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88]형제의 나라여! 무궁한 발전을 빈다
무엇보다 어느 나라나 ‘정치政治’가 가장 중요한 데, 우리의 ‘형제국가’라는 튀르키예(터키)는 더욱 그런 것같다. 주마간산격으로 훑은 튀르키예를 보고 느낀 게 그렇다. 1970년에 터키의 GNP가 523달러로 우리의 252달러에 비해 크게 앞섰다는데, 현재는 1만3000달러라 하니 많이 뒤떨어진 셈이다. 우리의 비약적인 성장에 비하여 잠재력(넓은 국토와 인구, 무수한 유적과 유물 등)이 풍부한 그 나라는 지진이 수시로 발생하고 종족 갈등과 군부의 정치 개입 등 정세가 불안한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북한도 60년대까지는 우리보다 잘 살았고,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았다고 하니, 정치라는 ‘요물’이 우리 개인의 삶과 국력國力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을 터.
아무튼,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동양인지 서양인지 헷갈릴 정도이고, 고대문명의 발상지로서 역사가 아주 오래된 나라이자 오랫동안 아시아와 유럽을 통합하여 큰 세력을 과시한 나라였다. 그 역사의 대강을 훑어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터키족의 조상은 중국 북방의 흉노족과 몽골고원의 돌궐족이 분명하다고 한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경부터, 돌궐은 6세기경 중국 북방에 나타난 유목민족이었다. 돌궐족이 남긴 비문의 ‘쾩튀르크’가 ‘천자天子’(하늘이 내려준 터키인)이라는 뜻이란다. 이들이 동쪽에서 알타이산맥을 타고 서진西進을 계속하여 정착한 곳이 현재의 아나톨리아반도. 히타이트, 프리기아, 리디아 등 고대의 여러 문명이 생겼다 사라지곤 했던 지역이다. 우리 한민족과는 고조선때부터 교류가 있었고, 고구려시대 수와 당의 침략 때에는 ‘형제국가’로 같이 싸웠다. 1453년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광대한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후 640여년 지속해왔던 나라. 세계제1차대전때 패전국인 독일 편을 들다가 쫄딱 망해갈 즈음, 그리스군을 물리쳐 전쟁영웅이 된 무스타파 케말에 의해 1923년 터키민주공화국으로 환골탈태, 오늘날의 튀르키예가 된 것이다.
이슬람 종교와 정치를 처음으로 분리시켜 세속국가를 선언한 초대 대통령 케말은 오늘날에도 전국민의 추앙을 받는 ‘아타튀르크’(튀르크인의 아버지)가 되었다. 오죽하면 그가 숨진 11월 10일 9시 5분만 되면 모든 차량이 운전을 멈추고 행인들까지 추모묵념을 울릴까. 그가 15년간 대통령으로서 남긴 업적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한다. 첫째, 우리나라의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비견되는데, 라틴문자를 기초로 하여 터키어(말은 있되 글이 없었다) 발음에 맞는 문자를 만들어 공포해 90% 문맹률을 단숨에 퇴치하는 문자개혁을 이뤘다. 둘째,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여 이슬람전통을 벗어난 서구화된 나라로 만들었다. 칼림프제도를 폐지하고, 여성참정권을 부여했으며, 모든 국민에게 성姓을 도입했다. 이슬람율법 대신 민법, 형법, 상법을 도입하는 한편 교육제도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독선獨善도 있었던 듯하나, 그의 애국적인 ‘터키공화국 정신’은 ‘케말리즘’이라는 용어로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고 한다.
단지 여러 차례의 군부 개입과 쿠르드족 등 종족 갈등이 상존하여 정세政勢가 늘 불안한 게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하나, 1923년 스위스 로잔조약에서 100년 조차租借한 무수한 섬들이 2023년 돌아오게 되고(홍콩, 마카오처럼 100년만에 터키가 된다), 우리나라 삼성의 기술로 석유를 첫 시추試錐하여 산유국이 된 만큼, 8000만명의 인구와 우리의 8배 크기의 국토 그리고 세계 최대의 관광국가로서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하고, 발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인 것같다. 20여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온 지금의 대통령 에르두안의 정치력이 올해 대선에서 심판대에 섰는데, 어느 나라의 전직 대통령 이름을 빗대 ‘에르두환’이라고 부른다니, 그의 경제개혁 실패를 반증하는 것이리라.
