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03
1. # 마을 길 (2회 #46 마을 길, 압축씬)
강진 : (지완의 등에다 대고 결심한 듯) 널 좋아해!
지완 : (쿵......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등을 돌린 상태라 강진은 볼 수 없지만)
강진 : 내가 널 좋아한다구!!
지완 : .........(억장이 무너진다...충격 받아서 멈췄던 발걸음 간신히 떼서 가려는데)
강진 : 니가 날 좋아하는 것처럼 나두 널 좋아한다구!!
지완 : (저도 모르게 격앙되어) 좋아하지 않아요, 저!!
강진 : (흠칫)
지완 : (돌아서며 강진을 노려보며) 오빠 좋아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윤주 언니한테 복수할려구 일부러 좋아하는 척 했던 거예요!!
강진 : (당황했지만 담담하게 O.L.) 거짓말 하지 마!
지완 : 거짓말 아니예요! 오빠 같은 사람이 제일 싫어요!! 오빠 같이 못되구, 이기적이구, 싸가지 없구, 재수 없구....
강진 :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지완 : (면도칼에 베이는 심정으로 내뱉는) 엄마가 남자들 꼬시는 다방 마담같은 거나 하구!!!
강진 : (그 말에 한 대 맞은 듯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진다) .............뭐?
지완 : (강진의 충격어린 눈빛을 서늘하게 맞받는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사람은 끼리끼리 놀아야 된다구!
오빠 같은 사람하군 어울리지 말라구!
강진 : (둔기로 맞은 듯 굳어 있는.....깊은 상처를 받았다)
지완 : 오빠 같은 사람하군 상종도 하지 말라 그랬어요, 우리 엄마가.
강진 : (모멸감으로 하얗게 굳었다)
2. # 기차 안
지완, 기차에 올라 좌석에 앉아 있다. 옆으로 짐 가방 놓여 있다.
자꾸만 비질비질 새어나오는 울음을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다. 두 눈은 이미 벌게져 있다.
기차, 천천히 떠나기 시작한다.
지완, 호주머니에서 강진의 펜던트를 꺼내서 본다. 그리고, 지완의 귀에 다시 또렷하게 들려오는 영숙의 음성.
영숙(E) : 차라리 지완일 데려가시지.....차라리 지완이가 죽지이!!!
지완 : (고통스럽게 두 손으로 귀를 꽉 막는다)
3. # 서울역 앞 (오후)
인파 속에 섞여 나오는 지완. 낯선 서울을 막막하고 암담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4. # 서울 거리 (노을녘)
이젠 눈물도 말라붙고 지친 표정이 역력한 지완, 사람들 사이를 힘없이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고 본다.
한 약장수가 약전을 벌이고 있고, 대부분 노인층의 사람들 빙 둘러 앉아 구경하고 있다.
약장수 앞으로 수십 가지 약재들 쌓여 있고, 그 옆으로 포장된 약상자들 놓여 있다.
약장수 : 아직도 이 약을 안 드셔보셨다면 한번만 드셔봐.
이 약 한 박스면 십년 이십년 된 관절염, 류마티스, 신경통, 다 떨어져 나가!!
순진한 관객들(?), 와아 감탄하며 혹한 눈빛들을 반짝인다.
지완 : (무심한 표정으로 보는)
약장수 : (삼 한뿌리 들어보이며)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장뇌삼이거든! 장뇌 삼 좋은 건 말해봤자 입 아프고!!
(다다다 붙여 빠르게 말하는) 천 궁, 천마, 백과, 녹용, 전호, 행인, 생강, 진피, 지실, 죽여, 감초.....
이 많은 약재를 이 한 병에 다 담았다 이겁니다! 원래 한 박스에 오십 만원 짜린데
내가 우리 어머님 아버님한테 효도한다 생각하구 한 상자에 단돈 오만원! 오만원에 모십니다.
할머니 : 여기! 여기 하나 줘요!! (쌈지에서 돈을 꺼내 세기 시작한다. 꼬깃한 만원짜리에서부터 동전까지.
옆에 다른 노인들도 자기 지갑을 열어 보고 있는데)
지완(E) : (싱글벙글 신나 있는 약장수 얼굴 위로) 이게 진짜 관절염에 좋다구요?
약장수 : (어디서 나는 소린가 두리번거리다 신이 나서 노인들에게 돈을 받아 챙기는데)
지완 : (앞으로 나서며) 아닌데.....관절염하군 별루 상관없는데.
약장수 : (그제야 흠칫 지완을 보는)
지완 : (자기 슬픔 잠깐 잊고 또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간섭하는) 생강이랑 진피랑...지실, 죽여, 감초는
온담탕 달일 때 넣는 처방전인데....온담탕은 두근거리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다스리는 거예요.
(약 장수가 들어서 보여주었던 삼과 약재 몇 개 집어 들어 보며) 이건 장뇌삼이 아니구, 인삼묘예요....
이거 잘못 먹으면 농약까지 같이 먹는 건데...
사람들, 무슨 일인가 술렁거리며 지완을 보고.
약장수, 당혹스런 표정으로 지완을 노려 보는데.
지완 : (약장수 시선은 개의치 않고 천궁을 뚝 부러뜨려 냄새 맡고) 천궁은 속이 다 비었네. 이런 거 달여 봤자 쓴 물 밖에 안 나와요.
(또 다른 약재 끝을 씹어 먹어보며) 으으....셔...이건 완전 중국산 하품이다. 약효도 완전 없겠다. (하는데)
약장수 : (와락 지완의 멱살을 잡는다) 너 뭐야?!! 쥐방울만한 이 기집애가 뭘 안다구 주둥아릴 씨부리는 거야?!
지완 : 우리 아버지가 한의사라서 어릴때부터 보구 듣구 배웠어요. 왜?!! 그러는 아저씨는 뭔데요?
불쌍한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약 갖구 사기나 치구, 우리 아버지한테 걸렸음 아저씬 뼈두 못 추렸어어!!
5. # 공원 (늦은 밤)
취객과 노숙자들 간간히 보이고.
을씨년스러운 가로등 불빛 밑 벤치에 지완(한대 얻어맞았는지 머리가 헝클어져 있다),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가방은 옆으로 두고....
막막하고 암담한 표정의 지완.
지용(E) : 공부두 안하구 맨날 뺀질거리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똑똑하네, 우리 지완이.
지완 : (흠칫하며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 돌려본다)
지완이 앉은 벤치 한쪽 끝에 지용이 앉아 있다. 지완을 향해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지완 : (눈빛이 무섭게 흔들리는)
지용 : 그래, 니가 하면 되겠다.....우리 지완이가 하면 되겠어.
지완 : (눈가가 벌게진다. 노려보듯이...보는)
지용 : (여전히 미소로 보며) 우리 한의원 지키는 거.....아버지 뒤 이어서 우리 한의원 지키는 거.
지완 : (입 꾹 다물고....노려보는)
지용 : 약속 했었잖아. 오빤 의대에 가구, 넌 한의대 가구 그래서
정선에다 양한방 병원 지어서 돈 없는 사람들 무료로 진료해주구...
지완 : .....(O.L.) 기억 안 나!
지용 : (담담하게 보는)
지완 : 기억 안 나! 지완이한테 바랠 걸 바래라. 고등학교나 무사하게 졸업 하면 다행이다.
지완이 같은 어리버리가 한의사가 됐단 사람 여럿 죽인다. 엄마가 비웃었던 것도 하나도 기억 안 나!!
지용 : (피식 웃고) 기집애...삐졌었구나? 건 그냥 니가 하두 한심하게 사니까 엄마가 속상하셔서....
지완 : (O.L.) 약속두 오빠가 먼저 안 지켰어!!
지용 : (보는)
지완 : 오빠가 안 지켰잖아! 죽어버리기나 하구!!
지용 : (여전히 미소 띠고)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오빠가 못 지킨 약속 니가 지켜달라구....
엄마, 아버지한테 못 지킨 약속, 니가 대신 지켜 달라구.
지완 : (듣기 싫어 귀를 가리고 눈을 감고 O.L.) 싫어! 안해! 싫어!!
지용 : (안쓰럽게 보는)
지완 : 지키구 싶음 오빠가 지켜! 다시 살아와 갖구 오빠가 지켜!!오빠가 먼저 지켜!!!
지완, 발악하듯 그렇게 소리 지르다....감정 한번 추스르고...다시 지용쪽을 본다.
지용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지완의 환상이었다.
지완,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듯 허탈해지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지완 : (하늘에 대고 말하는) 나한테 뭘 기대해? 나 같은 거 뭐가 되든 누가 신경 써? 난 내가 살구 싶은 대루 살거야.....
