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강단)
부모님 효도통장, 잔고가 있나요?
사무엘상 2:18, 19
청소년 신자님들! 오늘은 어버이날이면서 어버이주일입니다. 아침에 어버이에 대해 어떤 모습으로 첫 대면을 했고 어떤 선물을 드렸나요? 누가 먼저 말해봅시다. 어떤 인사를 했나요? 선물은 드렸나요?
요즘 우리 부모님들이 자녀들 키우느라 고생은 많이 했는데 행복은 그만큼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부모님의 효도통장에 얼마나 많이 효도를 저금하고 있나요? 아니면 효도통장은 텅텅 비어있고 맨날 부모님 통장에서 인출만 하고 있나요? 돈 주세요, 딩동! 옷 사 주세요 딩동! 맛있는 거 해 주세요 딩동! 딩동이 무슨 소리냐고요? 무슨 소리겠어요. 그냥 딩동이지요!
미국의 9세 미만의 아이들에게 “집안에서 TV와 아버지 중에 어느 것이 더 필요한가?”라는 물음에 94%가 TV가 더 필요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만큼 어버이에 대한 효도가 점점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고 어버이날에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느 결혼 정보회사에서 최근 20대, 30대 미혼 남녀 회원 1,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자의 93.4%, 남자의 43.6%가 부모, 혹은 시부모와 같이 살지 않겠다’라고 응답했습니다. 모시고 살겠다는 응답은 여자가 4.3%, 남자가 16.3%입니다. 부모님께 대한 효도는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 청소년 여러분들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참된 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생각이 행동으로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
1. 부모님은 끄는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 부모처럼 사람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을까요? 미국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교사가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magnet(자석)가 아니라 mother(엄마)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이북에서 오신 장로님 권사님들은 남한에 가족들이 더 많은데도 이북의 부모님에게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부모님에게서 끄는 힘이 강하게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어린 시절부터 회막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부모와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탈선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그의 마음속에 부모의 끄는 힘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끄는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은 어머니의 서원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으로 인해서 눈물을 많이 흘렸던 여인입니다. 다른 어머니인 브닌나가 아기를 가졌을 때, 그 여인이 격정을 일으켰을 때 하나님께 기도했고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바로 그 사실을 마음 깊은 곳에 묻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늘 어머니에게 끌렸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믿음으로 잘 클 수 있었습니다.
효도는 늘 부모님에게 마음을 두는 것, 부모님에게로부터 받은 생명을 잘 간직하고 오래오래 사는 것, 부모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회막에서 하나님만을 바르게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어머니의 마음에 기쁨이 되었습니다. 효도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부모님이 낳은 형제들과 함께 잘 지내는 것 그것이 바른 효도입니다.
항상 마음이 부모님에게 가 있는 것! 그것이 효도입니다. 마음이 가 있으면 늘 주시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물질이 가게 됩니다. 그것이 효도통장을 가득 채워드리는 효도입니다.
2. 효도는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해 드리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양아버지 격인 엘리 제사장 밑에서 자라났습니다. 엘리는 그리 존경받지 못할 제사장입니다. 기력도 없고, 영력도 없고, 이름만 남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엘리 제사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많이 했지만 사무엘은 끝까지 존경했습니다. 제사장님의 의견을 들어드렸습니다.
본문을 보세요! 3절,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절, 여호와께서 부르십니다. 그랬더니 사무엘은 자다가도 제사장님의 부르심으로 알고 얼른 일어나 달려갑니다.
5절,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절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8절에서도 반복합니다.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초저녁에 부르지는 않으셨겠지요? 깊은 밤중입니다. 얼마나 일어나기 힘든 시간입니까? 그래도 부르는 소리가 들리니 제사장님의 호출인줄을 알고 일어나 달려갑니다. 세 번을 부르면 세 번을 달려갑니다.
이게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남들은 시시한 제사장이라고 비웃어도 사무엘은 젖 뗄 때부터 나를 키워준 고마운 분입니다. 언제라도 부르면 달라가는 것! 가라면 가고 누우라면 눕고…. 양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의견을 존중하는 사무엘의 효도통장에는 엄청난 마일리지가 쌓였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내려오신 고 한명수 목사님은 21년을 장모님을 어머니라 부르며 친히 모셨는데 부모님이 계실 때에는 한 번도 큰 소리 내 본적이 없고, 진밥을 좋아하시기에 자신도 억지로 다가 이제는 진짜 진밥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요,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아버지의 자리에 있게 하는 것, 그것이 효도입니다. 그분에게 의견을 말씀드리고 의견을 묻고, 의견대로 따라드리고. 그것이 효도입니다. (생략) 강정훈말씀닷컴에 가시면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 5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