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말씀의 향기♣ No3363
1월7일[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
평화의 주님! 하루의 양식이 될 이 묵상글을 받아보는 모든 이들을 축복하시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며 은총 주소서!
--------------------------------
**cpbc방송미사**
https://m.youtube.com/watch?v=0aucIe-2mIw (이현진 바오로 신부님 집전)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하느님 나라, 커다란 내 포도주잔에 양질의 포도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곳!>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여운 이웃 어린이들이 우르르 몰려왔습니다. 다들 바쁜 관계로 홀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피정 센터 넓은 주방이 엄청 춥더군요. 손을 호호 불어가며 소시지를 썰고, 채소를 다듬다 보니, 무척이나 처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서품 30년 차가 다 되어가는데, 지금 이 나이에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슬퍼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생각하면 안 되지?’ 하면서 즉시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소시지 하나 썰면서 아이들 한명 한명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부모 없이 자란 아이들이지만, 하느님께서 아버지 역할을, 성모님께서 어머니 역할을 해주십사고, 기도하면서 소시지를 썰었습니다. 그랬더니 일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기쁘고 보람된 사도직으로 바뀌었습니다.
돈보스코가 그랬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늘 바빴습니다. 총 책임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재정적인 부분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틈만 나면 부자들, 귀부인들 식사 초대에 응해서, 그들에게 좋은 이야기도 해드리면서 후원을 끌어내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즉시 아이들 사이로 들어가셨습니다. 선생님들 후배 살레시안들 격려하고 고무해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집필도 해야 했고, 출판사도 운영했습니다.
자연스레 성당에 오래 앉아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돈보스코는 자신만의 기도 방법을 찾았습니다. 일을 기도화한 것입니다. 일을 기도화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 아이들을 축복하는 마음으로 만나니 그 만남이 기도가 된 것입니다.
돈보스코를 만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 이구동성으로 증언했습니다. “돈보스코를 만나는 시간은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같았습니다. 그 시간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것, 그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제가 준비한 보잘 것 없는 요리들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어주는 아이들, 설거지며 마무리 주방 청소까지 깔끔히 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마음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모릅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아이들이 알아서 척척 제 몫을 해내는 모습에 제 마음은 즉시 풍성한 결실로 충만한 풍년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도래할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우세한 특징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풍성함이 아닐까요? 궁색하거나 결핍된 곳이 아니라 커다란 내 포도주잔에 양질의 포도주가 철철 흘러넘치는 곳, 더 이상 굶주림이나 갈증이 존재하지 않는 곳, 아쉬움이나 불평불만이 완전히 사라진 곳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처럼 말입니다.
포주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궁핍함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니 즉시 상황은 반전됩니다. 여섯 개의 큰 돌 항아리에 가득 채워졌던 물이 순식간에 격조 높은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600리터의 포도주입니다. 포도주가 넘치도록 풍성한 것은 언젠가 맞이하게 될 하느님 나라의 풍요로움과 행복,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상징하는 예표입니다.
=====================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피정을 하고 왔는데, 지도를 부산교구 허성 야고보신부님이 해 주셨습니다. 그분이 들려주신 이야기 중, ‘희망기도’로 유명한 대구교구 최봉도 신부님이 본당 사목하실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한 자매가 울면서 최 신부님을 찾아와 정말 하느님이 계시기나 한 것이냐고 따졌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이렇습니다.
식구가 4명인데 월세로 한 방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알코올중독이라 일도 나가지 않고 술만 마시고, 큰 딸은 결핵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여 집에 있고, 작은 딸은 가출해서 소식도 없는데, 이번엔 자신이 다니는 직장이 부도가 나 그 자매까지 직장을 잃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월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날 판이고 이제 모든 식구가 길에 나앉게 되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최봉도 신부님은 그 자매에게 그러면 일주일간 속는 셈 치고 ‘감사기도’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이 알코올중독인 것도, 딸이 하나는 결핵으로 죽어가고, 또 하나는 가출하여 집에 없는 것도, 또 자신이 직장을 잃게 된 것도 다 하느님의 은총이니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하였답니다.
그 자매는 불난데 기름 붓느냐며 화를 내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뒤 그자매가 환한 얼굴로 신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찾아왔습니다.
