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랑스 고딩들이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시위를 하고 난리난다. 이유를 파고 들어가보니 표가 있는 노인 복지 예산에 치중하다보니 교육 예산이 쪼그라들은 결과라는 것이다. 덕분에 화장실 휴지에 대한 명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화장실 휴지를 본 것은 거의 70년 전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쯤 친구 엄마가 의사인 신당동 동네 병원집에 놀러 가서 화장실에서 처음으로 하얀 두루마리 휴지를 보고 "세상에! 이렇게 아까운 종이를 휴지로 쓰다니?" 하고 깜짝 놀랬던 기억이 생생하다. 6.25 전쟁 직후인 50 년대 후반은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어서 보통 가정에서는 신문지도 귀해서 화장실에 가면 시멘트 봉지를 뜯은 종이를 손으로 부벼서 부드럽게 만들어 사용하곤 했었다.
다음으로 휴지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은 86년 처음으로 미국에 갔을 때였다. 당시 한국에서는 어디나 두루마리 휴지로 통일이 되어 있던 시대였는데 미국에서는 휴지의 종류가 많기도 하고 어디를 가나 휴지를 너무나 흔하게 쓰고 버리는 것을 보고서 충격을 먹었었다. 그래서 아까워서 한 번 쓴 휴지를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계속 집어 넣는 통에 언제나 주머니 속에는 휴지가 가득했다. 지금도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아내가 빨래 할 때 마다 주머니에서 수색을 해서 휴지를 제거한다.
지난 해 한 번은 상가빌딩에서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동남아 노동자 두 명이 두리번거리면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남의 나라에서 살아본 감각을 발휘해서 “무엇을 찾느냐?”고 물었다.
한 청년이 지구상에서 가장 곤란한 표정으로 “휴지…..”라고 한다. 급하게 화장실에 찾았는데 휴지가 없어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절박한 위기에 처한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점퍼의 주머니를 뒤져보니 중고품 휴지가 있어서 건네 주었더니 감사하게 받아 갔다. 나도 언제 똑같은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모든 가방과 옷을 일제 점검해서 휴지가 없는 곳에 휴지를 비치했다. 아직은 모든 화장실에 휴지가 비치되어 있지 않은 후진국에 사는 애로사항이다.
시드니에 살 때 우리 집의 빈 공간에는 항상 화장실 휴지가 가득했다. 아내가 항상 휴지를 비축해 놓는 까닭이다. 그래서 집안 곳곳에 휴지가 쌓여 있었는데 귀국을 하게 되었을 때 귀하게 모은 아까운 휴지를 눈물을 머금고 모두 나누어줄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 사용 뿐만 아니라 휴지의 용도는 매우 다양했다.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몸이 너무 힘이 들어서 그늘을 찾아 잠시 누웠다. 휴지를 베고 누워 보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2021년도 한국으로 돌아와 처음에 아무 것도 없는 방바닥이어서 앉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도저히 무릎이 아파서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휴지꾸러미에 걸터 앉았더니 행복이 조금 찾아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