엄마 아빠 속 팍 팍 썩히면서, 엄마 아빠 쪽팔리게 하면서, 멍청하게, 한심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바보 같이, 등신 같이, 쪼다같이, 진따같이 , 미친 년처럼!!.....됐냐?!!
지완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F.O.
6. # 지완 카페 앞 (7년 후, 밤, 겨울)
화면 다시 밝아지면, 불 꺼진 카페앞, 술에 취한 태준이 카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눈이 내리고 있다.
태준 : 술 한잔만요.....술 한잔만 먹읍시다.....문 좀 열어봐요오!! (카페 문 을 발로 쾅 걷어차며) 술 좀 팔라구! 술 좀!!!
지완(E) : 그렇게 차 갖군 안 부서지죠, 그게.
태준, 돌아보면 성인이 된 지완(24)이 바로 앞으로 와서 서 있다. 어깨엔 쌕을 메고.
지완 : (두리번거리다가 한쪽에 깨진 보도블록을 발견하고 낑낑거리며 들고 와
이걸로 유리문을 찍어보라고 시범 보여주듯 모션 취해 보여 주고, 니가 해 보라고, 보도블록을 태준에게 내민다)
태준 : (피식 웃는)
지완 : (자물쇠를 열며) 자꾸 이딴 식으로 영업시간 끝났는데 와서 술 팔라구 땡깡부리면 술값에다 확 텐텐 붙여버릴거예요.
태준 : (픽 웃고 지완의 가방에 커다랗게 달린 이름표 보며) 한 지완...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름 참 좋다......
나중에 딸 낳으면 지완이라구 지어야지.
지완 : (씨익 머쓱하게 웃는)
7. # 지완 카페
성에가 하얗게 낀 유리창 안으로 태준과 지완의 모습, 보인다.
태준, 양주를 병 째 들어 마시고 있고,
지완, 앞머리를 뒤로 넘겨 귀여운 핀 하나 꽂고, 한쪽 테이블에서 열심히 책 펴놓고 공부하고 있다.
밀려오는 졸음에 하품하며 자기 뺨을 딱딱 때리며.
태준 : (마시던 양주병을 테이블에 탁 놓고 지완을 보며) 내 소문 들었죠? 우리 직원들이 여기 와서 수군거리는 거?
지완 : (책의 내용을 노트에다 써머리하며) 네!! (하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
태준 : 어디까지 들었어요?
지완 : (써머리 열심히 하면서 졸려서 얼음으로 눈을 문지르며) 사귀는 여자 분이 회사 이사님이구, 신성 그룹 딸이구....
근데, 신성 그룹 회장님은 열라리 반대하구...(그러다 꾸벅 잠이 쏟아진다.
졸리는 와중에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두 사람 떼놀라구...온갖 모욕 다 주구 협박하구....
그래서, 팀장님은...괴로워서..... 맨날 술만 마시구.....(하다가 꾸벅)
태준 : (픽 웃으며 그런 지완을 귀엽게 바라본다) 우리 직원들이 아예 브리핑을 했구나...
지완 : (테이블에 닿을 듯 머리를 계속 꾸벅거리다가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쾅 찧어버리고 아파서 죽을 듯한 표정 짓는)
태준 : (푸훗...지완의 모습에 자기의 상황 따윈 잊어버리고 웃는)
지완 : (안되겠다. 벌떡 일어서며 주방으로 가서 싱크대에 물을 받으며 계속 자기 할 말 하는)...재벌이면 단가?
호강에 받쳐서 요강에 똥 싸는 소릴 하는 거죠, 그게....팀장님이 뭐가 모자라서 그런 수몰 당해요?
능력 있구..똑똑 하구...잘 생기구....성격 짱 좋구...야! 됐거덩! 니네 딸보다 천배 만배 멋진 여자 만날거거덩!
당당하게 소리 한번 지르구 헤어져 버려요, 까짓것. (하다가 싱크대 물에 얼굴을 확 집어 넣는다)
태준 : (그런 지완을 물끄러미 보는)
지완 : (잠시 후 물에서 얼굴 빼다가 문득 생각난 듯) 우리 사장님 조카 한번 만나볼래요? 얼마 전에 여기 왔었는데요.
미모도 미스 코리아 뺨치게 예쁘구, 집안두 완전 빠방하구....판사래요, 판사!!
태준 : (피식 웃는....지완을 미소로 보는)
지완 : 진짜 보기 드문 처녀던데....한번만 만나보지?
태준 : 그 처녀 말구.....(의미심장하게) 그 쪽은 어때요?
지완 : (태준의 말 못 듣고, 잠을 깨기 위해 냉장고 문 열어 찬 냉기를 얼굴에 쐰다) 아, 왜 이렇게 졸리냐?
태준 : 나 그 여자랑 헤어지면, 한 지완씨가 나 받아줍니까?
지완 : (덜덜 떨며 냉기 쏘이며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고) 에? 뭘 받으라구요?
태준 : 우정이랑 끝내고 오면, 다 정리하구 오면...지완 언니가 나 받아주냐구? 과거 같은 거 묻지 않고 받아 주냐구?
지완 : (냉장고 냉기 춥게 쏘이며....) 얼음 물 한 컵 드려요? 정신 바싹 들게? (냉장고 문 닫고 물을 따른다)
태준 : 정신 말짱해요, 지금!!
지완 : (보는)
태준 : (진지한 표정으로) 나한테 관심 없어요? 남자로 생각해 본 적 없어요?....한번도?
지완 : (황당하고 기가 막힌)
태준 : 난 있는데....한 지완이란 여자한테 관심 있는데, 난.....
영업시간 다 끝난 카페에 와서 매일 술 달라구 땡깡 부리는 거, 그거 어떤 의도가 있을거라고 생각 안해 봤어요?
지완 : (잠이 확 깬다. 허!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
태준 : 지금부터 잘 생각해봐요, 그럼...(흐응 웃다가 의자 뒤로 몸을 젖히다가....카페 칠판에 잘못 쓰여진 글 발견하고)
갖다 드립니다가 쌍시옷 받침인가?
카페 미니 칠판에 ‘커피 두잔 이상 사무실까지 갔다 드립니다.’ 하고 쓰여 있다.
태준, 술 기운에 약간 휘청하며 칠판 앞으로 가 지우개로 글을 지운다.
태준 : 쌍 시옷이 아니구, 다른 받침인 거 같은데....(괜히 오바해서 고개 갸웃하며) 아아, 내가 아는데.....뭐더라?....
지완 : (그런 태준의 모습을 보며 쿵..마음 한쪽이 내려 앉는 표정이 된다.
칠판 앞에 분필 들고 앉아 있는 태준의 뒷모습 위로 들리는)
강진(E) : ‘갔다 드릴게요’ 가 아니구, ‘갖다 드릴게요’ 지.
8. # 플래시백 (2회 #12 학생 지도실)
강진 : 쌍 시옷이 아니구, 지읒 받침. 국어 시간에 잤지? 이 정돈 중학생들도 다 아는 건데.
선생님한테 내기 전에 나한테 다시 검사 맡구 내. 망신 당하지 말구.
9. # 지완 카페 (현재)
지완, 표정이 굳어 미니 칠판쪽을 바라보고 있다. 19살의 강진이 미니 칠판에다 틀린 맞춤법을 다시 지우고 쓰고 있다.
지완, 잠깐 숨이 멎는 표정이다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부비고 칠판 쪽을 본다.
태준, ‘갔다 드립니다.’를 ‘갖다 드립니다.’로 바꿔 쓰고 있다. 술에 취해 글씨는 엉망이다.
지완, 허탈하고 멍한 표정 되는.
10. # 준수 한의원 앞 (이른 아침, 2회 #67 지완의 관점에서)
강진, 차에서 내려 준수 한의원 앞으로 온다. 대문이 열려 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강진, 돌아서려다 뭔가 발견하고 흠칫하는 표정이 된다.
준수, 마당에 나와 새벽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다. 눈가에 그리움이 가득하다.
준수 : ...........
강진 : ...........
강진, 준수를 씁쓸하게 보다가 다시 차에 올라타...차를 출발 시켜 간다.
강진의 차가 떠나고 나면, 반대편 모퉁이 쪽에서 누군가 걸어온다. 지완이다. (1년 후라 헤어스타일 달라진)
지완, 열려진 대문 앞으로 와서 서며, 차마 들어가지는 못하고 문밖에 서서 준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지완(E) : 저 되게 좋은 남자 만나서 약혼해요, 아버지......엄마랑 아버지한테 보여드리구 싶은데......
아직은....아직은요 두 분을 볼 자신이 없어요, 제가.....죄송하구.....고맙습니다.
지완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해진다.
