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탐사는 1920년 프랑스 고고학자들이
사해 북동쪽의 고대 유적지 툴레일랏 엘-가술을 발견하면서 시작됐는데,
이곳의 최초 주거흔적은 7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주거지 역사는 창세기의 천지창조 시기보다 더 오래 되었습니다.
이어서 1924년 미국 고고학자들은 사해 동편 리산 반도 지역에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한 유적지를 발견했습니다.
비록 일 년 중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광야지역에 자리 잡고 있지만
이 도시의 북쪽에는 우기에 물이 넘치는 와디 케락이 사해로 흘러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물만 파면 얼마든지 물을 구할 수 있는 지리적인 잇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밥 에-드라로 불리는 이 고대도시는 1965년부터 3년간 지속된 발굴을 통해서
서기전 3500년경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서기전 2700년경에는
수천 명이 거주하던 대규모의 도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
만일 아브라함 시대를 중기 청동기 시대인 서기전 2000년 이후로 본다면
소돔과 고모라는 그 이전에 번창했던 초기청동기 시대의 도시여야 함으로
밥 에-드라는 소돔의 강력한 후보지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서기전 2200년경 기후변동으로 심한 가뭄과 기근으로
정착민들이 도시를 떠나 계절적으로 이동하는 유목민으로 전환 됨으로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는 고고학적 발굴 결과에 의해 소돔이라는 추론이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만 어부는 기독인들 주장대로 소돔이라고 인정 하겠습니다.
그러나 발굴 결과는 야훼가 내린 저주의 벌로 망한 것이 아니라 자연 현상으로 인해
주민이 떠나서 자연스럽게 망한 것 입니다.
또 다시 1973년의 이 지역 탐사를 통해서 서기전 3000년경 설립된 초기
청동기 시대의 4개 도시들을 더 발견 하였습니다.
이 도시들은 기독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노아의 홍수 시기인
기원전 2304 플러스 마이너스 11년 보다 더 오래 되었는데 , 홍수로 인해
전 지구인이 씨몰살을 당할때 이 도시와 이 도시에 거주 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었는지 궁금 해집니다....그려
벌굴 된 도시들은 이미 발굴된 밥 에-드라를 비롯해서
누메이라, 사피, 페이파, 카나지르 등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밥 에- 드라는 거주민이 자연 현상으로 떠난 지역이며
그 이후에 발굴 된 도시들은 자연재해로 인명이 희생 된 도시들인데 ,
이 도시들을 발굴 한 것을 넘버쓰리님은 소돔과 고모라라고 주장 하고 있는 것이며
어부도 이 도시들의 멸망을 소돔과 고모라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중에서 텔 누메이라(Tell Numeira)는 일부 성서학자들에 의해
고모라라고 주장 되어지고 있는 도시인데, 이 도시의 발굴 결과
대략 3000여년 경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론 하고 있습니다.
위에 발굴 된 고대 도시들이 자연재해인 불과 유황으로 사라지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서기전 1200년경 가나안에 정착 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옛날 사해 변에 고도로 발달된 도시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전승 되어 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그 도시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와 역청,
그리고 소금 기둥들만 남아 있는 황량한 현장만 접하게 됩니다.
자연재해로 문명이 몰살 된 저주의 땅에 정착을 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은
왕정시대로 들어와서 사해를 사이에 두고 요단 건너편의 암몬, 모압과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때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두 개의 국가로 분리 되어 있었던 이스라엘 인들은
그들 자신이 저주를 당한 땅에 정착을 해 고통을 받는 것으로 생각 하게 되었으며 ,
이러한 생각이 굳어지게 되면 민심이 동요를 하게 되고 민심이 동요 하게 되면
이스라엘은 또 다시 방랑민족으로 나가야 하는 비운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꾼들과 소설가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민심의 동요를 막고
저주받은 땅에 정착 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기 위한 방안을 생각 하다가
그들 자신이 믿고 있는 神과 고대 문명이 사라지게 된 전승을 교묘히 접목 시키는
신학적 이야기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인 것입니다.
이 결과로 바이블의 소설가들은 선택된 아브라함과 저주받은 롯의 이미지를 창작 합니다.
그리고 이 설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모압과 암몬 민족을
비윤리적인 근친상간으로 이루어진 롯의 후예라고 격하시킴으로서
저주 받은 땅에 대한 민심의 동요를 막고 정착 생활로 이끌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정도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의 탄생 설화를 마치고
여기서 아주 간단한 상식을 통해 넘버쓰리님에게 질문 하겠습니다.
창조주(?) 인 야훼가 보기에 음행과 각종 악이 만연 해 소돔과 고모라를 응징 했다면
유적 발굴 결과 나머지 3개의 도시도 소돔과 고모라 같은 응징을 당했는데 ,
이에 대해서 왜? 바이블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그토록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좋아하고 그 토록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기 좋아 하는 야훼가 다른 3개의 도시에 대한 응징에 대해서는
왜?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