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신임국무총리 후보자
"적폐 일소하라는 뜻,
관행 비정상 근절해 기본 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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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국무총리로 내정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진언을
하고,
못된 관행과 병폐들을 뿌리까지 제거해 국가와 사회의 기본을
바로세우겠다”는
내정 소감을 밝혔다.
안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22일 오후 4시 55분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안 후보자는 “제게 국무총리의 역할을 맡기는 이유는
수십년동안 쌓여온 적폐를
일소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비정상적인 관행을 버리고 공직사회를 혁신해
국가와 사회의
기본을 바로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 사건을 통해 드러난 바와 같이 물질만능주의 풍토가
국가 기반을 흔들 수 있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패러다임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공정과 법치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했다.
또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젊은 세대가
피해를 입어서는 안될 것”이라면서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과 병폐들을 뿌리까지 제거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국가가 바른 길을 가도록 대통령에게 가감없이
진언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안대희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 소감
전문.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먼저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하여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과 아직도 가족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실종자 가족 분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갑자기 국무총리 지명의 통보를 받아 마음이 너무나 무겁고
당혹스럽습니다.
제가 국가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런지 두렵기도
합니다.
저에게 청문회를 통과하여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가 그동안 국가와
국민들부터 받은 혜택과 사랑을 되돌린다는 마음으로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초임 검사 때부터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이와 같은 제게 국무총리의 역할을 맡기는 이유는 바로 과거 수십 년동안
쌓여온 적폐들을 일소하고 개혁을 추진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도 드러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물질만능주의
풍토가 자본주의 탐욕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패러다임은 물질과 탐욕이 아닌
공정과 법치에 기반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성세대의 잘못으로 젊은 세대가 피해를 입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간 관행으로 불려왔던 비정상적인 형태들을 뿌리까지 제거하지 못한다면
젊은 세대들이
그러한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 개인적인 삶을 모두 버리고 이러한 비정상적
관행의 제거와
부정부패 척결을 통하여 공직사회를 혁신하고,
국가와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아울러, 국가의 안전시스템이 확립되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헌법이 명한 대로 대통령을 충실히 보좌하여 대통령께서 여러 차례
밝히신
강력한 국가 개조를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대통령을 진정으로 보좌하기 위하여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여
국가가 바른 길, 정상적인 길을 가도록 소신을 갖고
대통령께 가감 없이
진언하도록 하겠습니다. ▶
◈차기 총리 내정 안대희는 누구
박근혜 대통령이 새 총리 후보자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세월호 참사로 악화한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좋은 총리감을 고르고 고른 끝에
안대희 후보자를 선택했다.
안 후보자가 새 총리 후보자가 된
데는 여러 배경이 있다.
무엇보다 안 후보자가 공직사회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고,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난국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추진력을 갖춘 ‘돌파형’이라는 점이 고려된
셈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안대희 후보자는 대법관과 서울고검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불법 대선자금과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등을 통해 소신을
보여줬다”며
“앞으로 공직사회와 정부 조직을 개혁하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력히 추진해 국가 개조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안 후보자는 청렴하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박 대통령에게도 할 소리를 하며 행정조직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명실상부한 책임총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 안대희 신임 총리
후보자.
최연소 검사, ‘국민 검사’ 명성
1955년생인 안대희 후보자는 서울대 행정학과 3학년 때 사법시험(17회)에 합격,
만 25세에 검사가 됐다. 당시 최연소 검사 임용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다.
이후 대검 중수 3·1과장, 서울지검 특수 3·2·1부장 등 특수검사로 거칠 수 있는 곳은
다 거쳤다.
검사 시절 안 후보자는 각종 권력형 비리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국민검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명성을 날렸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대검 중수부장을 맡았을 때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하며
당시 한나라당의 ‘차떼기(돈을 실은 차를 통째로 주고 받은) 사건’을 직접 파헤쳤다.
한나라당에 ‘차떼기 당’이라는 오명을 안겨준 당사자다.
안 후보자의 수사 때문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 여의도 당사와 연수원을
매각해 국가에 헌납해야 했다.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는 그래서 탄생했다.
2012년 8월 새누리당에 영입된 그는 임대로 쓰는 새누리당사를 둘러보고는
“제1당 당사가 조금 협소한 인상이다.
그(대선자금) 수사 여파가 아닌가 생각돼 미안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안 후보자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자금과 측근 비리
수사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며 성역없는 수사를 벌였다.
그의 이런 수사 스타일은 국민적 신뢰를 얻는 기반이 됐다.
