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1. 17. 쇠날. 날씨: 흐리다. 날이 어제보다는 풀린 것 같은데 차다.
아침열기-김장 버무리기-글쓰기-점심-설장구-궁채 만들기-다 함께 마침회-교사 면접-교사회의
[아니 쉬는 때 놀아야지/김장하는 날]
어제 일찍 자서 그런지 몸이 가볍다. 아침 산책으로 둘러본 학교 안팎은 늦가을을 지나 초겨울 풍경이다. 나뭇잎이 담요처럼 바닥을 덮은 밧줄놀이터도,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감만 달린 감나무도, 어제 김장 채소를 다 뽑은 텃밭도 겨울이다 싶다. 아이들과 텃밭에서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상추를 손으로 뜯는데 손이 시리다. 하루 겪어보기를 하는 한주엽 선생이 1학년과 불을 피우기 위해 가마솥을 옮기고 채비를 하고 있다. 아이들과 군고구마통을 옮겨 제 자리에 갖다 놓고 교실로 들어와 피리를 불었다. 한 해 배운 곡을 모두 피리로 불어보며 그 가운데 배움잔치에서 불 곡을 찾는데 저마다 의견이 다르다. 그런데 어제 수학 시간에 구구단 복습하라고 나눠준 활동지를 아이들이 틈만 나면 푼다. 아침에 오자마자 풀더니 아침열기 마치고 쉬라고 해도 푼다.
“아니 쉬는 때 놀아야지. 왜 수학 활동지를 푸는 거야? 그만 풀어. 왜 그러는 거지?”
“경쟁이에요.”
“무슨 경쟁?”
“다른 동무보다 더 먼저 풀려구요.”
“왜?”
“그냥요. 재미있잖아요.”
하지 말라고 해도 경쟁이든 재미를 붙여 수학 셈을 풀고 있으니 말릴 수는 없고 웃음만 난다. 스스로 풀 수 있고, 반복해서 익힐 수 있는 활동지가 제 때에 들어가긴 했나보다.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면 저러지 않을 텐데, 어쨌든 어제부터 줄곧 풀더니 오늘도 틈만 나면 풀고, 나중에는 집에 가져가서 하겠단다. 어제 누구는 벌써 5단이야 그러더니 어느새 열 장을 다 풀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다음 번 활동지는 더 어려운 걸로 나갈 텐데 그 때도 그럴까 궁금하다. 놀이도 공부도 분위기가 중요하다.
10시 다 함께 1층 강당에 모여 김장 버무리기를 한다. 간단하게 송순옥 선생이 김치의 역사를 물어보는데 알찬샘 아침열기 시간에 모두 알려줬는데도 아이들이 기억을 못하는 게 있다. 고춧가루가 들어온 임진왜란 이후로 고추가 들어간 김치가 나왔다는 것만 기억하고 삼국시대부터 김치를 먹었다는 기록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처럼 대답을 못한다. 네 모둠으로 나뉘어 김장을 버무리는데 양이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끝난다. 텃밭 배추가 많지 않아 절임배추를 두 상자 사서 하는데도 아이들이 많으니 한 시간 안에 다 끝났다. 김장 날이면 언제나 같은 풍경이지만 아이들은 늘 다르다. 지후 어머니, 현우 어머니, 시 우어머니, 승원 어머니, 지안민혁 아버지가 수육을 삶고 뒷정리를 모두 해주셔서 아이들과 차분하게 글쓰기를 할 수 있어 고맙기만 하다. 어제 텃밭에서 채소를 뽑고 학년마다 일을 나눠 김장 채비를 하고, 버무리는 과정까지 쓴 글을 읽어보니 겪은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점심 때 보쌈김치에 삶은 고기를 얹어 먹는다. 푸짐해서 좋고 아이들이 잘 먹으니 좋다. 밥 먹으며 김장 버무리기를 안한 두 어린이이게 왜 그런 거냐 물으니 아침에 춤 수업 때 수업 집중을 흐트러뜨려 교실에서 글을 쓰며 마음을 다잡느라 늦어져 그랬단다. 오늘 못했으니 내일 학교 김장할 때 와서 버무리기를 하라고 말했더니 수육 먹을 때 올 거라고 한다. 어제 거칠게 몸을 써서 모둠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채민이도 버무리기를 못했다.
낮에는 설장구를 치고, 아이들이 어서 만들고 싶은 궁채 만들기를 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가죽 자르기만 하고 만다.
아이들이 가고 교사 면접을 보고 교사회의를 마치니 한 주가 끝났다. 이번 주는 학교살이도 있고, 김장도 하고, 물들이기도 하고, 다 함께 하는 공부, 모둠에서 계획한 공부가 많고, 학교생활 겪어보기를 하는 분들 면접이 세 번이나 있고, 교육연구모임, 법인준비모임까지 있어 정말 가득찬 한 주다. 일주일이 휙 갔다. 한 주가 끝나는 날 우리 학교에 귀한 분을 신입교사로 모실 수 있을 듯 싶어 좋다. 다음 주에도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고, 배움을 갈무리하는 과정을 더 알차고 즐겁게 하도록 몸과 마음 채비를 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