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중평남새온실농장
북한이 지난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우리식 사회주의농촌발전의 위대한 새시대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새로운 농촌강령을 발표했다.
북한은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 농촌 테제’의 심화발전이라고 규정했다. 사회주의 농촌 테제란 김일성 주석이 1964년 발표한 ‘우리 나라 사회주의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말하는 것으로 북한의 농촌문제에 관한 기본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발표한 새 농촌강령이 한 해 계획 정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상당한 무게감을 지니는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의 새 농촌강령은 다른 나라의 농촌 정책과 상당히 다른 면이 있어 관심을 끈다.
1. ‘농촌진흥’이 눈에 들어온다
새 농촌강령이 주목되는 요인 중 하나는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농촌을 발전시키기 위한 목표로 “농업근로자들의 사상의식수준 제고, 농업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농촌 생활환경의 근본적인 개변”을 제시했다.
농업을 발전시키고 농촌 마을을 일신해서 농촌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은 농촌 본연의 성격에 맞는 당연한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따져보면 당연한 일만은 아니다.
1) 농업 말살 정책을 펴는 한국
일례로 한국 정부는 2021년 11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CPTPP는 일본, 호주, 캐나다 등 11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국은 농업에 타격을 줄 걸 우려해 CPTPP에 가입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가입 의사를 밝혔다.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들은 CPTPP 가입 추진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박흥식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이미 농촌이 초토화되고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환경임에도 마지막까지 농업을 개방”한다고 지적했다. 이학구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농업인들의 피눈물과 절규를 보면서도 농업 말살 정책을 지속하는 정책을 지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규탄했다. 김은형 민주노총 부위원장도 “식량주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권이고 건강권임에도 농민을 무시하는 말살 정책은 도를 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농민단체 및 진보단체는 정부가 농업을 부흥시키려는 게 아니라 말살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농업 말살정책을 펴는 측은 FTA를 체결해 자동차, 반도체 수출을 늘리고 그 돈으로 값싼 해외 농산물을 사서 먹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국제적으로 비교우위를 따져봤을 때 농업을 진흥시키는 건 경쟁력이 없고 손해라는 것이다.
농업 말살정책에는 농업을 소멸시켜 예비 도시노동자를 확보하려는 의도도 있다.
한겨레는 2021년 3월 10일 “우리나라 농촌 인구는 도시의 값싼 산업노동력으로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은 농촌을 말살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한국인 대부분은 농민이었다. 산업화를 하려면 노동자가 필요한데 농업이 잘 되면 농민이 굳이 노동자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 말살정책을 폈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보면 농업 말살정책은 최근의 일이 아니라 수십 년째 유지되는 뿌리 깊은 정책임을 알 수 있다. *한겨레, 2021.03.10.,<‘농민수당’이 농업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정책이라면 ‘농촌기본소득’은 도시집중 막고 농촌 살릴 생존실험>
IMF 시대 이후 한국은 저임금체제가 되어가고 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전락하고 있다. 저임금체제가 구축되면 자본가들은 더욱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고 자유롭게 해고해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걸 자본가들은 “노동시장 유연화”라고 포장한다.
저임금체제가 성공하려면 정규직은 고사하고 알바 자리라도 감지덕지한다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농촌에서는 도저히 먹고살 길이 없다며 도시로 가는 인구를 늘리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선 농촌진흥정책이 사라진 것이다.
농민의 수는 1988년 727만 명에서 2020년 231만 명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이가 추가 노동을 한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농가 104만 가구 중 40% 이상이 겸업을 하고 있다. 겸업농가 중 74%가 농업 수입보다 겸업수입이 더 높다. 겸업농가의 36%는 겸업수입이 전체 수입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미 많은 농민이 예비 도시노동자나 다름없다.