11. # 지완 카페 카페 주방.
고슬고슬한 밥 위에 뜨겁게 부어지는 카레.
지완, 정성스레 만들어진 카레라이스를 주방 창을 통해 밖으로 내민다.
지완 : 죄송해요....제가 서빙을 해야 되는데, 어디 좀 갔다 오느라구 시간이 늦어갖구.
재현(E) : 업무가 많이 밀려서 점심 시간을 놓쳤어요..
12. # 지완 카페 (2회 #69 지완의 관점에서)
재현, 카레라이스를 쟁반에 담는다. 재현의 뒤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는 강진의 모습, 보인다.
재현 : 아, 오늘 수업 있구나.
지완 : 네. 금방 사장님 오시니까 드시구 계세요. (앞치마 푸는)
그 사이 재현은 쟁반을 들고 강진 쪽으로 가고.
지완, 그 사이 주방에서 나온다. 강진이 등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알아 보지 못한다.
지완, 재현에게만 목례하고 한쪽에 둔 가방을 메고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간다.
강진, 피곤한 듯 얼굴 부비고 있는.
재현이 “산청 갔다가 한숨도 못 자구 온 거야?” 물으면, 강진, 고개를 끄덕이는.
13. # 지완 카페 밖
지완, 서둘러 뛰어 나가는데.
태준(E) : 지완아!
지완 : (태준의 목소리에 돌아본다)
태준 : (지완을 향해 손을 까닥여 보이며 환하게 웃어준다) 학교 가?
지완 : (태준을 향해 역시 밝게 웃어준다) 네. (두 사람 이제 몹시 친근해 보인다) 다녀 오겠습니다.
14. # 강진 오피스텔 앞 복도 (아침)
강진집 현관 문 열리고, 강진, 양복 저고리를 껴입으며 나온다. 출근 길이다.
태준(E) : (격앙된) 무슨 짓을 한거야? (버럭) 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강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 돌려보면, 오피스텔 복도 끝 집 앞에서 태준이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을 하고 있다.
강진, 무슨 일인가 의아하게 태준을 보는데.
태준 : (자신을 보고 있는 강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엘리베이터쪽으로 다급하게 걸어가며)
어디야? 거기 어디야?!!.......지금 가께! 내가 지금 간다구!! 거기 어디야?!......(답답함과 안타까움에 소리치는) 이 우정!!!!!
강진 : ..........(무슨 일인가.....의아한)
15. # 지하 주차장
반쯤 정신이 나간 태준, 미친 듯 자신의 차를 찾고 있다. 마음이 급한 탓인지 차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
강진, 자신의 차 앞으로 와 차 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는데.
태준(E) : 차 좀 바꿔 줄 수 있어요?
강진 : (돌아보면 태준이 차 키를 내밀며 자기 앞으로 오고 있다)
태준 : 내 찰 엇다 뒀는지 생각이 안 나서 그래요....위층이나 아래층이나 어디 있긴 있을텐데.....
내가 좀 급해서 그런...(데...하려는데)
강진 : (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차 키를 태준에게 내민다)
16. # 다른 층 주차장
강진, 태준의 차 키를 누르며 차를 찾고 있다. 저 앞으로 삑삑거리며 태준의 차 비상등이 반짝인다.
17. # 태준 차 안
강진,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 하는데, 핸드폰 울린다.
강진 : (발신자 확인하고 받으며) 어. 재현아.
재현(F) : 미안한데 내 대신 약혼식 좀 가주라.
강진 : 약혼식?
재현(F) : 박태준 팀장 오늘 약혼하잖어.
강진 : (그제야 생각이 난다) 아아....
재현(F) : 아우우....장염인지 뭔지 아침부터 일어나지도 못하게 아프네.....니가 내 대신 가서 얼굴 도장 좀 찍어줘.
이우정 겁나서...(괜히 말했다. 기침 하고) 사람두 별루 없을텐데.
강진 : .......(잠깐 생각하고) 그래, 알았어. (태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하는....약혼식까진 오겠지...)
18. # 청평 정도의 야외 카페 - 약혼식장 (2회 마지막씬, 지완의 관점에서)
하얀 원피스 차림의 지완, 신부석에 앉아 부케 꽃잎을 똑똑 따고 있다. 하객들의 목소리 들려온다.
하객들, “어떻게 된거야?” “신랑이 왜 안 나타나?”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점점 큰소리로 술렁대기 시작한다.
지완, 여전히 부케 꽃잎을 따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그런 지완의 등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강진.
잠시 후, 지완의 핸드폰 울린다. 지완, 발신자 보면 ‘태준씨’라고 쓰여 있다.
지완, 울컥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 누르며 폴더를 열고 핸드폰을 귀에다 댄다.
태준(F) : 미안해, 지완아.....일이 좀 생겨서 약혼식 못 갈거 같다......약혼식은 담에 하자. 정말 미안해....전화할게.
(뚜뚜뚜 끊어진 핸드폰 신호음 들리고)
지완 : (천천히 핸드폰 닫는다....기가 막히고 어이도 없고...황당하고)
강진 : (하객들은 더욱 술렁이기 시작하고, 걱정스럽게 지완의 등을 보고 있다. 지완이라는 건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지완 : (마음과 표정 정리하고 하객들을 향해 돌아선다. 애써 환하게 웃으며)
전 오늘 약혼식을 하려고 했던 박 태준씨의 약혼녀 한 지완입니다.
강진 : (놀라는....충격으로 싸늘하게 굳는다)
지완 : (눈물이 맺혀 오지만, 죽을힘을 다해 밝은 표정 지으려 노력하며) 좀 전에 태준씨한테 전화가 왔는데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오늘 약혼식은 미뤄야 될 거 같다구 하네요.......
(하객들이 “무슨 소리야? 이게?”하며 술렁 대기 시작하자 더 밝게) 담번에 진짜 예쁜 모습으로 다시 모실께요.....
담번엔 춤도 추구 노래도 부르겠습니다. 먼길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연신 허리를 굽히고 인사하며)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강진 : (쿵!.....충격으로 하얗게 굳은 채)
19. # 약혼식장 앞
강진, 하객들 무리에 섞여서 나오고 있다. 깊은 현기증과 충격을 느끼며 털레털레 걸어나오는.
하객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어?” “신랑이 대체 어딜 간거야?” 술렁대며 나온다.
강진 : (멍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으며....차[태준의 차다] 앞으로 가 운전 석에 오른다)
20. # 약혼식장
하객들 모두 돌아가고....종업원들, 장내 정리하고 있다.
지완, 입술을 깨물며 있는 힘을 다해 울음을 참고 있다....괜찮아, 별일 아니야 스스로를 달래지만 차마 일어날 생각을 못한다.
카페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 이게 무슨 일인가 황당한 표정 짓고 있다가 지완쪽으로 다가온다.
주인 : (혹시 돈 못 받을까 봐) 저기....하객들 식사는 어떡해요? 벌써 다 준비해 놨는데...
지완 : (감정 애써 추스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밝게) ....걱정 마세요...돈은 다 드릴께요.
주인 : (괜히 미안해) 아니 뭐 돈이 문제가 아니라.....30인분이나 준비했는데
팔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하구 아까워서 그러지, 아까워서...
지완 : (애써 밝게) 제가 먹을께요, 그럼......배고파 죽을 뻔 했는데 잘됐다. .....주세요. 제가 먹을께요.
손님들 아무도 없는 야외 테이블. 지완, 열심히 스테이크를 썰고 있다.
나오는 눈물과 서러움을 억지로 삼키 듯 스테이크를 볼이 터져라 입 속에 가득 넣고 먹고 있는.
지완 앞으로 스테이크 네 접시나 놓여 있다.
강진(E) : 그거 하객들 먹일려구 준비한 거 아녜요?
지완 : (고개 들어 본다. 강진이 눈 앞에 서 있다)
강진 : 치사하게 혼자 다 먹냐? (양복 저고리를 벗어 한쪽 의자에 걸고
지완 앞에 놓인 스테이크 접시 세 개를 자기 앞으로 당겨 오더니...의자에 앉아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한다)
지완 : (당혹스럽게 보는....아직 강진이라는 건 모른다...)
강진 : (자신의 와인 잔과 지완의 와인 잔에 와인도 따르며) 아, 전 박태준 팀장이랑 같은 회사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당혹스럽게 자신을 보고 있는 지완의 시선 맞받으며) 회사에서 마련해 준 같은 오피스텔에 살구 있구요.
지완 : (강진을 뚫어질 듯 본다....낯이 익다.....그러나, 설마.....아니겠지...그럴리가 없어)
강진 : (건배 하자는 듯 와인 잔을 지완 앞으로 내밀며) 디자인 기획 2팀장 차 강진입니다.
