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타는 입맛에는 햇나물 반찬이 제격이라지만 간간한 쌈장 올려 복스럽게 싸 먹는 쌈밥도 그에 못지않다. 밭에서 바로 수확해 푸른 물이 뚝뚝
돋는 쌈 채소에 기운을 돋우는 인삼정과와 더덕을 곁들여 수육 한 점 얹어 먹는 쌈밥. 나른한 봄에 제격인 건강하고 싱그러운 쌈 채소
밥상.
봄기운 소복하게, 자연을 싸 먹는 맛
한국의 전통색인 오방색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의 다섯 색은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방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오장육부 장기
중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의 오장을 상징하기도 한다. 봄의 색은 단연 청색이다. 오방색으로 구분할 때는 녹색도 청색과 다르지 않다.
청색은 봄의 색이며 동쪽의 색인 까닭에 생기를 듬뿍 담고 있다. 엽록소는 나른한 춘곤증에 특효약이다. 그러니 쌈 채소를 풍성하게 겹쳐 깔고
보리밥 한 숟갈 크게 얹어 쌈을 싸 먹는 것은 봄기운을 내 몸에 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터이다.
▲ 건강한 쌈 채소 밥상을 선보이는 진악산뜰농가맛집 박순애 대표.
인삼으로 유명한 고장답게 금산 사람들이 차려 내는 밥상에는
인삼 인심이 후한데 쌈밥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굵은 인삼을 넣고 삶아 잡내 없이 깔끔한 돼지고기 수육에 달콤한 인삼정과를 곁들이는 식이다.
여기에 쌉쌀한 맛을 더하는 생더덕을 함께 올리고 지난가을 수확해서 알토란같이 보관해두었던 은행을 넉넉하게 볶아 얹어 맛과 영양의 궁합을 챙긴다.
'진악산뜰농가맛집'을 운영하는 박순애 씨가 2011년 충남농업대축전 충남 향토음식 스토리텔링 경연대회에서 선보여 1등을 차지했던 '인삼골
오색쌈밥장아찌정식'을 만드는 방법이다.
1. 봄의 별미 가죽장떡. 가죽나물, 부추, 마늘잎을 잘게 썰고 고추장, 된장, 밀가루로 반죽해 지진다. 반죽을 냉동해두면 일년 내내 즐길
수 있다.
2. 인삼향 그윽한 수육에 인삼정과, 생더덕, 은행을 곁들인다. 쌉쌀한 쌈채소를 곁들이면 금상첨화.
3.
통녹두를 분쇄해 쑨 녹두묵.
4. 위로부터 상추장아찌, 쇠비름장아찌, 고구마순장아찌. 끝물상추를 새콤달콤한 간장물에 담가 숙성시킨 상추장아찌는 시원한 청량감이
그만이다. 쇠비름 발효액을 담글 때 건진 쇠비름 건지를 고추장에 버무린 쇠비름장아찌는 질깃질깃 씹는 맛이 그만.
5. 구수한 콩전과
쫄깃쫄깃한 쑥떡.
6. 5년 묵은 간장과 2년 묵은 된장, 작년에 담근 고추장. 장의 종류에 따라 맛의 절정을 내는 시기는 각각 다른
법이다.
7. 올 정월에 담근 장.
8. 사과와 오렌지에 시원한 국물을 두어 만드는 과일김치. 새콤달콤한 별미 김치로
흡사 안동식혜를 마실 때와 같은 청량감이 그만이다.
봄철 면역력 높여주는 초록
밥상
박순애 씨의 텃밭 비닐하우스에서 쌈 채소를 뜯는다. 상추, 쑥갓, 깻잎, 치커리, 적치커리, 청겨자, 적겨자,
오크리프, 케일 등 금세 열 가지가 넘는 쌈 채소가 소쿠리에 그득 찼다. 쌈밥이 맛있으려면 채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장맛. 볕 잘 드는
장독대에서 느긋하게 세월을 보낸 된장과 고추장은 양념을 과하게 넣지 않아도 생긴 그대로 구수하거나 칼칼한 맛을 낸다. 정월에 담근 장을 간장과
된장으로 가르는 시기가 바로 양력 4월. 된장이 맛있으려면 장에 소금물을 적게 붓고 아예 가르지 않기도 하지만, 대개는 40일 정도 지나 장을
갈라야 간장도, 된장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2월에서 3월 사이에 담근 고추장도 슬슬 메주가 삭으며 제맛을 갖춰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담가 1년 지난 장으로 쌈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역시 장은 묵혀야 제맛. 길게는 5년까지도 발효, 숙성해야 진득한 맛이 나는 것이
간장과 된장이다. 그러나 고추장만큼은 오래 묵힐수록 검고 말라 비틀어져 제맛을 내지 못한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익혀 알뜰하게 먹을 정도로만
적게 담그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일반적인 방법과는 달리, 거피를 하지 않은 통녹두를 분쇄해 쑨 녹두묵은 황사와 미세먼지에 지치고 균형이
깨진 신진대사로 인해 피곤하기만 한 봄철에 챙겨 먹으면 좋을 초록빛 음식. 녹두는 해독 작용을 돕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소금간만 살짝 해 담백한
가운데 고소한 맛만 살린 것이 녹두묵 본연의 맛인데, 유독 입에서 달게 느껴진다면 한번쯤 '홧병'을 의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며 박순애 씨가
웃는다. 당기는 음식이 지금 내 몸에 필요한 음식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건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 피토케미컬이라는 딱딱한 화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청색이나 녹색을 간의 기능과 연결시켜 의미 부여를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새삼스럽다. 간의 피로가 만병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 봄, 초록 쌈밥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봄 쌈밥에 어울리는 이명아의 엄마
밥상
돼지고기볶음고추장은 고기 한 점씩 골라 쌈에 올려 먹는 재미가 쏠쏠한 쌈장으로 적겨자, 치커리, 적치커리 등
쌉싸름한 맛을 내는 쌈채와 잘 어울린다. 바특하게 지진 갖은해물강된장은 보리밥에 올려 쓱쓱 비벼 먹으면 좋을 맛. 케일이나 깻잎을 살짝 데친
숙쌈에는 물기 없이 맵게 무친 오징어매운무침을 올려 먹는다.
