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8.29.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
예레1,17-19 마르6,17-29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
“내적 힘과 평화”
“내 입은 임의 찬미로 가득 차 있고,
진종일 당신께 영광을 드리나이다.”(시편71,8)
오늘 성인 기념일 아침 성무일도시 찬미가가 아름답습니다.
"드높은 공덕갖춘 행복한이여, 당신은 깨끗하기 눈과도 같고
죄라곤 모르옵는 능한순교자, 은거를 사랑하신 예언자시여."
오늘도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대추열매 토실토실 익어가고 밤송이 벌어져 밤알 떨어지며, 배열매 익어가는 향기 그윽하니 깊어가는 가을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네팔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2482명 실종자의 참사를 부른 원인을 수많은 전문가는 기후변화, 즉 인간이 산업화 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 기온을 상승시킨 효과가 그 배경에 있다고 지목합니다. 인간 중심의 육적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영적 삶으로의 전환이 절박해집니다. 옛 현자도 중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중심이 바로 선 사람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이런 사람만이 경쟁에 임할 자격이 있다.”<다산>
“스스로 바로 잡은 후에 활을 쏘고, 적중하지 않더라도 이긴 자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돌이켜 본다.”<맹자>
가톨릭 신자 동료들이 주고받은 문자 내용도 충격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지나가고 마지막 남는 자리는 나 혼자뿐이니 내가가면 세상도 끝나는 것, 걱정할 필요 없이 살다가 가세.”
“동감”
그대로 하느님 중심의 초록빛 믿음, 초록빛 희망의 부재를 보여줍니다.
엊그제 30년 만에 저를 수소문하여 수도원을 방문한 자매의 면담성사중 일화도 잊지 못합니다. 당시 원자력병원에 암수술후 중병상태에 있던 분으로 희미하게 기억하는데 기적적으로 믿음으로 살아난 분이었습니다.
“그때 고백성사중 저는 대죄를 고백했습니다. 제가 어느분을 정말 미워했는데 그분이 뜻밖에 죽었고 저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신부님은 괴로워하지 마라,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 목숨은 하느님 손에 달린 것이니 당신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그분의 운명이었던 거다.”
제 조언을 듣고 비로소 자유로워졌다는 고백을 들려주었습니다. 이런 적절하고 지혜로운 조언 역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에 기인한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입니다. 복된 세례자 요한의 천상탄일을 기리는 날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철저했기에 정의와 진리를 위해 순교한 분입니다. 오늘 복음 중 삶의 중심이 없는 헤로데를 위시한 다른 악인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문득 성 요한 세례자에게 드리고 싶은 자작시 두 편이 생각납니다.
“함께 해도
홀로 우뚝 선다는 것은 참 고독한 일이다
구도자의 숙명이다
자나깨나 임향한 일편단심, 뙤약볕 임사랑에
해처럼 환한 얼굴
꽃중의 꽃 왕중의 왕 인자무적 대인의 풍모
높이서 멀리서 두루두루 보살피는 모습
마냥 넉넉하고 편안하다
화려하고 맵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 이름 해바라기!”<구도자;2001.7.19.>
광야의 예언자이자 구도자인 하느님 중심의 사람, 성 요한 세례자를 연상케 하는 해바라기입니다. 큰 키, 넓은 얼굴에 늘 미소 짓던 해바라기를 닮은 고 정훈만 요한 세례자 수사가 생각납니다.
“매일 밤
임 좋으심 생각하다 잠들고
매일 새벽
임 그리움에 잠깨어 일어난다
임과 함께
마치고 시작하는
하루하루가 파스카의 삶이다”<일편단심;2001.7.21.>
2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는 일편단심,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성 요한 세례자가 그러했을 것이며 앞서 제1독서의 예레미야 예언자가 그러합니다. 두 분다 고립무원, 사면초가의 고독한 처지에 있던 구도자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분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자포자기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기도가 성 요한 세례자의 순교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하느님,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복된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성자의 탄생과 죽음을 미리 알려주셨으니, 진리와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그를 본받아, 저희도 끝까지 하느님의 진리를 믿고 증언하게 하소서.”
살아 있는 그날까지, 세례자 요한처럼, 하느님 중심의 순교적 삶에 항구할 것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복음의 배치도 요한 세례자의 죽음이 악에의 패배를 뜻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 앞부분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는 장면이, 세례자 요한의 죽음 다음 장면은 예수님이 오 천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뒤를 잇는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면면히 계속되는 오늘 교회의 우리들이요 그대로 하느님의 궁극의 승리를, 파스카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내적체험의 고백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에 철저한 <주님의 전사>였는지 깨닫고 배웁니다.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오늘 네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리라. 그들이 너를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죽어야 끝나는, 살아 있는 그날까지 계속될 영적전쟁이요,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의 배경에는 천하무적의 주님이 늘 함께 계시다는 말씀이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이 납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에 철저할 때 깨닫는 진리요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나만은 언제나 희망을 가지고
날로 더욱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71,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