지완 : !!!! (차 강진이라구? 순간 안색이 창백해지며 충격으로 눈빛이 무섭게 떨린다)
21. # 약혼식장 남자 화장실
강진, 손을 씻고 있다. 좀 전의 유들유들 하던 표정은 간데 없고 표정이 당혹스럽게 굳었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22. # 화장실 앞
페이퍼에 손을 닦으며 나오던 강진, 바로 옆 여자 화장실을 걱정스럽게 본다.
잠깐 망설이며 생각하던 강진, 여자 화장실로 들어간다.
23. # 여자 화장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던 아가씨, “엄마야!” 하며 강진을 보고 놀란다.
강진, 개의치 않고 화장실 문을 노크하고는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지완, 변기 앞에 주저 앉아 오바이트 하고 있다.
강진, 몸을 숙이고 지완을 천천히 두드려 준다.
지완 : (흠칫하며 돌아본다....한참을 운 듯 두 눈이 벌게져 있다)
강진 : .....많이 체했어요?
지완 : (두 눈 가득 눈물이 쏟아질 듯 꽉 차 있다)
강진 : ........ 약 사다 줘요?
지완 : (감정을 들킬까봐 얼른 일어서 밖으로 나와 세면대쪽으로 간다)
강진 :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지완의 등을 보고 선. 자신과 지완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거울을 보며) ........나......알아요?
지완 : (세면대 앞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천천히 들며...거울을 통해 강진의 시선 똑바로 맞받으며.....
단호한 표정으로) 아뇨!
강진 : (목울대까지 차올랐던 뜨거움에 얼음물을 붓는 것 같다......표정이 허탈하고 쓸쓸해지는)
24. # 강릉 병원 입원실 (특실, 밤)
태준, 우정의 침대 옆에 앉아 있다. 우정, 링거를 꽂고 잠들어 있다.
우정의 한쪽 팔목에 붕대가 감겨 있다. 붕대에 피가 살짝 배어 나와 있다. (동맥을 끊으며 자살을 시도 했었다)
태준 : (기가 막히고....우정에게 미안하고.....감정이 복잡하다....우정의 손을 가만히 잡는다)
우정 : (잠시 후 움찔하더니....천천히 눈을 뜬다.....멀거니 태준을 보는)
태준 : .....왜 그랬어?
우정 : .......(멀거니 보는)
태준 : 정말 죽기라도 할 생각이었어? 너, 바보야?
우정 : ....약혼식....했어?
태준 : ..........
우정 : 약혼식, 했냐구?
태준 : ..................아니.
우정 : (엷은 미소가 떠오른다)....다행이다.
태준 : (기가 막힌다)
우정 : 키스....해줄래?
태준 : ......
우정 : 독이 든 사과를 먹었던 백설 공주도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났대...
태준 : ........
우정 : (쓰게 웃고) 되게 비싸게 구네.....나 그냥....안 깨날래...다시 살려내면 죽을 줄 알어.
(서운하게 보다가 머리끝까지 시트를 덮어버린다)
태준 : (보다가....시트를 걷고 우정에게 뜨겁게 키스한다)
병실 유리창에 툭툭 빗방울이 듣기 시작한다.
25. # 약혼식장 마당 (밤)
강진, 차를 세워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강진이 내민 손바닥 위로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지완, 양손에 옷이 든 쇼핑 봉투를 한아름 들고 걸어 나오다 강진을 발견하고 당혹스런 표정으로 멈춰 선다.
지완을 발견한 강진, 타라고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지완 :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괜찮아요...안 태워 주셔도 돼요.
강진 : .........(보는)
지완 : (밝게) 상관 말고 가세요. 데리러 오기루 했어요.
강진 : 누가요?
지완 : (대답 못하는)
강진 : 박 팀장이요?
지완 : 네....태준씨가요.
강진 : (쉽게 알았다고 고개 끄덕이더니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조수석 문 탁 닫고 운전석에 올라 차를 쌩 출발 시켜 떠난다.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완 : (당혹스럽게 떠나는 차를 보다가.....하늘을 본다....빗방울이 지완의 얼굴 위로 툭툭 떨어진다)
26. # 일각 길 / 강진 차 안
강진, 표정이 서늘하게 굳어 차를 운전해 간다. 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진다.
강진, 엑셀을 밟으며 속력을 높여서 가다가.....갑자기 핸들을 꺾으며 차를 유턴한다.
27. # 일각 길 / 강진 차 안
차를 유턴 시켜 약혼식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강진. 강진, 무언가 발견하고 차를 멈춘다.
저 앞으로 지완이 억수같은 비를 맞으며 택시를 잡고 있다. 차들 크락션을 울리며 지완의 옷에 물을 튕기며 무심하게 지나간다.
강진, 차를 세운 채 그런 지완을 바라보고만 있다.
지완의 손에 들린 쇼핑백이 비에 젖어 봉투가 툭 찢어진다. 봉투 안의 옷이 밖으로 떨어진다.
지완, 떨어진 옷을 다시 주섬주섬 주워 들며 열심히 지나 가는 차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지만 빈 택시 잡기가 쉽지가 않다.
지완은 강진의 차를 보지 못한다.
강진, 자신의 차에서 꿈쩍도 않고 그런 지완을 그저 보고만 있다. F.O.
28. # 한강 고수부지 (이른 아침)
비가 그치고, 맑게 개인 이른 아침이다. 풀잎에 빗방울들이 아직 맺혀 있다.
추리닝 차림의 강진, MP3 이어폰 끼고 조깅하고 있다.
무언가를 열심히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의 강진, 퍼즐이 맞춰진 듯 뛰던 걸음을 멈춘다.
29. # 헬스장
재현,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다.
옆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에스라인 여자의 시선을 신경 쓰며 속력을 계속 올리며 체력을 한껏 뽐내며.
강진(E) : 아프대매?
재현, 돌아보면, 추리닝 차림의 강진이 서 있다.
재현 : (당황하는)
강진 : 약혼식장도 못 올만큼 다 죽게 아프다 안 그랬어?
재현 : (얼른 스톱 버튼 누르고 러닝머신에서 내려오며 머리에 손을 대고 금세 아픈 사람 설정하고 주저앉으며)
아프지....뒤지게 아퍼......운동이라도 하면 좀 덜 아플 거 같애서....아우우....골이야.
강진 : 이 우정 이사 어딨어?
재현 : (일부러 머리를 싸잡고 아픈 표정 더 심하게 지으며) 아우우...건 왜?
강진 : 박태준, 약혼식 파토 놓구 이우정이랑 같이 있지?
재현 : (흠칫) 니가 그걸 어떻게 알어? (엉겁결에 자기 입 탁 막으며) 내가 또 말했냐?
(하다가 꿰뚫어보는 듯한 강진의 눈빛에 얼른 다시 머리 아픈 표정 지으며) 아우우우....골이야.
강진 : (태준이 우정에게 갔구나...확인 사살하며 어이가 없다) 그래서....두 사람 어떡할거래?
재현 : 어떡하긴 뭘 어떡해?.....그 약혼식두 이 우정 다시 잡으려는 박 태준 쇼였던 것 같은데. 첨부터......
(강진 눈치보며 과장되게 아픈 척) 아우우, 머리야.
강진 : (기가 막힌) 그 약혼식이....쇼였다구?
재현 : 지완 언니가 박 태준 약혼 상대라는 거 나두 사흘 전에 알았는데, 그때 감 딱 잡았지...
하고 많은 퀸카들 다 두구 왜 하필 그런 여잔가, 이거 뭔가 있구나.
강진 : (자기도 모르게 음성 싸늘해져 O.L.) 그 여잘 니가 알어?!!
재현 : (무슨 말인가? 벙해서 보는)
강진 : (정색을 하고) 박 태준 약혼녀, 니가 아냐구?!!
재현 : (강진의 정색에 어리둥절한) 물망초! 종업원 언니잖어.
강진 : 물망초?
재현 : 우리 회사 앞에 있는 카페! 왜 접때 너두 가서 카레라이스 먹구...... 낮엔 차랑 밥 팔구 밤엔 술 팔구....
(하다가 강진의 표정 살피며 다 시 아픈 척 하는) 아우우, 머리야....아우우, 골이야...
강진 : (지완이가 거기에 있다구?....기가 막히다)
재현 : (강진의 눈치 살피며 과장되게) 아우우.....나, 뇌종양인가?
강진 : (지완 생각에 표정 굳어 있다가....재현을 한심하게 보며 머리를 잡고 있는 재현의 손을 떼내며)
거기가 아니구 (재현의 손을 재현의 배에 대주며) 여기가 아프다 뻥쳤었어, 어제...장염이라며?
