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jogging)
‘다시는 안 됩니다.’ 의사가 나에게 결연코 한 말이다.
15년 전의 일이다. 내 삶의 신앙처럼 여겼던 마라톤을 접어야 했다. 무릎 수술을 한 주치의가 내린 선고로 끔찍하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달릴 수 없다니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다시는 ‘런닝-하이(running high)’를 느낄 수 없으니 무슨 재미로 살아가랴. 주치의의 말을 곱씹으며 어디 ‘한번 해보자’의 생각이 마음을 자극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으로 열심히 재활훈련을 했다. 매일 걷기를 한 시간 정도 하고 자전거로 출퇴근했다. 무릎 주변의 근육을 강화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념으로 매달렸다. 2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원 상태로 돌아왔다.
다시금 테니스 라켓을 잡았다. 마음대로 뛰지는 못하지만 만족할 만큼 회복되어 그동안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나에게 감사와 축하했다. 그때부터 산에도 올라갔다. 오르내림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하고 자생의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가도 별 효과가 없어 꾸준한 스트레칭으로 치유한 것이 족저근막염과 목디스크이다. 꾸준히 인내력을 가지고 반복하면 좋아진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다시는 뛸 수 없다’에 한동안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런데 테니스 경기 중에 진력 질주로 달려야 하는 경우도 소화해냈다. 그래도 ‘다시 달린다’에는 마음이 내치지 않았다. 집 앞 못 둘레를 뛰어보니 숨이 막혀 200m도 힘들었다. 차츰 거리를 늘여가며 달리니 적응되어 갔다. 지난해 여름에 딸이 내려와 달리기를 시작했다며 함께 남매 못을 한 바퀴 뛰었다.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은 못을 두 바퀴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있다.
오늘도 못 두 바퀴를 뛰고 부산 예식장으로 갔다. 서울의 딸애가 내려왔다. 요새도 꾸준히 달린다며 3.1절, 잠실에서 10km 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나도 나갈까 했더니 4월에 대구 마라톤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있는데 그때 함께 뛰자고 했다. 그래 딸과 함께 꼭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는데 소원이 성취되어 기뻤다. 5km를 준비했는데 좀 더 거리를 늘여서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동안 연습하여 손자 손녀가 보는 앞에서 딸과 함께 멋지게 완주하는 모습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기쁨과 더불어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딸애가 카이스트 석박사 과정, 제자가 카이스트 학부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대전에서 풀코스 마라톤에 참가했다. 어렵게 완주하는 모습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무사히 과정을 극복하고 졸업했다.
이제 다가오는 4월 대회에는 욕심부리지 말고 완주에 의미를 두기로 했다. 옛날 그때는 5min/1km로 달렸다. 지금은 족탈불급으로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절실히 느껴진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길 위를 걷고 천천히 달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