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전 성남 모란시장에서 사 온 다육식물을 보다 큰 화분에 옮겨 심어야 하는데도 흙이 없었다.
아파트 단지 안의 조경수 아래에는 화분 흙을 쏟아져 내버린 곳이 자주 눈에 띄이기에 꽃삽과 비닐봉지를 들고는 조경수 아래로 나갔다.
꽃삽으로 흙을 퍼 담았고, 더러는 말라버린 고양이 똥도 있었다.
작은 화분 속의 다육식물(알로에 베라, 알로에 아보레센스, 자로금)를 중간 크기의 화분에 옮겨 심었다.
옹색하게 작은 화분 대신에 보다 큰 화분에 옮겼더니 제법 그럴 듯하다.
뿌리가 더욱 번질 것으로 기대한다.
시골에 내려가서 텃밭 농사를 짓고 싶은 갈망을 이렇게나마 달랜다.
아파트 화단 속의 큰 나무를 보았다. 말라죽고 있었는데 팻말이 내걸렸다.
화분 흙을 버리지 말라, 독성으로 이식한 나무가 죽어 간다는 내용이다.
나는 죽어가는 상록수의 주변 화분 흙을 보았다. 구차한 책임회피이다. 이식할 나무의 뿌리돌림이 나빴거나 이식시기와 이식방법이 잘못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화분 흙이 조금 부어졌기로서니 나무가 죽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 누가 화분에 맹독성 농약을 처질러 댔다가 버렸을까? 설마?
조경업자가 핑게거리로 화분에 뒤짚어씌우는 듯한 느낌이다.
내가 저장강박증에 걸린 정신병자일까?
남이 버린 헌 물건을 주워다가 재활용하고 있기에.
베란다 위에는 양재동꽃시장, 성남 모란시장에서 사 온 화초들이 있고, 남한테 얻거나 남이 버린 화초를 주워서 살린 것도 있다. 한 포기인데도 곁순 포기 나누기, 잘라서 꺽꽂이 등을 해서 증식시킨 것이 대부분이다.
남이 버린 화분을 주워와서 수돗가에서 깨끗이 씻고, 남이 버린 화분 흙을 긁어다가 화분갈이를 한다. 적은 돈으로 식물의 숫자를 늘리고, 이들이 점차로 자라는대로 더욱 큰 화분에 옮겨 심는다.
아내는 '왜 그런 것 주워 와요? 당신 어머니를 닮아 가네요'라면서 지청구를 한다. 내 어머니는 일제시대인 1920년 1월 생이니 오죽이나 빈곤한 세상에서 살았기에 물건을 아껴서 썼을 터. 이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나이기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물건저장 강박증에 걸린 것 같다.
화분의 밑받침도 돈 주고 산 것은 별로 없다. 식재료를 포장한 비닐팩을 재활용하고 있다. 예컨대 고추장 팩이다.
화분에 흙을 붓고, 물을 주면 흙물이 새서 베란다를 적시며 더렵힐 게다. 이 피해를 줄이려면 받침대가 있어야 한다. 식재료, 식품을 꺼낸 뒤에 내다버려야 할 비닐팩 등을 화분받침대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내는 지청구를 하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는 아내는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푸성귀를 사서 다듬었다. 물김치를 담궈서 내일 둘째딸이 오면 나눠 준다고 한다. 임신 8개월째인 딸인 출산휴가 중이기에 반찬 장만하는 데에는 힘들어 할 터.
나는 푸성귀를 묶었던 끈(가느다란 철사 심이 들어 있음)을 이용하여 화분 속의 화초 줄기와 잎을 깡똥하게 묶었다. 큰 잎사귀는 늘어지고 쳐지게 마련이기에 여자의 꽁지머리를 묶듯이 긴 끈으로 살짝 묶는다. 곁을 지나가다가 식물 잎을 스쳐서 다치기 않도록 미리 선처했다.
아내가 쌀을 씻으면 쌀뜨물이 나온다. 싱크대에 부어서 버리지 말고 양푼에 담아서 베란다 위에 올려놓았다가 살짝 발효시켜서 화분 흙에 부어주면 식물한테는 영양가가 든 수분 공급이 된다.
서울 아파트 안에서 도 궁상 떠는 내가 시골에서 살면 오죽이나 더 할까?
사실이다.
