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설음
주제에 대해 생각하기 전, 나는 단어의 정의를 확실하게 하고자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익숙하다'라는 것은 어떤 일을 여러 번 하여 서투르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낯설다'라는 것은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두 단어는 서로 대조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사전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우리가 체감함에 있어 익숙한 낯설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익숙한 것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에 대하여 나는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溫故而知新 (온고이지신)'이란말이 생각났다.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안다. 옛 것이란 우리가 기존에 알아낸 고전을 얘기하며 우리는 이것을 익숙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냄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다. 이렇듯 고전을 거듭 반복하여 익힘에 그치지 않고 이를 연구하여 새로운 것을 깨닫는 행위를 익숙한 낯설음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는 구약성경 전도서 제1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우리는 모두 옛 것에서 익히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간다. 그런 익숙한 낯설음이 우리가 앞으로 더 나아가고 발전할 수 있는 시발점이라 생각한다.
첫댓글 전도서 1장에서는 18절까지 모든 것이 다 헛되고 헛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절에서는 "어차피 지혜가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모두 예정되어 있는 것이어서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탄식을 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따라서 회의주의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신의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신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제로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이 모든 것에 닿을 수 없을 뿐더러,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달라질 것은 없다고 하는 현실에 대한 체념 위에서 신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의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온고이지신이라는 말도 되겠지만, 본래 뜻은 우리가 겪는 모든 것들이 신의 뜻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다행히도 이 신은 우리가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그에 의탁하면 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철학함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신의 뜻과는 별개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