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고 있는 제6회 국제장애인 기능올림픽에서 종합 우승을 확정지었다. 한국은 28일 현재 금메달 13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해 대만(금3, 은2, 동4), 인도(금2, 은2, 동5), 필리핀(금2, 은1, 동1)을 제쳤다. 국제장애인 기능올림픽은 29일 폐막될 예정이며 한국은 남은 1개 종목에서도 금메달을 추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써 한국은 콜롬비아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국제장애인 기능올림픽에서 통산 4회 우승과 함께 4회(호주)·5회(체코) 대회에 이은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대표선수 가운데 금메달리스트는 컴퓨터 수리 박용진(朴鏞辰·31·지체장애 2급), 전자출판 윤병현(尹炳賢·32·지체장애 2급), 제과제빵 장진근(張鎭根·29·지체장애 3급), 화훼동양 정은자(鄭銀子·39·지체장애 3급), 화훼장식 서양 채돈(蔡墩·37·시각장애 6급), 워드프로세서 지현길(池炫佶·19·청각장애 2급), 등공예 황성기(黃盛起·39·지체장애 4급), 목공예 김정명(金正明·39·지체장애 6급), 홀치기염색 박재완(31·청각장애 2급), 목판나염 이귀원(李貴源·43·지체장애 1급), 도자기 김진규, 사진촬영 김상기 등이다.
이번 대회 입상자들에게는 금메달 1200만원, 은메달 600만원, 동메달 400만원의 일시 포상금이 주어지며 매년 경력에 따라 월 최고 25만원 가량의 연금이 지급된다. 제7회 대회는 오는 2007년 일본 시즈오카(靜岡)에서 개최된다.
= 푸대접 속에 따낸 장애인들의 3연패 =
한국이 인도 뉴델리 인디라 간디 경기장에서 시작된 제6회 국제장애인 기능올림픽에서 종합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런데 6차례 대회 중 4회나 우승한 한국은 이곳에서 ‘강국’은커녕 영락없는 ‘약소국’ 취급을 받고 있다. 공부만 잘하고 친구 없는 외톨이인 셈이다.
지난 23일 열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총회(IAF)에서 한국 대표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단상(壇上)에 앉은 최고위 임원 5명 가운데 3명이 일본인이고, 10명의 집행위원 중에도 한국인은 없었기 때문이다.
주최국 인도와 평소부터 국제장애인사회에 신경을 써온 일본은 그렇다 치더라도 대만, 중국 등 ‘중화계(中華系)’는 노골적으로 한국을 무시하고 견제했다. 첫날 4개 종목에서 한국 선수들의 작품은 금메달을 따기에 충분했지만 대만 등의 억지에 밀려 ‘판정 보류’를 받기에 이르렀다. 결국 다음 날 금메달은 받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억울하게 가슴을 졸여야 했다.
심지어 대만 심판은 경기장에 출입할 수 없다는 규정까지 어겨가며 한국 선수 주변을 맴돌며 ‘이 장비는 사용하지 말라’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계속되자 관계자들은 “일본이 이번에는 (집행위원) 한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라고 분개했다. 하지만 기자는 그 말을 믿은 한국인들의 순진함이 도리어 의아했다.
한국은 이번 총회에서 2011년 대회를 열겠다고 신청했다. 그런데 2007년 시즈오카(靜岡)에서 대회를 개최키로 한 일본이 “가까운 곳에서 차기 대회를 열 수 있겠느냐”고 핀잔주자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처럼 함께 대회 개최 신청을 한 나라조차 “한국 정도야…”라고 냉소를 보냈다고 한다.
한국은 왜 매회 월등한 성적을 거두고도 위상에 걸맞지 않은 푸대접을 받고 있는가. 한국 관계자들은 외교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당연직으로 국제대회 때면 단장을 맡는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자리가 정권이 바뀌면 하루살이 목숨이 되니 국제 사회에서 안면을 익힐 기회가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회에 나온 일본이나 대만 대표단은 10년 이상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한국의 어느 이사장은 4년마다 돌아오는 이 대회에 얼굴 한번 내비치지 못하고 보따리를 챙겨 물러났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이사장 임기를 보장한다고, 심포지엄이나 국제대회를 몇번 개회한다고 한국의 수준이 단숨에 업그레이드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 장애인들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은 국내의 푸대접이 그 원인일지 모른다.
지하철 계단을 한번 오르내리는데 진땀 흘리고, 화장실 한번 가는데 동료 눈치를 봐야 하며, 애써 잡은 일자리를 차가운 주변 시선 때문에 물러나야 하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 한 한국은 영원한 후진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이런 사실을 알았는지 5대 차별을 없애겠다는 청사진을 정권 출범 초 내세웠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장애인 고용촉진기금이 바닥날 조짐을 보이자 그 대책으로 전체 직원 가운데 일정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기업에 벌금을 더 물리는 대신 지원금은 더 낮추겠다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는 것뿐이다.
대회를 앞두고 노동부장관을 포함한 그 누구도 대표 선수들을 한번 찾아 격려도 않을 정도고, 주 인도 대사는 선수들을 30분씩이나 기다리게 하다 중국집에서 밥 한끼 낸 뒤 소식이 없을 정도니, 그런 한심한 논의를 납득하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장애인 가운데 최고기량을 지닌 대표선수 30명 중 5명이 ‘실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리랑카나 방글라데시를 탓할 것도 없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의 장애인 선수들은 홀로 결전의 의지를 다졌으며 홀로 승리를 거뒀다. 국내의 책임 있는 ‘정상인’들은 자기들이 우리 장애인을 국제사회의 미아(迷兒)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