30. # 지완 카페 앞
강진, 추리닝 차림 그대로 지완의 카페 앞으로 온다. 온 얼굴과 옷이 땀으로 젖었다.
이른 아침이라 카페 문 닫혀 있고, 블라인드도 내려져 있다.
당혹스런 표정으로 카페를 응시하는 강진.
31. # 지완 카페 안
지완, 어젯밤 차림 그대로 카페 한쪽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한쪽에 쇼핑 봉투들 어지럽게 놓여 있고.
지난 밤 비를 쫄딱 맞고 감기에 걸린 듯 얼굴엔 병색이 있다. 콜록콜록 기침하는.
지완의 손에 핸드폰이 들려 있다. 지완, 망설이다가 핸드폰 귀에다 대며 태준에게 할 말 연습해 본다.
지완 : 일어났어요? 태준씨?.....아침은....먹었어요?.....어.....어.........
(할 말 을 못 찾다가 핸드폰을 다시 내렸다...잠깐 생각하고....다시 핸드폰 귀에 대며)
박 태준! 너 지금 어딨어? 약혼식 못 온다. 미안 하다. 전화만 하면 다냐? 니 눈엔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너 죽을래?...
약혼식두 내가 그런 거 안한다구 백번도 넘게 말한 걸 억지루 억지루 니가 우겨서 하자 그랬잖아!...
내가 얼마나 황당하구 쪽팔리구 죽구 싶었는지 아냐, 이 나뿐 놈아!!!...
(하다가 이것도 아닌 것 같다...힘이 쑥 빠져 생각하다가...결심한 듯 태준의 핸드폰 누른다.
발신음과 함께 발신되고 있는 핸드폰 화면 보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할 일 다 끝났으면 그만 좀 오지? 태준씨?.......
나 되게 아퍼.....열두 나구 배두 아프구 머리두 아프구 가슴도 아프구..........
(망설이다가 힘겹게 말하는) 나, 일이 좀 생겼어요.....어떤 사람을 만났는데....되게 되게 힘들구.....
태준씨 좀 와요. 좀 와 줘요....제발....
32. # 경포대 바닷가
태준의 손 안에 들려진 핸드폰 화면 [지완이] 라고 뜬다.
태준, 바다를 보며 모래사장에 앉아 있다.
태준 옆으로 우정, 태준의 한쪽 팔짱을 끼고 태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든 듯 앉아 있고.
핸드폰에 찍힌 지완의 이름을 멀거니 보는 태준....핸드폰을 받으려고 하는데,
이때, 우정, 태준의 핸드폰을 홱 채서 뺏는다.
태준 : !
우정 : (발신자 이름 보다가 벌떡 일어서더니 핸드폰을 들고 바닷가쪽으로 걸어가더니.....바다로 핸드폰을 던져 버린다)
태준 : (벌떡 일어서며) 이 우정!!!
우정 : (돌아서며 태준을 향해 웃으며) 서울 돌아가면 바루 우리 집으로 가자. 거기서 같이 살자.
태준 : !
우정 : 우리 집! 박태준과 이우정의 집!!......오래 안 가서 먼지는 좀 앉았겠네....파출부 아줌마 불러 청소시켜 놔야겠다.
태준 : (표정 굳어) 무슨....소리야?
우정 : 나, 너 몰래 우리 둘이 살 집 마련했었어....침대두 사구, 냄비두 사구, 밥 그릇두 숟가락두 젓가락두 두 개씩 사구.
태준 : (기가 막힌)
우정 : 일단 저질러 버리면 아버진들 어쩌시겠어?.....시장 봐서 서프라이즈 파티 준비하고 있었는데 너한테 전화가 왔더라?
우리 헤어지자. 난 그렇게 결정했다...결심을 뒤엎는 일은 없을거다.....기억 나?
태준 : .......(기억 난다)
우정 : (다시 바다를 보며) 여기 이쯤 이었던 것 같다....
오년 전에 우리 처음으로 여행 왔을 때 니가 여기 이 바다에다 대고 외쳤었잖아.
(손나팔 만들어 바다에 대고 외치는) 사랑한다, 우정아....난 죽을 때 까지 너만 사랑할거다!....
(눈물이 그렁해지는) 내 인생 끝까지 나한텐 너만 있을거다!...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널 포기하지 않을거다!!
태준 : ........(할 말을 잃는다)
우정 : (돌아서서 태준 쪽으로 오더니 태준의 허리를 껴안으며 태준의 가슴 에 얼굴을 묻는다)
돌아왔으니까 됐어. 이제 됐어.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웃는)
태준 : (답답하다.....어떡하다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해야할지 이제 아무런 판단도 안 선다)
33. # 강진 회사 회의룸
강진, 자신의 팀원들(8명 정도)과 회의중이다.
강진 : (파일 넘기며) 효자동 한옥 빌리지 껀은 한국의 미를 최대한 살리자는 컨셉이니까
외벽에 전돌 느낌의 텍스처를 살리고, 격자 무늬 창호를 넣어서....
이때, 강진의 핸드폰 울린다.
강진 : (발신 번호 확인하고 갸웃하며) 잠깐만요, 미안합니다. (핸드폰 받 는) 네, 차 강진입니다.
태준(F) : 박 태준입니다.
강진 : (당황하며 표정 굳는)
34. # 휴게소 공중전화
태준, 공중전화 부스에서 공중전화 하고 있다.
태준 :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회사에선 차 팀장밖에 없는 거 같아서.
(시선은 우정을 향하고 있다)
공중전화 유리 부스 앞에 태준의 차, 주차 되어 있고, 조수석에 우정, 담요를 덮고 앉아서 태준을 미소로 보고 있다.
35. # 회의룸 / 휴게소 공중전화
강진 : (표정 싸늘한 채) 무슨.....일이십니까?
태준 : 오늘 중국 개발업자랑 최종 미팅이 있었는데 내가 지방에 있어서 약속을 못 지켰어요.
그 팀들이 리젝틀 놓구 좀 전에 돌아간 모양인데.....차 팀장이 시간을 좀 벌어줘요. 낼 다시 한번 미팅을 할 수 있게.
강진 : (서늘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태준 : 알고 있겠지만, 회사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프로젝트예요. 부탁합니다.
강진 : .........(대답 않고 그대로 굳은 채)
36. # 강진 차 안
강진, 이어폰 꽂고 핸드폰 하고 있다.
강진 : 부산행 KTX 두시 삼십분, (시계 보며) 좌석 번호 좀 확인해 줄래?
강진, 차들을 추월하며 속력을 높여서 가는.
37. # 서울역 플랫폼
강진, 넘어질 뻔하며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내려 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멈추는.
강진 : 아, 스케치북....(다시 돌아서 가려다 시계를 본다. 다녀올 시간이 없다. 난감한 표정으로 KTX쪽을 보는)
저 앞으로 정차해 있는 KTX 보인다.
38. # KTX 안
강진, 좌석 번호를 확인하며 중국 개발업자들이 있는 곳으로 온다.
중국 개발업자 세 사람, 가족석에 마주 앉아 햄버그 먹으며 얘기하고 있다.
강진, 숨을 헐떡이며 그들 앞으로 오더니 털썩 중국 개발업자 옆 빈자리에 앉는다.
중국 개발업자들, 당혹스럽게 보고.
강진 : (중국말로) 그 햄버거 가겐 피시버거가 제일 맛있는데... 담번엔 그 걸루 꼭 드셔 보시죠.
개발업자1 : (경계하듯 강진을 보며, 중국말로) 누구시죠?
강진 : (씨익 웃고 일단 잡긴 잡았는데...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잠깐 난감한 표정으로 생각하는)
개발업자1 : (중국말로) 뭐하는 겁니까? 지금?
강진 : (난감한 표정으로 한국말로 중얼거리는) 그니까요...뭘 해야 될까요?
(하다가......햄버거 옆에 놓여 있는 냅킨을 집는다. 중국말로) 이것 좀 쓰겠습니다.
(냅킨을 가져오더니 셔츠 주머니에 꽂힌 펜을 빼서 그 위에 빠른 솜씨로 스케치를 해 나가기 시작한다)
개발업자2 : (어리둥절해 중국말로) 뭐예요? 뭐하는 겁니까? 당신 누구야?
강진 : (진지한 표정으로 스케치에 몰두해 있는)
39. # 플랫폼 앞
기차, 서서히 움직여 플랫폼을 떠나면 플랫폼에 서 있는 강진의 구두가 보인다.
몹시 피곤하고 지쳐 보이는 강진, 푸후 한숨 뱉으며 멀어지는 기차를 보며 피곤한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쓴다.