아무튼, 여행을 다녀온 후 뒤늦게 터키관련 서적 네 권을 읽으며 생각하게 하는 게 많았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관광명소를 일일이 소개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다. 어찌 능력이 부족한 소생이 그것을 다 옮길 수가 있을까. 다만, 비행기 타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빠른 시일내에(왜냐하면 나이가 70을 넘으면 너무 힘드니까) 꼭 한번은 가봐야 할 나라임에는 틀림없었다. 고대문명과 어울러진 신화와 성서의 무대 터키는 이슬람국가 37개국에는 들지 않지만 이슬람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전국 곳곳에 무수히 많은(몇 만 개가 된다던가) ‘모스크(이슬람사원)’들이 하루에 다섯 번씩 알라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모스크 건물 옆에 예외없이 세워진 ‘미나레’라는 첨탑은 서울 한남동 언덕빼기에서도 볼 수 있다. 그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우뚝한 모스크는 단연 ‘아야 소피아’이다. 비잔틴제국의 최대 걸작은 당시 ‘성 소피아성당’으로 900여년간 이름을 날렸고, 오스만제국때에는 이스람사원이었다고 한다. 아야튀르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다 최근 다시 사원이 되었다. 아야소피아 맞은편에 위치한 ‘술탄 아흐메드사원’은 오스만제국의 아흐메드1세가 지은 야심작으로 미나레가 6개나 된다. 4개이상은 술탄의 명에 의해 지어진 사원인데, 파란색의 타일 2만여개가 사원 내부를 장식했다하여 ‘블루모스크’로 불린다.
이스탄불은 '개와 고양이 천국'이기도 했다. 우리의 개보다 훨씬 큰 사자나 늑대와 같은 개들이 도심을 활보하고 있는데(2021년 기준 등록된 집고양이 7만5천마리, 길고양이 12만5천마리), 동물관리청에서 개의 귀에 달려 있는 인식표를 의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간식을 줘도 잘 받아먹는 게 고양이도 같다. 정부가 동물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은, 1910년과 1949-1956년 동물들을 무인도에 몰아넣고 학살한 사실이 있는데 그때마다 지진 등 큰 국난國難이 발생하여, 이를 ‘학살된 동물들의 저주’로 해석한 데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여행사마다 추천하는 상품이 제각각일 터인데, 모두투어에서는 ‘터키 관광 6종세트’를 권하는데, 대부분 고대문명의 유적지들이다. 옵션으로는 터키관광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타기’라는데, 3대가 덕德을 쌓아야 가능하기 때문인지 기상악화로 타지 못한 게 아쉽다면 아쉬운 일. 우리나라에서도 부여에서 열기구를 탈 수 있다니까, 봄이 되면 손자 초등학교 입학기념으로 태워줄 생각으로 서운한 마음을 접었지만, 기암괴석이 가득한 카파도키아 지역은 ‘세계 3대 열기구’로 이름이 높다한다(1인 250유로). 성경에 나오는 ‘초대 일곱교회’가 있으니 당연히 기독교인들의 성지聖地 순례코스이기도 하고, 누가복음의 누가 묘지도 있는데, 낡은 안내판이 국내 기독단체에서 세운 우리말로 되어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사는 ‘올림포스산’(2365m)에도 80명이 타는 케이블카로 올랐다. ‘황금의 손’ 미다스왕의 유적과 트로이목마가 있는 곳은 꼭 둘러봐야 할 터인데, 6박8일 여행으로 어찌 다 둘러볼 수 있으랴. 오스만제국의 황제 궁전은 크게 두 개가 볼만할 것이다. 톱카프 사라이와 돌마바흐체궁전. 하렘(궁전 여인들의 거소) 등도 볼만한 데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로마시대 지하 저수조라는 ‘예레바탄 사라이’는 정말 입이 쩍 벌어진다. 400년도 넘은 전통시장 카팔르 차르시(그랜드 바자)는 실크로드 종착지점에서 각종 상거래가 이루어진 시장이었을 터. 전체가 지붕이 덮어져 있고, 실핏줄처럼 뻗어있는 골목, 골목들은 길을 잃을까봐 함부로 들어서기가 겁났다. 알렉산더대왕의 관에는 손이 밖으로 나와 있다(죽으면 빈손)는 누군가의 말은 거짓인게, 당시의 관은 모두 석관으로, 알렉산더대왕의 석관(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은 엄청나게 컸으며, 사면에 걸친 옆의 부조들이 대왕의 관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능력 부족으로, 더이상 터키에 대한 생각과 글을 접기로 한다. 여행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더 늙기 전에 옆지기와 손 잡고 최소한 2주 정도는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 소회를 밝힌다. 개인적으로는 케밥(완전 개밥이다) 등 음식이 맞지 않았고, 거의 날마다 흉측한(무서운) 유서깊은 돌덩어리만 보고 올 수 밖에 없어 난감했지만, 그래도 가볼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원한 형제국가이므로(2002년 월드컵에서 3-4위전을 기적같이 두 나라가 하게 됐을까. 그 나라는 초대 대통령이 ‘영원한 국부’로 존경받고 있으니까. 그 나라는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가교의 국가이니까(유럽도, 아시아도 알아야 하므로). 프랑스인들이 터키 군인을 보고 깔보며 ‘칠면조turkey’라고 놀렸다지만, 소문자t와 대문자T자가 천지차이라는 걸 느낄 테니까. 형제국가라는데, 천손天孫의 나라 대한민국, 천자天子의 나라 튀르키예, 튀르키예가 형의 나라일까? 우리나라가 형의 나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