신부님께 화를 내고 집에 돌아와서 할 것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한풀이를 할 겸 하루 종일 방에서 큰 소리로, “남편이 알코올중독이라 감사합니다. 내 딸이 결핵에 걸려 감사합니다. 막내가 가출을 해서 감사합니다. 제가 직장을 잃어서 감사합니다. ...”라며 계속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날도 목이 쉬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본당 빈첸시오회에서 오더니 오스트리아 선교사 하 마리아가 운영하는 결핵요양소에서 딸을 무료로 받아주겠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러니 진짜 감사의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문 밖에서 “엄마!”하는 작은 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정말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남편이 생전 처음으로 술을 안 마시고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미안했다고 하며 아예 술을 끊었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자매도 옆에 병원이 새로 생겨서 거기에 주방근무자로 취직이 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일주일 안에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적 안에는 믿음과 순종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의 말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죄는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 그래서 순종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로 보일까요? 저런 상황에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고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카나의 혼인잔치가 나옵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첫 기적을 행하시는 장면입니다. 상징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복음의 상황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혼인잔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미사성제’를 생각하셔도 될 것입니다. 미사가 곧 그리스도와 우리와 한 몸을 이루는 혼인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술이 없는 잔치는 본 적이 없습니다. 술은 잔치의 필수 요소입니다. 즉 술이 없으면 더 이상 혼인잔치가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미사 때 빵과 포도주가 없으면 그리스도와 한 몸이 이루어지는 잔치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양식과 음료가 거저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님을 오늘 복음은 알려줍니다.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로서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성령이 오시지 않으면 우리가 구원될 수 없음을 잘 아시고, 아드님께 성령님을 청합니다.
그러나 아드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여인이시여, 그것이 당신과 나와 무슨 관계입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청을 거부하시는 명확한 표현입니다.
여기서 성모님의 힘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성모님이 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모님은 기적을 ‘강요’ 하시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델서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왕비인 에스델이 임금으로부터 내침을 당하느냐, 아니면 유다 백성을 살리느냐의 기로에서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다가갔듯이, 성모님도 당신의 목숨을 걸고 예수님께 포도주를 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무작정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명령한 성모님을 당신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내치셨다면 성모님 역시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만한 기적을 강요할만한 믿음과 순종이 있으셨습니다.
성녀 제르뚜르다에게 누가 와서 기도를 청했다고 합니다. 제르뚜르다는 수많은 기도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었는데 사람들은 성녀의 기도 때문에 은총을 받게 되었다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녀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 제가 기도도 해 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지요?”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내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도 네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그분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를 잉태할 때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며 그분의 뜻만을 따르기로 결심한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분이 청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다른 작은 믿음들이 있는데 이 믿음들이 봉사자들의 믿음입니다. 한 여인과 그 아들이 이상한 말을 주고받은 다음에 술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고 그것을 떠서 잔치 맡은 사람에게 가져다주라고 하는 데 이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것도 대단한 믿음인 것입니다.
사제들이 바로 이 작은 믿음들을 실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위에 성모님의 믿음이 있지만 사제들도 밀떡과 포도주를 바라보면서 이 예식을 그대로 행하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피’ 하면서 나누어 줍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인데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 비웃음을 받는 행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당신 믿음뿐만 아니라 교회의 이런 작은 믿음들도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라고 하신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혼인잔치의 믿음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제들이 ‘그리스도의 몸!’하면 ‘아멘!’이라는 응답을 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런 믿음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기적은 믿음을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허성 야고보 신부님은 또한 당신이 겪으신 일화를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법원 옆에 있는 부산의 모 성당에서 본당신부를 하고 계실 때입니다. 한 번은 이혼하려는 부부가 성당에서 서성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물으니 이혼하려고 법원에 왔는데 점심시간이라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갈 데가 없어서 성당으로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성당에 잠깐 앉아있었지만 기도가 되지 않아서 다시 나왔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무엇 때문에 이혼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는데, 남편이 먼저 “이 사람은 제가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반대를 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자매가 “당신이 잘했어봐라. 내가 반대하나?”라고 하며 언성이 높아지고 마구 싸우더라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화를 내시며 “아니, 싸우다가도 어른이 오시면 싸움을 멈추는 법인데 신부님 앞에서 이게 뭐 하는 짓이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했고 신부님은 그러면 보속으로 2시간 동안 성체조배를 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2시간 뒤 사제관에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울면서 들어왔습니다. 2시간 동안 있다 보니 서로의 잘못이 자기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신부님이 보는 앞에서 이혼서류를 찢어버렸고, 신부님은 바로 혼인갱신 예식을 해 주었습니다. 둘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기적은 별거 없는 것 같습니다. 잠시 자신을 내려놓고 ‘믿고 순종’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교회는 믿음과 순종으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끝납니다. 은총을 받고 싶다면 제르뚜르다 성녀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묵상해 봅시다.
