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 및 천주교 성지의 세계적 명소화’ 사업에 대해 불교와 충남 서산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 사업이 가톨릭교회에 치우쳤다고 비판하고 있다.
서산시 고북면에 있는 천장사 주지 허정 스님은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에게 7월 20일에 편지를 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이 편지에서 허정 스님은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 및 천주교 성지 명소화 사업을) 종교적인 사업으로 보지 말고 우리 지역 관광 활성화 사업으로 봐 달라고 말하지만 사업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유치하는 과정을 보면 이것은 특정 종교의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교황방문도시’라는 입간판을 고속도로 옆에 세우고 관공서에서 ‘해미성지 세계명소화 사업’을 하고 있다면 결코 종교 안의 일이 될 수 없다”면서 “해미읍성은 특정종교의 성지가 아니라 다양한 종교의 소통과 화합의 장소로 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 | | ▲ 2014년 8월 17일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가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해미읍성에서 봉헌됐다. ⓒ 교황방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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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스님은 7월 27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 통화에서 이 편지를 이메일로 대전교구에 보냈으나 아직 답변은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현재 캐나다, 칠레, 브라질의 한인 공동체를 사목방문 중이며 8월 8일 귀국 예정이다.
‘해미읍성 및 천주교 성지의 세계적 명소화’ 사업은 이완섭 시장이 이끄는 서산시가 2015년 3월 선정한 ‘시 발전 10대 핵심과제’ 중 하나로, 이 가운데 일부는 대전교구와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총 예산은 513억 원으로, 국비 117억, 도비 64억, 시비 296억, 민자 36억 원이다.
서산시는 ‘시 발전 10대 핵심과제’를 발표한 지난 3월에는 해미읍성과 천주교 성지 일대에 ‘교황 방문 기념관’과 ‘프란치스코 광장’ 등을 조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최근 자료에서는 ‘세계청년문화센터’, ‘세계청년광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가운데 세계청년광장은 공용주차장과 함께 조성돼 해미순교성지 맞은편에 자리잡게 된다. 세계청년문화센터는 옛 해미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드는데 전시 기념관과 회의, 숙박 시설 등으로 이뤄지며, 사업비 214억 원 중 민간투자 25억이 쓰이는데 대전교구가 이 자금을 댈 것으로 보인다. 두 시설은 2016년 착공해 2018년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서산시는 7월 23일 발표한 ‘민선 6기 시장 공약사항 및 2015 상반기 실적, 하반기 주요업무 계획’에서 해미읍성 및 천주교 성지 명소화 사업에 가톨릭 시설 사업이 포함돼 있어 타종교와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예상했으며, 이러한 종교 시설에 대해서는 대전교구가 민간투자로 부담할 것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여기에 어떤 종교 시설이 들어설 것인지 현재 분명히 공개돼 있지 않지만, 지난해 말 서산시는 교황 방문 당시의 기록 영상과 어록, 미사 도구, 제의 등을 교황 기념 공간에 전시할 계획이라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또한 ‘교황 열기 지속 및 명소화를 위한 수시 연례사업’으로 해미성지순례길 걷기 행사를 대전교구와 협력해 매년 8월 여는 것으로 계획돼 있으며, 올해는 8월 15일에 열린다. 해미읍성을 비롯한 내포 지역 성지와 순례길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일도 2022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대교구가 추진하는 2019년 세계청년대회의 폐막 미사를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해미읍성은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116호)로 조선시대 세종 3년에 완성된 것으로 본다. 주교회의 자료에 따르면 병인박해(1866) 때 해미진영(지금의 해미읍성)에서 처형된 것으로 조정에 보고된 천주교 신자 수가 1000여 명이며, 그 전 80여 년간 이곳에서 처형된 신자는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비오, 2014년 시복)도 이곳에서 옥사했다.
2003년 6월에는 해미순교성지 기념 성전이 해미읍성에서 약 500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졌고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됐다. 2014년 8월 17일에는 제6차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가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해미읍성에서 봉헌됐다.
내포 지역은 경기도 평택에서 충남 아산, 예산, 서산, 당진, 홍성, 보령, 서천에 이르는 지역을 부르던 이름으로, 19세기 천주교 박해가 있던 시기에 천주교 신자가 많아서 순교자와 관련 성지가 곳곳에 있다. 근래 각 시군에서는 이런 연고를 살려 순례길 만들기 등 여러 사업을 펴고 있다.
이 사업의 종교 편향 논란에 대한 비판은 서산시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 시민은 서산시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특정 종교의 수장 1회 방문을 빌미로 ‘교황방문도시’라는 명칭을 관공서에서 사용하고, 대로변에 ‘교황 벽화’ 작업을 하는 것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은 “(서산시는) 수많은 불교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임에도 교황의 1회 방문 때문에 서산의 정체성을 ‘교황방문도시’로 잡은 것은 유구한 지역의 문화와 불교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서산시 문화관광과는 지난 2월 3일 자유게시판에 올린 답변에서 “교황 방문 이후에도 ‘교황방문도시’ 로고를 사용했던 것은 단순한 관광마케팅의 관점을 넘어서, 국제적인 행사를 훌륭히 치러낸 서산시민의 저력과 자부심의 표현으로 넓게 이해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산시는 우리 지역의 훌륭한 불교 문화와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존,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더불어 교황 방문 또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산시 문화관광과는 “교황이 해미읍성과 해미성지를 방문한 이후, 그 홍보 효과로 국내외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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