보리밥
재료: 보리·쌀 1½컵씩
1. 보리는 씻어서
냄비에 물 3컵과 함께 붓고 푹 퍼지도록 삶아 체에 건진다.
2. 쌀은 씻어 건져 30분 정도 둔다.
3. 솥에 삶은
보리를 먼저 깔고 그 위에 쌀을 얹은 다음 물을 3컵 붓고 불을 켠다. 밥물이 넘칠 것 같으면 불을 줄이고 끓이다가 밥물이 잦아들면 불을 끈 뒤
주걱으로 휘저어 쌀과 보리를 섞은 다음 뚜껑을 닫고 뜸을 들인다.
차돌박이구이와
달래김무침
재료: 차돌박이 300g, 달래 100g, 김 7장, 고기 밑간양념(진간장 1½큰술, 배즙·물·설탕
1큰술씩, 참기름 ½큰술, 후춧가루 약간), 양념장(간장 4큰술, 통깨·참기름 2큰술씩, 고춧가루 1½큰술, 매실청 1큰술, 설탕
1작은술)
1. 달래는 둥근 뿌리 부분을 깨끗이 손질한 뒤 씻어 물기를 빼고 4cm 길이로 썬다.
2. 김은 살짝 구워
부순다.
3. 양념장 재료를 잘 섞은 다음 달래를 넣어 살살 무친다. 구워서 부순 김을 마지막에 넣어 가볍게
섞는다.
4. 차돌박이를 한 장씩 펴서 밑간양념을 발라 10분간 재운다.
5. 양념한 차돌박이를 팬에 한 장씩 펼쳐
구운 다음 접시에 돌려 담고 달래김무침을 가운데에 소복하게 담는다.
오징어매운무침
재료: 오징어 1마리, 양념장(고춧가루 3큰술,
간장·설탕·올리고당·맛술·참기름 1큰술씩, 마늘 ½큰술), 통깨 약간
1. 오징어는 껍질을 벗기고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뒤 몸통은
가늘게 채 썰고 다리는 포를 뜨듯 길이대로 반으로 자른다.
2. 양념장 재료를 모두 섞는다.
3. 손질한 오징어를
양념장에 무친 다음 마지막에 통깨를 넣고 더 섞는다.
돼지고기볶음고추장
재료: 돼지고기(등심) 300g, 고기 밑간양념(간장 2큰술,
설탕·다진 마늘 1큰술씩, 참기름 2작은술, 생강즙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고추장 1컵, 설탕 ⅓컵, 배즙·꿀·참기름
2큰술씩
1. 돼지고기는 기름이 적은 등심 부위로 준비해 사방 1cm 크기로 깍둑썰기한 뒤 밑간양념을 넣고 주물러
밑간한다.
2. 냄비를 뜨겁게 달군 다음 양념한 돼지고기를 볶다가 하얗게 익으면 고추장과 설탕, 배즙을 넣고 계속
볶는다.
3. 풀떡풀떡 끓어오르던 것이 잦아들고 농도가 되직해지면 꿀과 참기름 순으로 넣고 더 볶은 다음 불을
끈다.
갖은해물강된장
재료: 해물(홍합·바지락·오징어·새우)
200g, 새송이버섯 1개, 청양고추 4개, 맛술 2큰술, 참기름 1큰술, 멸치 육수 ⅓컵, 양념장(된장 2½큰술, 다진 파 2큰술, 고추장
½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생강즙 1작은술)
1. 오징어는 껍질을 벗긴 뒤 다른 해물과 같은 크기로 썬다.
2.
준비한 해물과 오징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건져 물기를 뺀다.
3. 양념장 재료를 볼에 담아 잘 섞는다.
4.
새송이버섯은 잘게 깍둑썰기하고 청양고추는 얇게 링 모양으로 썬다.
5. 뚝배기에 참기름을 두르고 해물을 볶다가 맛술을 넣고 볶아
수분을 날린다.
6. 준비한 양념장과 멸치 육수를 ⑤에 넣고 끓이다가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버섯과 고추를 넣고 불을 줄여 바특하게
지진다.
고추된장무침
재료: 아삭이고추 5개, 청양고추 1개,
양념장(된장·통깨 1큰술씩, 참기름 ½큰술, 설탕·물엿·다진 파·다진 마늘 1작은술씩)
1. 아삭이고추는 한입 크기로 어슷하게
썬다.
2. 청양고추는 얇고 어슷하게 썬다.
3. 분량의 재료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 뒤 아삭이고추와 청양고추를 넣고
고루 버무린다.
Food Columnist 이명아
전통
식문화와 한국의 농식품에 관한 글을 쓰는 매거진 에디터 출신의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요리 연구가. 향토 음식으로 직접 요리를 개발하여 외식 메뉴
개발과 농식품 마케팅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기획 / 전수희 기자 | 글과 요리 / 이명아 | 사진 / 박동민 | 촬영협조 /
진악산뜰농가맛집(041-751-1809) | 요리어시스트 / 최윤희, 김언숙(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