 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그 길로 동산병원에 가서 간 검사를 했다. 간염이 왔고 평생을 간 기능 약을 먹으라고 했다. 엄마 오빠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얼마 후 였다. 가족력에서 아버지 엄마 오빠 모두 암으로 가셨기 때문에 올 것이 왔구나 경제적인 안정도 찾았고 아이들도 대학에 입학했고 한시름 놓으려고 하니 예상했던 대로 나도 친정가족 곁으로 가는 줄 알고 많이도 울었다. 그 후로 정기적인 간 검사를 해서 간 상태를 주시 했기에 대장암이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장암 3기 동생 사위가 대장암 지도 교수 바로 밑에 전문의였다. 시댁에서도 난리가 났다. 대구는 서울 의술 보다 10년을 뒤처지니 시숙 어른 시동생이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하라고 동생을 호통친다. 본인의 의지다 동생 사위가 있는 경대병원으로 내가 결정을 내렸다. 최규석 교수도 전국 명의에 속하기에 자리가 지금 6월인데 12월로 잡아준다. 그래도 대구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아 내 손으로 전화를 걸어 친구들에게 암이 왔다고 하고 곗날도 정상적으로 하자며 계에도 참석했다. 곗날 계 분위기가 숙연했다. 모두 입을 다물고 나를 본다. 내가 괜찮다면서 밥 먹고 팔공산 한바퀴 돌자하고 노래방도 가자고 했다. 모두가 내 뜻을 따라 주었다.
며칠 후 이질서(동생의 사위)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모님 서울 삼성병원으로 가려는 환자가 있어 그 자리에 이모님을 대처 해 놓았으니 7월 18일이 수술 날짜입니다. 준비해 오십시오‘라고 했다. 성당에서도 소문이 났다. 친한 노인분이 나를 보고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보라고 해서 수술 이틀을 앞두고 성당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신청했다. 신부님께서 병자성사를 못 준다고 하셨다. 속으로 이상하다 왜 일까? 라고 생각 했다. 그러시면서 나를 성당 안에서 기도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박정애 스콜라스티카씨 병자성사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성사이며 평생에 한번밖에 못 준다고 하시면서 내 기도 속에 스콜라스티카씨는 수술 후 꼭 나을 분입니다. 수술 후 다시 와서 성모회 총무일도 보시고 레지오 단장일도 계속하셔야 합니다. 틀림없이 낫는 확신이 내 기도 속에 있으니까 안수기도를 드리겠습니다. 하면서 머리를 짚고 기도를 해 주시는데 머리에 열이 펄펄 끓었다. 인사를 하고 나오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암병동에 처참한 모습은 멀쩡한 사람도 환자가 될 것같다. 대장암 환자만 있는 방이라 내일 수술 환자만 눕혀 놓았다. 바로 내 옆에는 초기 환자였다. 모두 안정제를 복용하라면서 약을 주었지만 나는 잠잘 시간에 잠이 쏟아져 약을 먹지 않고 자다가 일으나니 깨어있는 내 옆 환자가 나를 부러워한다. 당신은 3기인데 잠이 오느냐고 박사 아들에 연금 타는 남편을 두었고 걱정 없기에 잠이 오는 모양이다 나는 36 살에 혼자되어 아들들 공부도 다 못 시켜 사는 것도 어렵고 너무 억울하다면서 눈물을 쏟는다. 사실 그게 아니고 나는 성당에 다니는데 모두가 기도를 해주어 이렇게 잠이 온다고 하니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해서 즉석 화살기도를 해주었다.
안내대에서 이 사람이 뭐하던 사람이었느냐고 물을 만큼 병문안을 많이 왔다. 직장 친구 학교 친구 성당 교우 보는 사람마다 너무 씩씩해서 환자 같질 않아 맘이 놓인다고했다. 친한 친구 몇몇은 돌아가면서 짝을 지어 퇴원 할 때까지 곁에 있어주었다. 병문안 온 사람이 남편이 더 환자 같다 고 할 만큼 나는 맘에 여유를 가졌다. 다행히 암덩어리는 크지만 속속들이 자리 잡아 다른 곳으로 전혀 전이가 되지 않아 항암주사를 맞지 않고 약을 일 년 넘게 먹어야 한다고 해서 남편이 의사 선생님께 고맙다면서 90도로 절을 했다.
신부님 말씀대로 나는 성당에 내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러주지를 않고 성모회 자격이 만 60~ 70까지 이기에 70 정년을 채우고 성모회 총무를 후배에게 물려줬다. 5%의 의술과 95%의 의지가 병을 고친다는 믿음의 기도가 나를 살렸다. 2017년 7월 18일이면 꼬밖 9년이 된다. 덤으로 많은 세월을 살고 있다. 처음 간염 진단을 받을 때 보다 20 년도 훨씬 더 살고 있다. 친정 가계에서 보면 할머니를 제외한 최고령으로 살았다.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덤으로 받는 물건은 기분을 좋게 한다. 생명도 덤으로 받은 하느님의 선물은 누구의 삶보다 든든하고 여유롭고 보람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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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려움을 극복 하시고 건강을 회복 하심에 우선 축하드립니다. 누구나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수는 없읍니다. 의술의 발달도 병을 정복 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믿음 이란 신념이 아닐까요. 신부님의 기도와 그 믿음이 완치에 큰 역활을 한것 같읍니다.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모두 어려운 고비를 한 두 번은 다 겪은 것 같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남은 생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건강검진 때 꼭 가족력을 체크하는 게 다 이유가 있군요. 본인에게 취약한 부분은 평소에 더 신경을 써서 관리하는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 힘든고비를 무사히 잘 넘겨셨으니 앞으로는 긍정적인 생각과 신앙의 힘으로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시면 만사형통하실 것 같습니다. 옛부터 병은 자랑하라고 했습니다. 동병상련의 힘도 큰 용기가 될 수가 있거든요. 덕택에 많은 것을 느끼고 얻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평소 낙천적이시고 병에 대한 자신감으로 큰병을 잘 극복하신 것 같습니다. 건강관리 잘 하셔서 덤으로 백세 인생을 기원합니다. 질병에 대한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큰 산을 넘어오셨네요 이젠 5월의 초원 같은 건강한 삶만 펼쳐지실 겁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를 알고 평생 관리하는 것이 장수의 지름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셨습니다. 큰 박수릍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정신력으로 질병을 이겨내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에 유의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것입니다.
건강은 몸 보다는 마음이 좌우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면 아무 문제 없었는 선배님의 글에 감명 깊었습니다!
안타까워서 글을 읽고 댓글을 못달았습니다. 병마와 싸워서 이겨내는것이 중요합니다. 평소 낙천적이시고 직장생활때부터 산악회에도 참가하여 체력이 있어 잘 이겨내신것 같습니다. 신앙의 힘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경의를 표하며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