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서 / 민왕기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내 창문 아래로 우는 사람들이 온다
분노로도 안 되고 자책으로도 안 될 때 그렇다고 죽지도 못할 때
소리치기 좋은 자리를 골라 많은 말을 하고 간다
나는 다 듣는다 본디 내 말이었던 혀가 꼬인 말들을
매번 다른 사람이 오는데 매번 비슷한 말을 하고
처음엔 화내다가 나중엔 모두 울고 간다
애인은 슬픈 일이라고 하지만 저 말들에 나를 섞어 떠나보내는 거
목 좋은 곳에 집을 얻어 일주일에 한 번은 속으로 같이 소리치곤 한다
생계와 관계와 사랑이 저를 치고 갔을 때
술 취한 마음은 또 얼마나 용기 있는 것이었나
품위를 말하는 사람이 싫고 위선이 보이는 사람이 싫고
오직 저런 난동 위에서 뼈다귀만 남은 마음만이 가여운 구원을 얻는다
울기 편한 귀퉁이에 집을 얻어
꽁꽁 언 겨울에도 눈물 흘리는 사람들 들러가니
여기는 사시사철 울음이 풍성한 곳, 울음이 풍요로워 떠나지 못하는 곳
― 계간 『시사사』 2023년 여름호
* 민왕기 시인
1978년 춘천 출생,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2015년 <시인동네> 등단
시집 『아늑』『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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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용하는 일찍이 민왕기를 일러 “민왕기는 그만의 독보적인 말을 가지고 있는 시인이다.
21세기의 김소월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했다.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나는 언제가 어떤 지면을 통해 “민왕기를 읽는다는 것은 세상에 없는 감성사전을 펼쳐 본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적이 있으니까. 계간지 『시사사』 여름호를 보다가 역시나 민왕기가 펼쳐내는 문장 앞에서 눈이 멎고
가슴 아래께가 먹먹해지는 것이니, “시인은 왜 쓸모없는 시 따위를 여직 쓰고 있나?”라는 질문마저
허망해지는 것이니, 그가 듣고 보고 어루만지는 울음들이 그의 시에 기대 다시 용기를 내고 구원을 얻는 것이니,
누가 시를 시 따위라 할 수 있나. 누가 시를 쓸모없다 할 수 있을까.
“여기는 사시사철 울음이 풍성한 곳, 울음이 풍요로워 떠나지 못하는 곳”에 민왕기가 산다.
민왕기가 당신의 울음으로 시의 첫 음절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민왕기가 자신의 울음으로 시의 마지막 음절을 매만지는 곳이다.
그렇게 울음의 저수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니, 어쩌면 울음의 몽리면적에 기대어
우리 영혼은 겨우 구원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박제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