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의문형으로 쓰였다 / 유현아 충돌 후 약 2분 뒤 신안호는 기관실 침수로 기관이 정지되었고 선장의 퇴선 명령에 따라 선원 16명 전원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중 구조된 사람은 14명, 안타깝게도 2명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아 실종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마산파출소 구복출장소장 등 2명은 태풍으로 인한 관내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마을 어선의 협조를 얻어 마산 구산면 일원 해상 순찰 중 어장 부이에 매달려 있던 선원 2명을 발견하고 구조하였다. 신안호를 들이받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로빈 보란자호의 선장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2002년 8월 31일 태풍 루사를 피해 정박해 있었고, 오후 4시 10분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태풍도 없었고 충돌도 없었다. 설명할 내용이 아무것도 없다. 아니 모른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의 명령에 따라 승선자 476명 전원이 가만히 있었다. 그중 172명은 탈출하였고 9명은 아직도 세월호와 함께 기다리고 있다. 가만히 있었고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세월호의 선장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고 한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바다 위에 있었고, 오전 8시 50분이었다. 그리고 304명은, 304명은, 삼백네 명은? 누구도 그 수심을 알 수가 없다.* 나비들만 날아다니는 공허가 있다. * 김종삼 「민간인」 변용.
-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창비, 2023)
* 유현아 시인 1970년 서울 출생,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수료. 2006년 전태일문학상 수상하며 등단 시집 『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 『주눅이 사라지는 방법』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 조영관문학창작기금,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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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 김종삼(1921~1984)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水深)을 모른다. - 시집 『북치는 소년』(민음사, 1979)
***************************************************************************** 질문으로 가득 찬 유현아의 두 번째 시집 『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을 주말 동안 읽으면서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에 지나지 않은 슬픔"을 살아내고 있는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 의문형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비틀린 삶과 죽음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란 사실이, 미래에도 답이 없을 거라는 전망이, 시인으로 하여금 이런 시를 쓰게 했을 테지요.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라는 김종삼의 문장은 여전히 살아서 우리에게 무겁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마도 시인으로 하여금 이런 시를 쓰게 했을 테지요. 시인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의문이지만, 그래도 질문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 질문만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인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칠석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생일이기도 하지요. 끝으로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의 시 「칠석」을 띄웁니다. 이슥한 밤 저 멀리 상수리 숲 언저리에 작은 등불이 가물거리는 것이 마치 아다치가하라*의 오두막처럼 매혹적이다 무사시노(武蔵野)라는 이름이 살아 숨 쉬는 수풀 무성한 길 이곳에 오면 아직도 수많은 별들을 만날 수 있다 은하수에는 잔물결이 일고 강기슭엔 견우성과 직녀성이 오늘 밤에도 어쩐 일인지 깊이 숨죽이고 있다 “당신들! 내 뒤를 따라온 거야?” 갑자기 풀숲에서 붉은 구릿빛 알몸뚱이가 튀어나와 위협한다 훅 하고 풍기는 소주 냄새 나는 흠칫 방어 태세를 취한다 방어 태세를 취하는 건 얼마나 나쁜 버릇인가 “오늘 밤은 칠석이잖소 별을 보러 왔지요.”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도 태평하게 어둠 속을 흐른다 “치일석? 칠석…… 아아 그랬군 난 또, 내 뒤를 쫓아왔나 싶어서…… 이거…… 실례했습니다.” 칠석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온순히 등을 보이며 되돌아가는 잠방이 차림의 아저씨 그는 마법의 「키요의 집」* 사람이었다 몇 세대가 살고 있는지 다 쓰러져 가는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귀여운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새 그 아이도 중학생이 되어 나타났다 개조차 낯선 이의 접근을 막으며 맹렬히 짖어 대고 무더운 한여름 밤 축시(丑時)가 되면 으레 펼쳐지는 조선말의 화려한 싸움, 벼랑 끝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그 집 근처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 저녁 내리는 비는 견우성이 바삐 배 저어 건너올 때 노에 이는 물보라인가」 기원전부터 생겨나 서서히 모양을 갖춰 온 한민족(漢民族)의 아름다운 옛이야기 일찍이 만요(万葉) 사람들이 사랑했던 소재도 기원을 따지면 저 멀리 고구려, 백제를 거쳐 전해져 온 것이 아니었던가 문자며 직물이며 철이며 가죽이며 도자기며 말 사육이며 그림이며 종이며 양조 기술이며 바느질하는 사람이며 대장장이며 학자며 노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전해져 왔던가 옛 은사(恩師)의 후예들은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경원시되고 한여름 밤 저녁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조차 미행인가 하고 두려워한다 내 마음은 까닭 모를 슬픔으로 가득하다 차가운 은하를 올려다볼 때마다 이제부턴 틀림없이 나를 휘감으며 놓아주지 않겠지 온몸에서 풍기던 강한 소주 냄새가 훅 하고 - 이바라기 노리코, 「칠석」(『여자의 말』, 달아실, 2019) 전문 2023. 8. 21. 달아실 문장수선소 문장수선공 박제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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