이때, 강진의 핸드폰, 다시 울린다.
강진 : (발신 번호 확인하고 받으며) 어, 부산아.
부산(F) : (다짜고짜 울음 터뜨리는) 어어어엉엉엉엉.
강진 : (당황하는)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부산(F) :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 묻어) 혀엉...혹시 배 안 고파? 되게 맛있는 케잌 있는데에에...형이 먹을래?.....어어어엉엉엉...
강진 : (기가 막힌)
40. # 공원 벤치 (옆으로 잔디밭이 있는)
강진, 부산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다급하게 온다. 걸어오다 뭔가 발견하고 기가 막힌 표정되는.
부산, 벤치에 쪼그리고 앉아 훌쩍이고 있다. 울음 끝을 다스리고 있는. 옆으로 케잌 상자와 꽃다발이 놓여 있다.
강진 : (부산 앞으로 다가 온다) 차 부산!
부산 : (고개를 든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시뻘겋다. 아직도 눈엔 눈물이 맺혀 있다) 혀엉.
강진 : (손수건을 꺼내 부산에게 내민다) 서울엔 언제 왔어?
부산 : (손수건으로 눈물 닦고 코 풀며) 아침에. 오늘이 우리 아버지 생일이거든.
강진 : .....아버지하구 계속 연락했었어?
부산 : 아니......그냥 나 혼자서......아들 취급두 안해주구 사람 취급도 안해 주구 무시 까는데...
나 혼자서 그냥....얼쩡거렸어. 보고 싶을 때마다.
강진 : (몹시 속이 상한다. 부산 옆에 놓인 케잌 상자와 꽃다발 등을 보는)
부산 : 이 케이크, 생일 선물로 드릴려구 내가 직접 만든 건데.....그냥 니가 갖고 가서 다 처 먹으래. 우리 아버지가.
강진 : ......(표정 굳는)
부산 : (케잌 상자 강진에게 내밀며) 이거 그냥 형이 먹어.
강진 : ........
부산 : 생크림으로 만든 거라서 오늘 안 먹으면 상해. 회사 사람들하구 나눠 먹어.
강진 : (케잌 상자를 받아 옆에 앉으며..케잌 상자를 연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부산 올림’이라고 초콜릿으로 쓴 글씨가 뚜렷하다)
부산 : 내가 형만큼 멋지고 잘 났으면....(다시 울먹이며) 우리 아버지가 나....아들로 받아 줬을까?....
엄만 대체 뭘 믿구 날 낳은 거야? 초음파 검사두 안해 봤나?
강진 : (손가락으로 글자들을 뭉개며 케잌 생크림을 찍어 먹고) 맛있다.... 너두 좀 먹어 봐.
부산 : (눈물 훔치며 일어나며) 엄마가 찾기 전에 내려 가봐야 돼.
강진 : 그렇게 팅팅 부어서 그 얼굴로 버스 탈려구?
부산 : 많이 이상해? (눈가를 손바닥으로 거칠게 문지르는데)
강진 : (가까이 앉아 보라고 손짓하는)
부산 : (강진 가까이로 와서 앉는)
강진 : 이게 뭐냐? 사내 새끼 얼굴이?.....(케잌 생크림을 듬뿍 찍어 부산의 얼굴에 바른다)
부산 : 어우, 뭐야아...
강진 : (아예 두 손으로 생크림을 부산 얼굴에 잔뜩 바르며) 사내 새끼가 그깟 일루 질질 짜기나 하구....
이런 기집앨 뭘 믿구 낳은 거야? 엄마는, 그니까?
부산 : 아우, 씨이....(하며 자기도 생크림을 찧어 강진의 얼굴에 바른다)
강진 : 어쭈, 이 자식이....
강진과 부산, 서로 뒤엉키며 서로의 얼굴에 생크림을 바르며 장난친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개의치 않고, 서로 케잌 발라대며 도망치며 껴안고 뒹굴며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처럼.
41. # 근처 수돗가
생크림으로 엉망이 된 강진과 부산, 수돗물을 틀고 세수한다.
강진, 형답게 자상하게 부산의 목덜미에 묻은 생크림을 닦아 주기도 하며.
부산 : 형은 아버지 안 찾아가?
강진 : (세수하다가 잠깐 멈칫하다가....다시 세수하는)
부산 : 형 정도면 떳떳하게 찾아가두 되잖아? 이제?
강진 : (계속 세수만 하는)
부산 : 근데, 형 아버진 어떤 사람이야?
강진 : .......
부산 : 형 아버진 누구야?
강진 : (수돗물을 끄고 부산을 보며 대답 않고 씁쓸하게 웃는)
42. # 산청 마을 길 / 준수 차 안
준수, 영숙(여행복 차림이다)을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해서 가고 있다.
준수, 운전하면서 틈틈이 영숙의 옷을 매만져 준다.
준수 : 난 개인적으로 아까 입었던 것보단 지금 입은 게 훨씬 나은데?
영숙 : (흐뭇하게 웃으며) 이거 얼마 전에 당신이 사다 준 거잖아요.
준수 : 그니까...담에 시내 나가면 지난번에 망설이다 놓구 온 원피스, 그 거 꼭 사자! 당신한테 진짜 어울렸어, 그건.
준수, 더 할 수 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남편의 모습이다.
영숙도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답게 표정에 편안함과 넉넉함이 있다. 일단 지금 겉으로는.
운전해 가던 준수, 무언가 발견하고...표정이 굳는다. 영숙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는다.
마을 길 중간에 춘희가 미니 봉고(용다방 로고가 그려진)를 막고 드러누워 있다.
(차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길인데 춘희가 중간에 드러누워 있다)
미니 봉고 조수석에 미스 신이 울상이 되어 타고 있고,
운전석에 기도로 보이는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 인상의 건달 남자, 푸푸거리며 앉아 있다가 빠앙 크락션을 거칠게 울린다.
미니 봉고 뒤로 차 두 대 더 서 있다. 빵빵 크락션 소리 내고 있는.
춘희 : (태연하게) 암만 빵빵 거려봐라, 내가 비키나! 나 오늘 이불 깔았어!
미스 신 도루 내려놓기 전엔 한 발자욱도 못 지나가니까, 그렇게 스카웃 해 가구 싶으면 날 죽이구 데려 가!
미스신 : (차창밖으로 고개 내밀고) 씨이!! 내가 언니꺼야? 언니 같으면 월급이 30만원이나 더 많은데, 글루 안 가?!!
준수 :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춘희다...답답한 표정으로 보는)
영숙 : (서늘한 표정으로 보는)
춘희 : (반대편 길에서 준수와 영숙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안 가! 안 가!! 치사하게 돈 30만원에 의리를 배신하냐?
너 애가 왜 이렇게 변했어?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미스신 : 그래, 나 치사해! 치사 빤스한 년이니까 비켜어, 쫌!!
춘희 : 못 비켜, 이년아!....복지 국가 건설과 정의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두
너 같은 년은 절대로 곱게 보내주면 안돼! 내려! 어서 내려, 이년아!!
기도 : 아우, 진짜…….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차에서 내려) 애지간하면 내가 우리 엄마 생각해서 말로 할라 그랬는데...
(춘희쪽으로 온다) 일어나! 안 일어나?!! (춘희의 멱살을 잡더니 우악스럽게 일으켜 앉힌다)
무릎 뼈부터 머리 뼈까지 새로 한번 조립해주까? 아줌마?!!
춘희 : 그래! 새로 조립 한번 해봐라, 이 놈아! 안 그래도 관절도 안 좋구 삭신이 쑤셔 잠을 못 자겠는데
니 덕분에 고질병 좀 고쳐 보자. 조립해 봐아!! 니가 조립 못하면 내가 널 간장에다 넣구 졸여 버린다!
준수 : ........(표정 굳어서)
영숙 : (담담한 표정으로 보는)
기도 : (기가 막혀) 허! 늙은 게 한 마디를 안 지네, 한 마디를....이걸 그냥 확! (하며 한 대 칠 듯이 손을 쳐드는데)
춘희 : 확 뭐? 확 뭐? 칠라구? 쳐 봐! 쳐 봐!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아!!...
(그대로 머리를 기도의 얼굴에 사정없이 쾅! 박치기 해버린다)
기도 : (코에서 피가 줄 터진다. 피를 보자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는) 이게 진짜.....
(하며 벌떡 일어서더니 춘희를 사정없이 걷어차 버린다)
춘희 : (악! 비명을 지르며 한쪽으로 사정없이 나동그라지고)
눈이 뒤집힌 기도, 춘희에게 사정없이 발길질 해대기 시작한다.