“네가 내 뜻을 따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도 네 뜻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
[서울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가톨릭 평화신문 미주지사)]
우드사이드 성당의 신부님이 성탄판공성사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신부님들을 위해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했습니다. 9명의 신부님들을 초대했는데 6명만 왔습니다. 한분은 몸이 좋지 않아서 못 왔고, 한분은 장례가 생겨서 못 왔고, 한분은 온다고 했는데 그만 시간을 착각해서 못 왔습니다. 덕분에 6명이 9명이 먹을 음식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는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과 같다.’는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떤 사람은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못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 때문에 못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잔치에 가려고 못 왔습니다. 혼인잔치의 주인은 길가에 나가서 아무나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얼떨결에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모임은 단순히 식사초대였지만 저 역시도 하느님께서 저를 초대하는 자리를 외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의 모습으로, 가장 굶주린 이들의 모습으로, 가장 헐벗은 이들의 모습으로 주님께서는 저를 초대하셨는데 외면한 적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비유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큰 아들은 안 간다고 했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밭에 나가 일을 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간다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어서 밭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아들은 결국 밭에 나가서 일을 했던 큰 아들이었습니다. 부르클린 한인성당은 주님의 성탄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해서 지난 1년 동안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되었던 파우스타 수녀님의 교리여행 문제를 공부하였습니다. 저도 매주 문제를 풀면서 즐거운 교리여행을 했습니다. 350문제를 나누어 주었고, 12월 11일에 ‘교리경시대회’를 하였습니다. 말로는 공부를 못했다고 했는데 교리경시대회에 참가했던 분들은 모두 문제를 잘 풀었습니다. 100점을 맞은 분이 7명이나 되었습니다. 교리경시대회에 참가한 모든 분들은 주님의 성탄을 잘 준비했다고 생각합니다. 동방박사들은 황금, 유향, 몰약을 준비했지만 부르클린 교우들은 교리시험 문제지를 성탄선물로 준비했습니다.
신앙은 그리고 종교는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꿈입니다. 그 꿈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꿈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세례자 요한의 겸손함에서 시작됩니다. 그 꿈은 세상의 모든 권한을 가지신 분께서 기꺼이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는 겸손함에서 시작됩니다. '말'을 늘려서 발음하면 '마알'이 됩니다. 이를 풀이하면 '마음의 알갱이'란 뜻이 됩니다. 말은 마음의 알갱이에서 나옵니다. 말이란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을 곱게 쓰는 사람은 마음을 곱게 쓰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을 험하게 쓰는 사람은 마음을 험하게 쓰는 사람입니다. 말에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들어 있습니다. 새해에는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말씀으로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수능을 마친 학생의 어머니가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였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모임이 있었지만 한 학생의 앞날이 결정될 수 있기에 학생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학생이 추천서를 가지고 왔고, 기쁜 마음으로 추천서를 작성해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에 학생의 어머니가 전화를 하였습니다. 아이가 전공과목을 바꾸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추천서를 새로 작성해 줄 수 없는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역시 학생의 앞날에 중요한 일이기에 오시라고 해서 추천서를 다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힘은 역시 강한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가끔 제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대녀의 친구의 딸이 혼인을 하는데 혼배 주례를 해 줄 수 없느냐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마 다른 분들의 부탁이라면 거절 했을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차마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용감(?)하신지, 저를 너무나 믿는 것인지 가끔 그런 부탁을 하시곤 합니다. 같은 레지오 단원이 다치셔서 의정부 성모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시면서 병자성사를 부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역시 어머니의 부탁인지라 거절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어린 시절 모든 것들을 해결해 주신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제게 누군가를 도와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
[수원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복음: 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카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새로운 구원의 장이 열리고 그것은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신비스러운 회개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잔치에 온 모든 사람이 좋아할 새로운, 더 좋은 포도주를 주신다. 그것은 새로운 구원의 은총을 의미한다. 그 카나 혼인 잔치에 마리아께서 함께 계셨다. 마리아의 모습은 들러리의 모습이 아니라, 결정적이고 능동적이다. “포도주가 없구나.”(3절) 는 말로 예수께서 그 일에 개입하시도록 하셨다. 이 말이 어떻게 해석되든지 간에 우리가 잘 보아야 할 것은 마리아께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와 어려움에 동참하는 사랑과 나아가 아드님까지도 그 일에 개입시키려는 그 노력이다. 즉 마리아의 깊은 사랑과 신뢰심의 태도이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4절) 그 “때”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완성하는 때이며, 당신이 그것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때를 의미한다. 아버지의 뜻은 모든 인간의 구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거절의 뜻이 아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일렀다.”(5절) 이 말은 시나이산에서 백성들이 응답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탈출 19,8)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우리는 따라야 한다. 그때 우리는 구원의 혼인 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 그가 시키는 대로 하였을 때,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구세주의 포도주를 얻는다.
