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로맨스를 꿈꾸다
장미숙
길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휘파람 소리처럼 경쾌한 리듬이 땅을 밀고 나간다. 힘의 마력이 솟구친다. 바퀴가 연속적인 무늬를 만든다. 등을 곧추세운 동그라미는 직선보다 반듯하다. 날렵한 자세로 엎드린 힘의 존재, 동력을 만들어 내는 라이더의 다리가 중력을 박찬다. 세상을 들어 올리는 다리의 힘이 순간에 영원의 발자국을 남긴다.
그들이 미래 속으로 가뿐히 뛰어든다. 쌩쌩, 바람이 현을 타는 소리가 들린다. 인체의 구부림에도 아름다운 각도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머리에서부터 시작된 곡선이 부드럽게 허리로 이어진다. 반듯한 탄력이 공간을 움켜쥔 듯 긴장감이 돈다. 라이더들의 질주가 천변의 고요를 흔든다. 몸에서 몸으로 전해지는 벅찬 기운, 줄지어 달리는 그들 주위에 보이지 않는 열기가 폭발한다.
바퀴를 굴리는 힘이 모였다 흩어지는 모양이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건 감정들의 모음이 만들어 내는 순간적인 감성 언어다. 아름다움이 큐피드의 화살처럼 가슴에 꽂힐 때 저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을 실감한다. 동적인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찰나의 순간, 아름다움은 서사로 이어진다.
사람과 풍경이 어우러지는 천변에는 오늘도 이야기가 흐른다. 계절 따라 온갖 꽃이 피고 잡초도 무성히 자란다. 색을 가진 것들은 사람이 함께해야 더 잘 자라는 모양이다. 누군가의 눈길을 의식하는 것일까. 천변의 꽃들이 생기로 팔랑거린다. 나무의 이파리도 연초록 미소를 머금었다. 흡족한 시선이 머물렀다 간 흔적이다.
날씨가 유난히 좋은 봄날이면 자전거는 양쪽을 부지런히 오간다. 전문 라이더의 무리가 초록색 공기를 가르면 연인의 쌍 바퀴가 꽃을 뿌리며 지나간다. 부자나 모녀의 바퀴도 웃음을 머금고 뒤따른다. 봄날 천변길은 원색의 꽃 무리보다 사람의 웃음꽃이 더 환하다. 길은 자전거를 부르고 자전거는 낭만과 활기를 몰고 길을 점령한다.
천변을 걷는 내게 꽃과 나무는 가난한 감성을 채워 주기에 충분한 요소다. 라이더들은 불씨만 남아 있는 로맨스를 꿈꾸게 한다. 자전거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 순수하게 만들어 내는 동력으로 질주한다. 모양과 크기도 가지각색이고 타는 사람과 장소도 다양하다. 하지만 모두 동그란 바퀴를 가지고 있다.
바퀴가 세모라거나 네모가 아닌, 동그랗다는 건 끊어지지 않고 세대를 넘어 연대하고 있음이다. 그들의 움직임에 속절없이 동화될 때 나의 소녀 시절의 바퀴도 함께 구르고 있음을 본다. 천변 풍경에서 맞닥뜨린 바퀴는 많은 이야기를 싣고 지금도 흐르는 중이다. 한때는 유치함을 실었고 휘파람을 싣기도 했으며 묵직한 인생을 싣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길을 굴러왔다.
바퀴로 시작한 로맨스는 중학교 이학년 때였다. 까까머리 남학생, 그 애의 이름은 아직 또렷이 기억하는데 얼굴은 희미하다.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할 즈음 도시로 유학을 떠나 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하얀 반 팔 교복에 까만색 바지를 입은 그가 훌쩍 자전거에 올라타 시골길을 달리는 모습은 만화책에서 흔히 보던 이미지를 닮아 있었다.
그에게 호감을 느낀 건 순전히 자전거 때문이었다. 공부를 잘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없었다. 귀한 물건이었으므로 당연했다. 내 기준으로 부자였던 작은집 자전거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타던 자전거는 작은 키의 내가 다루기에는 벅찼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 애가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녔으므로 나도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작은집 자전거를 마당에 세웠다. 남동생을 꽁무니에 매달고 수없이 돌았다. 다리는 사방에 멍이 들고 팔에도 상처가 생긴 뒤에야 겨우 타게 되었다.
자전거를 끌고 집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윗돔인 우리 집에서 아랫돔까지는 긴 내리막이 있었다. 그 애의 집은 아랫돔에 있었고 나는 어떡해서든 그 집 앞을 그럴싸하게 지나가고 싶었다. 몸이 후들거렸지만, 자전거에 올랐다. 미처 브레이크를 잡지 못한 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바퀴는 무섭게 질주했다. 길가 논바닥에 처박힌 건 순간이었다. 그 사건은 다리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그리고 자전거가 망가졌으므로 엄마에게는 근심을 얹어 주었다. 단발머리 소녀의 어설픈 로맨스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뒤 항구도시에서 청춘을 보냈다. 밤이고 낮이고 바닷가의 낭만에 붙들렸다. 바다를 구경하기보다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 길이 없는 길을 만들며 자전거는 돌고 돌았다. 광장은 길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설지 않은 건 동그란 바퀴였다. 어깨를 부딪치며 찰나의 인연들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비슷한 사람 속에서 로맨스는 허공에 뜬 풍선처럼 잡히지 않았다.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를 거치는 동안 바퀴는 멈추지 않고 굴렀다. 어느새 낭만이 아닌 생활이 된 자전거는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로맨스 대신 힘겨운 삶의 물리적인 힘이 높이를 더해 갔다. 뒤에 짐칸을 달고 줄을 맸다. 시장으로 관공서로 병원으로 학교로 바퀴는 거칠 것 없이 굴러다녔다. 그만큼 인생도 거칠어졌다.
짐칸에 배추를 가득 싣고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고, 무거운 상자도 척척 실어 날랐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도시의 길에서 헤매다가도 자전거만 타면 길이 훤하게 보였다. 중학생이었을 때 자전거를 그토록 열심히 배운 게 짝사랑이 아닌 미래를 예견한 때문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
자전거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를 나이가 된 지금, 불현듯 로맨스를 꿈꾼다. 손에 힘줄이 도드라지고 다리의 근육이 별스레 단단하게 느껴져 나이를 망각할 때다. 얼굴에 늘어난 주름을, 하얗게 변색되어 가는 머리카락을 의식하지 않을 때도 로맨스는 살아난다. 생에 지쳐 한없이 무거운 몸이 바퀴 위에서 가벼워질 때 착각과 망상에 빠진다.
그 허무함이, 혹은 허무맹랑함이 지친 어깨를 민다. 달리고픈 욕망 앞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감각, 자전거는 아직도 로맨스를 꿈꾸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