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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산 산행
2005년 6월 18일 아침
“성진아! 학교에서 다녀오면 누나랑 냉장고에 있는 것 찾아서 밥 먹어”
“왜 엄마 어디가?”
“응! 아빠랑 산에 다녀오려고”
“어느 산?”
“청소년 수련원 뒤에 가면 달비고개 있잖아? 그 곳에서 올라가는 산 이래”
“학교오고 갈 때 조심하고, 알았지?”
“응”
하산길이 바뀔 수도 있어서 차를 가지고 가지 않기로 하고 출발하였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달서구 청소년 수련원이라는 곳의 밑자락!!
안내 표지판을 보니 지금 위치인 달비고개에서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모든 시간이 적혀있는데 2시간 30분 코스다. 정상의 높이는 793m 라나?
더 높은 산도 넘었는데 1,000m도 안 되는 산인데...그러니 2시간 30분이지.......
그래도 우리 느림보들은 5시간은 걸리겠군....남들과 다르지...
출발점에서 보이는 공익요원에게 길을 묻고 산에 오르기 시작하니 9시5분!
드디어 출발이다....
그런데 가는 길이 무지 좁고 가파르다....
절벽타기 수준이다...
출발 5분 후, 산 속에 메아리치는 전화벨 소리...
“김지현 선생님이세요?” “ 아! 네”
“저는 미발추 학생인데요” “아! 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5분 이상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지현아빠 길이 조금 이상한 것 아니에요?”
그 순간 옆의 나무에 받쳐서 왼쪽 발에 무게중심이 옮겨져 왔는데 그만 흙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고 절벽(?)으로 떨어졌다....
두 손을 뻗어서 겨우 나무를 잡고 더 이상의 하강(?)은 없었다....
손이 성한 곳이 없고, 두 무릎에서는 피가 나고....
“조심하지. 잘 보고 가야지....”
“ 아! 글쎄....아! 아퍼라! 아무래도 길이 아닌 듯 하네”
여름에 산에 오르면 긴 바지가 짐이 되어서 반바지를 입은 게 무릎에 큰 상처를 남겼다.
맞어...뭐든지 시작 5분과 남은 5분이 중요해....
아침시간인데도 날이 무지 덥다.
산자락의 시원한 바람이 없다. 한마디로 후덥지근하다..
도대체 오늘 대구 온도가 몇 도지?
지금 시간이 이 정도면 낮에는 30도는 훨씬 넘겠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데 가파른 길을 오르려니 걱정이 앞선다.
돌도 많다....
길이 왜 이래?
남편도 이상하다고 한다....한참 가다보니 건너편에 너른 길이 보인다.
드디어 만났다....길이....이젠 됐다....
그 공익요원 만나기만 해봐라.....
“지현 아빠! 쉬었다 가요..”
하나 둘씩 사람들이 보인다....이 길이 맞나보다....
물 한 모금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간다....
다른 사람들은 안 쉬고도 잘 가네....
가다가 보니 돌탑이 있다.
누군가가 정신 수양 때문이던지 아니면 마음의 짐을 풀어버리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로 많다.
한 없이 이어진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올려서 쌓아진 돌탑은 아니다.
이 돌탑을 세우는 그 정성으로 마음이 편해졌으면....
마음에 한이 있어서야.....
물이 없는 산이다....
그런데 가다보니 작은 관 사이로 적은 양의 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어떤 아주머니가 물을 받는다.
“지현 아빠. 물이에요”
수건에 물을 적시고 아까 다친 무릎과 팔의 흙을 떼어냈다.
“아이고 쓰려라. ”
다시 앞으로 전진이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앞서간다....
산을 잘 타지 못하는 우리 부부는 그냥 즐긴다...
남들보다 두 배 내지 세 배의 시간을 소요하는 강행군이지만
가끔 산을 다녔다...
그런데 내가 학원 강의를 시작하면서 그 시간이 많이 줄어버렸다.
올해는 가까운 집 앞의 산 외에는 등산이라는 생각의 산행은 없었다.
갑자기 어제 결정하고 떠난 산행....
“지현아빠! 산에 가요....한동안 산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다리가 풀리면 안되잖아. 그러니 가까운데로 가자...7월이면 더 바빠지고, 다음 주부터 아이들 시험이니까 안되고....”
“그래? 그럼 내일 갈까?”