춘희, “그래, 이 놈아! 패라! 패! 장사도 안 되는데 깽값이나 벌어보자! 패애! 패! ”지지 않고 악다구니를 치고.
준수 : (벨트를 풀고 내려서 춘희를 구하려고 하는데)
영숙 : (준수의 팔을 탁 잡는다)
준수 : (보는)
영숙 : 버스 시간 늦었어요....가요, 빨리.
준수 : ......(영숙의 말에 차마 내리지 못하는)
영숙 : 빨리 가요....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구.
준수 : .......
기도의 발길질에 얻어맞던 춘희, 문득 시선을 돌리다 자신을 보고 있는 준수와 시선을 마주친다.
준수 : (그대로 굳은 듯 춘희와 시선을 마주치고...)
춘희 : (자신이 건달에게 얻어맞는 걸 차 안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준수를......서운하고 아프게 보는)
준수 : .........(무표정하게....감정 드러내지 않고....그저 보고만 있는)
춘희 : .........(준수가 원망스럽다)
영숙 : (춘희를 외면하고 준수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있다)
준수 : (결국.....춘희를 외면하고 차를 후진시키기 시작한다)
춘희 : (그런 준수를 먹먹한 표정으로 보는....기도가 계속 식식거리며 발길질을 하지만
마음이 너무 아파 육체의 고통은 느끼지 못하는)
미스신 : (준수의 차가 떠나기 시작하자 결국 견디지 못하고 뛰쳐 나와 춘희와 기도를 막아서며)
그만 해요! 때리지 마!! 우리 언닌 때리지 마!! 넌 에미 애비도 없어? 자식아!! 나 용다방 안 가! 안 가, 이 깡패 새끼야!!
기도 : 뭐어? (어이가 없어 발길질을 멈추고)
춘희 : (떠나고 있는 준수의 차에 시선을 박은 채 멍하니 허탈하게 보는)
43. # 준수 차 안 / 마을 길
준수, 착잡한 표정으로 운전해 가고 있다. 춘희의 눈빛이 자꾸 걸린다. 애써 털어내려 하는.
영숙, 그런 준수의 표정을 살피며.
영숙 : 나 버스 타기 싫어요....당신이 서울까지 데려다 줘요.
준수 : 좀 있다 예약 환자들이....(하다가) 알았어. 데려다 줄게.
영숙 :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며) 우리 이사 가요.
준수 : (또 시작인가....답답한 표정으로 보는)
영숙 : 서울이든 어디든 이사 가요, 우리.
준수 : 안 된다 그랬잖아.
영숙 : 왜? 왜 안 되는데?
준수 : (답답하다)
영숙 : 누구 때문에 못 떠나는데?...춘희..(때문에 하려는데)
준수 : (O.L.) 지완이! 우리 딸 지완이 때문에!
영숙 : .........
준수 : 지완이 기다려야지 가긴 어딜가?
영숙 : .....그깟 기집애, 돌아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예요!!
준수 : (차를 멈추고, 영숙을 보며) 지완이 우리 자식이야!! 지용이하구 똑같이 당신이 배 아파서 낳은!!
영숙 : 지용이 죽구 일주일도 안돼서 서울 가겠다고 편지 한 장 달랑 써 놓구 없어진 애예요.
아무리 어리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지 부모가 얼마나 괴롭구 힘들진 안중에두 없구, 그저 지 생각밖에 못 하구....
준수 : 저두 힘들어서 그랬겠지. 지 오빠 죽구 힘들어서.......
당신 정말 지완이 걱정도 안 돼? 어떻게 살구 있나 궁금하지도 않어?!!
44. # 강의실
병색이 완연한 지완, 힘겨운 듯 책상에 엎드려 있다.
영숙(E) : 하나두 안 궁금해요....한심하게 살구 있겠지 뭐.....
지용이가 하늘에서 보구 가슴을 치고 통곡을 할 만큼 여전히 기가 막히고 한심하게 살고 있겠지 뭐.
지완, 몹시 힘이 든 지 눈을 감는다.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교수의 강의 소리 아슴푸레 들려온다.
교수(E) : 본초의 기미형색질(氣味形色質)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카메라 빠지면, 대학 강의실.
(본초학 실습실, 실습대 위에는 수십가지 약재와 확대경들이 있고, 스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조별로 나뉘어 앉아 있다)
모습이 보여진다.
교수, 약성가(藥性歌, 약물의 성질을 표현한 열 네자의 한자 문장)를 칠 판에 쓰고 있다.
교수 : (쓰던 것 멈추고 돌아서서 학생들 보며) 죽어라 만지고, 따라 그려 보고, 노려보고,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봐라.
400개가 넘는다고 겁먹을 건 없다. (엎드려 있는 지완을 발견하고) 한의사란 머리로 되는 게 아니라,
노력과 가슴으로 되는 (하다가 갑자기 분필을 지완의 머리를 향해 던진다)
지완, 머리에 분필을 정통으로 맞고 아야! 하며 몸을 일으킨다.
교수 : 이불 깔아줘?
지완 : (몹시 아픈 듯 머리를 부비고...) 잔 게 아니구요....몸이 아파서 잠깐 ....
교수 : (O.L.) 휴학생 주제에 청강 시켜 달라구 그렇게 조를 땐 언제구, 너 대체 뭐하는 놈이야?!!
지완 : .........(할 말이 없다)
교수 : 일어나봐.
지완 : (힘겹게 몸을 일으킨다)
교수 : (갑자기 지완을 향해 테이블 위에 있던 생강 하나를 집어서 던진다)
지완 :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생강을 받는)
교수 : 약성가(藥性歌)!
지완 : (당황하다가 열심히 생각하는) 생강...성온능..거예(生薑性溫能祛穢) 창신...개,위,토,담,해(暢神開胃吐痰咳)....
교수 : (흡족한 표정 짓고) 담 학기 복학 할 등록금은 마련했나?
지완 :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교수 : 지금 여기 서 있는 여러분의 선배인 한지완군은 검정고시를 거쳐 입학시험에서도 간신히 턱걸이로 들어왔고,
한자라고는 지 이름하구 일 이 삼 밖에 모르고, 그래서 낙제도 당하고, 경제 사정 때문에 휴학도 했지만,
지완 : (고개를 푹 숙이는.....)
교수 : (미소 지으며)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교수를 협박해 청강도 하고, 잘 때도 약재를 끌어안고 잠들고,
본초학서와 자전이 너덜거릴 때까지 노력한 결과 현재의 바람직한 모습이 된 거다.
학생들, 와아하며 박수도 치고 환호도 하고.
지완 :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마치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처럼)
교수 : 한 지완! 칠판으로 나와서 (교수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약재들 가리키며) 여기 놓인 다섯 개 약재들, 약성가도 써 봐.
지완 : (여전히 고개 떨군 채.....)
교수 : 왜? 이건 몰라? (하는데)
지완 : (갑자기 바닥에 퍽 의자와 함께 쓰러진다)
학생들, 놀라서 지완 쪽을 일제히 보고. 여학생 둘은 “선배님”하며 지완에게 달려가는데.
교수 : 괜찮아! 냅둬! 저 자식 쓰러지는 거 저거 상습범이야. 모르니까 쪽 팔려서 꾀병 부리는 거야...
지완 : (바닥에 쓰러진 채 힘겹게 눈을 뜬다. 이마에 식은땀도 가득하고 사실은 진짜 아프다)
교수 : 한 지완! 꾀병 그만 부리구 그만 발딱 일어나시지!
지완 : (맥없이 천장을 보고 털썩 누우며...있는 힘을 다해 씩씩하게 말하는) 네!!....쪽팔리니까 오분만 있다가 일어나겠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몹시 힘들어 보인다)
45. # 대학교 화장실
지완, 열을 식히려고 세면대 앞에 서서 푸파푸파 세수하고 있다....그러다 거 울을 보며 머리에 열이 나나 손을 대 보고.
지완 : (명랑한 말투와 달리 표정은 쓸쓸하다) 앗싸아! 열 완전 심하게 난다. 누군 열라 미안하겠다....
박 태준 오면 확 쓰러져 버려야지. 너 땜에 비 맞구 체하구 잠두 못자구 밥두 못 먹었다구......미안해서 어 쩔 줄 모르게....
그냥 폐렴까지 확 걸려 버리까? 미안해서 내 얼굴 쳐다도 못 보게......
(서글프고 쓸쓸하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기 묻은 손으로 위로하듯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와아....이 다 크써클이랑 살 빠진 거 좀 봐라. 박태준 미안해서 죽구 싶겠다, 진짜.
강진(E) : (휘파람으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 부르는)
46. # 강진 사무실
모두 퇴근하고 강진만 회사에 남아 있다. 강진, 핸드폰 이어 마이크 하고 휘파람을 불며 설계도면 그리고 있다.
