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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7)은 내용이 많을듯하여 다시 새로운 글로 시작했습니다..
간밤에는 두 가지 큰 틀이 형성 되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생긴 일인 3월 6일 밤 10시가 넘어
영선사 상공(지역)에 거대 달무리가 떴습니다.
공부방을 마치고 왔기에 10시가 넘은 시간인데
달이 중천에 뜬 상태에서 거대 달무리가 생겼습니다.
스님이 촬영한 다음 해인거사님께 문자를 드렸는데
다행히 소멸전 촬영이 되어 10번게시판에 사진을 올려 놓으셨네요..
......
아쉽게도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밝기 조정을 약간 한 것입니다.
실제 모습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정돈데 카메라는 다 잡아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스님이 촬영한 이후 갑자기 더 옅어졌습니다.
해인거사님 촬영 시기는 그 이후이실건데 그래도 형상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제가 음력 2월 12일(양3.6 금)이라 달이 강하지 않은 것도 원인입니다.
요즘 영선사가 위치한 이곳은 거대달무리가 비교적 자주 생기고 있는데요
대개 중요 순간에 생기고 있고요..
2017년 말 부턴가 그래요.. 그전엔 안 그랬습니다..
영선사가 종교적으로 분명히 뭔가 있는거죠..
..
그리고 꿈도 기이한 것을 꾸었습니다.
내용은 유추해야 하지만 이상한 꿈이 꾸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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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7일새벽 스님 선몽
일관된 내용입니다. 하나의 꿈.
"갑자기 경상북도 상주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경상북도 상주성 북문이라는 곳이 나왔어요.
북문이 잘 지어져 있더군요.
크고 웅장하며 튼튼하게 지어져 있었고 아름다웠습니다.
거의 과거 도성을 방어하던 수준의 성문이었습니다.
반면 남문이라고 나오는데 아주 피폐해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즉 상주시의 기운이 북문에 모여 있다는 거겠죠.
상주시의 주변에 강(물?, 연못?)도 보이고...얕지만 넓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북문은 실제 방어하는 성이 아닌 관광지처럼 그런 곳이 되어 있었습니다.
..
그곳을 둘러보기 위해 서 있는데 관광해설사로 보이는 듯한 중년의 남성이
서 있는 스님께 큰소리로 안내를 해야 하니 비켜 달라고 하더군요..
근데 그 소리가 너무 도전적이라 매우 언잖았습니다.
속으로 뭐 저런게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데요.
꿈속에서도 공직을 맡은 이들은 저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며
스님이 약간은 화가 나 있었습니다.
어쨌건 비켜주고 스님은 따로 성문을 돌아봤습니다.
..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허름한 민가들 사이의 동네 속에 있었습니다.
성의 남쪽이었던 것 같아요..
허름했지만 그냥 우리가 사는 소도시의 평범한 마을안입니다..
가정집들이 여러채가 있고 하는 그런 우리의 평범한 동넵니다.
거기서 뭔가 교욱을 받은 듯하고요..
무슨 교육인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그리고 수료하는 날이 되어 연락이 오는데 상주지역의 모든 기관장들...
시장을 비롯하여 죽~~ 호명되는데 모조리 다 불려지는듯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북문을 견학 간다면서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버스로 이동한다고.. 같이가자고..
그래서 스님은 멀리 사는 사람이니 내 차를 가져가면 안되냐?
그러면 마치고 바로 거기서 돌아오면 될텐데 하면서 잠을 깼습니다.
그 교육받는 중간에도 뭔가 있었는데 기억이 안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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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분석하면 큰 틀은
경상북도 상주시, 북문, 도전적인 문화관광 해설사, 기관장 총 출동..
이렇게 나옵니다. 이제 이걸 분석해보죠...
분석하면 소름 돋는 내용이 나옵니다. 매우 기이한 꿈이에요...
....
스님은 경북 상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알고 있는 것은 '경상도'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 '경주+상주'가 합쳐진 것,
역사 공부를 하며 부끄러운 지휘관 '이일'이라는 무능한 놈이
임진란(조일전쟁) 당시 왜군을 저지하러 갔다 여러가지 개짓거리만 하다가
진격해오는 왜군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경계를 게을리하다가
속옷만 입고 북문을 열고 도망을 치고
이후 그대로 천혜의 요새인 조령이 뚫려버려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이 몰살을 당한 것과 직결된다는 것,
민요에 상주 근처의 특정 지명이 등장한다는 것 밖에 모릅니다.
