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3종경기 (Triathlon) 에 참가한 ES Choi
약 십년동안 몸담았던 회사를 결혼 후 그만두었다.
ES최는 책을 한아름 선물로 보내왔다.
결혼후에도 매달 사보가 집으로 왔기에
회사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어느날, ES최가 퇴사했다는 소식이 사보에 올라왔다.
그리고 영 소식이 끊어졌다.
그런데 이틀전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의 도움으로
17년만에 ES최의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고
조금전에 한국의 ES최와 전화 통화를 하였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공을 살려 회사를 설립하여 대표이사가 되었고
텍사스 어스틴에 있는 몇개의 반도체 회사와
거래를 하고자 협상중에 있다고 한다.
작은 산행모임 구성원 이운용씨 이현화씨가 회사 창립맴버가 되었단다.
이현화씨는 관리담당이사로 지금도 함께 근무하고 있다고 하니
이런 기쁜일이 다있단 말인가?
미국오기전 내가 근무하던곳이 양재천옆 도곡동이었는데
ES최의 회사도 양제동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지척인데도 모르고 지냈다.
산을 좋아하던 나는 사내 산악회 회원이었다.
베타랑 산악인이라고 나를 높이 평가하던
공정관리부 이현화씨의 추천으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또다른 사내 작은모임의 구성원이 되었다.
두사람을 제외하고는 구성원 전원이 미혼이었다.
회사근무하면서 대학원에 등록하여 공부하는 직원들이 몇명있어서
신선함과 풋풋함이 느껴지는 모임이었다.
특히 구성원은 대부분 서강대출신이라
한창 유행하던 양희은의<하얀 목련이 필때면>이란 노래를 특히 좋아했다.
업무중에 잠깐씩 휴게실에서 함께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사외에서 만날때에는 주로 난다랑에 모여 커피를 마셨다.
어느 가을날, 모임에서 회사에 휴가원 제출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대산행을 떠났다.
강릉에서 교직생활을 하는 김택현씨의 애인이
터미널에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여사원하고 함께 여행왔다고 해서
애인과 싸웠단다.
그당시 나는 매일 아침 뚝방에서 조깅을 하던때라
등산을 시작한지 하루가 지나면서 내 몸은 새털같이 가벼워졌다.
혼자서 대청봉에 다녀온다는 용감한 아가씨도 만났다.
오대산의 단풍은 화려하다.
그해 한달에 두번씩이나 가을오대산을 찾았다.
멋진 산행을 마치고
우리는 더욱 정으로 끈끈하게 다져져서
회원들의 집으로 초대를 받곤 했다.
이현화씨는 미혼이었는데 부모님은 지방에 계시고
형제들만 서울에서 지내고 있었다.
영양사인 여동생이 한상 가득 차렸다.
시골에서 가져온 돼지고기 맛이 고소했다.
난 그때 고스톱을 처음으로 해봤다.
라이브 콘서트에 함께 갔는데
이진관이 "인생은 미완성"을 불렀다.
사회자가 청중에게 붕.어.알 하고 따라서 하란다.
천천히 그다음 빠르게...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웃었다.
ES최가 작은 모임회원을 집으로 초대했다.
애인있는사람들은 애인도 데려왔다.
특별 연월차 수당이 나왔을때라서
모두 호주머니가 두둑 했을때다.
수당에 대한 화제가 나오려는 순간 말문을 급하게 막는다.
숨겨둔 특별수당 아내한테 빼앗기지 않으려고... 후훗
음식 차리는데 도우려 하니 한사코 말린다.
손님은 대접만 받으라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원들 진급이 쏙쏙 잘되었다.
진급 축하카드를 정성을 가득담아 직접만들어 보냈다.
직접만든 카드에 더 감동이 되었다는
인사말까지 듣고 내마음이 뿌듯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사 선배언니가 남동생의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성탄절이브 다섯친구모임에 파트너로 참석하기로 약속을했다.
12월 24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자 마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오늘밤 작은 산행모임에서
북한산행이 있다는 소식이다.
