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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1
#요한계시록 #Revelation 3:1
사데 敎會에 보내는 말씀
1 사데 敎會의 使者에게 便紙하라 하나님의 일곱 靈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行爲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者로다
"To the angel of the church in Sardis write: These are the words of him who holds the seven spirits of God and the seven stars. I know your deeds; you have a reputation of being alive, but you are dead.
Et angelo ecclesiæ Sardis scribe : Hæc dicit qui habet septem spiritus Dei, et septem stellas : Scio opera tua, quia nomen habes quod vivas, et mortuus es.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Σάρδεσιν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ἔχων τὰ ἑπτὰ Πνεύματα τοῦ Θεοῦ καὶ τοὺς ἑπτὰ ἀστέρας Οἶδά σου τὰ ἔργα, ὅτι ὄνομα ἔχεις ὅτι ζῇς, καὶ νεκρὸς εἶ.
하나님의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의미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일곱 영이시라 해서 그분의 수가 일곱분이시라거나 하나님보다 격이 낮은 영적 존재 일곱이 모여서 하나님이신 성령이 되신다거나 하는 등의 뜻이 아니라 일곱이란 수가 상징하는 하나님으로서의 완전충만한 성품과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심에도 성부나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은밀하게 역사하시고 성부는 물론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와 명령을 따라 수행하시는 겸손함을 보이신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성부의 본질이시자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시기도 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완벽하게 통달하시는 분이시다. 주님께서는 이 땅에 남겨진 성도들의 신앙을 도우시기 위해서 천사들 중 하나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시자 당신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 자체를 보혜사로 보내주셨고 성령께서는 그러한 주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성도 각각을 당신의 거룩한 전으로 삼으셔서 내주하시면서 우리의 신앙을 친히 지도하신다. 그래서 사도는 성령을 받은 성도는 감히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할 수 없고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이시라 고백할 수 없다고 하였다. 구약시대에 몇몇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위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예언을 했는데 이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신들린 무당이 주절대는 것처럼 한 것이 아니라 정신과 의지가 활동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더욱 깊고 풍성하게 가르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죽이려고 사무엘의 동네에 왔을 때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거벗고 예언을 했던 것은 그가 당시에는 성령께서 떠나시고 악령의 지배를 받던 상태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성령께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로 택함받은 성도들이 거듭나기 전에는 적절한 때에 믿음이 발현될 수 있도록 삶의 모든 과정 가운데서 준비시키시고 성도가 중생받기로 정해진 때가 되면 그의 심령에 거하셔서 그의 믿음을 불러 일으키심으로써 성도가 자신의 의지로 믿음을 고백하게 하셔서 거듭나게 하신다. 중생 이후에는 성경을 알고자 하는 마음과 이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셔서 마치 성도가 자신의 의지로 성경을 알아가고 이에 순종하도록 역사하신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워낙에 은밀하시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성도의 믿음의 고백과 순종과 선행과 견고한 인내가 성도 자신의 의지로 말미암은 것인지 성령의 의지로 말미암은 것인지 숱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것처럼 성도의 선한 의지도 전적으로 성령의 의지이자 전적으로 성도 자신의 의지로 말미암은 것이다. 죄를 지으면 믿지 않는 자들보다 더 한 양심의 가책과 하나님 그리스도 앞에서의 죄책감을 갖게 하셔서 억지로나 형식적으로가 아니라 진정으로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령으로 회개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신자라 하면서 죄를 짓는 것에 무감각하고 점점 더 대담해지는 것은 그의 신앙이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은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서나 사람으로서나 성령을 소유하고 계시는데,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이신 성부와 성자께로부터 드나드시고 영원 전부터 성자 하나님과 연합하신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영에 완전충만하게 거하시며 그리스도의 혼의 의지를 따라 육의 입술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는 당신의 영이신 성령의 능력으로써 수정체의 모습으로 마리아의 자궁에 잉태되셨고 태어나셨으며 예수님의 몸이 자라심에 따라 성령께서도 그 영혼의 나이의 수준에 맞게 충만하게 거하셨다.
