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선물교환(수정)0421
“우와. 어떻게 이런 좋은 선물을 준비했어요?”
크리스마스 송년파티에 윗동네 사람들을 초대했다. 파티는 매년 마을주민들과 했던 것인데, 올해는 좀 특별하게 새로운 주민들을 초청한 것이다. 한해동안 같이 마을사업을 해서 그런가, 매년 함께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올해는 윗동네 사람들을 초대하자고 한다. 자연히 우리는 아랫동네 사람들이 되어 윗동네 손님들을 맞았다.
오늘의 이벤트는 선물교환이다. 모두가 하나의 선물을 준비해서 서로가 나눈다. 나누는 방식도 흥미진진하다. 남녀노소할것 없이 모두가 번호표를 나누고, 1번이 가장 먼저 선물을 선택한다. 선물을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이 있는것이다. 그리고 1번이 다음 번호를 호명한다. 2번이 될 수도 있고 다른번호가 될 수 도 있다. 모두가 자기번호를 호명해 주길 바란다. 우선권을 갖는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물론 아이들의 선물도 있다. 자녀들도 우리의 공동체원이라는 의식을 갖게 하기 위해, 모든 행사에서 분리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한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가 자기번호를 불러주기를 기대한다. 부름을 받은 사람은 먼저 한해동안 가장 기뻤던 일을 하나씩 발표한다. 송년파티는 엄마, 아빠가, 혹은 우리 자녀가 한해동안 가장 기뻤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들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호명된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앞에 놓여 있는 선물을 하나 고른다. 선물은 모두 포장되어 있어서 그 내용물을 알지 못한채 선물을 고르게 된다. 포장된 모양과 크기만을 가지고 선물을 고르니, 처음뽑는 사람도, 나중뽑는 사람도 받을 선물을 알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아 배고픈데, 우리 먼저 먹으면 안돼요?”
식사는 차려졌는데, 와야할 윗동네 이웃들이 늦어진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모두들 차를 끌고 나왔는지, 다들 도로사정이 좋지 않다고 연락이 온다. “언니, 우리 먼저 먹읍시다.”당찬 혜숙이가 아이들을 먼저 먹여다 된다고 하면서, 피자 한판을 뜯는다. ‘아니, 이 사람들이 손님을 초대해 놓고, 자기들이 먼저 먹겠다고?’ 사업의 호스트인 내 마음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배고프지, 언제 올지 모르니, 일부만 개봉해서 아이들과 먹어!”
오늘만이 아니다. 아무래도 모임이 아랫동네 사람들이 기획하다 보니, 윗동네 사람들은 수동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게 된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고,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랫동네 사람들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늦게 오게 되고, 빠지게 되고. 어쩌면 마을활동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은 기다림, 인내가 아닐까? 한 해를 기다리다 보니, 아랫동네 사람들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이른게 어쩌면 당연하다.
윗동네 엄마들이 왔다. 아랫동네 엄마들은 언제나처럼 이들을 환대한다. ‘예은이 엄마, 어서와요. 예은이 못 본 사이에 많이 컸네””제 남자친구예요!””자한이 엄마, 아이들은?””아이들은 아빠집에 갔어요. 오늘은 제 남친하고 왔습니다.”아이들은 전 남편에게 보내고, 아이들 없이 남자친구와 같이 왔다니. 내 생각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해의 폭을 넓혀보고 생각해 본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남자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 자연스런 마음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엄마 우리를 위해 만두를 정성스레 빚고, 자신의 남자친구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다. 그 누구보다도 가장 신나하며.“예은아, 이모와 함께 방방이에서 뛰어보자!”나의 사고를 확장하니, 한껏 들떠있는 자한이 엄마가 고맙게 느껴진다.
