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야
김명이
더위가 짚불처럼 타오르는 날들, 물기 젖은 홑이불이 삐걱거리는 의자 두 개에 걸쳐있다. 폭탄 할인으로 구입한 리넨 메리야스는 두어 번의 세탁만으로 짧은 원피스처럼 헛웃음 배인 냉장 잠옷이 되었다.
잠이 오지 않아 실내등을 켠다. 무더운 열기로 녹아내리는 이 밤을 눈먼 백야라 부른다.
창문 밖에 외투를 벗고 화장을 지워버린 내가 유리 안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 캄캄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이탈한 육체일 것 같다. 커튼 틈의 조명을 구겨도 내일을 묻지 않는다.
다만 다락방, 호수, 겨울 숲……잠기고 싶은 말들이 속삭인다.
거울 속의 거울* 에스토니아 숲의 정령이 다녀갔나 보다.
구도심 고층아파트 꼭대기 불빛은 깊은 밤의 등대 같다. 미분양 비밀을 몇 개 깡통으로 묶어두었을 지도. 하늘의 면적을 탐낸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엘리베이터 높이와 그릇 따위의 부피에 관해 대화창 속의 우리를 그대로 둔 채, 메모장의 낙엽들을 꺼내 시를 입힌다.
이토록 난감한 표정은 또 무엇을 훔쳐봤구나.
어깨를 움찔.
리넨 메리야스 한쪽이 흘러내린 그녀와 내가 안과 밖에서 하나로 마주한다.
*'거울 속의 거울' 은 종교음악가 아르보 패르트의 대표작으로 반복과 긴 울림을 주며 거울이 서로 비추듯 시간과 내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2026.가을호 [시와정신]에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