‘안짱’이라는 팬클럽까지 결성됐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 한마디로 ‘찬밥’ 신세였다.
2000년대 초반 검사장 승진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두 번이나 탈락했다.
타협하지 않는 그의 수사 스타일을 정권이 부담스러워했다는 말이 나왔다.
경남 함안 출신이어서 정권과의 지역적인 인연도 없었다.
당시 먼저 검사장으로 승진한 사시 17회 동기가
그가 재직하던 서울고검의 윗자리로
오는 일도 있었다.
그 무렵 그는 “이제 옷을 벗어야겠다”며 후배들과 통음을 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사표를 말린 사람이 검찰 선배인 이명재,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었다.
검찰 후배들도 그의 사표를 극구 말렸다.
그는 당시 1년 반 끊었던 담배를 다시 물기도 했다.
그때 담배 건넨 후배가 지금 유병언 전 세모 회장 비리 수사를 하는 최재경
인천지검장이다.
- 일러스트=김지안
당시 좌절을 버텨낸 끝에 그는 김대중 정부 막판인 2002년 8월 겨우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때는 검사로서 승승 장구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 대검 중수부장에 오른 그는 검사로서 마지막 꽃을 화려하게 피웠다.
나라종금 로비 의혹 사건 재수사에 착수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인 염동연씨,
한광옥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용근 전 금감위원장을
구속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동업자”라고 했던 안희정 현 충남지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을
불구속기소했다.
2003년 8월부터는 대선자금을
수사, 당시 정권 실세 등 정치인 40명을 기소했고,
이들에게 돈을 준 대기업 총수들을 줄줄이 소환했다.
당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그를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실세”라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무릇 실세라고 하면 되는 것을 안 되게 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실세가 아니다.
이제 권력은 없고 의무만 남았다”고 했다.
그는 2006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뒤 대법관이 됐고,
2012년
퇴임했다.
박근혜의 삼고초려
안 후보자는 대법관 퇴임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는 2012년 7월 대법관에서 물러난 뒤 그해 9월
미국 스탠포드대로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런 그를 박근혜 대통령이 붙잡았다.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이던 박 대통령은 안
후보자를 영입하기 위해
삼고초려를 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2012년 7월 박 대통령이 처음 안 후보자를 만나 영입을 제의했을 때 안 후보자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며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안 후보자를 설득했고,
결국 안 후보자는 8월24일 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영입 제의를
수락했다.
당시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은 영입 뒷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박근혜 후보가 안 전 대법관을 직접 추천했고,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해서
설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안 전 대법관 본인은 원래 정당 정치에 관여할 생각이 없었으나
박 후보의 제안을 받고
사흘 정도 고민하다가 수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안 후보자는 새누리당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았다.
안 후보자 본인은 당시 새누리당에 합류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박 후보를 만났을 때 나라를 사랑하는 진정성이 느껴졌고,
한번 말한 것은 분명히 지키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깨끗하고 맑은 나라 만드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영입 제안을
수락했다.”
- 2012년 9월 5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안대희
정치쇄신특위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악수하고 있다.
박근혜와
충돌하기도대선전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박근혜 후보와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이 충돌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박 후보가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한광옥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영입하자
안대희 위원장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이다.
안 위원장은 당시
“한광옥 전 고문을 요직에 임명하면 내가 정치쇄신위원장을 사퇴하겠다”고 했었다.
안 위원장이 반발한 명분은 한광옥 전 고문이 비리 혐의에 연루됐던 인사라는 것이다.
한 전 고문은 2003년 나라종금 퇴출저지 청탁과 함께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으로부터
1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적이 있다.
이때 대검 중수부장으로 한 전 고문의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안
위원장이었다.
안 위원장은 “무분별한 비리인사 영입은 정치쇄신특위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전 고문을 영입한 박근혜 후보로선 안 위원장의 반발이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결국 박 후보는 안 위원장과 한 전 고문 양측을 오가며 중재에 나서야 했다.
박 후보는 당초 한 전 고문을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앉히려고 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안 위원장의 입장을 감안해 국민대통합위원장은 박 후보 본인이 맡고,
한 전 고문에게는 국민대통합부위원장을 맡기는 것으로 상황을 수습했다.
안 위원장도 박 후보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대선이 끝나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 안 후보자는 외부 활동을 자제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서울 용산에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정중동 하던 그가 용산에 사무실을 내자
“서울시장 출마 준비를 하는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당시 “지방선거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 말대로 지방선거에는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에 그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그가 새 총리로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악화한 민심을 수습하는 존재감 있는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