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호복 천사’
장갑을 끼고 일하느라 꺼풀이 벗겨져 너덜너덜한 손,
고글에 짓무른 자리마다 반창고를 붙인 얼굴,
환자 침상 밑에서 쪼그려 앉은 채 잠든 모습….
코로나19 일선에서 간호사들의 헌신을 보여주는 사진들이다.
최근엔 또 한 장의 사진이 트위터에 공개돼 화제다.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환자복을 입은 할머니와
마주 앉아 화투 패를 들여다보는 장면이다.
▷사진 속 주인공은 삼육서울병원 음압격리병동의
이수련 간호사(29)와 박모 할머니(93).
할머니는 중증 치매 환자로 유독 격리병실 생활을 힘들어했다.
할머니의 외로움과 공포감을 달래주기 위해 화투 놀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지난해 8월 동료 간호사가 찍어 올해 대한간호협회 사진전에
출품하면서 뒤늦게 알려지게 됐다.
누리꾼들은 “백의의 천사가 아니라 화투 패 든 천사”라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의사는 치료하고 간호사는 돌본다.
특히 의료진 외 출입이 통제되는 음압병동에서 간호사의 돌봄은
환자의 모든 일상과 함께한다.
식사를 챙기고, 씻기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병실과 화장실 청소를 한다.
이 모든 일을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레벨D 방호복을 입고 해낸다.
김이 서린 고글로 가려진 시야에 두세 겹 장갑을 낀 둔한 손으로
혈관을 찾고 주사를 놓는다.
두통과 메스꺼움을 달고 살고 24시간 가동되는 음압기 소음 탓에
이명에 시달린다.
업무량이 많다 보니 병실 안에서만 오가는데도
하루에 1만5000보를 걷는다고 한다.
▷감염 우려 때문에 가족 얼굴 한 번 못 보고 떠나는
환자의 마지막 손을 잡아주는 이도 간호사다.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가족이 보내온 편지를 환자에게 읽어주고,
환자가 남긴 말을 가족에게 전해줄 때는 다 같이 운다.
“우리 형제들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엄마 사랑해요.”
“나도… 많이 사랑해.” 미국에선 코로나 이후 간호사 직업의 신뢰도가
89%로 7년 전(82%)보다 높아졌다.
의사(69→77%)보다 높다(갤럽).
▷코로나 초기엔 환자가 필요로 하는 곳마다 간호사들이 달려갔다.
암 진단을 받고도 한달음에 달려간 간호사,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자원한 부부 간호사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떠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올 6월 전국 102개 의료기관을
조사한 결과 간호사 퇴사율이 20%가 넘는 병원이 13곳이나 됐다.
퇴사율이 45%가 넘는 병원도 있다.
격무와 열악한 처우 때문이라고 한다.
남은 ‘방호복 천사’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그래도 환자들 앞에선 웃는다.
“우린 절대 환자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함께 힘을 내주세요.”
이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