하나님의 일곱 별은 이 땅에 세워진 교회들을 의미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하기 때문에 어둔 밤하늘을 밝게 비추는 하늘의 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땅의 교회가 참으로 주님의 교회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외형적 요소로는 말씀과 성례와 권징을 얼마나 잘 시행하고 있는지에 달려있다.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가 스스로는 살아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어있다고 호되게 질책하시는데, 이로 미루어 볼 때 사데 교회는 아마도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정체성인 말씀과 성례와 권징 사역은 뒷전으로 하고 사람들의 보기에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그야말로 세속적인 사업들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게다가 차마 교회라는 정체성을 저버릴 수가 없어서 말씀과 성례와 권징을 시행할 때도 성경과 성령의 지도를 따르지 않고 자기들이 행하는 이 예식들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가 하면서 타성에 젖어 형식적으로만 했던 것 같다. 자기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세속 사업을 위해서라면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인 말씀과 성례와 권징의 시행은 언제든지 뒤로 밀리고 하찮은 대우를 받았던 것 같다. 교회의 세속 사업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거나 열성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교인들은 높은 자리에 앉혀 드높이고 말씀과 성례와 권징을 귀하게 여기는 성도들은 거기에 서 있든지 자기 발 밑에 앉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대했을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교회가 선호하는 정당의 후보들을 예배의 상석에 초청해서 하나님 그리스도보다 그 후보 정치인에게 더 큰 영광을 돌리는 것도 사데 교회를 따르는 것이다.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기보다 돈 잘 벌고 잘 쓰는 법이나 연애나 결혼을 잘 하는 법이나 공부를 잘 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사데 교회를 따르는 것이다. 예배가 교회의 목적이 아니라 영어 학습 등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은 사데 교회를 따르는 것이다. 이런 잡다한 세속 사업들로는 교회 안이나 밖이나 사람들로부터 살아있는 교회라는 명성은 들을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령과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시기에는 죽어있는 교회에 불과하다.
#20200221
#창세기 #Genesis 제 36 장
에서의 자손(대상 1:34-37)
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3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4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5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에서는 부모와 동생 야곱과 함께 지내던 젊은 시절에 부모의 신앙을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소견에 좋은대로 정욕을 따라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게다가 한 명의 아내로는 자기의 정욕을 만족시킬 수가 없어서인지 두 명의 아내를 구한 것이다. 또한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긴 후에서야 자기 아내들이 부모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서 아버지 이삭의 이복 형인 이스마엘이 딸을 새로 아내로 들이게 된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어미 하갈을 따른 애굽인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에서는 또 한 명의 이방인 아내를 들인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비록 잘못된 방식이기는 해도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은 야곱의 인생이 첩첩산중 설상가상 험난한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미움을 받고 장자의 명분과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야곱의 예물을 거절할 정도로 많은 소유를 얻고 평탄한 삶을 누린다. 물론 모든 풍요로운 인생이 하나님께 버림 받았고 모든 험난한 인생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땅의 풍요를 지나치게 추구하고 의지하는 것이나 자기의 빈천함을 원망으로만 일삼는 인생은 여전히 중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참된 신자라면 풍요하면 풍요한대로, 빈천하면 빈천한대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족하게 허락하신 은혜로 알고 자족하고 감사하며 그 받은 수준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풍요로운 자의 자족함이란 그저 자기만 그 풍요를 누리며 걱정근심 없이 편안함을 누리는 것에 만족하는 세속인의 수준이 아니라, 그 풍요를 주신 분이 누구신지와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을 따라 선하게 활용하도록 힘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 뜻은 크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데 써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필요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유난히 빈천한 이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반면에 빈천한 신자의 자족이란 자기의 가난을 운명론적으로 체념하면서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다. 신앙 안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하되 그럼에도 더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늘 하루 일용할 것을 주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누군가가 자기의 궁핍함을 알고서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이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심을 감사하며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어쩌면 교인들로서는 인정하기 어렵겠지만 여기서도 에서의 탁월한 덕성을 엿볼 수 있다. 