(사무실 모든 불 꺼지고 강진 책상에만 라이트가 켜진)
강진 : (휘파람 불다가 문득 멈추고) .....자?
춘희(F) : 안 자.
47. # 춘희 다방
춘희, 한손엔 무선 전화기 들고, 소주병 앞에다 놓고 홀짝거리며 마시고 있다. 작은 조명등 하나만 켜져 있는.
강진(F) : 술 마시나?
춘희 : 내가 맨날 천날 술만 마시는 사람이냐? (하며 소주잔 비우고) 또 다른 노래 불러 봐! 다른 노래!!
목포의 눈물 아냐? 무너진 사랑탑 알어? 사랑은 눈물의 씨앗 알어?
48. # 강진 사무실
강진 : (설계도 그리며) 속 버려. 그만 마시구 자.
춘희(F) : 에미가 불러보라면 좀 불러 봐, 새끼야.....
49. # 춘희 다방
춘희 : 어떤 년은 지 서방이 밤마다 자장가처럼 불러준대더라....잠들 때까지 쉬지도 않구......
그 어떤 년 서방은 철마다 이쁜 옷도 사다 주구, 사람이 눈 앞에서 맞아 죽어도 지 여편네가 싫어한다구
그냥 보고만 있구 말려주지도 않는대더라. 그 어떤 년 서방은..... (하다가 다시 울컥해서) 너 그렇게 잘났냐?
미국 물 먹구 서울 물 먹으니까 에미 같은 건 이제 우습냐? 너 에미가 쪽팔리지?
50. # 강진 사무실
강진 : (피식 웃으며 설계도 그리던 것 접고, 이어 마이크 빼고 핸드폰을 들고 창가 쪽으로 걸어간다)
춘희(F) : (핸드폰 통해 계속 목소리 들리는) 에미 때문에 그 대단한 집안 기집애들이 삼십육계 줄행랑이나 치구....
뭐 이딴 게 에민가 싶지? 에미만 아니면....
강진 : (O.L. ‘홍도야 우지 마라’ 부르기 시작하는)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51. # 춘희 다방
춘희 : (가만히 전화기에 귀를 대고 있다....눈가가 천천히 붉어진다)
강진(F) :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밝혀라.
춘희 : (그제야 눈물이 그렁한 얼굴 가득 서글픈 미소가 떠오른다)
52. # 춘희 다방 앞
준수의 차가 서 있다. 준수, 춘희의 다방을 깊은 죄책감과 애틋함으로 바라보고 있는...
53. # 엘리베이터 안
강진, 피곤한 표정으로 얼굴 부비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엘리베이터 안의 시계, 12시를 넘어서고 있다.
강진, 지하층을 눌렀다가 1층을 누른다.
54. # 지완 카페 앞
불도 꺼지고 문도 닫힌 카페 앞. 누군가의 구둣발이 와서 멈춰선다.....태준이다.
태준, 문을 두드리려하다가....결국 두드리지 못하고 손을 내리고 만다.
씁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려서 가는 태준.
태준의 모습이 사라지고 잠시 후, 강진이 카페 앞에 나타난다.
불 꺼진 카페를 멀건이 바라보고 있는 강진.
55. # 강진 오피스텔 복도
강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기 집 쪽으로 오다가 뭔가 발견하고 멈칫하는 표정이 된다.
지완이 태준 집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태준을 기다리고 있다. 자기 생각에 빠져 고개를 떨구고 있어 강진을 보지 못하는.
강진, 그런 지완을 당혹스럽게 보다가.....못 본 체하고 자기 집으로 들어간다.
지완, 강진이 들어가고 난 잠시 후 고개를 들며 벽에다 등을 기댄다. 얼굴에 병색이 여전하다.
지완 : 한 시간만....딱 한 시간만 기다리다 가자, 한 지완....
56. # 강진 오피스텔 안
강진, 진동 칫솔로 이빨을 닦고, 푸파푸파 물을 튕기며 세수를 한다.
신경 끝에 걸린 지완을 무시하기 위해 열심히 분주하게 일상 생활하는.
캔 맥주를 마시며 CNN 뉴스를 보고, 석간신문을 보고,
자막이 없는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고, 메일을 체크하며 미국인 클라이언트와 통화를 하고....
강진, 침실로 와 불을 끄고 스탠드 불만 켜고 자기 위해 준비한다. 시계를 보면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다.
침대에 드러누우려던 강진, 결국 벌떡 일어나 앉으며 밖으로 나간다.
57. # 강진 오피스텔 복도
강진, 현관 문 열고 복도로 나온다. 태준 집 앞에 지완이 쪼그리고 앉아 잠들어 있다.
강진, 그런 지완을 난감하고 속상한 표정으로 보는.....저 병신 같은 게....
강진, 그래, 내가 상관 할 일 아니다.....스스로에게 말하며 다시 자기 집 안 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완, 쪼그리고 앉은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58. # 강진 오피스텔
강진, 침대로 와 눕는다. 생각을 떨치려고 눈을 감고 스탠드 불도 아예 꺼버린다.
그러나,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스탠드 불 다시 켜지고, 강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59. # 강진 오피스텔 복도 / 태준 집 앞
강진, 지완 앞으로 다가와...물끄러미 지완을 보다가......조심스레 지완을 안아든다.
60. # 강진 오피스텔
강진, 잠든 지완을 침대에 조심스레 눕힌다. 불빛 아래서 본 지완의 얼굴, 식은땀이 가득하고, 병색이 있다.
지완, 얕게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강진, 지완의 머리에 손을 얹어 본다. 열이 심하다.
강진, 화도 나고, 속도 상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61. # 오피스텔 복도
엘리베이터 문 열리고, 태준, 내린다. 자신의 집 앞으로 털레털레 걸어가는.
62. # 태준 오피스텔
태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불도 켜지 않고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버린다.
63. # 강진 오피스텔
강진, 지완의 머리에 얼음물에 적신 수건을 올려주고, 체온계를 지완의 겨드랑이에 꽂고 체온도 체크한다.
지완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강진. 벽에 걸린 시계, 새벽 4시를 넘어서고 있다.
강진, 이제 열이 조금 내리고 한결 숨소리가 부드러워진 지완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강진, 뺨에 달라붙은 지완의 머리카락을 떼어주려다....스스로도 당혹스러운 마음의 일렁임에 손길 멈추고 일어난다.
64. # 강진 베란다
강진, 베란다 앞으로 나와 창밖을 본다.
시간 경과.
어둠이 걷히고, 저편 동쪽 먼 하늘에서 동이 터 오고 있다.
강진, 그때까지도 꼼짝 않고 창밖을 보며 서 있다.
65. # 강진 오피스텔 (아침)
지완, 천천히 눈을 뜬다. 얼굴은 병색이 여전하다.
.....여기가 어딘가 멍한 표정으로 둘러보다가.....당황하며 벌떡 일어나 앉는.
지완, 휘청거리며 침실 밖으로 나오다 깜짝 놀란다.
강진, 식탁에 앉아 신문 보며 토스트와 커피 먹고 있다.
지완 : (여기가 그럼 강진의 집인가......내가 여기 왜 있는거지.....기함한 표정 되는)
강진 : (지완의 기척을 느끼며...시선은 신문에 두고) 일어났어요?
지완 : ......내가.....왜......여기......여기 있어요?
강진 : (그제야 지완을 돌아보며 담담한 표정으로) 그러게요......우리가 인연이 깊나 보죠.
지완 : (당혹스러운데)
이때, 초인종 울린다.
강진, 화면 확인하고, 현관 문 열어준다. 문 앞에 태준이 서 있다.
태준 : 차 잘 썼어요. 고마워요. (차 키를 강진에게 내밀다가 지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지완아!!
지완 : !!! (태준을 보고 몹시 당황하고)
태준 : 니가 여기 왜 있어?
지완 : (당황해서 말을 못하는)
강진 : (담백하게) 박 팀장님 집 앞에서 잠들어 계신 걸 모른 체 할 수가 없어서 모셔 왔습니다. 몸두 많이 아프신 것 같애서.
지완 : ! (강진을 보는)
강진 : (한쪽에 놓인 지완의 겉옷을 다정스레 지완의 어깨에 덮어주고 지완의 머리에 손을 대 보며) 아직두 열이 많이 나네.
지완 : !!!
태준 : !!!
강진 : (두 사람의 당황한 표정 느끼지만, 담백하고 태연하게 태준보며) 바루 병원부터 모시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하다가 갑자기 생각 난 듯 표정과 말은 담백하나 눈빛은 서늘한.....비꼬는) 아, 바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