'상주 모심기 노래'라는 것인데 애절하죠..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아가
연밥 줄밥 내 따주마 우리 부모 섬겨주소 "
이런 내용의 가사입니다..
..
상주시 조금 위에 문경이 있고 문경을 지나면 조령이지만
과거 문경은 상주에 속했다고 봐야 합니다.
백과사전 기록을 보면 문경은 상주에 속해 있었습니다.
...
후백제의 왕 견훤...
"견훤(甄萱)은 후백제를 세워 통일신라, 후고구려(고려)와 함께 후삼국 시대를 열었던 무장이다.
그는 원래 신라 사람이다. 아버지는 농민군 출신의 장군 아자개(阿慈介)이며,
상주 가은현(加恩縣, 지금의 문경)에서 태어났다.
견훤의 본래 성(姓)은 이(李)씨인데 15세 때 스스로 견씨로 고쳤다.
그런데 일부 역사가들은 견훤을 진훤으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조선 후기의 역사학자 안정복이다.
그는 그의 저서 《동사강목》에서 '甄의 음은 진(眞)'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대의 역사가들 중 일부도 견훤을 진훤으로 표기하고 있다. -백과사전-
견훤이 본래 이씨였군요. ^^....
산세 답게 왕이 태어난 곳이네요..
역시 이씨라는 본래 왕통이었고요..
다른설도 있는데 위키백과에서는 삼국유사를 인용해서
《삼국유사》 권2 후백제 견훤조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 따르면,
아자개(阿慈介)는 신라 진흥왕과 사도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구륜공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견훤은 경주김씨가 됩니다.
다른 설에는
이러한 계보를 인정할 경우
진흥왕-구륜공-선품(善品)-작진(酌珍)-아자개(阿慈?)-견훤으로 이어지는 견훤의 원계(遠系)는
신라 진흥왕과 관련된 김씨 혈통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이씨 집안의 계보(系譜)인 이제가기에
신라의 김씨 왕가의 계보가 서술되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 계보가 정치적 의도에서 생겨난 것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이도학, 2001)
또한 『삼국사기』 권50 열전(列傳)10 견훤(甄萱)조와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2 후백제견훤(後百濟甄萱)조
“견훤은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 사람으로 본래 성은 이(李)씨였으나
뒤에 견(甄)씨를 성으로 삼았다.
(甄萱 尙州加恩縣人也 本姓李 後以甄爲氏)”는 기록을 신뢰하여
견훤의 출생지와 관하여 경상도 상주라는 견해가 제기된 이래로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견훤을 현재 경상도 상주 출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박용운, 1985 ; 이기백, 1993)
이렇게 다양한데 알 수 없는 역사에요... 당시 한자의 기록은 모두 이두문자이니
여러번 불러보면 답이 나올 것입니다.
...
지리적으로 과거에는 오지여서 접근하기 매우 어려웠지만
요즘 그쪽으로 고속도로가 뚫려서 지나가보면
가까이서 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뛰어난 산세에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지역이고요..
무시무시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아름답기도 하고..웅장한 모습에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하고..
대한민국은 정말 천혜의 요새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강한 기운이 있는 곳입니다.
아자개가 작은 규모로도 굳건히 성을 지켜냈던 이유에는 그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지역에서 왜구를 방어 못했다는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길목 좌우에 매복을 한다면 아무도 무사하지 못하는 지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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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주지역을 한 번 살펴보죠. 지도를 한 번 보겠습니다.
여러 자세한 지료들은 아래 글에서 보도록 하십시오,,
조선시대 경상도 대표 도시 상주 그리고 상주읍성
http://panzercho.egloos.com/v/10702243
이 지도는 여지도의 상주성지도라고 합니다.
저기서 북문을 보세요. 옆에 왕산(王山)이라는 산이 있네요.
벌써 예사롭지 않죠?
..
하지만 지금은 저런 모습은 거의 없는듯하고요
구한말 때까지는 원형은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상주로컬신문의 자료를 옮겨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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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은 좋은 자료이긴 하지만 가슴이 아픈 자료입니다.
구한말 망해가는 왕조의 현실이 성문속에 그대로 나타나 있죠..
무너지고 보수 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는 모습.
우리 불교의,. 사찰들도 저랬어요. 그만큼 살기가 고되었단거죠.
그나마 지금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으니
우리가 얼마나 무식하고 근본을 모르는지 알게 됩니다.