2) 농촌 개발의 내용
한국의 ‘농촌 개발’, ‘지방 발전’ 정책은 대부분 농촌을 농촌 성격에 맞게 발전시키겠다는 게 아니다.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거나 관광단지를 개발하는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 결과 심심산골에도 조금이라도 여행할 만하다 싶은 곳엔 펜션, 카페, 모텔이 즐비하다. 또는 도로, 공항, KTX역 건설 같은 개발사업을 벌여 부동산 가격을 올려 투기를 유도한다는 발전 전략도 많다. 즉, 한국의 농촌 개발 정책은 기본적으로 비농업적인 발전 전략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의 탐욕을 부추긴다. 농민이 농사에 자부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개발에 관심을 두고 땅값 올리기에 집중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옛날엔 시골 사람이 순박하고 정겨운 시골인심을 갖고 있다며 그리워하곤 했는데 옛말이 됐다. 이제는 시골에서 더 험악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9년 충남 서산시에서는 태양광 마을지원금을 두고 주민과 이장이 서로 고소전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이 귀촌한 사람에게 길세와 물세를 요구하거나 마을발전기금으로 많게는 천만 원을 받아 갈등이 빚어지는 일도 잦다. 이런 식으로 시골 마을에서 돈 몇 푼에 위화감이 조성되기도 하고 분쟁이 벌어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3) 도시 집중 현상
한국은 농촌 발전이 아니라 도시집중 정책으로 편중되어 있다.
일례로 KTX를 놓아 서울과의 접근성을 높여 지방을 발전시킨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지방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로 더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대표적으로 KTX가 생기면서 각 지역의 환자가 서울로 쏠리는 현상이 생겼다.
인터넷 언론 청년의사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A씨는 최근 응급실에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때문에 아연실색했다. 걸어서 응급실에 들어선 그는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KTX 안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청년의사, 2019.12.19., <“서울대병원서 치료받겠다” 부산에서 KTX 타고 온 급성심근경색 환자>
2004년 경부선 KTX 개통 이후 2006년 47만 명, 2007년 57만 명, 2008년 62만 명의 부산 지역 환자가 서울 지역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20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 지역에서 사용된 진료비 중 37%가 다른 지역 환자의 진료비이다.
이런 현실을 종합해 보면 한국은 농업을 사멸시키고 관광이나 부동산 개발을 추진하며 농촌을 발전시키기보다 서울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을 편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북한은 농업을 발전시키고 전국 각지의 농촌 마을을 발전시켜 농촌 본연의 성격을 살리는 방향의 정책을 제시했다. 농촌을 개발한다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2. 국토균형발전 측면에서 상당히 주목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농촌 마을들을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을 특별히 중시해야 할 과업, 최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 마을을 “사회주의의 맛이 나고 해당 지역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나게 건설”하자며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삼지연시 농촌 마을의 수준으로, 부유하고 문화적인 사회주의 이상촌으로 만들자”라고 제시했다.
북한이 기준으로 삼은 삼지연시는 작년에 완공된 백두산기슭 산간 마을이다.
뉴스1은 1월 27일 삼지연시에 대해 “네모반듯한 거리와 파스텔톤의 삼각 지붕, 야외 정원으로 주목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호 우인엔지니어링 대표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 같다. 규모도 설계도 상상을 초월한다”라고 빗댔다. 스위스의 수도 베른의 아름다운 구시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돼있다.
2021년 12월 23일 뉴스코리아는 2019년 9월에 백두산을 다녀온 뉴질랜드 교민의 기행문을 보도했다. 2019년 9월이면 삼지연시 꾸리기 2단계 공사가 준공을 앞둔 때였다.
“이렇게 높은 곳에 이렇게 잘 정돈된 도시가 있을 줄 몰랐다. 베개봉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삼지연읍은 결코 산골의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높은 산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마치 유럽의 어느 휴양지를 생각나게 했다.…정말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였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제까지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도시였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 ‘전국의 모든’ 농촌을 삼지연시처럼 변모시키겠다고 밝혀 주목된다.
과거 북한에서 주목받는 주요 건설 대상은 평양에 집중된 경우가 많았다. 2017년에 완공된 평양 려명거리는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 미국의 맨해튼이나 두바이에 비교될 정도로 눈부신 발전상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중앙일보, 2018.09.18., <남북 정상의 빌딩숲 카퍼레이드…'평양의 맨해튼' 여명거리>
이번에 북한은 평양을 넘어 농촌, 산간지역까지 고도로 현대화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삼지연시에서 산간지역 특성에 맞는 초현대적 발전상을 보여주면서 이걸 전국화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국적인 국토균형발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매우 특색있는 정책이다. 다른 나라에는 이런 정책이 없다. 일반적인 국토균형발전 정책은 몇몇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한국은 서울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을 펴 세종시를 건설했다. 각 지방을 발전시키는 정책도 기존 거점 도시를 더욱 발전시키거나 신도시를 선정해서 개발하는 식이다.
