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법. 빨리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아신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H엔터테인먼트에서는 아신 알리기 프로젝트를 실시하느라 정신없다. 장본인인 아신 또한 바쁜 스케쥴로 인해 정신없다. 슈헤이와는 가끔 회사에서 마주칠까말까 했다. 집에서도 슈헤이가 늦게 들어오기 때문에 거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으며 아이코와 수다 떨다가 아신이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에 아이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왠 한숨이니?”
“하아, 아저씨가 보고싶어.”
“몇일 째 못보는거야? 한 이틀?”
“아니야, 나흘째야. 이러다가 내가 죽겠어!”
“쿡쿡, 완벽하게 꽂혔구나?”
“너는 좋아하는 남자 없니?”
“!”
아신의 질문에 당황한 아이코는 다이어리에 스케쥴을 정리하다 펜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신은 펜을 주으며 아이코의 다이어리 위에 올려놓았다. 오로지 침묵만이 살길이다. 라며 생각한 아이코. 글나, 그녀의 침묵에 아신이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뭐야, 뭐지? 아신이 눈치 챘나? 아이코의 등에서 땀이 비 쏟아지듯 흐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팔로 툭툭 치며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세츠지?”
“헉!”
“언제부터야?”
“그, 그것이…. 끼야!”
“빨리 말하지 못할까!”
아신의 두 팔이 아이코의 가슴을 움켜 쥐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던 아이코가 간지러웠던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면 두 여자가 레즈비언인 줄 알 것이다. 한참동안 웃다가 포기했는지 고개를 끄떡이며 항복이라 외치는 아이코. 그리고는 아신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누군가 들으면 큰일이니 말이다.
“세, 세츠군을 좋아해.”
“꺄아악! 축하해! 언제부터야?”
“소리 좀 낮춰! 그러니까, 그가 처음 데뷔했을 때부터….”
세츠가 데뷔했을 때 그의 나이는 15세. 우리나라 나이로는 16세이다. 아이코는 고1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했다는 뜻이다. 아이코는 늘 세츠를 동경해 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로 뛰어 들었고 힘든 무명의 시절을 겪고 지금의 그까지 올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지켜본 아이코는 그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 세츠의 노래와 무대 앞에서 열정적인 춤을 보고 또 한번 반했다고 한다. 아신은 고개를 끄떡이며 아이코의 따뜻한 s을 꼬옥 맞잡았다. 아신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그녀석 아직 애인 없잖아.”
“하지만, 좋아하는 ‘그녀’가 있는걸….”
“에? 누군데?”
“…비밀이야.”
주인공이 바로 아신이란걸 아이코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만약 그녀가 알게되면, 모두가 곤란해 할 것이다. 아신도 슈헤이도 사이가 어색해 질지도 모른다.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코를 향해 아신이 소리친다.
“네가 얼마나 매력 있는데! 여자는 강하게 나와야 해! 그럼 그녀석도 움직여 줄거야!”
“저, 정말? 하지만, 난 너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는데….”
매번 도움만 받는 것이 미안했던 모양인지 아이코가 울먹인다. 계속 우울한 표정을 짓는 아이코의 등을 찰싹 때렸다. 덕분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아이코. 뾰루퉁한 아신이 자신만만한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천하의 민아신을 믿지 못하는 거야? 베스트?”
“쿡, 믿어.”
“누구를?”
“민아신. 너를.”
“좋아! 다 덤벼! 가자.”
“킥킥.”
역시 그녀는 아무도 못 말린다.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여자다. 라이벌이라기보다 사랑조차 함께 공유하고 싶은 기분 좋게 만드는 천사랄까? 아신은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를 풀러 머리에 싸매며 슈퍼맨 포즈를 취했다. 그녀의 코믹한 모습에 아이코와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이 크게 웃기 시작한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가 아신의 스카프를 풀러 다시 목에 묶어 준다. 순간, 고개를 갸웃 거리던 아신이 눈을 뜨며 아이코를 쳐다 보았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아이코. 누구지? 설마? 속으로 중얼 거리던 아신이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따뜻한 두 손이 아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녀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슈헤이의 한마디에 짤렸다.
아신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슈헤이. 그의 발언에 얼굴이 붉어지는 아신 이었다. 덕분에 얌전해진 아신을 보며 작게 웃는 슈헤이가 아이코에게 말했다.
“아이코, 촬영 끝나면 바로 집으로 보내.”
“네.”
“슈..”
“이따 보자.”
크으윽! 결국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헤어져야 했다. 아무리 지금 자신의 모습이 야시시하다만, 그래도 한번쯤 얼굴을 보여주면 좋지 않은가? 울먹이는 아신을 위로해 주는 착한 아이코였다. 드디어 힘든 촬영이 시작 되었다. 이번에는 섹시 컨셉으로 아신의 늘씬한 다리와 풍만한 가슴이 드러나는 빨간 원피스를 입었다. 유혹적이고, 매력적이며 최대한 섹시하게 보여야 했다. 연기에 집중하는데 저만치 세츠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옆집에 살면서도 바쁘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아신의 눈빛이 다른 곳으로 향해 있자 그것을 눈치 챈 감독이 날카로워 졌다. 감독이 호통을 치는 바람에 어깨를 움찔 거린 아신. 또다시 지적을 당하자 긴장해야 했다. ‘호랑이 감독’이란 별명까지 갖고 있는 감독이다. 슈퍼 모델이던, 아마추어 상관하지 않고 엄하게 가르치는 유능한 감독이었다. 마음을 독하게 먹자고 다짐한 아신 이었건만, 감독의 심한 욕설에 눈물을 참느라 촬영에 더욱 집중했다. 힘든 촬영이 끝났고 분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 입은 뒤, 휴게실로 향했다. 아이코는 차를 부르러 갔다. 비틀거리는 아신을 보며 걱정스러웠는지 세츠가 조심스레 묻는다.
