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말하는 10 선법(善法)
사람들은 사는 동안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을 더 저지르는 것 같다.
왜냐하면 윤회하는 삶 속에서 사람으로 태어나는 일보다는 축생이나 아귀, 지옥에 떨어지는 중생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착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쁜 마음보다는 착한 마음을 더 가질 수 있을까.
앞에서 설명했듯이, 붓다는 사람이 살면서 삼업(三業)을 짓는다고 했다.
즉 몸으로 짓는 업(신업), 입으로 짓는 업(구업), 생각으로 짓는 업(의업)이 그것이다.
붓다는 또 각각의 업을 선업(착한 업), 악업(나쁜 업), 무기업(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업)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즉 몸으로 업을 짓더라도 착한 업, 나쁜 업,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업 중에 하나를 짓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를 때리는 것은 신업이면서 악업이요, 친구를 칭찬하는 것은 구업이면서 선업이며,
친구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의업이면서 악업이다. 또 운동장을 뛰면서 운동을 하는 것은 신업이면서
무기업이다.
붓다는 좋은 업을 짓는 방편으로 ‘십 선법(十善法)을 가르쳤다. 열 가지 착하게 사는 방법을 말한다.
위에서 말한 ‘삼업’을 좋은 업으로 나누면 십선법이요, 나쁜 업으로 나누면 십악법이 된다.
이것은 손바닥의 앞뒤와 같은 이치이다.
그러면 무엇이 십선법의 가르침일까. 몸으로 짓는 업에 세 가지(身業), 입으로 짓는 업에 네 가지(口業),
생각으로 짓는 업에 세 가지가 있다(意業).
첫 번째는 불살생(不殺生)이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고, 억압받고 죽어 가는 모든 생명에 대하여 자비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불투도(不偸盜)이다.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남이 땀 흘려 이룩한 것을 탐 내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스스로 노력하여 얻을 것이며,
또한 그 얻은 것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불사음(不邪婬)이다. “삿된 음행을 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인간의 성을 도구화 하지 말고, 올바른 이성 관에 입각하여 이성을 사귈 것이며,
자신의 성을 소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네 번째는 불망어(不妄語)이다. "거짓말을 하지 마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거짓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고, 항상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함으로써 정직한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다섯 번째는 불양설(不兩舌)이다. “이간질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말 그대로 한 입으로 두 혀를 놀리지 말라는 뜻이며, 남을 불신하고 모함하지 말고 이해와 신뢰로써
화해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불악구(不惡口)이다. “상스럽고 악한 말을 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남의 귀에 거슬리는 말보다는 부드러운 말로 설득과 대화의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일곱 번째는 불기어(不綺語)이다. “아첨하는 말을 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꾸며서 상대방을 현혹하여 자신의 이득 만을 취하려 하지 말고,
전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원력(願力)의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원력이란 욕심과는 다르다. 욕심은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것이지만, 원력은 이타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하더라도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욕심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와 사회의 복지에 공헌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그것은 원력이다.
여덟 번째는 불탐욕(不貪慾)이다. “헛된 욕망을 갖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이는 허황한 꿈이나 관념적인 환상에서 벗어나 매사 성실한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공부는 해 놓지 않고 남의 시험지를 커닝하여 점수를 올리려고 한다면 그것은 헛된 욕망이다.
아홉 번째는 불진에(不瞋恚)이다. “성내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한번 화를 내면 몸의 세포가 탈락되고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건강에도 좋지 않다.
그러니 항상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자신이 잘못을 했으면 기꺼이 시인할
줄 알고 참회하는 생활을 하라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불사견(不邪見)이다. “삿된 소견을 갖지 마라.”라는 가르침이다.
사사로운 생각이나 한편으로 기울어진 생각, 미리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마음을 크게
열고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뜻이다.
이상 열 가지 선하게 사는 방법을 신․구․의 삼업의 범주로 나누면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은 신업(身業)에 해당하고, 불망어․ 불양설․ 불악구․ 불기 어는 구업(口業)에 해당하며,
불탐욕․ 불진에․ 불사견 은 의업(意業)에 해당한다.
이제 십선법을 우리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지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몸은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고,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 짜증이 날
때가 한 두 번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가장 많이 나온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여자 학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잔다, 운다, 먹는다, 노래를 듣는다,
소리를 지른다.” 등이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스트레스를 잘 해결하면 되는데 문제는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부적응 현상이 오고,
더 심해지면 비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청소년 폭력이니 왕따니 자살이니 가출이니 약물 흡입이니 하는
모든 것이 청소년 비행이다. 이들 비행의 근원은 청소년들이 받는 스트레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붓다의 십 선법을 실천해 보라. 가령, 친구가 듣기 싫은 욕을 할 때 붓다의
“성내지 마라.”라는 가르침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나 자신은 그 친구에게 잘못한 점은
없는가?’ 하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러면 성내고 싶은 마음이 한 뿔 꺾일 것이다.
또 선생님에게 잘못하여 혼이 날 때 일부의 학생들은 바로 그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고자 말을 둘러댄다.
몇 분 후에 거짓임이 드러날 것임에도 이리저리 둘러대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데,
이럴 때 붓다의 “거짓말하지 마라.”라는 가르침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거짓말은 정말 나쁜 업 중의 하나이다.
선생님에게 거짓말임이 밝혀지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어떻게 수를 써서 닥친 위기를 모면할 경우,
지금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은 끝내 개운치가 못하다. 괴로움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붓다의 쪽지
사람들이여, 살면서 십 선법을 실천해 보라. 십 선법이야 말로 스트레스와 고민을 미연에 방지하는 명약이다.
생명 있는 것을 자비로 감싸고, 무엇이든 스스로 노력하여 얻고, 자신의 성을 깨끗이 지킴과 동시에 남의
성을 보호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말하고, 항상 남과 화합하는 말을 하고, 기왕이면 남을 칭찬하는 말을
하고,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말을 하고, 지나친 욕심에서 떠나 만족할 줄 알고, 화를 냈으면 즉시 내려놓고
참회하고, 하루빨리 참 진리에 눈을 떠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라.
[출처] 12. 열 가지 착하게 사는 법 : 십선법|작성자 월인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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