반면 지방을 보면 사람들이 버리고 떠난 폐허 같은 땅과 집이 많다. 인구가 줄어들어 마을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작은 마을 지자체에서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사활적이다. 웬만한 지자체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축하금을 준다. 충북 괴산군 백봉초등학교는 2018년 단 한 명의 학생이 입학했다가 1학기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바람에 1학년 학급이 사라졌다.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살리겠다며 학교에 입학하거나 전학 오는 가정에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괴산군 외 다른 지역에서도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오면 연 1천만 원을 벌 수 있는 일터를 제공한다거나 밭을 주는 정책을 시행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서울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에서 지역균형선발 전형을 실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뿐 근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외국에도 인구가 줄어들어 소멸 위기에 빠진 마을이 사람들의 이주를 유도하기 위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는 40세 미만의 사람이 이주하면 우선 3천 5백만 원을 제공하고 조건에 따라 2~3년간 매달 1백만 원가량을 지급한다. 이탈리아에서는 1유로로 집을 살 수 있는 곳도 많다. 스위스 발레주 알비넨 마을에서는 이사 오는 45세 미만 성인에게 1인당 2천 8백만 원을 지급한다.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시는 이사 시 1천만 원을 지급한다.
중국도 상해 같은 동부와 남부 해안가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중국은 내륙을 발전시키겠다며 ‘서부대개발’에 나섰지만, 이는 일부 거점 도시를 개발하는 것이다. 내륙에는 여전히 낙후한 시골이 많다. 이런 시골을 모두 개발하겠다는 정책은 아직 없다.
그런데 북한이 내세우는 국토균형개발 계획은 지방에 지방 거점 도시를 건설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농촌 마을을 변모시키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정책이기 때문에 상당히 주목된다.
3. 전국민적 복리를 강조하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을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을 다그치고 우리 인민의 세기적 숙망을 하루빨리 실현하는 데서 중대한 변혁적 의의를 가지는 기념비적 문헌”이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전면적 부흥’이란 북한의 모든 부문, 단위, 지역이 빠짐없이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은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11월 9일 3대혁명선구자대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모든 부문, 모든 단위, 모든 지역이 3대혁명화 되면 그것이 곧 우리가 이루려는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이라고 지적하였다.
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모든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하늘과 땅처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은 그들 표현대로라면 모든 산업과 모든 지역, 모든 계층을 고르게 발전시켜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높은 포부를 지닌 것 같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발전’이란 무엇이며 ‘세계 최고 수준의 나라’는 무엇인가.
북한은 자신의 발전상을 국민 복리 실현에서 찾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개변시키자며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8차 당대회 폐회사에서도 “우리는 당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들을 무조건 철저히 관철하여 우리 혁명을 다시 한번 고조시키고 하루빨리 인민들에게 더 좋고 안정된 생활조건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강조는 필자
어느 나라나 국민이 잘사는 걸 목표로 삼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막상 따져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적잖은 나라들이 국가 목표로 GDP 성장률, 무역액 같은 것을 제시한다. 어느 나라가 더 잘사는지 비교할 때도 흔히 GDP를 비교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매우 잘사는 나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신년사에서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하였고,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무역 강국, 수출 강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처음으로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 5천 달러로 올라섰고,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라고 자신의 임기를 평가했다.
하지만 실제 민생은 승승장구하고 있는 GDP, 무역 실적, 국민소득과 사뭇 다르다. 국민은 지금이 1990년대 후반 IMF사태 때보다도 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청년들은 집 장만을 포기했다. 청년들은 절망에 빠져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며 인생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있다.
정부는 2021년 취업자 수가 7년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희망적인 시각은 국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다. 아래 통계를 봐도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한시적 일자리, 시간제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배달 같은 당일치기 알바가 증가한다고 경제가 호전된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주식이 초강세를 보이는가 하면 실업률이 3.9%로 낮아져 사실상 완전고용 수준이라며 경제가 호전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지표를 보면 미국 경제는 어느 때보다 호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미국의 노동 가능 인구 중 실제 일을 하는 비율인 고용률은 2021년 12월 59.5%에 그쳤다.