난 선배언니가 소개해준 모임에 참석할 수 없다는 전화를 하고
침낭을 둘러메고 렌턴을 켜고 일행과 함께 야간 북한산행을 했다.
새로구입한 코오롱 방한복과 모자로 예쁘게 꾸미고
한발 한발 걷는데 권혁진씨 멋있다며 좋아라했다.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밤새 이야기 하며 놀았다.
평소 과묵하던 이운용씨 이날따라
술도 많이 마시고 말도 유난히 많이했다.
술을 너무 마신탓에 열을 빼앗겨서 그런지
잠자는 이운용씨 텐트안에서
덜덜덜 떠는 소리가 새벽까지 들렸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버너에 물을 덥혀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였다.
귀엽다고 동료가 사진까지 찍었다.
따뜻한 집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추워서 남자회원이 여벌로 가져온 방한복을 주어
옷을 겹쳐 입었다.
다행이 한낮에 햇볕이 나와서 따뜻하였다.
정릉으로 하산했다.
다시 봄이 되어 우리는 과일몇개 배낭에 담아
북한산행을 다녀왔다
우리과 직원 한명이 가을학기 졸업식이 있었다
직원의 졸업 축하하러 학교로 갔다.
축하꽃다발을 샀는데 좀 맘에 안들어
다시 꽃한다발을 더샀다.
졸업식 순서지를 받고 보니
대학원 졸업생 명단에 ES최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ES최의 졸업을 축하하러온 가족들도 만났다.
얼른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번에 졸업하는지 몰랐는데
축하 해줄 수 있게 되어 천만다행이었다.
ES최를 회사에서 다시 만났을때
졸업축하해줘서 고맙다며 스넵사진을 찍었는데
잘 나왔다고 말해주었다.
사진 찍은지도 몰랐는데...
작은모임 회원들 가끔 맛있는 피자 먹으러 다녔다.
그후 소나타를 구입했다며 드라이브를 시켜주었고
한강에 떠있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도 시켜주었다.
ES최가 장꼭도의 "산"이란 책을 선물해줬다.
내가 좋아하는책인데
암벽등반하는 친구 인자가 그책을 들고가버렸다.
ES최와 이현화씨가 같은 계열의 다른회사에
스카웃되어 직장을 옮겼다
그동안 일기장에 썼던 내용 중 함께 지냈던
아름다운 추억에 대한 내용들을 발췌하여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근무지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다시 한번 뭉쳤다.
일본에서 조총련에게 속아서 북한에 간 기분과 같다고 했다.
얼마후 ES최는 다시 우리 회사에 복직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다운 모임은 계속되었다
첫댓글 화목한 가정은 행복입니다. 좋은글 감사해요
글 읽어주심 감사드려요.
좋은 수필 고맙습니다 역시 은빛여울도 산꾼이셨네요 오대산 소금강에 오셨다 가셨네요 설악산 대청봉에는 안가셨나봐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이라 몇 일 뒤에는 수필방으로 옮기겠습니다
20대의 일기입니다. 설악산은 여러번갔지만 대청봉은 가지 못했어요. 암벽등반 강사로 일하는 친구가 귀국하면 함께 가자고 하네요.
한창시절 이리저리 팡팡 뛰었던 재밋는 야그 ~아주 공감이 갑니다~
나는 그때 신사동 사거리 아구찜골목에서 쐐주를 마셔감시롱 나의 배포를 키웠었는디~ㅎㅎ
저는 마치 허벌레님 흔적찾아 다니는것 같네요. 신사동하고도 인연이 있나요? 저는 신사역 근처 잠원동에서 살았어요.
오대산을자주산행을하셨군요 좋은글즐감하고갑니다
회사에서 부서 야유회로 오대산을 갔었지요
글도 잘쓰고..예전의 추억을 모두 기억하는걸 보면 머리도 좋은거 같구...밤송이가 대단한 친구를 알고있었네...
진고개 간 기억은 이제야 나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