이렇게 카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은 당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으며,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와 함께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세상을 위해 봉헌되는 잔치가 벌어질 갈바리아에 오르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11절) 이것은 물을 포도주로 만든 권능 때문이 아니라, 더 큰 기적,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에 딱딱한 침대 위에서 혼례식을 치르게 되는 십자가의 기적과 연결되어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11절) 그 기적은 신앙을 불러일으켰고, 그 기적을 더 큰 기적에 대한 표징으로 이해하게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신앙은 참된 신앙의 모범이다. 아드님 예수님의 모든 것을 신뢰하셨기 때문이다. 마리아의 이러한 신뢰심은 사랑에서 생기는 것이고 사랑으로 넘쳐흐른다. 우리가 만일 형제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멀리하여 그들의 기쁨 또는 고통까지도 함께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거짓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앙을 우리도 살아야 할 것이다.
=====================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서울대교구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
요한 복음서는 사용하는 표현이나 신학에서 공관 복음서와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낱말을 뽑자면 ‘표징’입니다. 다른 복음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요한 복음서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지시할 때 표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기적이 사건을 일으키는 예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면 표징은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예수님의 신원을, 곧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이 사건이 표징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라고 말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은 첫 번째 표징이면서 예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모두 일곱 가지 표징을 전합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2장), 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신 것(4장), 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신 것(5장), 오천 명을 먹이신 것(6장), 물 위를 걸으신 것(6장),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치신 것(9장), 그리고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것(11장)입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표징의 마지막은 이처럼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밝혀 줍니다. 표징은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건이라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을 일으키는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 알게 되고 그분을 믿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표징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합니다. 정결례로 표현되는 구약의 율법을 넘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요구되는 시간입니다. 제자들이 완전하지는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모범을 보여 줍니다.
=====================
[서울대교구 이기양 요셉 신부님]
<더욱 가까워진 하느님 나라>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에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는데 그 중 첫번째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입니다. 바로 오늘의 복음이지요.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당연히 신랑과 신부여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예수님과 성모님이 중심입니다. 어찌 보면 공무를 집행하는 예수님과 사적인 청탁을 하는 어머니의 대화처럼도 비춰지지만 오늘 복음은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결혼잔치에서의 첫 번째 기적은 가정의 중요성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하느님과 신약의 교회의 새로운 관계를 말합니다.
또한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은 이제 물로 세례를 주던 세례자 요한의 시대, 물로 깨끗이 하던 구약의 시대는 지나고, 포도주가 의미하듯이 우리 죄를 씻어줄 성체성혈의 시대를 예고한다 할 수 있겠습니다.
두번째는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역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청에 의해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성모님의 협력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천주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천주교를 "마리아교다.", "천주교 신자들은 왜 마리아께 기도하느냐 예수님께 기도하지." 하며 비난의 수위를 높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비판하는 대로 마리아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하지요. 저희를 위하여 빌어 달라고 청하는 것이지 저희 기도를 들어달라고 비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 직접 기도하지 왜 굳이 성모님을 통해서 청하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이 그 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성모님의 거듭된 청으로 첫 번째 기적을 카나에서 일으키셨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볼까요?
가끔 저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신자분들이 계십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려 큰 수술을 받게 되면 불안하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찾아와 "신부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축복해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이때 대부분의 사제는 왜 하느님께 기도하지 나에게 부탁하느냐고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제에게 기도를 부탁하고 힘을 얻는데 하물며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마리아께 기도를 청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이요, 은총입니다.
저 역시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큰 은총을 입은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저는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합니다. 그중 뇌진탕 사건이 의미심장합니다.
누이 등에 업힌 채로 심하게 장난을 치며 움직이다가 부뚜막 위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뇌진탕으로 사경을 헤매던 저를 업고 어머니께서는 매일 치료를 받으러 다니셔야 했는데 어느 날 홍수로 물이 불어 갈 수 없는 길 앞에서 어머니는 간절히 묵주기도를 드리며 약속을 하셨다고 합니다.
"주님, 살려주시기만 하면 이 자식을 주님께 봉헌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성모님, 부디 전구해 주십시오"
저는 살아났고 어머니께서 그 약속을 하신 지 30여년이 지나서 사제가 되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성모님을 통해서 예수님께 기도 하시기를 권합니다.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듯이 성모님을 통한 우리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더 잘 들어 주실 것입니다.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첫번째 기적은 새로운 구원자의 시대, 신약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무한하신 하느님 사랑에 감사드리며, 자비로우신 성모님을 우리의 어머니로 모신 특은을 받은 신자답게 살아야 함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부산교구 박상대 마르코 신부님]
<카나 혼인잔치의 표징>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래아 지방 카나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을 전해주고 있다. 이 기적은 요한복음이 보도하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다.
서방교회는 나중에 본 따온 것이지만, 동방교회는 일찍부터 카나 혼인잔치의 포도주기적을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방문과 예수님의 세례와 더불어 예수님의 공현(公顯)사건으로 다루었다.
