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영감
영감의 정의
영감과 성령
영감(lnspiration)은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이다.
따라서 성령이 영감의 주체가 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인간의 문자로 기록한 것이므로 이를 읽는 각 개인은 성령의 영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감은 계시와 연관을 갖게 된다.
이론적으로 볼 때 계시는 영감에 앞서는 것인데, 영감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자기 전달에 의한 것이든 또는 기자 자신의 경험이나 이전의 자료 등의 전승을 연구함으로써 정리한 것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내시고자 하는 계시를 기록하는 하나의 신적 방법과 직접적으로 관계된다.
영감은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과 감독자로서의 사역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기록한 기자들이 무의식적으로 단지 성령이 불러 주는 것을 기계적인 방법으로 기록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 기자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개성과 경향성 문체 등의 독 톡한 스타일(Style)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 또한 성경에 반영되었다.
각 기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독특한 은사들과 교육적 배경 및 삶의 정황에 따라 성경을 히브리어나 헬라어 등으로 기록했다.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은사와 능력을 보시고 그에 따라 하나님의 조화로우신 손길로 그들을 인도하여 성경을 지으신 것이다.
영감의 목적
성경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기자들이 전혀 수동적인 자세로 기록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복음 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또한 사람의 말이라고 본다.
이러한 다이나믹(Dynamic)한 견해에서는 성경의 기록에 나타난 사람의 기능도 어느 정도 유용한 것으로 보며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이 미리 예정 하신 여러 목적들을 확증하신다고 본다. 따라서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완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영감의 목적은 성경을 기록하는 자로 하여금 그 받은바 교훈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전혀 오류가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성경이 가진 영감은 성경의 전 부분에 골고루 퍼져 있는데 이로 인해 성경의 여러 사상이나 말씀과 교훈, 역사 등은 절대적이며 완전한 것으로서의 뿐만 아니라 또한 축어적으로 감동되어진 기록인 것이다.
영감과 절대 무오성
절대 무오성
영감과 성경의 <절대 무오성(infallibility, iner rancy)>은 그 의미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그러나 영감의 문제를 다루면서 절대무오성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무오성의 사전적 의미는 <잘못이 없는 것>이나 <정확한 것>이란 뜻이다.
전통적으로 절대무오성이란 용어는 성경과 관계되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나 성서 비평학이 대두된 이후로 그 의미가 축소되거나 그 어세의 일부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최근 수십 년 동안의 복음주의적 입장에서는 이 용어를 <잘못[틀림]이 없는>이란 용어로 대체하였다.
여기에서 해롭게 나타난 문제는 영감에 절대무오성이 포함된 것인지 하는 문제와 또한 절대무오성이 성경의 전 부분에 다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부분적으로 몇몇 교훈이나 사실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지의 여부이다.
절대무오성의 역사와 성격
영감이란 말이나 절대 무오성이라는 말은 초기의 그리스도 교회 신조에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두 용어가 표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의미의 내용이 충분히 내포되어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들 두 용어가 초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이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특별하게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개혁 시대의 신조들과 신앙고백 그리고 그 이후의 여러 신조들에서는 이 두 용어가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지니는 성경에 대한 태도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 이후에는 주로 자유주의적 합리주의자들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 이 두 용어가 강조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mfession of faith)에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어진 것이라고 한다.
성경의 각 책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이며 비교할 수 없는 우월성과 온전한 완전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절대무오한 진리 이므로 사람들이 그대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복음주의의 노선에서 나온 신앙고백들이 성경의 영감과 절대무오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
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과학이 발달하고 그 결과 성경에 나난 역사나 우주론, 세계관, 물리학, 천문학의 분야에 대한 언급이 과학적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성경의 무오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성경의 기자들은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바를 기록한 것이므로 그들의 기록은 현대에 와서는 이미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엄밀히 살펴보게 될 때 성경의 무오성에 대한 현대 자연 과학의 그와 같은 도전은 극복되어진다.