주식이 오른다지만 주식으로 생활이 펴질 정도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극소수다. 개미들은 손해 보고 망했다는 사람이 많다. 무역액이 높아도 독점자본의 이익이 늘어날 뿐 국민과는 상관 없는 일이다. 삼성전자가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어도 주식 지분율을 보면 1월 28일 기준으로 주식배당의 52.12%가 외국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렇듯 거시 경제지표는 실제 민생과 상당히 괴리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농촌을 혁명적으로 개변시키는 것은) 인민의 복리증진을 이룩해나가는 데서 중차대한 혁명과업”이라거나 “농촌주민들에게 세상에 부럼 없는 훌륭한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부흥의 기준을 무역액, 국민총생산 등의 거시지표로 삼는 게 아니라 국민 복리에 두려는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주목된다.
4. 자립성 강화를 추구하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 농촌강령에서 “농업생산을 증대시켜 나라의 식량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것을 농촌발전전략의 기본과업”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종자혁명을 일으키고 이상기후에 대처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보면 북한은 자립성을 강화해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도 했다. 그때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좇았다면 아마도 그들로부터 식량지원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위기 극복 방안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손을 내미는 대신 선군정치를 하면서 경제자립을 이루는 길을 택했다. CNC를 개발해 기계공업을 발전시키고 공장 자동화·무인화를 추진했다. 대규모 목장인 세포등판을 만들어 축산기지를 건설하고 감자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다.
에너지난도 러시아에 손을 벌려 천연가스를 들여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곳곳에 크고 작은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태양광, 지열 발전소를 만들어 자력갱생하려고 한다.
자립경제는 1945년부터 일관된 북한의 정책이었다.
항일투쟁 당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즈다노프가 김일성 주석에게 ‘장차 독립을 이룬 뒤 건국을 할 때 어떤 지원을 바라느냐’고 묻자 “우리는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일떠세우려고 한다, 힘들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서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즈다노프는 “얼마 전에 동유럽의 어떤 나라 사람이 나를 만나자마자 자기 나라는 본래부터 경제적으로 낙후한 데다가 전쟁피해가 막심해서 난관이 한둘이 아닌데 소련이 큰집이 된 셈 치고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의 입장과 얼마나 대조적입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도 북한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는 듯하다. 북한은 새 농촌강령에서도 식량문제를 자립경제의 중요요소로 보고 자립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듯하다.
한국의 경우 식량주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진보당은 2021년 11월 2일 기자회견에서 “식량 수입 국가 5위, OECD 회원국 중 식량자급률 최하위가 한국 식량주권의 위치이다. 대한민국에 식량주권은 사라져 버렸다. 국민이 믿을 수 있는 식량안보도 없어졌다”라고 지적했다.
1월 12일에 있은 CPTPP 가입 결사반대 기자회견에서 이은만 한국농축산연합회장은 “곡물자급률이 21%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기존의 FTA보다 더 큰 규모의 농산물 개방을 가져올 CPTPP 가입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삼주 전국한우협회장은 “CPTPP의 개방율은 96%로 완전개방과 다름없다”라며 식량안보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데 식량 해외의존도를 높이는 CPTPP가입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2019년에 있었던 일본의 경제공격을 상기해보자. 당시 일본은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반발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불화수소, 폴리이미드, EUC 포토레지스트 등에 대해 수출규제를 가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소재 국산화에 나섰다. 경제에서 일본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도 거세게 일었다. 이 사건은 경제자립을 하지 않으면 이런 식으로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계기였다. 만약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로 한국을 공격하면 한국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일본 자신도 이런 비슷한 일을 당했다. 2010년 일본이 중국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제재해서 일본이 백기를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후 일본은 희토류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이처럼 경제주권의 중요성이 갈수록 부각되는 시대에 자립성을 강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이 인상적이다.
5. 결론
북한이 새 농촌강령에서 제시한 발전상은 한국 및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는 세태와 상당히 다르다. 농업과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것이 예스러운 느낌도 나는데, 다른 나라들의 행보와 달라 굉장히 새롭기도 하다.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목을 끌만큼 의의성이 있어 보인다.
북한은 삼지연시 건설 이전에도 2019년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 2017년 축산기지인 세포등판을 준공한 경험이 있다. 그보다 앞서 김일성 주석은 황해도에 대규모 과일생산기지를 꾸려 과일군이라는 행정구역을 만든 바 있다. 이들이 지방 특성을 살려 농촌을 변모시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이런 경험을 전국화하는 데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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