“준비할 것은 없어요? ”
“없어..그런데 당신 신발이나 사라..”
“있는데 뭐하러.... ”
“그래도 걸어보니까 가벼운 신발이면 아무래도 걷는 게 수월해..”
“정말?”
예전에 남편이 친구들과 산행을 한다고 해서 요즘 나오는 트랙**를 샀지만 내 것은 사지 않았었는데 이번 기회에 내 것도 사라고 한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큰 맘 먹고 신발을 샀다....
남편 것과 색만 다른 것으로....
우리는 커플이다....
남편에 의하면 친구들은 산을 날아가는데 자기 혼자 뒤처지니까 친구들과 못가겠더라고 한다.
‘그럼...나 아니고 당신 보조 맞추어 줄 수 있는 사람 없지....’
‘어디 가나 나 만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이젠 내가 앞서가야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앞서가는 사람이 많이 쉴 수 있다는 진리....
이 산은 경사가 심하네....능선도 없고....
가끔씩 만나는 사람들.....
한 산은 넘었다....아마 그 뒤에 보이는 산만 넘으면 되겠지....
다시 쉰다....점점 쉬는 시간이 늘었고 전진하는 진도는 늦어진다.
그리고 숨소리는 고르지 못하다.
우리 둘은 그냥 바닥에 앉아 버린다.
그리고 지현이 얘기, 성진이 얘기, 학원 얘기를 나눈다.
참 이상하지......잠도 오네....
등산하면서 잠이 다 오다니....
참 이상한 산이네...왠 바람이 이리도 없지?
그렇게 오르기를 3시간.....
땀이 비오듯 하여 옷을 적신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지?
산 꼭대기인 듯 한데 또 아니다....
벌써 몇 개째인가....
점점 힘이 빠진다.
머리 앞의 산자락이 보이는 것이 정상인 듯한데 또 이산을 넘어야 하나 보다....
다리의 힘이 빠진다.
정상인 산이 너무 멀리 있다....
아무래도 저 산을 넘으면 또 있을 것 같은 불안감....
“지현아빠! 쉬었다 가요...갑자기 힘이 빠지는 게 쉬어야 할 듯해..밥먹고 가면 안되요?.”
지금 먹으면 정상에 가기 힘들다고 정상까지 가서 밥을 먹어야 하니 조금만 참으라고 한다.
그때 한 아줌마가 지나간다...
“아주머니! 정상까지는 얼마나 남았지요?”
“얼마 안 남았어요 한 30분에서 40분 정도요”
“잉?”
“지현아빠 돌아가요....저 아줌마가 40분이라고 하면 우리 걸음으로 2시간인데 자신이 없어...그냥 돌아가자..여기서 봐도 정상이 너무 멀어.”
“아니야...얼마 안 남았어....조금만 가면 되니까....조금만 더 가자...”
“조금만 더 가고 아니면 그냥 하산해요”
다시 일어나 걷는다....
그런데 우린 너무 못 걷는다.
그때 아까 길에서 만났던 부부가 하산중인지 만났다....
“지현아빠!!저 사람들은 정말 빠르네...”
드디어 우리 남편....
“안되겠다....체력이 급격히 소모되어 안되겠다...밥 먹고 가자”
등산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오래 걸리므로 우리는 늘 도시락을 준비한다.
여러 종류의 도시락을 준비해 보면서 얻은 결과는....
그냥 밥에 김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다른 반찬도 그렇다....
둘이 정신없이 배를 채운다. 물 한 모금 먹고 나니 살것 같다...
드디어 눈이 띄인다.
도시락 메고 오느라 남편이 더 힘들었다....늘 그렇듯이....
‘그래!!!가자....3시간을 넘게 걸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배가 부른 포만감이 주는 여유이다.
그런데 이 산은 능선이 참 적다.....
그래...가자....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다리가 싫어한다....
‘다리야...너 안가면 나는 어떡하니?
아프지만 조금만 참아라....
2시간 정도만 더 걸으면 정상이라잖아....이제까지 온 거리보다는 적네....‘
‘경훈아!!(버즈의 민경훈) 노래 좀 불러라....’
혼자 노래를 불러보려고 하니 가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고 뒤죽박죽이다.
왜 가사는 그리 못 외울까... 문제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늘 그렇듯이 왜 이렇게 힘든 산을 오르지?
