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백제숨결로 빚은 ‘앉은뱅이술’ 끈적한 질감에 감칠맛 매력적
[우리 술 답사기] (48) 충남 서천 ‘한산소곡주명인
’멥쌀떡에 누룩즙 혼합해 밑술 만들어
찹쌀고두밥·들국화·메주콩·엿기름 더해
100일간 발효…생주·살균약주로 출시
“유명 외국술과 견줄 세계적 명주 만들터”
충남 서천 한산소곡주는 백제 때부터 마셨다고 알려진 역사 깊은 술이다. 왼쪽부터 ‘한산소곡주’ ‘오크불소곡주’ ‘ 불소곡주’.
충남 서천군 한산면은 그야말로 ‘술의 고장’이다. 이 지역에는 <한산소곡주>라는 역사 깊은 우리술이 전승되고 있는데 양조장만 70여군데 있고, 300여곳에서 가양주를 빚는다. 서천 어느 집 문을 두드려도 술 구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중 명인 칭호가 붙은 건 우희열 명인(82,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9호·충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한사람뿐이다. 지금은 고령인 우 명인 대신 전수자인 장남 나장연 한산소곡주명인 대표(56)가 주로 술을 빚으며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학교 졸업하자마자 할머니와 어머니 일을 도왔어요. 그게 벌써 30년도 훌쩍 넘었죠.”
나 대표는 <한산소곡주>가 지역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앞장선 인물이다. 한산면에선 쌀로 술 빚는 걸 엄격하게 금지했던 1970년대에도 알게 모르게 밀주를 빚는 집이 많았다. 나 대표는 이 술을 잘 관리하려면 양성화가 먼저 돼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변 양조장들을 독려하는 한편 2015년부터 <한산소곡주> 축제를 열었다. 매년 10월이면 열리는 축제에선 여러 양조장의 소곡주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한산소곡주>는 백제 때부터 마셔왔다고 알려졌다. 이 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앉은뱅이술’이라고 말하면 “옳거니!” 하고 무릎을 친다. 별명에 대한 유래는 여러가지인데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이 술을 마시다가 시험을 놓쳤다는 말도 있고, 술을 빚던 여인이 술이 잘됐는지 젓가락으로 찍어 먹어 보다가 부엌에 주저앉아 못 일어났다는 소리도 있다. 술을 찹쌀로 빚은 탓에 끈적끈적하고 감칠맛이 돌며 알코올취는 없는데 도수가 18도라 마시다가 자신도 모르게 취하게 되는 것이다.
나장연 대표가 발표통에 용수를 꽂아 맑은 술을 떠내고있다.
“술을 따라보면 질감이 끈적끈적하게 느껴지죠. 저희 술을 드셔본 분들은 입안에 술이 쩍쩍 붙는다는 표현을 해요.”
<한산소곡주>는 집집이 레시피가 조금씩 다르다. 여러 양조장을 찾아다니며 마셔보는 것도 술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명인의 술은 멥쌀로 떡을 만든 다음 누룩즙을 혼합해 밑술을 만드는 걸로 시작한다. 여기에 찹쌀 고두밥을 혼합해 들국화·메주콩·엿기름을 더한다. 술을 다 빚은 다음엔 홍고추를 꽂고 100일간 발효·숙성시킨다. 메주콩을 술에 넣는 건 술이 시어짐을 방지하는 전통이고, 홍고추를 꽂는 이유는 액운을 막기 위해서다. 요즘은 맛과 주질이 일정하도록 현미경을 통해 술을 분석하고 있다. 100일 후 술이 익으면 맑은 부분만 떠내는데 색이 노랗고 진한 약주가 나온다.
술은 생주와 살균약주로 나온다. 생주는 술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반드시 냉장보관해야 변하지 않는다. 살균약주는 실온보관을 해도 괜찮지만 생주보단 향이 덜하다는 사람도 있다. 이를 증류한 <불소곡주(43도)>도 있다. 이 술은 <한산소곡주>를 증류한 술이다. <불소곡주>를 오크통에 숙성시킨 <오크불소곡주>도 인기다. <한산소곡주>의 감칠맛과 오크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여느 수입 위스키 못지않단 평가다. 최근 이 술은 ‘2022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술에 관심이 많은 둘째아들이 오크통에 숙성시키자는 아이디어를 냈죠. 약주는 장기 보관이 어려운데 이를 증류하면 보존 기간을 늘려준다는 장점이 있죠. 또 최근 전통주가 인기를 끌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나 대표의 남은 목표는 우리술의 세계화다. 다른 유명한 외국 술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줄 수 있는 우리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술도 세계를 향해 기지개를 켤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예전엔 일본 사케를 부러워했지만 요즘은 우리술도 기술력이 상당히 좋아졌어요. 정부도 전통주를 세계화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산소곡주>는 18도 700㎖ 기준 1만7500원, <오크불소곡주>는 43도 500㎖ 기준 4만5000원이다.
출처 농민신문 서천=박준하 기자(전통주 소믈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