다름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얼마전 모임에서 한 아이가 놀이에 심취했는지, 노는 도중에 바지에오줌을 싸 버렸다. 아이의 엄마는 놀라지도 않은 표정이다. 한참을 아이에게 추궁을 하는데, 말이 기가차다. “니, 왜 말을 못하니, 선생님이 니 말을 안 듣니? 다른 아들이 니를 괴롭혔니?” 보통의 엄마들이라면 “선생님, 죄송해요. 우리 아이가 그만 실수를 했네요.”라고 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모임에서 자신의 아이가 가장 어려서, 선생님이 자신의 아이를 좀 더 챙겨주길 바랬다고 한다. 아이는 5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 3번째 어린이집을 옮겼다. 옮기는 과정이 모두 비슷하다. 어떤 사건이 있었을때, 엄마는 자신이 탈북자여서 우리 아이를 홀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과하게 반응하고, 결국 이탈하고. 그것을 자신도 안다. 분명 우리안에 북한이탈주민들을 향한 차별이 있기에 이런 반응도 있을 것이다.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은 차별을 만들고, 심지어는 상대방을 왜곡하여 바라보게 하기도 한다.
2018년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었을때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선물로 북한이 송이버섯 2톤을 보내왔다. 이 버섯은 당시 이산가족행사에 선발되지 못한 가족들, 4천여명의 고령자들에게 500g씩 전달되었다. 친가는 실향민, 외가는 납북자가족인 나는 부모양가가 이산가족이다. 내심 기대를 했건만 내게, 아니 어머니에게는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70대로 고령이지만, 현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은 8,90대가 아닌가? 분단의 세월이 벌써 73년이다.
답례로 한국정부는 서귀포 감귤 200톤을 보냈다. 북한에서는 감귤을 맛보는 것이 부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귤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북에서 귤은 모두 수입품으로 동남아 어느 지역에서 오는 남방과일이라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들도 남한에서 귤이 재배되는 것을 알고 있다. 98년도부터 민간단체가 주도해서 귤을 보냈고, 2001년부터는 정부가 지원해서 북한에 귤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 일은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으로 5.24제재가 들어가고 중단되었다.
당시 북측관계자들은 귤을 선물로 받고 불평을 했다고 한다. 남한에서 남아돌아 폐기해야 하는 감귤을 보냈다고 말이다. 물론 실제가 아니다. 이와 같은 사례는 고 정주영회장이 북한에 1,001마리의 소를 보냈을때와도 비슷하다. 당시 현대가에서는 최선을 다해 북한에 보낼 소를 준비해 줬고, 그 소를 순수한 선물로 보냈었다. 그런데 북한은 소들 중 일부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하며, 비닐과 같은 것들이 위에서 발견되었다고 비난하였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선물을 해 줘도 고맙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 참 불편하다. 그런데 이렇게 그들이 불평을 말하는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그에 따른 보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부가 감귤을 보낸 이후, 남한의 기업들을 위한 개성공단이 만들어 졌고, 고 정주영회장이 소를 보낸 이후, 현대그룹은 금강산을 개발할 수 있었다. 조금은 그들을 이해하려 애써 보면, 김정은이 말하는 대북지원에 있어 시혜적입장으로 자신들을 대하지 말고, 호혜적입장으로 대하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자, 선물을 개봉해 볼까요?”, “우와 이거 누가 준비한 겁니까? 내가 정말 갖고 싶었던 화장품인데, 너무 비싼건데 누가 한 건가요?”, “뭐를 준비할지 알아 몰라, 신경 좀 써 봤슴다. 맘에 좀 드십네까” 누가 봐도 최선을 다해 정성껏 준비한 티가 난다. 그에 비하면, 우리 동네 주민들이 준비한 선물이 초라해 보일 정도이다. 어쩌면 내게도 윗동네 사람들이 준비한 선물은 그 사람들의 표현을 빌려 ‘헐’하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사실 2018년에 남북이 선물한 송이버섯 2톤과 감귤 200톤의 가치는 말도 안되는 차이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잔뜩 퍼 준다고만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