마르코복음이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있었던 구체적인 기적사화를 18가지로 편집하여 보도하는 데 비하여,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기적행위를 보도하는 데 다소 인색함을 보인다.
요한복음은 전체에서 8가지 기적사화를 전하고 있다. 이는 카나 혼인잔치의 포도주 기적(2,1-11), 고관의 아들치유(4,46-54), 베짜타 못가의 병자치유(5,2-9),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6,1-15), 물 위를 걸으신 기적(6,16-21), 태생 소경치유(9,1-12), 라자로 소생기적(11,1-44),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시켜 153마리의 고기를 잡게 하신 기적(21,1-14)이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은 사실 다른 기적들에 비하여 그 중요성이 덜한 것으로 보인다. 잔치도중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면 다른 데서 구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튼 딱한 처지를 먼저 알게 된 마리아가 아들 예수에게 이 사실을 전하고, 예수께서는 하인들을 시켜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가득히 채우게 하시고 이를 모두 포도주로 바꿔버리셨다. 600리터 정도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이다.
하느님이신 예수께 이런 일이 무슨 대수이겠는가. 야훼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 이집트의 모든 물을 피가 되게 하시지 않았던가.(탈출 7,14-24) 그래서 이 기적의 중요성을 더욱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적은 그 자체로도 신나는 일이고 기적을 입은 당사자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경험이 된다. 그런데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 편에서 볼 때 기적은 항상 표징이다. 이 표징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구원자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은 오늘 카나 혼인잔치의 기적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첫째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자신의 때’와 관련된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이다. 마리아께서 잔칫집의 처지를 알리자 예수께서 어머니를 보시고 ’여인이시여!’라고 불렀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섭섭하게 들렸을 말인가?
게다가 덧붙인 말인즉, 아들은 아직 자신의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때를 당기려 하신다.
예수의 어머니는 누구보다 아들인 예수를 잘 알고 있다. 예수께서는 결국에 어머니의 청을 들어 주셨지만, 여기서 ’때’는 어떤 시간을 말하는가? ’때’는 예수님의 전생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때가 되어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사람의 아들은 때가 되어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 생애의 순간 순간이 ’때’의 표징이다. 그러나 ’때’의 극치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진다. 예수님의 진정한 ’때’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지는 자기사명과 인류구원이 성취되는 때이며, 이는 곧 죽음과 생명, 자기비하와 영광이 반전(反轉)되는 때이다.
이 때는 예수께서 마리아를 진실로 "어머니" 라고 고백하는 때이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예수께서는 바로 이 때를 오늘 카나 혼인잔치에 당겨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다. 오늘 기적의 물과 포도주가 인류의 죄사함과 구원을 위하여 흘리실 당신의 귀한 물과 피의 예표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물의 표징인 인간성과 포도주의 표징인 천주성의 만남과 일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는 잔치책임자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은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10절)
그렇다. 모든 좋은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오며, 하늘로부터 온다.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도 있는 처지를 자비로이 대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최상품의 포도주를, 그것도 600리터나 되는 필요 이상의 넘치는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가 배워야 한다. 술집에서 손님이 술에 취하면 술에 물을 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남에게는 아무렇게나 해도 좋다는 생각, 돈만 된다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는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넘치게 주시건만 그것을 모두 자기 것으로 생각하여 따로 챙겨두는 우리들이 아닌가?
=====================
[부산교구 원정학 바오로 신부님]
<피는 물보다 진하다>
예전에 어떤 자매님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물론 저는 사목적 관점에서 바른 이야기를 하려고 애썼고, 자매님은 자신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가세를 해서 자매님을 거드는 바람에 저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그, 가재는 게 편이구나’라는 생각에 한숨도 나왔고, 그렇다고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지만, 아내를 거드는 남편이 밉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혼인’이라는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보도하기보다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어떤 것인가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혼인한 부부에게 생긴 곤란한 사정에 대해서는“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부부에게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물’을‘포도주’로 변화시킨 기적은 단순한 사회적 관계의‘혼인’을 성사적 관계의 혼인 즉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적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 시작부터가 옳고 그른 기준이 아닌 서로 사랑해서 혼인을 하고 자녀를 낳아 사랑으로 돌봄으로 가정과 사회를 형성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기적 욕심이 사랑을 방해하고, 복잡한 관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서를 위해 명분과 계약으로 재규정함으로써 ‘옳고’‘그른’관계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새로운 관계로 맺어졌습니다. 본래 하느님이 사랑했던 그 마음이 바로 이 혼인잔치의 기적을 통해 온전한 표징이 된 것입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의 편을 드는 마음의 내용은 ‘신부님, 아내가 신부님의 옳고 그름의 관점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부족한 저희를 이해해 주십사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라고 이해함으로써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사뭇 하느님의 일을 변경하려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혼인한 부부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사랑의 어머니 모습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주님께 온전히 순명하여 받드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뚜렷이 보여줍니다.
