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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궁극적인 비극 창3;8-9절
저명 기독교 문필가인 C.S. 루이스는 부인이 암으로 죽은 뒤 쓴 'A Grief Observed'(내가 관찰한 슬픔)라는 책에서 하나님을 'Cruel Vivisector'(잔인한 생체해부자)라고 불렀습니다.
경건한 그가 부인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렵게 보였으면 그랬을까요? 육체적 고통이 얼마나 힘듭니까?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작가 박완서(1931~2011)는 남편과 외아들을 잃고 하늘을 향해 이렇게 절규했다. 남편은 병으로 잃었지만 25년 5개월간 자랑스럽게 키워온 의사 아들이 사고로 창졸간에 떠난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작가는 작품 '한 말씀만 하소서'에서 참척(慘慽)의 고통을 처절하게 기록했다.
"내가 이 나이까지 겪어본 울음에는,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도대체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삶에 대한 거부였다. 안 먹겠다는 의지 없이도 몸에서 저절로 음식을 받지 않아 몸도 쇠약해져 갔다.
보다 못한 큰딸이 어머니를 자기 집이 있는 부산으로 모셨다. 그러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수영만에선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었다. 그 또한 못 견딜 일이었다.
큰 딸네 아파트는 13층 베란다 밖으로 88올림픽이 열리는 조정 경기장이 보이는 곳이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건 어찌 견디랴.
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그는 깊은 기도을 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 그녀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보려고 이곳에 이끌렸다"고 적었다.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신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 고통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작가는 아들을 잃은 것이 자신의 교만의 대가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을 잃은 것과 동시에 교만이 무너졌지만 교만이 꺾인 자리는 겸손이 아니라 황폐였다.
공부 못하는 자식, 방탕하거나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을 속으로 은근히 깔보았고
심지어 뇌성마비로 태어난 남의 자식을 죽는 게 나았을걸 하는 모진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교만의 대가로 아들을 잃는 비참함, 고통을 겪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도 죽임을 당한 아들을 두고 잔인한 최악의 벌이라고 여겼다.
주님,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믿어서도 아닙니다.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계실까 봐, 계셔서 남은 내 식구 중 누군가를 또 탐내실까 봐 무서워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주를 믿어서도 사랑해서도 아닌, 단지 공포 때문에 올리는 기도라니 작가는 참담했다.
신(神)의 '한 말씀'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밥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게 또 참담했다. 지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
격렬한 토악질을 하면 안심이 되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다고 수시로 미친 상태를 동경하면서도 실상은 미치는 게 두려워서 하루하루의 정신 상태를 점검했다.
이런 육신과 정신의 분열이 한없이 창피하고 슬펐던 것이다.
그리고 그토록 간구했던 절대자의 '한 말씀'을 깨닫는다.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
"아픔은, 슬픔은 절대 극복할 수가 없는 거예요. (…) 그냥 견디며 사는 거죠." 오히려 남편·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좋은 추억이 홀로 서는 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때 다시금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되는지 ?
이 세상이 무엇이 잘못될 것까요?
우리는 어쩌다가 지경까지 오게 된걸까요?
왜 오늘날과 같은 이런 궁지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 입니다.
그런데 창 3장은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이 세상을 분리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낙원으로 묘사한곳에 한남자와 한여자를 두셨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며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그러고 3장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자기에게 따라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에서 도망치어 비참함과 불행 속에 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타락후 이 땅에 임한 저주.
즉 여자는 임신 하는 고통이 더하여 진통을겪고 자식을 낳을것이고, 남자는 수고하며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수 있게 되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와 엉겅퀴, 질병과 사망이 이땅에 들어오게 된 과정도 말해줍니다.
그리고 “죄”가 무엇인지을 알려 줍니다.
성경은 인간이 저지른 일 때문에 그 상황을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1 .성경은 인간의 문제는 환경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시실 인간은 출발은 완전한 환경에서 출발합니다.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낙원을 광야로 바뀌게 돈 것은 바로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그가처한 여건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 때문 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태초에 일어난던일 들이 계속 적으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을 듣지 않을뿐 아니라 아예 눈을 감아버립니다.
2.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 때문 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에덴동산에서 두남녀가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부끄러위 하는 불행한 남녀을 봅니다. .
시원한 저녁 바람을 쐬며 동산을 거닐고 계시던 하나님이 찾아와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는냐 ? 물으시는 소리에 그들은 겁이나서 숨어 버립니다.
왜? 이런 처지에 빠져 있습니까?
인간 스스로가 자신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상태로 환경에 인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상태가 계속되지 못합니까?
인간이 왜? 나무 뒤에 숨게 되었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문제를 처리 하는데 하나님보다 더 잘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 동산에 두시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자 너는 이제 내가 일러 준대로 살아라 , 네게 엄청나 자유를 주마 그렇지만 하나만은 하지 말아라 “
하나님은 인간에게 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행복했고, 하나님과 교재하며,
영광스러운 피조 세계 에서 많은 유익을얻고 , 어려움이나 사망을 절대겪지 않을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일이 벌어집니까?
사단이 인간을 유혹 합니다.
하나님이 이런식으로 그를 제한하고 부당하게 대하신다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얼마든지 그보다 훨씬 나은 인생을 살수 있다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될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 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유혹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이 거짓말을 믿습니다.
성경 전체가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거부하고 그분의 율법 대신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무버 때문에 모든 비참함과 가련함과 사망,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문제가 전체적으로 생긴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살지 않기 때문 아닐까요!
내가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원하시는바 십계명속 에서, 도덕법과 신상수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라는 그 부르심 속에 있습니다.