산사람이 그러더란다...산이 있으니 가는 것이라고....
난 그렇게 멋있는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서 꼭 가야할 것 같다....
2시간 거리를 가야하므로 다른 사람처럼 시간 절약하기 위해서 앞만 보고 간다.
사람이 보인다....
‘저기요? 얼마 남았어요?’
‘한 10분이요...다 왔어요’
그러면 30분 정도는 가야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얼마를 걸었을까?
점심 먹고 그리 많이 걸은 것 같지 않은데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지현아빠 말대로 헬리콥터 착륙장이다.
다른 사람들이 있다...
이 산 정말로 험하네요....
그러니 그 사람의 얘기는 팔공산보다도 더 오르지 어려운 산이란다.
정말로 그 말에 수긍했다.
팔공산은 1000m가 넘는 산으로 여러 번 올라봐서 안다.
이 산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듯하다.
드디어 정상이다!!!!!!!
모든 산 들이 내 발 아래에 있다.
너무도 아름답고 웅장한 정상에서의 맛이다.
그래!! 이 맛이다!!!
이 맛 때문에 산에 오른다.
처음 출발하던 곳이 보이는데 까마득하다....
정말로 멀리 왔네.....
정상은 서 본 사람에게만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허락한다.
힘든 고비를 넘기 사람에게만 보여준다.
조금 전에 너무 힘들다고 그만 두었다면 이 정상을 보지 못하고 얼마나 아쉬었을까....
그래...고통을 이겨낸 자의 특권이다.
다 와서 정상을 보지도 못하고 갈 뻔 했다.
나 자신이 조금은 사랑스럽다...
그리고 하산하려는 것을 막아준 남편도 고맙다....
그래서 인생에서 동반자도 중요하다....
1시.....
아까 그 아줌마 말이 맞았군.....
정상에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산 꼭대기는 하늘에서 가깝기 때문에 그늘이 없다...
그래서 오래 있지를 못한다.
그런데 행운이다...다른 사람들을 만나다니....
사진을 부탁했다....
오랜만에 산 정상에서 남편과 함께 찍었다.
대부분 서로 찍어주기만 했는데.....
갈수록 느끼는 것이지만 점점 닮아가는 것 같다....
18년째인 우리 부부...
정상을 보았으니 하산이다.
이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상 바로 밑에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두들 쉬면서 얘기에 여념이 없다.
두 갈래길이 있어서 물으니 한 길을 알려주면서 그리 가라고 한다.
드디어 하산이다.
내려가는 길이야...무슨 걱정이 있으랴....
가벼운 마음이 된다.... 지현아빠 가방도 가벼워졌을 것이고....
이젠 가지고 온 물도 다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길이 없어진다.
그리고 거의 70도 각도의 절벽이다...
편안히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주변의 풀들이 내 키만 하다.....
왜 이러니....만난 사람마다 잘못 알려주네....
갑자기 무서워진다....대낮인데도....
산에서 사람소리가 나지 않으면 무섭다....
옆에서 짐승이라도 나올 듯하다....
옆의 나무를 잡고 서 있기조차 힘들다....
젊은 사람들도 아니고 큰일이다....길이 안 보인다....
그리고 내려갈 길이 까마득하다....
더 긴장한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바람한 점 없고, 땀으로 옷이 다 젖고....
너무 가파른 길을 내려오다 보니 무게중심이 앞발에 쏠리면서 발도 아파오려 한다.
그러다가....
“엄마야....”
“지현 아빠! 조금 전 구멍에서 나온 게 뭐에요?”
“두꺼비”
내 발 아래 구멍에서 두꺼비가 나오는 바람에 기겁을 했다....
오늘 산행 파란만장하다....
이번에는 장미이다.
꽃은 예쁜데 가시가 이곳 저곳을 할퀸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에서도 긴 옷을 입지....
그래도 난 여름에는 긴 옷을 절대 입지 않는다.
이 쓸데없는 고집이 온 몸에 상처를 만든다.
장미 줄기를 가로지르며 가시에 찔려가면서 내려간다....
남편이 앞에서 길을 만들어주고 난 혹시나 남편을 잃을까 바짝 뒤따른다.
가파른 길을 얼마나 내려왔을까.....
주변을 바라보니 꽃이 너무 예쁘다...