우리는 정의로써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으로 관계가 맺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은 피로 맺어졌고 물보다 진합니다. 세상은 이 피로 맺어진 관계를 인맥으로 변질시키지만, 성모님의 자애는 인맥이 아닌 순수한 인간에 대한 사랑의 피로 맺어지도록 안내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사랑의 관계자로서 또 하나의‘혼인의 기적’을 만드는 증거자가 되어야겠습니다.
=====================
[의정부교구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요한 2,1-11 (카나의 혼인 잔치)
그때에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그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였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물독 여섯 개가 놓여 있었는데, 모두 두세 동이들이였다. 예수님께서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독마다 가득 채우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셨다. 그들은 곧 그것을 날라 갔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기쁨이 되어
슬퍼하는 이들을 품어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희망이 되어
쓰러진 이들을 일으키어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빛이 되어
어둠에 잠긴 이들을 비추어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소리가 되어
침묵하는 이들을 울리어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사랑이 되어
버려진 이들을 보듬어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평화가 되어
갈라진 이들을 이어라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그대 살림이 되어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어라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갈릴래아의 카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 계셨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혼인잔치를 아주 장엄하게 치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그런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 중에 필수품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큰 결례이고 명예가 훼손되는 망신입니다. 요즘 같으면 시장에서 금방 사서 대체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미리 예측하여 술을 담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술이 떨어졌음을 눈치채고 아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알리셨습니다. 여기서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하지 않고 “포도주가 없구나!” 한 것은 성모님의 시선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난감한 처지에 빠진 신혼부부에게 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려 깊고 섬세한 어머니이십니다. 문제가 발생 되었을 때 사랑이 있으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핑계를 찾게 되는 법입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문제만 더 커지고 시끄러워집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모님처럼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처지도 알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처지를 어머님께 있는 그대로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 하시며 아들 예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이며 주님의 뜻에 순명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청하지 않고 다만 처지를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떼를 쓰는 것도 필요하지만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님께서 알아서 할 일입니다. 주도권은 언제나 예수님께 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물독에 물을 채워라” 하시고 다시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시며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지 않으셨다고 하면서도 어머니의 말씀을 흘려보내지 않으시고 잔칫집의 곤란함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급한 불을 꺼주셨습니다. 물은 생명이요. 정화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는 충만한 삶과 번영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정화를 통해서 충만한 생명에로 갑니다. 어려운 상황의 처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말씀드리는 어머니의 배려, 당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시며 기다리시는 어머니의 사려 깊은 모습에서 우리가 기도해야 할 바가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머니처럼 믿고 희망하면 목적을 이룹니다.
간절한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이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나의 모든 것, 모든 움직임이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는 모든 사물, 모든 행위 속에 존재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관심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포도주가 떨어진 것에 마음을 둘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에 아들에게 청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적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어떤 기도든지 생명력이 있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가 온 삶이 되어야 하고, 삶이 또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함부로 쓰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든지 당신 혼자서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협력을 바라시며 우리를 도구 삼아 이루십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어 주시는 기적을 이루실 때 물독에 물을 채우고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그것을 거부하면 우리를 위한 은총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총의 협력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손과 발입니다.”
데레사 성녀의 기도를 상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손이 없다. 하지만 우리 손으로 그분이 하실 일을 한다. 그리스도는 발이 없다. 하지만 우리 발로 사람들을 그분이 계신 곳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우리 목소리로 그분이 죽으신 까닭을 말한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긍정적인 생각만 있고, 부정적인 생각이 없으면 과연 행복할까요? 고통은 없고 기쁨만 존재하는 것이 과연 이상적인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인간의 DNA 안에는 부정적 감정이 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사시대에 가장 약한 존재인 인간이 멸종되지 않고 오히려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자그마한 소리에도 얼른 피하고, 멀리 사나운 짐승이 보이면 얼른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친구가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사나운 맹수에게 다가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실수를 줄이고 자신의 안정을 위한 부정적 생각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100% 부정적 생각만 있으면 당연히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의 연구 조사 결과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비율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즉, 3:1. 정확히 말하면 긍정적인 정서 2.9: 부정적인 정서 1의 비율이었습니다. 이런 비율을 갖춘 사람이 직업 성취도, 대인관계 원만도, 상사의 긍정 평가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많아지면 신체에서부터 불면증, 두통 등이 나타납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높여야 할 때인 것입니다. 부정적인 정서가 하나 생기면, 얼른 3개의 긍정적인 정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를 묵상하면, 성모님께서 너무 막무가내가 아닌가 싶습니다. “포도주가 없구나.”(요한 2,3)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의 관여를 은근하게 청합니다. 그러나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면서 거절하시지요. 하지만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 단순히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예수님께 청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부정적인 정서가 아닌, 긍정적인 정서가 예수님의 첫 기적을 가져오게 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3:1이라는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의 비율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해서 부정적인 정서만 보였던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안 되는 이유만을 찾게 되면 주님의 섭리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행복의 길에 들어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말씀하신 이 믿음을 우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1요한 5,14)
=====================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삶의 중심; 주 예수님>
- 구원의 표징, 영광의 표징, 믿음의 표징 -
어제 뜻밖에 좋은 책을 읽었습니다. 2016년도 교황청에서 마리아의 종 수도회의 에르메스 론키 수도자가 사순시기 동안 행한 피정 강의들을 모은 <복음이 나에게 물었다; 물음표는 복음이 우리 내면에 던지는 낚시 바늘입니다> 제목의 책이 휴게실에 굴러 다니기에 단 번에 읽었습니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책의 머리말에 이어 후기의 마침 감사 인사가 좋아 그 전문을 인용합니다. 유머와 겸손, 진심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명문입니다.
