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32.9.
제 뇌가 망가져 있었습니다. 초기 단계는 이미 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난 돈키호테 데 라만차 같은 것이었어요.
절 진료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은 전두엽 손상이라 표현하기도 했고, 신경전달물질이상, 과부하 등등의 용어를 사용하며 제 증상을 설명했습니다.
난 항상 싸워야 했어요. 항상 공포를 목전에 두고있어 그런가봐요.
제 진단명은 우울장애입니다. F32.9는 제 질병 코드입니다. 상세 불명의 우울에피소드.
난 5줄이 넘는 글을 읽으면 심장이 뛰고 숨이 가파왔어요. 이런 걸 읽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았어요.
저는 바깥의 정보를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조차 남아있지 않아 제 마음에 간신히 들어온 것들만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저를 가르쳤습니다.
나는 내 눈 앞에 보이는 것들을 통해 정리하고 분석하여 악과 선을 정리했어요. 모든 순간 미약하게 떨리고 있는 손을 들고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모르겠어요. 최선이라고 믿었어요.
전 결국 우울증 자체와 싸우지는 못했습니다. 무엇이 악인지를 생각하고 그 모든 악을 미워했습니다.
난 악을 알아냈으니 이제 발견하고 싸우려 애썼어요. 내 공포는 항상 대상을 지시했으니 나는 그 대상이 원인이라 믿을 수 밖에 없었어요.
전 그래서 저만의 독단적인 세계에 갇히게 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난 그래서 길거리의 풍차와, 돌과, 나무와, 흙과 구름과 싸웠던 것 같아요.
제게 우여곡절이 꽤 많았습니다. 모두 이런 상황으로 인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내 싸움의 결과로 다치는 건 악이 아니라 결국 나였어요. 내가 싸운 건 애초에 악도 아니었어요. 다친 것을 또 찾자면 무고한 것들이었어요.
전 항상 분석했습니다. 틀려서야 틀림을 알았고, 틀릴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고쳐왔습니다. 결국 저 스스로를 악으로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 까지의 전투 결과로 보아 내가 싸운 것은 풍차였던 것 같아요. 풍차와 싸우는 내가 결국 악이었던 것 같았어요.
전 저랑도 많이 싸웠습니다. 내가 악이라면 내가 싸우고 고칠 대상은 나였습니다. 내 힘으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난 포기하는 게 죽기보다 무서웠어요. 그래서 난 나랑 싸웠어요. 도움을 구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했다고 믿을 수 있어서야 저는 병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악에게 "넌 분명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있고 나서야 나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약물로만 모든 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일단 싸움은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 조금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 정신이 순탄한 길을 걸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불행인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난 풍차랑도 싸우고 돌이랑도 싸우면서 창술은 참 잘 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할 수 있는게 참 많아졌어요. 하나의 세상이 어떤식으로 망가지는지, 또 세상으로 인해 사람이 어떻게 구성되고 만들어지는지도 관찰할 수 있었어요. 문제의식도 남아있어요. 이건 전부 귀한 자산이에요.
그리고 이제 싸워볼 대상도 점점 명확해지고 그것과 싸우기 위한 여러 싸움의 기술을 익혀왔으니 이젠 이 문제랑 제대로 싸워볼 날이 가까이 온 것 같기도 합니다. 일단 내가 지금 해야하는 건 이 세상이 이런 기사를 필요로 하고 있진 않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악이라 믿은 모든 게 악이 아님을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뒤에 할 일이 뭔지는 이제 알아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