알다시피 에서는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게 맞이한데다가 야곱 일행이 자기 거주지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것만 해도 자기 소유를 동생을 위해서 많이 내어준 것인데 둘의 소유가 너무 많아져서 그 땅이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자기가 평생 일군 터전을 동생 야곱에게 흔쾌히 넘겨주고 미련없이 떠나는 대인배의 품격을 보인 것이다. 이것만 본다면 에서는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것보다도 더 수준 높은 덕성을 보인 것이다. 부모로부터 재산 상속권을 동생에게 빼앗긴 형이 부모 재산 포기하고 자수성가 하여 큰 재산을 모으고 사업을 번성시켰는데 그런 동생을 용서하고 동생에게 자기 사업을 넘겨주고 떠난 것과도 같다. 오늘날에도 형제지간이라 하더라도 얼마 안되는 부모 재산 상속 때문에 형제 관계를 저버리는 경우가 일상 다반사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에서의 덕목은 가히 최고의 인격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성경에서 단지 에서가 젊었을 때 보인 망령된 짓과 그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다는 것에만 착념하여 그의 인간적인 도덕성까지 폄훼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우리는 비단 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보다 더욱 탁월한 지성과 감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이들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보다 탁월한 그들의 덕성은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 없으므로 전부 무시하는 것이 옳은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신자들보다 탁월한 세속인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선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람의 공로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세속인들의 탁월한 덕성을 보고 우리 스스로의 행실을 돌아보고 그들보다 못한 우리 수준을 부끄러워하며 겸손함으로 선행을 이루게 하시는데 있다. 또한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이 땅의 주인은 신자인 우리가 아니라 세속인들이고 우리는 단지 그들에게 얹혀사는 나그네 같은 존재임을 알고 우리의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개발하고 마련해주는 세속인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들이 개발하고 발전시킨 기술과 문명과 제도의 혜택을 우리가 이 땅에서 덤으로 누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마치 이 땅의 주인이 교회인 양 떼거지로 뭉쳐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선동질로 교회의 뜻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의 선한 제도에는 순응하되, 성경에 거스르는 것들에는 우리의 신앙을 따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잠잠히 거부하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자세이다.
9 세일 산에 있는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족보는 이러하고
10 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11 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요
1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13 르우엘의 아들들은 나핫과 세라와 삼마와 미사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14 시브온의 손녀 아나의 딸 에서의 아내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이러하니 그가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에서에게 낳았더라
15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으로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16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아다의 자손이며
17 에서의 아들 르우엘의 자손으로는 나핫 족장, 세라 족장, 삼마 족장, 미사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르우엘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자손이며
18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의 아들들은 여우스 족장, 얄람 족장, 고라 족장이니 이들은 아나의 딸이요 에서의 아내인 오홀리바마로 말미암아 나온 족장들이라
19 에서 곧 에돔의 자손으로서 족장 된 자들이 이러하였더라
에서의 후예 중에는 아말렉 족속이 있는데 이 아말렉은 형제를 사랑한 에서와는 달리 형제 족속인 이스라엘에 대해 더할 나위 없이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철저히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에게 아말렉 족속을 남녀노소는 물론 그 가축들과 소유들도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히 진멸하라고 명령하신 것이었다. 사울은 이 명령을 거역함으로써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마치 아합이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넘기신 아람 왕 벤하닷을 자기 마음대로 용서한 것과 같은 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아멜렉과 같이 도저히 갱생 가능성이 없이 잡혀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없는 짐승 같은 자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조직의 무사안일과 기득권만을 위해 서슴없이 악을 행하는 검찰과 지금은 사쿠라당으로 바뀐 토착왜구 자한당 무리들이 그러하다. 사실을 전하지 않고 어떻게든 거짓과 왜곡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언론이라 하는 것들이 그러하다. 300여 명의 어린 자녀들을 한꺼번에 잃어 가슴에 묻은 부모들 앞에서 어묵과 피자를 쳐먹고 조롱하는 일베가 그러하다. 하나님의 뜻이라며 성령을 모독하고 광화문에서 반정부 집회를 일삼아 국가전복을 선동하는 전광훈과 그 추종자들이 그러하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이 한창인 것을 알고서도 진료를 거부하고 전국적으로 싸돌아다녀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신전지인과 이를 은폐하려는 신천지가 그러하다. 신자라 하면서 이런 자들에게도 긍휼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사울과 벤하닷을 살린 아합의 죄를 짓는 것과 같다.