비록 어설픈 모양이라 하더라도 저 정도면 대단한 기세입니다.
100년전만 해도 4대문이 그대로 살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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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찍는 위치에 따라 다르지만 4개의 문 가운데 남문이 입구 노릇을 한듯 싶습니다.
동문과 서문 민자로 뺐는데 익공양식으로 보입니다.
남문과 북문은 포집을 지었네요.
남문은 포수가 많은 다포집이고요..
북문은 그것보다는 포의 숫자가 낮지만 분명히 포집입니다.
남북문은 상당한 예산을 들여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문의 이름입니다. 짐작하셨나요?
기록에 따르면 상주성의 성문 이름은
동문(돈원문), 서문(진상문), 남문(홍치구루), 북문(현무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위는 상주성 북문인 현무문의 작은 사진을 확대해 편집한 것입니다.
아래는 현무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동일 필체는 아니네요..
상주성 현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래는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상주성의 현판 글씨가 더 잘 쓰여진 것 같습니다.
현무문 이름은 상주성만 썼던 것은 아니고 다른 성에도 쓴듯해요.
평양성도 북쪽성(성이 2개)은 현무문이라하네요..
중요하지는 않지만 상주성 남문은 '홍치구루'로 알고 있지만 사진상으로는 세글자가 확실합니다.
'~~문'으로 되어 있는데 다른 글자는 판독이 안 되어 알수가 없는 상태에요.
이것이 대한민국 인문학, 역사학의 현실입니다.
지들이 매일 쓰던 문 이름도 모릅니다.
홍치문으로 짐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글자가 달라요...
좌우 양쪽이 분명히 있는 한자입니다,.
...
상주성은 동문은 돈원문(敦元門) 공락문(控洛門), 서문은 읍로문(揖露門) 진상문(鎭商門),
남문은 홍치구루(弘治舊樓)라고 썼지만 주작문(朱雀門), 진남문(鎭南門), 무남루(撫南樓)라는 이름도
중간에 수리 한 뒤 후보에 올랐다고 합니다.
이름이 좀 혼란스럽죠?
하지만 북문은 현무문(玄武門) 그대로 쓴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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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현재 코로나19의 소멸기도를 준비하는 관점에서 보면
상주가 지금은 시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지만
기(氣)적으로 보면 현실과는 다른 지역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문인 현무문(玄武門)이 왜 등장했을까요?
현무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거북이거나 뱀과 거북이 하나로 되어 있다는 설이요.
신령한 거북으로 정리하는 것이 옳을듯 합니다.
여러가지 정황이 그래요.
당연히 북쪽이고요..물이면서...북두칠성, 관세음보살입니다.
..
사전적으로는 현무(玄武)는
①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북쪽에 있는 ' 두, 우, 여, 허, 위, 실, 벽'의 별들
②북쪽 방위(方位)를 지키는 신령(神靈)을 상징(象徵)한 짐승. 거북으로 상징(象徵)했음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글자 그대로 해석보자는거죠..
한자로 현(玄)은 '하늘'이라는 의미이고 무(武)는 '군대'라는 의미입니다.
즉 현무(玄武)는 '하늘 군대'가 됩니다.
다른면에서 현무는 북두칠성의 군대, 관세음보살의 군대라고 봐도 되죠.
...
또 경북 상주시가 나왔단 말에요..
이게 또 희안한게 상주시 뒤에 누가 계신냐면 속리산(俗離山)이 계십니다.
속리산을 대개 충북 보은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닌가봅니다..
속리산은 충청 북도 보은군과 경상 북도 상주시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인데
해발 1,058m인 천황봉이 정상이고 그 주소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 산 64-1'
이렇게 나옵니다. 이러면 속리산은 경북의 산이 되네요..@@
...
그리고 세상에..속리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다는 문장대(文藏臺,1054미터)..
거기다 주소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장암리 산 33 '
이렇게 나옵니다.. 어허... 속리산이 명백히 상주거군요... 세상에..
여러님들 이거 아셨어요?
거의다는 충북 보은을 떠올리는데.. 이거 족보갈이였습니다...
명백하게 경북 상주의 속리산입니다.
선몽이 이리 명확하다니까요...
..
그러면 이건 무얼 의미하는걸까요???
속리산 산신님은 여산신이시라는데 여성은 등장하지 읺았습니다..
문화해설사가 분명히 남자였단 말이죠..
근데 현무문은 관음보살, 여성이시고...속리산도 여성이시고..
도대체???
