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8 - 태백(泰伯) - ⑦ |
1 | 曾子曰 士 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증자가 말하기를,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弘寬廣也 毅强忍也 非弘不能勝其重 非毅無以致其遠 弘은 너그럽고 넓다는 것이다. 毅는 강하고 질기다는 것이다. 넓지 않으면 그 무거움을 감당할 수 없고, 굳세지 않으면 그렇게 멀리 갈 수 없는 것이다.
新安胡氏曰 寬則容受之多 廣則承載之闊 신안호씨가 말하길, “관대하면 용납하여 받아들임이 많고, 넓으면 받아서 실어줌이 넓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强則執守之堅 忍則負荷之久 신안진씨가 말하길, “강하면 붙잡아 지킴이 견고하고, 질기면 짐을 짊어짐이 오래간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弘只是寬廣 却被人只把做度量寬容看了 便不得 弘是執德不弘之弘 是無所不容 心裏無足時 道理事物都著得 若容民畜衆 也是弘 但是外面事 今人多作容字說了 則弘字裏面無用工夫處 주자가 말하길, “弘은 그저 관대하고 넓은 것이지만, 도리어 사람들은 단지 도량이 관대하다는 것으로 해서 볼 뿐이니, 이래서는 안 된다. 弘는 執德不弘의 弘이니, 포용하지 않는 바가 없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만족할 때가 없어서, 道理와 사물을 전부 붙들 수 있으니, 가령 백성을 포용하고 무리를 기른다는 것도 弘이다. 그러나 외면의 일에 대해서는,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容자를 가지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弘자는 그 안에 힘써 공부를 한다는 부분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弘字只對隘字看 便見得 如看文字 只執一說見衆說 蓋不復取 便是不弘 若弘底人 便包容衆說 又非是於中無所可否 包容之中 又爲判別 此便是弘 弘자는 그저 隘자와 대조하여 살펴본다면, 곧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文자를 살펴봄에 있어, 그저 한 가지 학설만 붙잡고서 다른 여러 학설을 본다면, 대체로 더 이상 취하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不弘인 것이다. 만약 넓은 사람은 곧 여러 설을 포용하는데, 또한 이것은 마음속에서 가타부타하는 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는 중에 다시 판별을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弘이라는 것이다.
弘乃能勝得箇重任 毅便能擔得遠去 弘而不毅 雖勝得重任 恐去前面倒了 弘은 마침내 무거운 소임을 이겨낼 수 있고, 굳셈는 곧 짊어지고 멀리 갈 수 있다. 넓지만 굳세지 못하면, 비록 무거운 소임을 이겨낼 수 있을지라도, 아마도 앞으로 가다가 거꾸러질 것이다.
毅是立脚處堅忍强厲 擔負得去底意 굳셈는 발을 디딘 자리가 굳세고 질기며 강하고 엄숙하여 짐을 짊어지고 갈 수 있다는 뜻이다.
潛室陳氏曰 弘言其量之容 猶大車之足以載重 毅言其力之勁 猶健馬之足以致遠 잠실진씨가 말하길, “弘은 그 도량의 포용력을 말한 것으로서, 큰 수레가 족히 무거운 짐을 실을 수 있는 것과 같고, 毅는 그 힘이 센 것을 말한 것으로서, 튼튼한 말이 족히 멀리까지 이를 수 있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惟弘能勝重 不以一善而自足也 惟毅能致遠 不以半途而自廢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오직 넓어야만 무거운 짐을 이겨낼 수 있으니, 하나의 선으로 自足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굳세어야만 능히 멀리 이를 수 있으니, 중도에서 스스로 그만 두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吕氏曰 自小者無敢爲之心 自怠者無必爲之志 此弘毅之反也 여씨가 말하길, “자신을 작다고 여기는 자는 감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스스로 나태한 자는 반드시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이니, 이는 弘毅와 상반된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인(仁)으로써 자기의 맡은 바를 삼았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뒤에야 끝날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 仁者 人心之全德 而必欲以身體而力行之 可謂重矣 一息尙存 此志不容少懈 可謂遠矣 仁이라는 것은 사람 마음의 온전한 덕인데, 반드시 몸소 체득하여 힘써 행하고자 해야만 하는 것이니 무겁다고 말할 만한 것이다. 한 숨이라도 아직 붙어 있다면, 이 뜻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함을 용납할 수 없으니, 멀다고 말할 만한 것이다.
