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를 볼 때 우리는 귀신이 깜짝 나타나면 소리를 지르거나 몸의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귀신이 영화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어째서 허구 속의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나는 오히려 허구이므로 두려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래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 한다. 알 수 없다는 것은 예측과 통제의 불가능을 의미한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의 이해 너머에 있는 신을 경외하기도 하고, 과학이나 수학 같은 객관적인 방법을 통해 자연을 측정하고 법칙화하여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막 마주하는 귀신은 측정하고 법칙화할 시간이 없다. 귀신이란 존재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시청자 입장에선 답답하고 귀신을 대처하는 방법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첫댓글 "귀신이 깜짝 나타나면"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지 않은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지요,. 사실 어느 정도는 그것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영화의 클리세(일본어로는 쿠세라고 합니다마는)를 따르는 스릴러 영화는 흥미도가 떨어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클리세, 쿠세라고 하는 것은 전형적임, 곧 익숙한 서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깜짝 나타난다는 것은 그러한 서사에 대한 기대를 어긋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럴 때 우리는 감독이 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을까, 왜 그 장면에 그렇게 나왔을까 등등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고, 사실은 일어나야 합니다. 늘 익숙하게 생각했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똑 같다고 생각함으로써 그것을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그것에 잘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