시골집은 함석집. 처마 밑에 큰 물통 여러 개를 늘 놓았다. 빗물이 물통에 쏟아지게 마련이다. 500리터, 250리터 의 빗물이 가득 차게 마련이다. 이 빗물로 흙이 묻은 장화를 닦고, 흙이 묻는 목장갑을 빨고, 텃밭 작물한테 물을 부어준다. 야외 지하수를 퍼 올리지 않아도 됄 만큼 빗물이 충분하다.
함석지붕 채양받이가 낡아서 그렇지 이게 성했더라면 엄청나게 많은 빗물을 받아서 저장하고, 활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채양받이가 다 떨어져서 너덜거리는 실정이니...
내가 왜 이렇게 궁상 떠는지 모르겠다.
2.
누나한테서 전화 왔다.
내 아내한테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는다면서 나한테 물었다.
어제 시골 텃밭에서 베어서 대전으로 가져 간 머위대를 어떻게 하면 장기간 보관하느냐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살짝 데쳐서 냉동고 안에 넣어두면 일년내내 먹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누나는 남들한테 물으니 냉동실에 넣었다가 나중에 꺼내면 질긴 줄기밖에 안 남는다고 말하면서 내 대답에는 의문스러워 했다.
마침 아내가 잠실 새마을시장에서 푸성거리를 사서 귀가했기에 핸드폰을 아내한테 바꿔 주었다.
잠시 뒤에 아내가 내 방에 와서는 '머위대는 냉장고에 보관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일년내내 보관한다고 말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졸지에 멍청해졌다. 나는 머위대를 살짝 데쳐서 냉동고에 넣고 먹은 기억이 날 법했다.
몇 해 전 늙은 어머니(아흔다섯 여섯 살) 대신에 내가 밥 지어서 먹을 때에는 그렇게 한 것으로 착각한 것일까? 왜 내가 냉동고에 보관하라고 거침없이 대댭했지? 머위대는 냉동고에 보관하면 안 되는 거여? 하는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번 시골에 내려가거든 머위대 껍질을 벗겨서 냉동고 안에 장기간 보관하면서 실험해야겠다.
늘 의문을 갖고, 새롭게 관찰하고 실험하려는 습성이 또 도지는가 보다.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첫댓글 배우고 갑니다
예. 아직도 계속 써야 할 내용이지요.
'다쓰족'
저는 다 쓰자는 주의자이지요. 이렇게 궁상을 떨면? 대량생산하는 업자 업체는 망하겠지요.
적당히 쓰다가 내버려야만이 제조업체가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며, 진화하지요.
저처럼 '다 쓰자'이면 제조업체는 문 닫아야겠지요. 그런데도 자원보존의 측면에서 보면 '다 쓰자'는 주의가 맞지요.
시골에 내려가 일해야 하는데도 서울에 또 올라와서 빈둥거리자니.. 맨날 이런 궁상만 떱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는 서해안 다녀올 예정이지요. 텃밭 상태도 확인하고(멧돼지가 감자두둑 다 엎었을 터, 참나리 두둑도), 시간이 나면 갯바다 바람도 쐬고요.
댓글 고맙습니다.
우리집(옛말로 25평)은 앞 발코니가 넓지 않습니다.
빨래 건조대도 있고 잡다한 것도 있고 화분도 10개 있고.......
그래서 가끔 앞 발코니에서 일을 볼려면 약간 짜증이 날 때도 있어요.
어제 천안 가는 길에 큰 처형댁(78세로 28평 아파트에서 아들딸 다 분가 시키고 홀로 살고 계심)으로
6개의 화분을 이사 시켰더니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아 잘 자라던 화분한테는 미안하지만
어찌나 앞 발코니가 훤해 보이는지......
남은 4개도 처남댁(천안 독립기념관 근처의 전원주택)에 다음에 갖다 줄려구요.
예.
그 느낌 알만 합니다.
좁은 아파트 발코니에 크고 작은 화분이 차지하는 공간이...
큰 처형댁에 6개를 보냈고, 나중에는 4개마저 처남댁에 갖다 주려는 계획이군요.
살아 있는 식물이 다른 물건에 비하여 가치가 덜했나 보군요.
물건 저장강박증이 있는 나는 잡다한 물건을 쌓아두지만 살아 있는 것만큼은 소중히 여기지요.
정을 주면서 증식시키는 묘미가 있지요.
나머지 화분 처리하면 발코니가 보다 더 훤해지겠군요.
댓글 고맙습니다.