거다 상주지역의 모든 기관장들이 현무문으로 모였단 말입니다..
이건 지역신들이 모두 속리산 밑으로 모였다는 건데...
혹 속리산이 남산신님???
...
근데 성격은 까칠하신가 봐요.^^^...
정이 뚝뚝 떨어지게 말을 하더군요..굉장히 불쾌하게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마세요..
어쩌면 상주, 문경, 점촌 분들이 말씀들을 그렇게 정 없이 하실지 모릅니다.
혹시 그렇다면 그건 그 지역 신중님, 속리산 기운이 그러신 것이니.. 이해하세요..
..
참으로 꿈이 해석하기 난해하네요..
지역은 확실히 상주가 맞습니다. 꿈에서도 그랬고요...
현실과도 맞습니다. 물이 보였는데 얕은 물이었어요..
마치 넓은 강처럼 보였는데 얕았습니다. 논물처럼요..
실제로 상주 공검면에 공검지(공갈못)가 그렇게 생겼답니다.
공갈못은 우리나라의 김제 벽골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형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물이 거의 없다고 하네요.
현재는 연꽃이 심어져 있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그치고 연꽃 피는 시절에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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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7일 새벽꿈은...주인공으로 추정 되시는 속리산 산신님이..
확실한 의사 표시를 안하셔서..
스님에게 모습을 보여주시지도 않으시고요.. 근데 왜 그러셨을까요??? ^^...
남산신이시라면 모든게 딱 들어맞습니다.
문화해설사로 등장하셨고 상주의 북쪽 현무문과 인연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현무문 근처에 과거에 속리산 산신제를 올렸을지도 모릅니다.
미륵불을 품었으니 속리산이 남성이어야 맞아요..
그 지역 대장신들을 모두 소환하실 수 있는 힘은
속리산산신님 밖에 없거든요.
그렇다면 속리산 산신님은 까칠남이십니다.. ^^..
하지만 그러면 현무군이 설명이 안 되시고...
성격적으로는 견훤왕의 아버지 아자개가 그런 성격이셨다고 들었습니다.
극까칠남.. 왕이었던 자식도 꼼짝 못하는...
그리고 고려로 홀연히 가버리셨던 분이죠.
...
속리산은 소백산맥에 속해 있습니다.
속리산과 경북 상주 지역 신중님들도
'현무군' '하늘군대'로 참전하신다로 정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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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니 속리산 산신님에 대한
여성성이냐 남성성이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님 개인 의견인데 남성산 같습니다.
여성성이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고 하네요..
산신제를 지내며 남근상놀이(송이놀이)를 했다고 하고
정이품송이 남근처럼 생겨 속리산을 여성성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또 법주사가 배에서 목탑이 돛의 역할을 해서 배이기 때문에 여성이라네요..
이거 말 안되죠??
...
남근상 놀이가 반드시 여성신을 위로하는 의식만으로 볼수도 없는거고..
어떻게 하는건지는 보지 못했지만..속리산 산신님 상징일수도 있잖아요..
남성산이라 남근을 모실수도 있는거죠..
정이품송도 마찬가지로 앞으로 보는게 아니라 산을 기준으로 보면 정확하게
속리산의 남근이고...
그리고 결정적인거..법주사의 탑이 돛이라면..
그러면 속리산은 배가 되는거죠..
남자는배 여자는 항구 아닌가요??
근데 왜 그걸 거꾸로 해석???
...
무엇보다 산의 생김이 돌산으로 악산입니다..
여성의 몸이 악한거 봤어요??
산 자체가 돌덩어린데.. 우락부락하죠..
속리산의 주소, 위치, 성격이 족보가 제대로 정렬 되는 선몽입니다..
명백히 속리산 산신님 코로나19 소멸기도 참전이십니다..
근데 나무 까칠하세요..조심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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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자료를 찾아보니... 속리산은 확실히 남산신으로 보입니다.
아래는 흰두교의 '시바신'을 소개하는 나무위키의 자료입니다.
~~~(전략)~~
(시바신은) 마혜수라, 혹은 대자재천, 대흑천(마하칼라) 등으로 주로 등장하며,
불교에서 말하는 삼계 중 하나인 색계, 그중에서도 색계 천에서도
가장 높은 위계이자 하늘인 색구경천에 머무른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사천왕천의 사천왕, 그리고 색계 초선천에 있는 범천과 더불어 세주천으로 꼽힌다고 한다.