“에르메스 론키 신부님, 신부님의 노고와 묵상과 열정에 대해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부님은 아낌없이 많은 것을 나눠주셨습니다.
저도 복음을 읽고 복음을 꿈꾸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푸르게 그리듯이 꿈을 하나의 환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꿈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꿈꾸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성인들이 가졌던 그 용기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이 중국에 도착하기 위해 그 땅을 마주하고 가지셨던 용기를 떠올려 봅니다.
저는 교황청에서, 책상에서, 감실 앞에서, 같은 꿈을 위해 싸우는 겸손한 봉사지를 생각합니다. 신부님은 아십니다. 교황청에 꿈을 꾸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일 우리 모두가 좀 더 많은 꿈을 꾼다면 교황청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스갯 소리지만 소방관들을 불러야 할지도 모릅겠습니다. 에르메스 론키 신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서의 인물들이 한결같이 하느님을 꿈꿨던 사람 꿈쟁이였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물론이고 복음의 예수님도 평생 하늘 나라를 꿈꿨던 분입니다. 우리의 꿈중의 꿈은 아마도 “주, 예수님” 꿈일 것입니다.
얼마전 선종하신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이 그 대표적 꿈쟁이였습니다. 평생 예수님 얼굴을 그리워하여 평생 예수님을 꿈꿨던 분이라 마지막 임종어,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말마디도 교황님의 전 삶을, 꿈을 요약합니다. 저는 ‘저는’ 과 ‘당신을’이 생략된 짧은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우리말이 더 좋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하느님을 꿈꾸는 꿈쟁이가 되고 싶습니까? 답은 단하나 주 예수님을 열렬히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제 행복기도 서두가 좋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니 하느님 꿈의 실현을 위해 자나깨나 호흡에 맞춰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 끊임없이 기도로 바치시길 권합니다. 22년 전 써놓고 애송했던 “별꿈”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늘 예수님을 그리며 꿈을 꾸는 저에게도 꿈이란 주제는 너무 중요합니다.
“풀잎들
밤새
별꿈 꾸며 뒤척이며
잠못 이루더니
아침
풀잎마다 맫힌
영롱한 별무리
이슬 방울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네”- 2000.10.1.
정말 평생 꿈꿔야할 대상은 “주 예수님”입니다. 제가 볼 때 주님의 애제자 요한 역시 평생 예수님을 꿈꿨던 분입니다. 꿈은 이뤄진다는 결정체 말씀이 제1독서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 다음처럼 아름답게 고백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꿈꿀 때 주님을 점점 잘 알게 되고 주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게 되니 기도는 응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절로 우상들은 멀리하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니 주 예수님을 꿈꿀수록 참 하느님을 꿈꾸는 것이고 하느님의 뜻을 점점 잘 알아갈 수 뿐이 없습니다.
오늘 카나의 혼인잔치는 얼마나 멋진 꿈의 실현입니까? 예수님의 꿈과, 성모님의 꿈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되니 이런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의 표징이 일어납니다. 일곱의 표징중 첫 번째입니다. 예수님의 꿈은 이렇게 표징을 통해 이뤄짐을 봅니다. 참고로 예수님의 꿈이 이뤄진 일곱의 표징을 소개해 드립니다.
1.카나의 혼인 잔치(2장)
2.왕실 관리의 아들을 살리심(4장)
3.벳자타 못 가에서 병자를 고치심(5장)
4.오천명을 먹이심(6장)
5.물위를 걸으심(6장)
6.태생 소경을 고치심(9장)
7.라자로를 살리심(11장)
얼마나 멋진 꿈쟁이 예수님이요, 꿈을 이뤄주신 멋진 하느님이신지요! 표징마다 따라 붙는 두 말마디도 은혜롭습니다.
