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농익는 오월
문희봉
5월은 일 년 열두 달 중 나머지 열한 달과 바꾸지 않는다는 계절의 여왕이자 신록의 계절이다. 꽃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된다는 5월이다. 난이 향으로 피고 있다. 눈 감아도 분간이 가는 난의 향기가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와 친구 하자 손을 내민다.
늦깎이 봄꽃인 라일락이 한창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5월은 봄이 농익을 때다. 사붓이 들어온 송화(松花)가 내 가슴에 자리 잡는다. 살그머니 펼치는 유록색 여린 손바닥들을 어루만져 주던 5월 어느 날의 눈부신 햇살을 잊을 수가 없다. 병풍에 그려진 난초가 꽃을 피우는 달이 아닌가. 그것뿐이랴. 5월이면 개복숭아꽃이 유화물감을 흘린 듯 피어나 나를 유혹한다.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 안달하는 달이 바로 5월이다. 초록은 생명체의 상징이다. 5월의 신록에서는 숫처녀의 풋풋한 살 냄새 같은 향기가 묻어난다.
여린 새싹을 어루만져 주며 여름의 문턱으로 발을 들여놓는 봄볕의 따스함도 고맙고, 햇살을 감당하기 버거워 웃옷을 훌훌 벗어 던지는 아카시아꽃도 눈송이처럼 아름답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농익은 아카시아 향 내음이 더욱 감미롭다.둑 위에 올라서니 포근한 봄바람이 볼에 부딪히고, 샛강의 물풀 냄새도 상쾌하게 다가온다. 보리밭 두렁을 따라 봄빛으로 서성이는 여인 옆에 꽃샘바람이 흐드러지게 생리를 하고 있다.
5월의 자연은 부드러운 수정의 언어이다. 봄바람 훔쳐먹다 딸꾹질하는 뻐꾸기도 볼 수 있고, 바다를 닮은 보리밭도 볼 수 있다. 투명한 하늘의 눈부신 5월의 햇살을 받아 꽃 진자리 열여섯 살 소녀 젖꼭지처럼 살이 차오른다.
강변의 논밭에서 출렁이는 붓끝 같은 보리의 무희, 아지랑이 자욱한 야산 기슭의 풀 뜯는 송아지와 염소의 울음소리, 이 모두가 봄빛으로 창조되고 있는 수채화다. 흐르는 강물에 봄빛이 목욕을 하고, 푸른 하늘로 차고 오르면 강남 갔던 제비가 그 신호를 받고 달려온다.
우윳빛 안개 걷히면 부서질 듯 찬란한 햇살이 이슬을 타고 결실로 응고되어 갈 준비를 하고, 자애로운 어머니 손길처럼 부드러운 5월은 듣기만 하여도 청춘의 피가 솟고 만물이 저마다의 꿈으로 약동하는 시기이다. 오늘은 산에 올라 산자락을 구비 도는 청량하고 단아한 물소리를 풀어놓는 계곡과 음료수 한 잔 나누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