성경의 최초의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보다 낫다는 생각입니다.
왜? 하나님의 피해 부끄러위하며 하나님을 피해 나무에 숨어 버립니까?
하나님의 앞에서 자기 성찰이 중단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고통 당하는 이유는 ?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심판에 대해 분명히 밝히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인간은 변명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 이 동산에서 살아라 너는무엇이든지 할수 있다. 그러나 내가 금하는 한가지을 행한다면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 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법아래 두셨고 그에게 그 법을 어기면 하나님은 그 책임을 묻어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책임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중 인간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 할수 있도록 만드셨고 , 그것 때문에 그를 법아래 두셨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이 비참한 자리에 떨어집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인간에게 다가와 유혹합니다.
“ 너 설마 그 모든 사실을 진짜로 믿고 있는 것 아니지?
내 말만 들어 그럼 지금 보다 훨씬 나은삶을 살수 있을 것야...
어떤 결과도 두려워 하지말라 ,,,하나님이 너를 겁주는것야... 내말대로 해봐 , 더 없이 행복하도,지식과 총명이 하나님처럼 될거야..
인간은 사탄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후 지금까지 인류는 그 심판의 결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계속해서 이런 잘못을 범합니다.
노아의 홍수의 사건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하여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림]하며 심판이 있을거라고 말한 것을 웃기는 소리로 듣었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조롱하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와 그종들을 통해서” 사악한자[도리에 어긋나고 악독(함.]의 길은 험하니라 [잠1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시 129:4-6) 주께서는 의로우사 사악한 자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다 당황하여 뒤로 물러갈지어다. 그들은 자라기 전에 시드는 지붕의 풀과 같을지니
우리 사회에서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보다는 사악하고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이 더 잘 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사악한 자들이 더 오래 살고 권세도 강하고, 그들의 자식들은 특혜를 입어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권력과 배경을 등에 업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잘 삽니다.
(욥 21:7-8) 어찌하여 사악한 자가 살아남고 늙도록 지내며 참으로 권세도 강하냐? 그들의 씨가 그들의 눈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그들의 후손도 그들의 눈앞에서 그러하도다.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일어나고 편법과 불법과 특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악인들이 득세하여 활개치고 다니는 이 세상의 모습을 볼 때 우리 속에 답답한 마음이 들고 분노가 솟구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악한 자들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그들을 질시하지 말라고 합니다.
(잠 24:19) 너는 악한 자들로 인하여 초조해하지 말며 사악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라.
그들은 지붕 위의 푸른 풀처럼 왕성하게 잘 자라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시들어서 말라죽고 불에 던져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겔 17:10) 보라, 참으로 그것이 심겼어도 형통하겠느냐? 동풍이 그것에 손을 대면 그것이 완전히 시들지 아니하겠느냐? 그것이 자기가 자라던 고랑에서 시들리라, 하라.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집을 지을 때 벽과 벽 사이에 나무를 걸치고 그 위에 짚이나 마른 풀을 깔고 흙을 덮어서 지붕을 만듭니다. 지붕이 비나 이슬에 젖어서 축축해지면 흙 속에 있던 풀씨가 자라나서 푸른 풀들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풀을 뽑아 버리거나 뜨거운 햇볕에 풀이 시들고 말라버리기 때문입니다.
욥이나 아삽, 하박국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도 사악한 자들이 잘 되고 형통하는 것 때문에 크게 마음을 쓰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지켜보시며 공평과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악한 자들이 일시적으로 형통한 것처럼 보이지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심판하여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그분의 의로운 심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 92:7) 사악한 자들이 풀같이 돋아나고 불법을 행하는 모든 자들이 흥왕할지라도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지 않으면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
사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가나안땅에 들어갈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신약에 가면 세례요한은 “ ” 회개하라 천국[심판]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셨고.
예수님께서도 3년간 이스라엘에게 경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엣날과 똑같은 잘못을 범합니다.
결국 AD70 년에 로마군인들이 쳐들어와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약탈해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곳곳으로 내쫒겨 지금까지 그 상태로[1948년 5월14일은 이스라엘 국가”로 팔레스탄인 지역에 세웠다. ]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말씀합니다.
사도요한 은 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임할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과 위엄이 전능하시고 절대적이며 무한하시고 끝이 없으십니다. 우리 각자을 아시고 하나님은 보시지 않으시는 곳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를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런분과 관계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분이 살아가는 동안 갑자기 하나님께서 “ 아담아 네가 어디있는냐?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 너는 내가 준 인생으로 무엇을 했는냐 ?
아담아 나는 네게 위대한 가능성을 주었다,,,
너 자신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냐?
이것은 정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때 ... 들을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 모양이냐?
하나님은 인간에게 “ 네가 나를 떠나 사는 동안은 행복하지 못할 것 ” 이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인간이 어리석은 이유는?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어리석운인자 은 자기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보다 더 낮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괘락속에서 행복을 맛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가게 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에게 도망합니다.
우리를 축복할수 있는 유일한 분인 하나님에게서 멀리 도망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인생의 슬프고 애달픈 일을 당하여 불행한 경우]입니다.
인간의 창피하고 지극히 비참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하다]할 때 정말 도와 줄수 있는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바로 잡아 줄수 있는분은 하나님입니다.
비록 인간이 어리석은 죄을 범해도 하나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 그 아들을 이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통해 우리의 죄을 자기몸으로 지시고 갈보리 언덕위로 올라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으며, 인생의 삶을 맡기기 원합니다.
그렇게 한다며 우리 조상 아담이 잃어버렸던 더 큰 축복을 유업으로 받을 것 이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