세일의 자손(대상 1:38-41)
20 그 땅의 주민 호리 족속 세일의 자손은 로단과 소발과 시브온과 아나와
21 디손과 에셀과 디산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세일의 자손 중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요
22 로단의 자녀는 호리와 헤맘과 로단의 누이 딤나요
23 소발의 자녀는 알완과 마나핫과 에발과 스보와 오남이요
24 시브온의 자녀는 아야와 아나며 이 아나는 그 아버지 시브온의 나귀를 칠 때에 광야에서 온천을 발견하였고
25 아나의 자녀는 디손과 오홀리바마니 오홀리바마는 아나의 딸이며
26 디손의 자녀는 헴단과 에스반과 이드란과 그란이요
27 에셀의 자녀는 빌한과 사아완과 아간이요
28 디산의 자녀는 우스와 아란이니
29 호리 족속의 족장들은 곧 로단 족장, 소발 족장, 시브온 족장, 아나 족장,
30 디손 족장, 에셀 족장, 디산 족장이라 이들은 그들의 족속들에 따라 세일 땅에 있는 호리 족속의 족장들이었더라
에돔의 왕들(대상 1:43-54)
31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
32 브올의 아들 벨라가 에돔의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의 이름은 딘하바며
33 벨라가 죽고 보스라 사람 세라의 아들 요밥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4 요밥이 죽고 데만 족속의 땅의 후삼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5 후삼이 죽고 브닷의 아들 곧 모압 들에서 미디안 족속을 친 하닷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 이름은 아윗이며
36 하닷이 죽고 마스레가의 삼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7 삼라가 죽고 유브라데 강변 르호봇의 사울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8 사울이 죽고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고
39 악볼의 아들 바알하난이 죽고 하달이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그 도성 이름은 바우며 그의 아내의 이름은 므헤다벨이니 마드렛의 딸이요 메사합의 손녀더라
40 에서에게서 나온 족장들의 이름은 그 종족과 거처와 이름을 따라 나누면 이러하니 딤나 족장, 알와 족장, 여뎃 족장,
41 오홀리바마 족장, 엘라 족장, 비논 족장,
42 그나스 족장, 데만 족장, 밉살 족장,
43 막디엘 족장, 이람 족장이라 이들은 그 구역과 거처를 따른 에돔 족장들이며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
에서의 후예들인 에돔 족속들은 자기 조상 에서가 동생 야곱과 화목한 것을 본받지 않고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버림받은 족속으로 전락하고 만다. 에서가 동생을 용서하고 자기 터전을 내어줬어도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언약 자손 이스라엘 민족을 대적한다면 그 받을 형벌은 얼마나 극심할지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을 비롯한 수많은 선지자들은 형제 민족 이스라엘을 대적한 에돔 족속이 받을 멸망에 대해 상세히 예언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구속사역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에서의 후예 에돔 족속의 족보가 이렇게 자세히 기록된 이유는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을 더해주는 하나의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 역사적 기록은 오늘날 고고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 또한 성령께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주시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