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독립과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세 번의 큰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
본이 패망을 하고 물러가자 북위 16도 이북은 중국이 점령을 하고 있었고 이남은 영국이 점령을 하고 있었다.
이에 호치민을 중심한 공산세력이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하자 프랑스가 방해를 하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을 하게 된
다.
그러나 프랑스가 패하면서 7년 동안의 전쟁이 막을 내리고 1954년 5월 7일 제네바 협정으로 프랑스는 물러가고, 북위 17도를 경
계로 북쪽은 소련의 지원을 받는 북베트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남부로 임시 분할이 되었다.
그러나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 내 친(親)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은 미국의 개입과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곧 베트남 전
쟁(1955∼75)이 발발을 하게 된다.
미국은 동남아에 공산주의가 확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남베트남을 대신해서 전쟁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 한국도 참여를 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국내외의 전쟁반대 여론에 의해 1973.1.27. 파리에서 휴전협정을 하였으나 휴전협정을 깬 북베트남이 1975.43일
사이공을 함락하면서 두 개의 베트남은 공산주의 베트남으로 통합되면서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1978년 베트남군과 캄보디아군 사이에 국경분쟁이 일어나고 수천 명의 화교들이 정부의 정책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베트남을 탈출하면서 캄보디아·중국과의 관계가 악화 되었다.
그러자 중국이 베트남에 침공해 중국-베트남 전쟁(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 1979년 2월 17일 ~ 1988년 1월)이 벌어졌다. 아시아 공
산권 국가들의 대분열을 상징하는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명목상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었지만 결국 모두 지친 가운데, 베트남
은 캄보디아에서 물러났고, 역시 중국도 베트남에서 물러나며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후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를 실시하였으나 실패로 인해서 국가경제가 피폐해지자 1986년 계획경제를 포기하고 혼합경제(자본주
의 경제체제의 일부)를 도입하면서 1990년 이후 여러나라들과 국교를 맺게 되고 우리나라와도 1992.12.22.일 수교를 맺게 된다.
소련과 중국 북한이나 쿠바 등 공산주의 국가들이 가난한 것처럼 베트남도 국민소득이 4,623(2024 상반기)달러로 세계 122위이
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은 계획경제체제 때문으로 지금 모든 공산주의 국가들은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다 버렸
거나 자본주의와 혼합된 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는 중인데 만약 베트남이 공산주의로 통일이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잘살
았을 것이다.
만약 6.25 때 북한이 적화통일을 하였더라면 지금 우리는 베트남과 같은 나라의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베트남이 저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를 받아 들인 대가이니 자업자득인 셈이다.
***
라이따이한 이야기
우리나라는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 곧 베트남의 남북 전쟁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의 요청에 의해 남베트남의 편
에서 월남전에 참전을 하게 되었으며, 1968년부터 1973년까지 32만 명이 파병되었고 5,099명이 사망하고 10,232명이 부상을 당
하였다.
라이따이한은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과정에서 한국 군인이나 군속(軍屬)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로 그 숫
자가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5,000명에서 30,000명으로 추산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한국의 남자들이 무책임하게 모자를 버려두고
한국으로 귀국을 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라이따이한들은 어머니와 함께 공산주의정권의 베트남에 남아지게 되면서 침략군의 자손이라는 굴레를 쓰고 어머
니와 함께 멸시를 받으면서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베트남과 수교가 되면서 많은 라이따이한과 그 어머니들이 그들이 적어준 인적사항을 가지고 한국의 아버지를 찾으려고
하였지만 이미 한국에서 가정을 가진 아버지들이 그들을 외면하고 말았으며 아버지를 만난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하다.
민간단체가 국가에서 그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려고 하였지만, 비도덕적인 아버지들이 그들을 만나는 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지금 그들의 나이가 50대에서 60대 사이로 그들도 가정을 꾸려서 자녀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아버지들이 외면을 했다고 하더라도 국가에서 그들에게 비공식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
는데, 공식적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공식적으로 그들을 초청하기도 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하는 등의 혜택은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들의 슬픔과 비통에 대해서 국가차원에서 위로를 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들의 마음속에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 베트남보다 잘 사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 같은 것을 가
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멸시와 고통 속에서 살 때는 자신의 혈통이 저주스러웠을지 모르지만 지금 한류가 전 세계를 누비는 지금은 그들이 한국인의 혈통
임을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을지라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베트남을 다녀오면서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비극 속에서 태어난 반쪽은 우리의 핏줄인 라이따이한을 생각해본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끔하고 한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도 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보면서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게 된다.
베트남은 2차대전 후 독일과 우리나라와 더불어 분단국가였으나 제일 먼저 공산주의 국가로 통일을 하였다.
그 다음 독일이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을 하였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이 대한민국으로, 우리도 반드시 민주주의 국가로 통일을
해야 베트남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공산주의...
아직도 우리 주변에 그 꿈을 버리지 않은 자들을 보는 현실이 두렵다.
첫댓글
글 잘 읽고 갑니다.
베트남과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전적으로 계획경제와 공산주의 채택 때문이라고 단순화합니다.
즉, '만약 베트남이 공산주의로 통일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잘 살았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역사,국제 정세, 전쟁의 여파 등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하지않고 오직 정치체제 하나만의 결과로 치부하는 미흡한 인과관계로 볼수 있으며
또한 만약이라는 가정은 반사실적 가정의 추론 오류를 낳을수 있지요.
반드시는 아니겠지만 공산주의의 경제체제가 상당한 공헌을 한 것을 부인할 수 없지요.
공산주의를 하고 잘 살았던 나라는 지구상에 없었지요
공산주의 노선을 버리면서 그나마 살만해졌다고 봐야지요
지금도 공산주의 노선을 끝까지 따르는 북한과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의 하나임도 부정할 수 없지요
소련과 중국이 교조주의와 수정주의로 갈등을 겪었던 것은 소련이 경제적으로 미국에 형편없이 밀리게 되자
공산주의 노선을 버리고 수정주의를 체택하게 되었고 그러자 중국이 공산주의에 대한 배신자라고 욕을 하면서
아주 사이가 나빠지게 되었지요
그러다 결국 중국도 견디지 못하고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들고 나오면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게 되었고
배트남도 공산국가를 건설하고 그 이념대로 통치를 하다가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하게 되면서
경제를 살리기 시작했지요..
체제의 전복이 두려워 끝까지 공산주의 경제정책을 고수하는 북한과 쿠바가 저리 못사는 것은 누가 뭐래도
자본주의 경제체재를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임은 북한과 쿠바도 알고 세상사람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요.
"공산주의 국가는 가난하다"는 진리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는 가난하다는 말은 정답 입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