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일기 3 |
1. 선플은 사랑을 싣고 |
인터넷으로 뉴스나 영상 등을 보고 나서 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댓글창 확인하기다. 때론 원문보다 훨씬 더 유익한 정보를 댓글로 만날 수 있어서 좋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는 촌철살인을 날려 속을 후련하게 하고, 가벼운 일상 게시물에는 재치 넘치는 문장으로 배꼽을 잡게 하니 묘한 중독성이 있다. 오죽하면 댓글 때문에 온라인 뉴스를 본다는 말이 있겠는가.
얼마 전에는 아주 특별한 댓글을 하나 발견했다. 그날도 기사를 읽고 자연스럽게 댓글창을 클릭했다. 어느 운동선수에 대한 기사였던 것 같다. 댓글에서는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라는 응원의 한마디와 함께 자신을 소개하며 학교 숙제로 '선플'을 달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선플 달기라니, 얼마나 귀여운 과제인지! 그동안 악플이 사회적 문제가 됐던 사례를 많이 봐왔던 터라 선플을 다는 행동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런 과제를 내준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나중에 알고 보니 '선플 달기 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정식으로 출범돼 운영되고 있으며 많은 교사들이 선플 달기를 과제로 내주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댓글창을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마음 훈훈해지는 댓글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신조어, 은어, 때로는 비속어가 난무하는 온라인 세계에서 마음 따뜻해지는 선플은 마치 사막 속 오아시스 같다. 선한 영향력은 전파력이 강한 걸까? 나도 선플 달기에 동참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귀찮아서 눈으로만 댓글을 훑어보는 게 고작이던 내게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은 호우특보가 내려진 지역에 비가 많이 내려 주민들이 신속히 대피했다는 어느 마을의 기사를 보고 '하루빨리 복구되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선플을 달기는 내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 댓글을 달기 위해 기사 속 주인공의 좋은 점을 찾다 보니 전보다 한층 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온라인 공간에서뿐 아니라 내 곁의 가족, 친구들에게도 예쁜 말을 자주 건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주혜연 30대 중반의 나이로 리서치 회사를 오랫동안 다니다 뒤늦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늦깎이 학생으로 다시 캠퍼스 생활을 하는 요즘, 하루하루가 설레고 즐겁습니다. 고민과 걱정이 없어지니 몸도 건강해지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더 너그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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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애 병사로서 누린 행복 |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나는 '연애 병사'로 군 시절을 보냈다. 고참들의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 전무후무한 보직이 군대에서의 내 역할이었다.
자대 배치 후 최고 선임이 애인에게 편지를 대신 써줄 사람을 찾는다는 얘길 들었다. 중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을 탔던 나는 글쓰기라면 자신 있어 망설임없이 자원했다. 군 생활이 조금 편해 지겠다는 계산이 작용한 탓도 있었다. 그렇게 난 연애편지 대필가로 낙점됐다.
정식 보직은 아니었지만 대충 하고 싶진 않았다. 이왕이면 두 사람의 돈독한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글을 써주고 싶어서 선임에게 여러 정보를 물었다. "여자친구 분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어떤 음식을 좋아합니까?" 꼼꼼히 수집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커플에 맞춤화된 내용으로 정성껏 편지를 썼다. 시를 좋아한다고 해서 김춘수의 <꽃> 한 구절을 적었던 기억도 난다. 내가 세심히 공들인 편지에 선임은 크게 만족해했다.
그 뒤로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다른 선임들로부터 청탁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주말에는 하루에 7통까지 쓴 적도 있다. 당시만 해도 군대에서는 애인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편지였다. 문장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애인의 마음이 돌아서지 않게 붙잡아야 했기에 글을 잘 못 쓰는 사람에겐 편지 쓰기가 고역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대신해 진심을 전하는 일이 나는 꽤 보람찼다. 편지를 써주며 자연스레 연애 상담까지 해주었고 그 덕에 PX에서 간식도 자주 얻어먹었다. 공짜 간식은 연애 병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였다.