“누나 괜찮아?”
“하아, 힘들다. 세츠, 어깨 좀 주물러 주라.”
“으응.”
왠일인지 휴게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아신과 세츠 단 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등을 돌리며 앉았다. 세츠는 자리에 일어나 그녀의 뒤에 섰다. 보드라운 손으로 아신의 가냘픈 어깨를 어루만졌다. 은근히 안마를 쉬원하게 잘하는 세츠에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아, 세츠군. 안마 잘하는데?”
“매일 해줄까?”
“에이, 서로 바쁜데 어떻게 하냐?”
“누나.”
“으응?”
“너무 힘들어 하지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누나의 방식대로만 해. 몸도 마음도 아파하는 누나의 모습은 보기 싫어. 그러니까, 나는 언제나 누나의 웃는 모습만 보고 싶어. 나로서는 누나의 ‘피로 회복제’가 될 수 없을까?”
“응? 무슨 의미야? 일본어가 어려워서 의미를 모르겠어.”
“…….”
아신이 고개를 갸웃 거리자 세츠가 아신의 머리를 자신의 품 속으로 끌어 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라 그의 품에서 벗어 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잠시후, 뚝뚝.. 차가운 물방울이 아신의 어깨위에 떨어졌다. 눈..물인가? 지금 울고 있는거야? 어째서? 걱정스러워진 아신이 고개를 들어 세츠를 바라 보았다. 그의 눈물이 아신의 두 볼을 타며 흘러 내렸다. 아신은 조심스레 세츠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니? 어디가 아픈 거야? 무엇이 힘든거니?”
“마음.”
“…….”
“마음이 아파. 당신 때문에.”
“세, 세츠.”
“한가지 비밀 알려줄까? 나, 누나 좋아해. 많이. 처음 본 그때부터.”
“!”
세츠의 충격적인 고백에 아신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반응에 세츠는 또한번 얼굴이 일그러지며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아신은 그런 세츠를 달래주었다. 등을 쓰다듬어 주며 생각에 잠겼다. 어쩌지, 나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말해 주어야 상처를 안받을까? 아니, 이렇게 말해도, 저렇게 말해도 그는 상처를 받게 될꺼야. 아신은 고민했다. 세츠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신은 이미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사실을 이야기 해주어야만 했다.
“미안해.”
“…….”
“나, 나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나카야마 회장님이지?”
“에? 어떻게 알았어?”
“처음부터 의미심장했었어. 아아, 게임 상대조차 안되겠네. 헤헷, 라이벌이 너무 완벽하잖아?”
“세츠….”
“봐봐, 나 멀쩡해. 상처받을까봐 걱정했어? 근데, 이거 하나만 대답해줘.”
“…….”
“난 누나의 마음속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그래도 누나가 힘들 때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 언제나 한 박자 늦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거야. 언제나 먼저 뛰어가서 누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될래.”
“후훗, 지금부터 수호천사님이라고 불러야 되겠네?”
“에헴!”
애써 미소 지어보이는 세츠가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자신으로 인해 마음아파 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가슴이 욱씬거리고 아팠지만, 웃어야 한다. 세츠를 위해서라도 웃어야만 한다. 아신은 입술을 깨물며 즐거운 일들을 상상 했다. 웃음이 피식 세어 나왔고, 아신은 최대한 코믹하게 얼굴 표정을 바꾸었다. 그때서야 세츠의 입에서 밝은 웃음 소리가 터졌다. 아신의 개그는 멈출 줄 몰랐고, 세츠의 웃음 또한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사이에서 멀리 떨어져 몰래 지켜보고 있는 정체불명의 한 사내가 있었다. 그의 디지털 카메라 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아둔 장면이 있었다. 그것을 보며 남자가 웃었다. 그의 손눌림이 멈추었고, 휴대전화의 1번을 꾹 누르자 신호음이 들린다. 귓가에 가까이 대며 아신과 세츠를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는 들키지 않도록 쥐죽은 듯 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에리카님, 드디어 커다란 먹이를 건져 냈습니다….”
그의 말에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무언가 말을 한다. 그녀의 말에 남자는 고개를 끄떡이며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몰래 아신을 미행하던 그의 정체는 에리카를 따르는 부하 중 한명 이었다. 연예인을 몰래 따라다니며 사생활을 기사로 내보내는 파파라치에 불과했던 그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큰 사건을 건졌으니 승진을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며 미소를 짓는다. 그의 잔인한 미소가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통화가 끝나자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첫댓글 너무 재밌어요 !! 앞으로도 열심히 쓰세요 (웃음)
잘봤어요.... 다음편 기다릴게요....^^
헉!! 어떠케해.. ㅠ_ ㅠ 슈헤이가 오해하겠다 ㅠ0 ㅠ!! 슈헤이!! 악마한테 속으면 안대 ㅠ0 ㅠ!!
어케어케 ㅠ,ㅠ 대체 이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ㅠ,ㅠ
또 뭔짓을 할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