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또한 아느니라”(요일5:14-15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복은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 않은 이유는 자격지심의 미달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사람들이 나는 복을 구하지 않는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나도 옛날에는 그랬으니 그 마음을 이해하고 남는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자녀의 프라이드가 아니다.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미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목록에 대한 청구권이 백지수표처럼 위임이 되어 있다. 이는 이미 책정된 정부예산과 같고 정해진 생활비와 같아서 청구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 영생을 얻었다. 그를 닮아간다. 이웃을 사랑해야한다’는 등의 말을 하지만 이건 진리의 핵심을 찌르는 말들이 아니다. 변죽만 울린다. 그 이유는 예수도 알고, 그의 보내신 하나님도 알지만 근본이며 만물의 근원과 시작이신 하나님께 가는 길을 모르기 때문이다. 믿음에 대한 고백이 어정쩡하다.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나 서울 간다’는 소리를 못하면 이상한 일이다. 그렇듯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곧 그의 말씀을 받아 영생을 얻은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서슴없이 말할 수 없다면 정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은 곧 ‘말씀’(호로고스)이다. 그 아들(존재)이 말씀으로 나타나신다. ‘어명이요’하면 임금의 존재를 의식하고 다 무릎을 꿇어야 하듯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이 가라사대’로 다가오면 군말 없이 받아야 한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는다. 그 다음부터는 그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말씀이 적용되도록 반복학습을 해야 한다. 진리는 반복하므로 기억이 되고 적용이 된다. 생명의 말씀은 영양가 있는 음식과 같이 몸이 달라지도록 한다. 영생은 현재의 구원의 능력이다. 그리고 영원하다.
영생 안에서 그 이름의 뜻을 계속 반추(되새김)하므로 그 생명이 점점 풍성해진다. 신앙의 차원의 고도가 점점 높아간다. 그리고 그 이름 안에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명료해진다. 그것을 요구할 담대함이 생긴다. 이 담대함이 바로 기도의 조건이다. 정리하면 하나님의 이름 곧 말씀이신 그 아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그 분을 믿고 더욱 사모하고 친밀해 질 때에 담력이 생긴다. 이 담대함이 그 이름 안에서 기도하도록 한다. 이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허락하신 영적인 목록을 따라 당당히 청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