너무도 자라버린 꽃 속에 파 묻힌다.
깻잎도 너무 자라서 내 키보다 크다....
깻잎의 향기가 진동한다.
앞서서 내려가던 남편이 무엇인가를 준다.
산딸기란다...먹어보라고....
너무 맛있다...주변이 온통 산딸기이다.
여기저기서 따 먹는다....
그 즈음 남편의 고요를 깨는 말!
“딸기 옆에는 뱀이 있으니 주의해”
“잉”
더 이상 산딸기를 먹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깊은 산속이다.
새소리도 꽃들도 다양하다...
이것을 접시꽃, 저것은 꾀꼬리 소리, 이것은 들국화, 이것은 들장미, 이 나무는 밤나무, 이 나무는 도토리 나무, 이 잎은 나물도 먹고, 이 잎은 약으로도 쓰인데. 그리고도 계속된다.....
참 많이도 안다....
난 그것이 그것 같은데.....
그래..맞아...내가 원했던 것 중의 하나는 시골이 고향인 사람이었으니....
어느 정도를 내려 오고 나니 조금은 여유가 생긴다....
그럴 즈음 사람소리가 난다...
그렇게 수직하강만 하다가 드디어 길을 만난 것이다.
“지현아빠...그런데 무지 고생은 했지만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겠지?”
이제 서서히 발이 풀린다.
그런데 길은 맞은데 돌이 많은 능선이다.
흙이 많아야 발이 편한데....
둘 다 이제는 지쳤다....
조금씩 길이 넓어진다.
그런데 산 속보다 너무도 덟다....
땅에서 올라오는 열까지 발바닥에 열이 난다.
“지현아빠...우리가 길을 따라왔으면 3시간은 걸렸겠지?”
그 즈음이 전화가 온다....
“엄마. 어디야?”
아들이다...
“글쎄, 거의 내려오기는 왔는데 차가 없어....얼마쯤 가야할지 모르겠어”
“조금만 기다려... 엄마 곧 갈거야..”
다시 걷는다.
벙거지 모자위로 태양빛이 쏟아진다.
드디어 시골 마을이 보인다.
조금 더 가면 차가 있겠지....택시든 버스든....
그늘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길을 빨리 빠져나가야 할 듯하다....
마을이 가까워지다 보니 슈퍼가 있다....
무조건 나는 아이스크림을, 남편은 음료수를 마셨다....
갈증이 조금은 풀린다.
물 없는 산행은 정말로 힘들어....
드디어 종점 버스정류장.....
택시는 없고 버스만 들어온다.
그 유일하게 오는 이 버스가 우리 집 앞을 간단다....
에어콘이 되는 버스에서의 시원함을 만끽한다.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엄습해온다...
집에 도착했다....
“엄마, 나 학교에서 다쳤어..”
“왜?”
“축구하다하다 넘어졌어..”
“엄마도 다쳤어...피도 나고 그랬어”
“느네 엄마 큰일 날 뻔 했데이..”
아들은 확실하다 내 아들임이....
같은 날 같은 부위를 다쳐서 약을 바르고 있다.
집에 들어왔을 때의 편안함 안도감.....
그래...집은 좋은 것이여....
에필로그
씻고나온 남편이 2kg 줄었다고 한다.
설마..? 나도 보니 2kg이 줄었다....힘들기는 했나보다...
오랜만에 산 타고 나니 좋다....
남편의 한마디....
“지현 엄마..다음 주에 또 가자..”
그날 저녁 우리들은 오랜만의 산행을 기념하여 다시 2kg을 살찌웠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어요.. 선생님.. 즐겁게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아서 넘 좋아요^^
산행하시는 방법이 저랑 비슷하시네요...느림보 걸음...그래도 항상 중도포기란 없죠!!!
이 한편의 글이 많은게 녹아있는것 같아요.. 음..뭐랄까? 지금 힘들하시는 많은 분들이 마음속에서 하나씩 얻어갈수 있는....^^
산에 갈때 필요한 필수 정보가..그 산에 케이블카 있나?...인 저인데 저도 나이 더 먹기 전에(?) 용기를 함 내 봐야겠어요. 선생님 건강하세요.
네...고맙습니다. 이번주 교육론 종강하면 7월부터 산에 다녀야지요....25살이니까....아직은 다닐 수 있겠지요? 진해댁님과 한번 산에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