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90]욕쟁이 배우의 ‘쇠때와 니미뽕’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중 하나가 「인간극장」과 「우리말 겨루기」 그리고 「아침마당」 등이다. 오늘 아침 「아침마당」 마당에 욕쟁이 배우로 유명한 김수미씨가 나왔는데, 순간순간 “뒤집어졌다”. 어쩌다 「아침마당」에 처음 출연했다는데(50년만이다), 그분의 입담은 손맛과 함께 장난이 아니었다. 1949년생 전북 군산 출신, 올해로 75세일 터인데, 앞 얘기도 재밌고, 김학래의 ‘소문’ 어쩌고하는 뒷얘기도 재밌다.
모처럼 배꼽을 잡았기 때문에, 그중에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막내딸이 ‘큰 인물’이 될 거라고 입만 열면 자랑하며 기를 살려줬다는 김수미의 아버지는 ‘될 성 부른 나무’를 알아본 것일까. 중학교를 서울로 혼자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기는 쉽지 않았을 터.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불러 ‘살림살이’를 장만했다는 말은 들었어도, 초등학교때 ‘글빨’로 각종 백일장을 휩쓸어 ‘살림살이’를 장만했다는 말은 그로부터 처음 들었다. 말하자면 타고난 문학소녀. 지금도 운전석이든 침대 머리맡이든 신간서적을 비롯해 책이 쌓여 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의 ‘일일부독서一日不讀書 구중생형극口中生荊棘’이 따로 없다한다. 지금도 날마다 일기를 쓰고, 그동안 수필집을 열 권쯤 펴냈다던가. 금시초문. 흐흐
중학교를 전학인지 입학인지를 한 첫 수업시간, 제자들에게도 존댓말을 하던 담임선생님이 자기 소개를 하라하자 전라도 사투리로 '거시기하게' 해버리자, 교실이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는 것이다. 어느날 선생님 양호실 심부름을 시켰는데, 돌아와 하는 말이 “쇠때가 잠겼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다. 교실은 또한번 뒤집어졌고, 이내 소문이 나자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교장선생님조차 ‘쇠때’라며 놀려댔다는 것. 사투리 하나로 왕따 되는 것은 쉬운 일. 짓궂은 친구들이 ‘잉크병은 뭐라고 하냐?’고 비웃듯 묻자, 오기가 난 김수미. “우리 동네에서는 ‘니미뽕’이라고 한다”고 했단다. 니미뽕의 어원이나 뜻은 지금도 몰라도 나쁜 말임에는 틀림없을 터. 친구들은 더욱 더 놀려대 왕따가 되는 절체절명의 찰나, 고향에서 골목대장을 도맡아한 김수미, 몇 대 일의 싸움에서 죽기살기로 이겨 그 ‘위기’를 벗어났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라도 가시내’의 본때를 보여준 것인데, 그보다 그녀의 머릿속에 담임선생님의 눈물겨운 배려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아이들이 “김영옥(김수미의 본명)이 니미뽕이라고 욕했다”고 고자질하자 선생님이 “우리 고향에서도 잉크병을 니미뽕이라고 한다”고 했다며 감싸준, 존댓말을 생활화한, 지금은 고인이 된 선생님 이름이 ‘김숙자’였다고 오늘 아침 생방송에서 처음으로 고백했다.
‘쇠때와 니미뽕’ 김수미의 일화를 보며, 나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우리 아버지의 이름을 흉내내 놀려먹던 기억이 났다. 아버지 함자가 ‘세상 세世’‘태평할 태泰’인데, 친구들이 “야, 쇠때(세태) 어른 잘 계시냐?”며 놀려대곤 해, 나는 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혼내주려고 쫓아다녔던 불쾌한 기억. 또한 트로트가수 송대관이 군대시절 자칫 죽을 뻔했다는 일화도 생각났다. 군대에서는 매일 암구호 暗口呼가 바뀌는데, 어느 날 암구호가 ‘열쇠’였다는 것이다. 순찰을 돌면서 “암구호를 대라”며 총을 들이대는데, 갑자기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자 불쑥 뱉은 말이 ‘쇠때’였다고 한다. 전라도 출신이 아니곤 열쇠를 보고 쇠때라고 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암구호를 대지 못하면 사살을 해도 좋다는 군대에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는데, 다행히 쇠때를 안 선임 덕분에 살았다고 한다.
김수미가 주연인 영화 <마파도>와 <가문의 영광>을 보셨을 것이다. 김수미씨가 의식을 하든 안하든 부지불식간에 마구 뱉어내는 욕들은 차라리 또하나의 전라도의 ‘일상 언어’인 것을 아시리라. 불쾌함에 앞서 희한하게 정겨운 그 무엇 말이다. 배우 박노식의 욕하고는 또다른 차원이라고 할까. 물론 '19금의 욕'도 솔찬히 있지만. 동향의 인간들을 만나면 ‘대화속의 양념’같은 비속어가 그리울 때가 있지 않던가. "야, 너 안죽고 살았구나"가 애정의 표현인 것을. 하하.
아무튼, 김수미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그녀의 ‘손맛’은 또 어떤가? 18살 대학을 앞둔 여고 3학년때, 그녀를 그토록 사랑하고 믿어줬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한다. 10대 초반까지 실제 눈으로 보고 맛본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음식하는 것을 스스로 배웠다고 한다. 이제는 연예계의 소문난 쉐프가 되었지만, 그녀의 노력이 가상하다. 어디 그뿐인가. 고부姑婦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평생 대해준 시어머니에 대한 추억은 깊은 감동을 준다. 나에게 여자처럼 드라마와 아침마당 등 프로를 본다고 뭐라고 하지 말기 바란다. 좋든 나쁘든, 어떤 프로나 배워야 할 교훈은 다 있게 마련이다. '인간극장'이나 '아침마당' 출연자들의 얘기들을 들으며, 나는 ‘삶이라는 한 편의 연극’을 보며 배우고 또 배운다. 어떻게 사는 게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또 우리가 왜 그렇게 살며 죽어야 하는지, 어떤 이들은 아무리 장수長壽를 해도 그런 기본조차 모르고, 그저 숨이 붙어 있으니까 하루하루 사는 인간들이 분명코 있을 뿐만 아니라 많다고 생각하면 안타깝고 연민의 정을 느끼기도 한다. 흐흐. 내가 뭐라고? 건방지게.
하여간 재밌다. 김수미라는 탤런트가. 재주도 많다. 화끈하다. 저 정도는 돼야 엔터테이너가 아니겠는가. <전원일기> 20년, 일용이 엄마 김수미 누님의 ‘손맛’을 보게 될 기회가 조만간 생길 것같아 더욱더 기분이 좋다. 전북 장수의 이름없는 맛집의 여사장님과 수십 년 교류를 하며 언니-동생 한다고 한다. 나도 잘 아는 그 여사장에게 동생 김수미의 손맛을 꼭 보게 해달라고 부탁해 놓을 참이다. 자주 온다니까, 온다는 전화만 오면 곧장 달려가야지. 흐흐.
첫댓글 글이 구수하고 재밌어서 한 번 읽으니 눈을 뗄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