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
본 것에 대한 느낌은 다양한 말들을 동원하여 내용을 형성한다.
시인은 이런 말들을 다루는 기술자들이다.
남들보다 좀 더 많이 고민했던 자들이 있다.
좀 더 먼저 태어나 조금 더 많은 삶을 살아간 자를 두고
우리는 선생이라 부른다.
먼저 선先, 날 생生,
우리는 이 두 개의 단어를 합쳐서 남을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으로 지칭한다.
먼저 태어났기에 가르칠 자격도 주어지는 샘인 것이다.
시인은 굳이 시를 쓰고 시집을 낸 사람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다.
배울만한 사람을 시인으로 간주해도 부방하다.
공자는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즉 세 사람만 모여도 나의 스승이 될만한 사람은 그 안에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시인도 그런 존재로 삼아주면 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또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남들처럼 살다가 죽으면 자기만 손해다.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죽어가는 삶이야말로 진정 가련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자신에 대해 모른다는 지경만큼 끔찍한 현장도 없다.
진정으로 불쌍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를 선생으로 두고 열심히 배워보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일이 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할 대상, 가르침을 주는 행위의 모범으로
철학자는 시인과 그의 말을 꼽는다. -052
출처> 도서>[삶이라는 지옥을 건너는 70가지 방법] 이동용 지음
1장 <<이성>> 편〈말공부는 삶의 기술이자 수양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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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solbalam1224 <유성> 박한곤
무엇에서라도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아주 작은 배움도 배움은 배움이다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남들처럼 살다가 죽으면 자기만 손해다”<본문>
즉 남의 흉내나 남을 의식하는 삶은
생각의 협곡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자!
어떤 대상을 흉내 내는 삶이나 양심이 허용되지 않는
외형적인 삶은
결국 부작용을 낳고 사상누각沙上樓閣으로
약한 바람에도 날려 허물어진다. .
자기가 자기처럼 사는 것이 반석 위에 세운 자기 보류이며
진정한 삶의 자유를 찾은 셈이다.
명심보감에 기록된바
인생불학 여명야행 人生不學이 黎明夜行이라 했던가.!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에 비유했다.
배운만큼,
그래서 아는만큼 캄캄한 밤길에서 여명의 세벽길은 기약된다.
노년의 배움은 세계의 흐름 추이에 어긋나지 않는
지식의 신재생 에너지를 재활용하는 계기로 여길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때
두려움 같은 잡생각은 사라지고
정신은 새로운 활력을 찾는다.
그래서 배움을 즐김으로 건강한 삶이 된다.
첫댓글
가르침 감사함니다
가르침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