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이 끝난 후 오랜만에 피아노를 연주해 보니 음정이 엉망이다. 구입한 지 1년도 안 됐는데 음정이 뒤죽박죽이니 중고 피아노나 다름없다. 혹시 제품에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악기사에 전화해 보니 조율을 해야 한다고 한다.
피아노는 겉보기에 튼튼한 가구처럼 보인다. 무게만 해도 200㎏이 넘으니 쉽게 고장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매우 섬세한 악기다. 8000여 개의 예민한 부품으로 이뤄진 정밀 악기다. 현 1개당 80~90㎏의 장력이 작용하고 있어 1년만 그냥 놔둬도 반음 이상 음이 내려가 절대음감을 기르는 데 방해가 된다.
리허설과 연주회 등으로 매일 3~4시간 사용하는 무대 위 그랜드 피아노도 공연 직전마다 조율해 음을 맞춰준다. 피아노의 수명은 40~60년. 그렇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피아노를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
피아노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습기다. 나무(70%).금속(21%).양모와 헝겊(9%) 등 습기에 매우 약한 재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습도가 높아지면 향판(업라이트 피아노의 경우 벽쪽에 있는 덮개)이 팽창하면서 특히 중간 음역의 음높이가 올라간다. 향판은 현의 진동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다. 습기가 높아지면 건반 터치가 둔화되며 음색도 둔탁해진다. 건반이 한두 개씩 움직이지 않는다. 강철로 만든 현이 부식되고 심지어는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방습기는 피아노 자체가 흡수하는 습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열을 가해 피아노를 말려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방습기를 잘못 사용하면 거꾸로 건조로 인한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너무 건조하면 부품이 수축돼 잡음이 발생하고 향판이 갈라지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기도 한다. 중앙난방으로 온도 조절이 불가능한 아파트에서는 겨울철에 오히려 습기를 보충해줘야 한다.
아파트는 원래 건조한 데다 난방을 하면 습도가 더 내려간다. 이때는 방 안에 가습기를 틀거나 잎이 있는 식물을 방안에 들여 습도를 조절한다.
서재가 있는 방에 피아노를 두면 좋다. 책은 여름에 습기를 빨아들였다가 겨울에 배출하기 때문이다. 피아노 위에는 습도계.온도계가 같이 있는 것을 달아 놓고 항상 적정 습도(50~60%)와 적정 온도(11~21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피아노를 자주 연주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소음 민원이 있을 경우 방진 매트를 깔면 된다. 여유가 있다면 헤드폰을 끼고 연주하는 사일런트 피아노도 고려할 수 있다. 70만원 정도면 구입해 일반 피아노에 장착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 음악당 전속 조율사 이종열(67)씨는 "사람이 쾌적하다고 느낄 정도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줘야 한다"며 "제습기나 가습기를 피아노 안에 넣어두는 것보다 방 전체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