1.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2.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영광의 표징, 믿음의 표징, 구원의 표징으로 드러나는 예수님 꿈의 실현입니다.
오늘 카나의 혼인 잔치를 통해 이뤄지는 꿈의 실현은 얼마나 흥겹고 가슴 설레게 하는지요! 성모님의 확고한 인내의 믿음은 그대로 성모님의 꿈이 얼마나 견고한지 보여줍니다. 철석같이 아드님을 믿으시는 성모님입니다. 누구보다 주 예수님을 사랑하신 성모님의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스런 모습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지체없이 성모님께 달려가 전구를 청하십시오. 어머니의 청은 예수님께는 0순위입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기탄없이 믿고 사랑하는 아드님께 속내를 털어 놓으신 성모님이요,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예수님의 속깊은 마음이 잘 드러납니다. 이어 꿈이 이뤄지는 과정이 참 은혜롭고 아름답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예수님 아드님에 대한 성모님의 절대적 신뢰와 순종을 반영합니다.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의 순종에 감격하신 아드님 예수님이요 때가 되자 하느님의 응답이자 꿈의 실현입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얼마나 멋진 예수님이요 하느님이신지요! 과방장은 신이 나서 신랑을 불러 말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참으로 주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한결같이 열렬히 사랑하며 꿈꿀 때, 주님은 구원의 표징, 영광의 표징, 믿음의 표징을 통해 우리의 꿈을 이뤄주시며 우리 또한 당신 구원의 표징, 영광의 표징, 믿음의 표징이 되어 주님 꿈을 현실화하며 살게 하십니다.
삶의 중심에 주 예수님을 모시고 살 때 꿈은 이뤄져 고해인생은 축제인생으로 바뀝니다. 저절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고백이 나옵니다. 위에서 언급한 책에 나오는 신부님의 고백 일부 내용을 인용합니다.
“제가 믿는 하느님은 카나의 혼인잔치의 하느님, 유쾌한 사랑이 넘치는 축제의 하느님, 술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베타니아의 향유를 좋아하시며, 사랑을 기적이 싹트는 자리로 만드시고, 연회를 즐기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고, 존재의 기쁨, 신앙의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잔치를 통해 당신 향한 우리의 꿈을 이뤄주시고 고해인생을 축제 인생으로 바꿔주시며, 우리 모두 당신 구원의 표징, 영광의 표징, 믿음의 표징이 되어 신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마르2,11)
<기적의 전구자가 되어 보자!>
오늘 복음(요한2,1-11)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신 말씀입니다.
잔치는 기쁨이요 축제입니다. 이 축제에서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큰 낭패입니다. 이 낭패의 순간에 어머니 마리아께서 개입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물독에 물을 채워라."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어머니 마리아는 우리 구원의 결정적 협조자요 전구자이심이 오늘 복음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전구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기적으로 예수님의 신성과 마리아의 결정적 전구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지금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갈망하고 있으며, 그 기적이 일어나기를 얼마나 청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처럼 기적의 협조자, 전구자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가?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하는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1요한5,15)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1요한5,20)
우리가 그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분을 따라가면서 닮으려고 하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내가 먼저 믿고 그래서 기적을 만들어 내고, 또한 너를 영원한 생명의 잔치에로 이끄는 구원의 협조가가 되기 위해 애쓰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힘들어 하면서 아파하고 있는 나의 이웃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기억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기적의 전구자'가 되어봅시다!
=====================
[예수성심시녀회 김연희 마리아 수녀님]
(5분 아침묵상)
https://youtu.be/2NYxOS1rbDU
=====================
[지극히 거룩한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 5)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삶이란
밋밋한 물이
맛좋은 포도주로
변한 것같은
변화의 삶입니다.
맹신과 배신이
아니라
참된 사랑의
사람이
되는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늦은 시간이란
없습니다.
매순간이 가장
좋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집중하지 않고서는
바뀔 수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음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배웁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포도주가
있습니다.
목숨을 거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믿음과 표징은
사랑에 목숨을
거는 십자가입니다.
포도주와
십자가는 정녕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맛보게 합니다.
가장 좋은
포도주
가장 좋은
십자가입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하기에
일어난
성장과 변화의
선물입니다.
먼저 예수님께
우리 마음을
내놓는 은총의
날 되십시오.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어머니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맡겨드립니다.
=====================
Since 2013. 10. 24
연희동성당 류상현 스테파노
■묵상글 나눔합니다■
[이름,본명,지역(본당),축일,연령,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세요.
010-3284-9295 | 카톡ID jijive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