편한 군 생활을 위해 시작했지만 어느새 진심으로 즐기게 된 편지쓰기로 난 마지막까지 재밌게 군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전해 들은 얘기로는 내가 대필해준 몇 커플이 결혼까지 골인했다고 해서 그 뿌듯함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나는 군대에서 국가만이 아니라 청춘들의 위태로운 사랑도 지켜준 셈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들을 느낄 수 있었던 그때가 사뭇 그리워진다.
김동석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무직으로 근무 중인 60대 직장인입니다. 오랫동안 일하던 코레일에서 정년퇴직한 후, 작년부터 새 직장에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직은 민망한 습작 수준이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천진한 소년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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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둘레길 걷기 좋은 나이 |
정년퇴직을 하고 60대 중반에 이르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등산이 유일한 취미였던지라 체력적인 변화를 가장 크게 느꼈다. 은퇴하기 전에는 힘든 줄 모르고 주말마다 산에 올랐는데 어림도 없었다. 1,000m 높이의 봉우리를 거뜬히 오르내리던 체력은 다 어디로 갔는지 500m를 오르는 것도 버거워졌다. 어쩌다 등산 한번 하면 3일 정도는 푹 쉬어야 할 정도로 약해진 체력에 서럽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만 있기엔 아직 팔팔한 나이! 등산 대신 둘레길 걷기에 도전했다. 1코스를 시작으로 '서울둘레길'을 하나씩 완주할수록 색다른 재미를 발견했다. 짧게는 6㎞, 길게는 20㎞에 이르는 거리를 걸어야 해서 힘들었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자연의 상쾌함은 기본이고 강, 논과 밭. 마을 등 다양한 풍경이 눈을 즐겁게 했다.
등산길에서는 맑은 새소리가 귀를 간질였다면 둘레길에서는 사람들의 정다운 대화 소리에 기분이 가벼워졌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일상에서 울고 웃었던 일에 공감이 가서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소소한 가족사, 직장 문제, 대인관계 같은 이야기들이 어깨 너머로 들려오면 "저도 그래요!" 하고 맞장구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둘레길 걷기의 매력을 혼자만 알고 있기가 아까워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둘레길에 가는 교통편, 전망 좋은 지점, 주의사항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느낀 점도 간간이 소개했다. 그렇게 모아놓고 보니 그동안 다닌 코스가 스무 곳이 넘었고, 블로그를 시작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조회수가 2천 건이 넘었다. '아,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있구나' 싶어 흐뭇해졌다.
지금은 제주올레길에 가려고 혼자 비행기에 오를 만큼 둘레길을 사랑하게 됐다. 젊지 않아 씁쓸하다고 여겼는데 새롭게 관심이 가는 일에 흠뻑 빠지기에 전혀 늦지 않은 나이였다.
선우덕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직으로 30여년 간 종사하다가 7년 전 은퇴했습니다. 현직에서 연구했던 경력을 살려 연구자문을 하고 있으며 틈틈이 불우이웃 돕기 봉사활동을 합니다. 요즘에는 아침 일찍 뒷산을 산책하거나 지자체가 주관하는 작은 음악회에 다니며 더위를 이겨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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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시면서
설렘과 보람으로 가득한
행복한 8월보내세요
~^^
오랜만에 뵙습니다...망실봉님!
한동안 어깨쪽이 안좋아서 힘들어서 병원을 갔었는데
결국은 원인이 컴 때문에 문제가 되었답니다.
요즘 컴 앞을 자주 비운답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워서 거리의 아스팔트가 열기가 너울거리고,
전신주의 고압선이 축축 늘어지는 날이 연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이 입추(立秋)이네요.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시는 망실봉님께
마음에 가는 댓글을 자주 올려드려야 하는데...
한여름 건강하게 잘 이겨냅시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바다고동 님 !
늘 고운 멘트로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8월 한 달도
건강하고 활기찬
나날들 보내시길
기원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