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연중 제22주일) 사랑은 필수, 성공은 덤
예수님은 공생활 어느 시점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물음에, 베드로 사도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 16,15-16) 예수님은 아주 흐뭇하셨던 거 같다.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들을 믿고 하늘나라 열쇠까지 맡기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당신의 운명을 예고하셨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하셨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펄쩍 뛰며 스승을 막아서며 말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맙소사’라고 번역된 그리스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께 은혜로우시기를!’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 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아주 심하게 꾸짖으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상상이지만, 그 순간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 건너갈 수 없는 계곡 같은 깊은 정적이 흘렀을 거 같다. 베드로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예수님은 못하겠다. 정말이지 우리는 하느님을 아주 잘못 알고 있는 거 같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한낱 세상 권력자들에게 수난과 죽임을 당하다니. 하느님의 전지전능은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는 그런 게 아니다. 세상만사 당신 마음대로 다 하시고, 사람들 속마음부터 시작해서 과거와 미래 일까지 세상 모든 걸 다 아시는 그런 능력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아드님 예수님의 죽음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순교자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순교자와 그의 동료들을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선한 이들과 의로운 이들이 하느님께 청하고 기도했겠는가? 그들이 완전히 깨끗하지 못해서 그들의 청원을 들어주지 않으셨다면 하느님은 정말 무서운 분이다. 하느님은 사랑이다. 어느 신학자가 그런다, 하느님의 전능은 사랑인데, 사랑함에 있어서는 모든 걸 다 하실 수 있다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셨다.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나. 사랑은 한마디로 남을 위한 삶이다. 그러면 모든 의문점과 잘 모르면서 그냥 덮어두었던 하느님 관련 의문들이 다 설명된다. 갑자기 온 세상이 환해진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은 나를 고통과 죽음에서 구하실 수 없다. 그 대신 나와 함께 고통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신다. 그리고 나는 그분을 따라 부활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우리 생명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인생살이를 잘못 배웠다. 세상에서 학교에서 자기 꿈을 이루고 성공하는 것을 주로 배웠다. 그러는 사이 여유가 있으면 자선도 조금 하고 남을 돕기도 하면 좋은 거라고 배웠다. 그래서 남을 위한 삶인 사랑도 이기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한다. 성공은 필수고 사랑은 선택이라고 배운 셈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가르치셨고 또 완전히 그렇게 사셨다. 사랑은 필수고 성공은 덤이다. 이타적으로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하고 괜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걸 보면 예수님 말씀은 특별한 성소를 받은 이들만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닌 게 분명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를 예고하시며 이런 비밀을 알려주셨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 이 비밀은 어른이 젊은이에게 때가 되면 알게 된다고 말하거나, 부모가 돼야 부모 마음을 알 거라는 거, 너도 딱 너 같은 딸 아들 낳아보면 부모 마음을 알 거라는 말과 비슷할 거다. 하느님은 이해나 감정이 아니라 결심과 실천으로 만나고 알게 되는 분이다. 하느님은 만 권의 책을 읽고, 수십 년 묵상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분이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 이웃을 돕고 작은 희생이 일상인 사람에게 하느님은 아주 쉽고 자연스러운 분이다.
예수님, 오늘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 결심과 실천을 산 제물로 바칩니다. 하느님이 저로 인해서 기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길의 인도자이시니, 날로 더 복잡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살이에서 하느님 기뻐하실 일을 가르쳐주시고 실천하게 이끌어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