또한, 대천세계를 자유자재로 주재하는 신이기도 하며,
마혜수라천, 복신, 전쟁의 주, 길상이라고도 한다.
장엄한 궁전에 거처하며, 육십천신을 거느리고 백천녀의 호위를 받는다.
하얀 얼굴에 눈이 3개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중략~~
시바를 섬길 때에 부적같은 것으로 링가(남성의 성기)에 기도 하는데,
이는 세 신의 우월성을 따지던 중 가장 위대한 현자였던 브링구가 시바를 방문했을 때,
시바가 자신의 아내와 애정행각을 하느라 그를 마중하지 않아서,
화가 난 브링구가 저주를 내려서 그렇게 되었다.
다른 설로는 사라스바티의 저주라고도 한다.
중요한 의식을 치를 때 사라스바티가 집안일(…) 때문에 참여하지 못하자
그녀를 빼놓고 다른 신들이 모여서 의식을 치뤘는데,
화난 사라스바티가 막말로 내뱉은 내용 중에 '
시바는 (한동안) 인간의 모습으로 숭배받지 못할 것이다'가 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그냥 그게 시바의 본 모습이란 설도 있다.
~~중략~~
이 대자재천 신앙은 불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로 토속신앙과도 습합되어
과거 속리산에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라는 사당이 존재했던 적도 있으며,
속리산과 법주사에서는 대자재천왕제(大自在天王祭, 혹은 송이놀이)라 하여
절에서 붉은 칠을 한 커다란 나무 남근조각을 만들어 속리산 여산신에게 바치고
대자재천을 45일간 맞이하여 재앙을 물리치는 의식이 있었으나
일제시기에 '너무 음란한 제사다!'라 하여 중단되었다.
정작 일본인들은 지금도 곤세이사마(金精様)라 해서
굵기가 통나무만한 남근을 신사에 봉납하는 걸 보면 대체 얼마나 외설적이었길래...
여담으로 일제시기 학자 이능화는 저서 <조선무속고>에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대자재천왕재 기록을 인용하면서
대자재천과 마라 파피야스를 헷갈려
대자재천왕재를 마라를 숭배하는 의식으로 오해하여 중단된 걸 당연하다고 기록했고
현대의 일부 서적에서도 이능화의 주장을 답습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위에도 나왔듯이 두 신은 엄연히 다른 위격의 신이다.
현재는 속리산가을한마당의 일부로 송이놀이가 행해지다가
2005년 6월 6일부로 속리산 일대의 행사들이 속리산단풍축제로 통합된 이래로
속리산 천왕봉 산신제를 행사의 일부로 지내고 있다.
당연하지만 과거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외설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이걸보면
과거 속리산에 대자재천왕사(大自在天王祠)라는 사당이 존재했던 적도 있으며,
(이건 속리산 산신님이 대자재천천왕 이란거잖아요)
속리산과 법주사에서는 대자재천왕제(大自在天王祭, 혹은 송이놀이)라 하여
절에서 붉은 칠을 한 커다란 나무 남근조각을 만들어
(이건 속리산의 주된 신의 상징인 남근 숭배신앙이라고 봐야죠. 남근(시바신)에 기도하는..)
속리산 여산신에게 바치고
(이건 논리적으로 안 맞죠?)
대자재천을 45일간 맞이하여 재앙을 물리치는 의식이 있었으나
(이건 주인공인 대자재천을 맞이한다는 거잖아요. 대자재천은 남성..
단순히 여신을 위로하려고 무려 45일을 기도한다?? 말이 안됩니다.
주인공 신(시바신) 자체를 모시는 의식입니다.)
즉 옛어른들이 속리산 산신님을 시바신이 화현으로 봤다는거고 시바신은 남성입니다.
여산신을 위로한다고 본다면 합궁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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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자개 하니까 김성겸 할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자개 역을 맡으신 김성겸 할아버지가 이흔암한테 떼엑!! 하더니 호통치며 다시 한번 자기 소개 해봐!! 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김성겸 어르신이 연기한 아자개는 까칠할 땐 제대로 까칠했습니다.
그리고 시바신은 인도 신화에서 성자들의 부인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그걸 보고 화가 난 성자들이 각자 저주를 했지만 그 저주는 아무 효과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시바신에게 너는 거세될 것이다.라는 저주를 성자들이 하지요. 그에 시바신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들의 저주는 내게 아무 효과가 없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말에 따라 거세하리라. 시바신 스타일이면 요즘 드라마에서 나오는 상남자 스타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