朱子曰 須是認得箇仁 又將身體驗之 方眞箇知得這擔子重 眞箇是難 世間有兩種 有一種全不知者 固全無摸索處 又有一種 知得仁之道如此大 而不肯以身任之者 今自家全不曾擔著 如何知得他重與不重 所以學不貴徒說 須要實去驗而行之 方知 주자가 말하길, “반드시 仁을 알아야 하고, 또한 장차 몸으로 그것을 체험해 봐야만, 비로소 진짜로 이 짐이 무거운지 알 수 있으니, 진짜로 어려운 것이다. 세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한 종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으로서, 본래부터 모색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또 한 종류가 있는데, 仁의 道가 이처럼 크다는 것을 알지만 제 몸으로 그것을 떠맡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니, 지금 자신은 일찍이 짊어져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그것이 무거운지 아니면 무겁지 않은지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배움에 있어서 헛되이 말만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반드시 실제로 가서 체험하고 실행해 봐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仁包四者 無物不體以爲己任 可爲(謂)重矣 非寬洪容受 何以勝其任 且曰 必欲身體而力行之 則異乎說仁而但欲知之者矣 與生俱生 無有間斷 死而後已 可謂遠矣 非强忍堅決 何以致其遠 且曰 此志不容少懈 則信乎求仁者不可有造次顚沛之違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仁은 네 가지(仁義禮智)를 포함하고 있는 것인데, 체험하지 않은 사물이 없음을 자기 소임으로 삼는 것이니, 무겁다고 할 수 있다. 관대하고 넓으며 포용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소임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또한 반드시 자기 몸으로 체험하여 그것을 힘써 행하고자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仁을 말하면서 단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생겨나서, 중간에 끊임이 없고, 죽은 다음에나 그친다면, 가히 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강인하고 굳세며 결단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멀리 이를 수 있겠는가? 또한 이러힌 의지는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仁을 구하는 사람은 넘어지고 떠도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仁에서 떨어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弘毅不可執一而廢一 蓋弘者易失之不毅 毅者易失之不弘 然弘毅之任重道遠 又有歸於仁 何也 蓋仁道最大 孔門傳道莫大於求仁 蓋仁之道 非全體而不息者 不足以當之 惟其全體也 則無一理之不該 所以不可不弘 惟其不息也 則無一念之間斷 所以不可不毅 仁之任重而道遠 如此 是豈可以易爲哉 曾子平日三省一貫致力於大學 格致誠正修齊治平 不使有一理之或違 非弘而何 啓手啓足 猶戰兢而不已 易簀之際 得正而斃 非毅而何 此所以卒任傳道之責也 각헌채씨가 말하길, “弘과 毅는 어느 하나를 잡고서 다른 하나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대체로 넓은 것은 굳세지 아니함에서 잘못되기 쉽고, 굳센 것은 넓지 않음에서 잘못되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弘毅의 소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 또 仁으로 귀결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개 仁의 道가 제일 크기 때문일 것이다. 孔門에서 道를 전함에 있어, 仁을 구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없었다. 대체로 仁의 道는 體를 온전히 하되 그침이 없는 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직 그 體를 온전히 해야만, 하나의 이치라도 해당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때문에 넓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그 그침이 없어야만 한 순간이라도 間斷됨이 없으니, 이 때문에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仁의 ‘소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이 어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증자는 평소에 매일 세 가지로 성찰하고 일관되게 대학의 格致誠正修齊治平(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에 힘을 쏟아서, 한 가지 이치라도 혹여 거스름이 있지 않도록 하였으니, 넓은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이불을 열어서 손과 발을 보게 하고서도, 도리어 전전긍긍하여 그침이 없었으며, 댓자리를 바꿀 즈음에 올바름을 얻고서 죽었으니, 굳세지 않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끝내 도를 전하는 책임을 떠맡은 까닭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 程子曰 弘而不毅 則無規矩而難立 毅而不弘 則隘陋而無以居之 又曰 弘大剛毅然後 能勝重任而遠到 정자가 말하길, “넓지만 굳세지 못하면, 법도가 없어서 서기 어렵고, 굳세지만 넓지 않으면, 비좁고 남루하여 仁에 거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말하길, “넓고 크고 굳센 연후에 능히 무거운 소임을 감당하여 멀리까지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朱子曰 曾子言以能問於不能 見曾子弘處 又言臨大節而不可奪 見他毅處 주자가 말하길, “증자가 능함에도 불능한 사람에게 묻는다고 말한 데서 증자의 넓은 부분을 알아볼 수 있고, 또한 큰일에 임하여 그 절개를 빼앗을 수 없다고 말한 데서 그의 굳센 부분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章初以弘毅二者並立對說 細味之 任重而道遠 而字已作一意貫說下來 又所謂死而後已者 何事哉 卽是己所以任此仁者 身體力行 至死而後已也 程子謂弘大剛毅 然後能勝重任 而遠到 不假訓釋 辭約而意貫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장은 처음에 弘과 毅 두 가지를 병립하여 놓고 대조하여 말하였는데, 任重而道遠을 자세히 음미해보면, 而자는 이미 한 가지 뜻을 세워놓고 관통하고 이어서 말해 내려온 것이다. 또한 이른바 죽은 후에나 그만둔다는 것은 무슨 일인가? 이는 바로 자신이 이 仁을 떠맡은 까닭은, 자기 몸으로 체득하여 힘써 행하되 죽은 다음에 이르러서 그만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자는 넓고 크고 굳센 연후에 능히 무거운 소임을 감당할 수 있고 멀리 이를 수 있다고 말하였는데, 뜻풀이를 빌리지 않고서도, 글이 요약되어 있고 뜻이 관통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