즉 자연의 현상에 관해 성경이 언급하고 있는 바는 통속적이고 시적이며 인상적인 표현이지 결코 과학적 설명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이 일반적으로 사물의 과학적 설명이나 분석적 해명보다는 외곽적인 묘사나 직관 미적 표현에 더 뛰어난 지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경의 목적과 내용은 과학적 설명이 아니며 더욱 교과서도 아닌 것이다. 이 밖에도 성경의 무오성을 의심하고 비판하는 여러 도전들이 있는데 그 내용과 그에 대한 해명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기사들 중에는 역사적 오류가 많이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비평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기록들을 살펴보면 어떤 것은 단순히 등사 하는 사람의 실수이거나 어떤 것은 세속역사가 불충분해서 범한 오류에 기인한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오류가 없다는 사실은 성경 자체가 증명하는 것이며 최근에 연이어 발견되는 고고학적 유물들로 인하여 역사적인 오류와 같이 보여 졌던 성경의 기록들이 오히려 사실이라고 하는 점이 증명되고 있다.
둘째로, 성경에 도덕적 오류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비평가들의 오해에서 생겨난 과장된 비판이다.
성경 기사 중에 선한 인물을 묘사할 때 그의 악행까지도 기록 했다고 하여 그 악한 언행이 하나님으로부터 용납을 받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때로 성경이 인간으로서 가져서는 안 될 추악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에게 본받을 만한 면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추악한 그 모습을 통해서 인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죄 성을 보여 주는 데 확실한 점이 있는 것이다.
성경의 관심은 인간의 실존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는데 있다.
또한 한 인간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죄 된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그 죄를 용서 받아야 하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그려주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 이상의 도덕>이다. 인간이 가질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가장 참된 행위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변하여 새 사람이 되는데 있다. 이것이 최상의 도덕이다.
셋째로, 때로 신약의 기자들이 구약성구들을 인용 또는 해석할 때 실수가 많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감 된 기자로서 구약을 자신들의 메시지 속에 적절하게 해석해서 인용했던 것으로서 그렇게 하여 인용된 성구는 신약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첨가되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되어졌던 것이다.
넷째, 같은 사건이 몇 군데에서 나뉘어 보도될 때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교하여 살펴보면, 이런 기록들에 있어서 언어 문구의 차이점은 있어도 의미의 상충은 없으므로 오류가 아닌 것이다.
특히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사이에 상충되는 점이 있다고 자주 지적되지만 조금만 연구해 보면 모든 것이 서로 조화되는 사건들임을 알 수 있다.
기타 여러 가지 오류가 있다고 비평가들이 지적하고 그 증거를 제시하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판명되어 지는 것은 오히려 성경의 무오성이다.
인류의 스승인 위대한 신학자들은 모두 성경의 무오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성경기자의 기록 중에 잘못된 것이 없다⎦는 어거스틴의 말을 인용 하면서⎡성경 전체가 성령에 속한 것이요 따라서 오류가 불가능하다⎦고 선언했다.
또한 칼빈도⎡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은 모든 오류로부터 벗어난다.⎦고 단언했을 뿐 아니라 모든 성경에서 오류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러한 성경의 <절대 무오성>은 성경이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과인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기록의 내적 근거는 <영감>이고 그 결과 성경에 나타난 외적 결과는<절대 무오성>인 것이다.
성경의 절대 무오성에 대해 의심하고 성경에서 오류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은 곧 성경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대한 불신이다.
따라서 성경의 독자는 성경의 오류를 밝혀보고자 하기 보다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려운 문제나 혹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발견될 때는 성경의 여러 곳을 살피고 연구해야 한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기다리면서 기록되었던 당시에 역사했던 성령의 영감이 읽고 있는 현재에도 역사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청골산 봉서방에서 스크랩하여 자리이동함
첫댓글 '영감설' 이 부분도 조직신학 3장 성경에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